본문 : 삼하3:1-39절 사무엘하 강해3
제목 : 은혜로 살아가는 신자의 삶!
성도들의 삶속으로
슈바이처 박사의 짧은 일기 하나를 소개합니다. “아침의 밝은 햇살에 눈을 떴다. 그리고 이 햇살을 보며 하나님께서 내게 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은혜를 그냥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죄악이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여러분에게 부어주신 은혜가 큰 것을 앎니까? 혹시, 은혜인지를 모르고 당연한 것을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무엇보다도 그 은혜를 받은 사람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다윗과 유다나라가 점 점 강해지게 했지만, 은혜받은 사람답지 못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받은바 은혜에 감사하고, 은혜받은 사람답게 살아갈 것을 다짐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이스라엘 나라의 2인자인 아브넬과의 협상으로 통일왕국을 이루려 했던 계획이 실패하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먼저 1절을 보면 다윗 통치하던 유다가 점점 강해졌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이스라엘나라의 2인자였던 아브넬이 점점 실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던중 7절을 보면, 아브넬이 사울왕의 첩인 리스바를 통간하게 됩니다. 그리고 8절을 보면, 이 소식을 들은 사울의 아들이며, 현재 이스라엘의 왕인 이스보셋이 아브넬에게 화를 냅니다. 그리고 이 2사람 사이의 금이가기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12절을 보면, 아브넬이 더 이상 이스보셋에게 얻을수 있는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한 후 다윗에게 협상을 제안을 합니다. 그 협상의 내용은 아브넬이 다윗을 통일왕국의 왕이 되게 돕겠다는 것이고, 묘사는 되어 있지 않지만 다윗이 통일왕국의 왕이 된후 자신을 2인자가 되게 해달라는 요청을 했을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러한 협상을 제안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넬의 솔깃한 제안을 들은 다윗은 13절에 자신의 옛 아내인 미갈을 데리고 옴으로 협상의 의지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아브넬은 통일왕국을 위한 작업을 일사천리로 진행합니다. 그 결과 19절을 보면, 아브넬의 권면으로 11지파 사람들이 다윗을 왕으로 인정을 합니다. 그리고 21절을 보면, 다윗과 아브넬의 협상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통치하는 유다 나라의 2인자격인 요압이라는 사람이 다윗과 아브넬의 협상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그리고 27절을 보면, 요압이 아브넬을 죽이게 됩니다. 그 결과, 다윗이 기대했던 통일왕국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리고 31-39절에 다윗과 온 이스라엘이 아브넬의 죽음을 탄식하는 내용이 소개됩니다.
오늘 우리들이 먼저 생각할 것은 1절입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의 집안에는 특별히 대우하셨고, 복을 주셔서 점점 더 강해지게 하셨고, 그러나 사울과 그의 집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구절은 참 이해할 수 없는 구절입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과 사울의 집을 이렇게 다르게 대우하셨을까요? 혹시, 오늘 말씀을 읽으며 다윗에게 하나님의 특별히 대우하실만한 어떤 잘함, 업적, 믿음..., 등을 발견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저 보다 묵상의 수준이 높은 분이십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다윗의 집안이 사울의 집안보다 탁월하거나 더 나은 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제 생각은 다윗의 집안이나, 사울의 집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더 강했습니다. 좀 구체적으로 살펴보록 합시다. 먼저 2-5절을 보면,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을 기록합니다. 무려 6명이나 됩니다. 이것만 보면 축복입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아내의 이름도 6명이나 기록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알수 있는 것은 지금 다윗이 율법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17장에서 하나님께서 왕의 제도를 주실 때 경고하신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말을 많이 두지 말라, 은 금을 많이 쌓아두지 말라, 그리고 마지막에 하신 경고가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지금 6명의 아내를 데리고 있었고, 13절을 보면, 이미 남의 아내가 된 자신의 옛 아내인 미갈까지 다시 자신의 아내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여러명의 아내와 많은 첩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다윗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을 12-13절을 보면, 이스보셋에게 분노한 아브넬이 다윗에게 사람을 보냅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협상을 요청합니다. 이미 말씀드린대로 그 협상은 이스보셋이 통치하는 11지파를 다윗에게 주는 조건으로 통일왕국의 2인자의 자리를 요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아브넬의 협상을 기쁘게 받아드립니다. 결국, 다윗은 이스라엘의 2인자인 아브넬과의 협상을 통해서 통일왕국의 최고 통치권자가 되려고 했던 것입니다. 다윗답지 못한 모습이고, 하나님도 동의할 일은 아닙니다. 우리들이 지난 시간에 묵상한 대로, 하나님께서 사울이 죽은 후에도 다윗을 곧장 왕이 되지 않게 하신 이유가 더욱 다윗을 준비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준비의 과정을 마친 후 하나님은 다윗을 통일왕국의 왕으로 세우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은 그 준비 기간을 그만두고 협상을 통해서 통일왕국을 이루고 왕으로 세워지려고 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셨고, 아브넬을 죽게 하심으로 그 모든 협상을 깨트리고 다윗의 계획을 허무셨습니다. 이렇듯 다윗은 하나님께 특별한 대우를 받을만한 자격이나, 내용이 있었던 사람이 아닙니다. 다윗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다나라를 대표하는 다윗의 군대장관인 요압은 어떻습니까? 26-27절을 보면, 요압은 왕인 다윗을 속이고, 자신의 개인의 복수심으로 아브넬을 죽임으로 나라의 일을 망쳐 놓았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의 나라가 강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다윗과 그의 나라는 결코 사울과 그의 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수 있습니다. 조금도 더 나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본문 1절은 무엇이라고 말을 합니까? 다윗의 집은 점점 강하여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간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 구절을 무엇으로 설명할수 있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지금 다윗과 그의 나라에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 역시 어떤 특별함이, 더 나음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끊임없이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성숙하게 더 귀하게 만들어 가고 강하게 하시고, 지금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특별히 값없이 하나님께 은혜받은 우리들 모두가 은혜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은혜받은 자 다운 삶은 무엇일까요?
2.다윗와 요압의 공통점
우리는 지금까지 다윗과 다윗의 나라에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와 사랑이 부어졌음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은혜받은 다윗과 그의 나라는 은혜받은 자 답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한 사람들이기 떄문입니다. 먼저, 다윗의 경우, 아브넬과 통일왕국이라는 협상속에 아브넬에게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그 제안은 13절에 자신의 옛 아내인 미갈을 데려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15절을 보면, 미갈은 이미 발디엘이라는 남편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16절을 보면, 발디엘이 미갈을 빼앗기고 우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이것을 보면, 미갈은 남편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행복한 아내였고 행복한 가정이었을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윗은 지금 미갈과 발디엘, 그리고 그의 가족들의 마음에 아픔을 주는 일을 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유다나라의 대표자격인 요압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압은 다윗의 2인자였습니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자신도 모르게 진행된 다윗과 아브넬의 통일왕국 협상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27절을 보면, 요압이 다윗을 속이고 아브넬을 데려다가 죽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32절에 통일왕국을 기대한 다윗과 온 백성들이 울게 됩니다. 그들의 염원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윗과 요압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사람이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잘못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받은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은혜와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여러분이 은혜와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면 확신한다면,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그런 잘못된 일을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울게 하는 일, 절망하게 하는 일, 흔들리게 하는 일, 실족하게 하는 일을 하면 안됩니다. 물론, 누가 일부러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러고 싶어서 그러겠습니까? 그러나 때로는 그럴 때도 분명히 있습니다.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은혜받은 자로서 서로에게 아픔을 주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다윗과 요압은 왜 아픔을 주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이기심 때문 입니다” 먼저 다윗을 보십시오! 지금 다윗은 미갈을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남이 불행하든 말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겠다는 이기심입니다. 그리고 그 이기심이 행복한 한 가정을 깨트려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오늘 본문에 아브넬을 죽인 요압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은 요압이 아브넬을 죽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본문 27절, 30절을 보면, 아브넬이 요압 자신의 동생인 아사헬을 전쟁에서 죽였기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즉, 지금 요압은 동생을 죽인 아브넬에게 복수심으로 죽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닙니다. 그 복수심을 움직인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에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브넬에 의해서 통일왕국이 이루어지면, 다윗과의 협상으로 인한 아브넬이 2인자가 되고, 지금의 2인자인 자신은 밀려 날것을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아브넬을 죽인 것입니다. 한마지로 말하면, 요압은 하나님의 뜻, 이스라엘 전체의 유익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기심이 통일왕국의 협상을 깨트렸으며, 나라의 중요한 일을 망쳐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이기심, 이기적인 행동은 은혜받은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들이 서로의 마음에 아픔을 주는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자신만 생각하는 욕심, 곧 이기심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결코 다윗이나, 요압처럼 이기적인 사람이 되면 안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무슨 일을 할때, 또는 함께 뭔가를 해야 할 때, 이기적인 사람은 아닙니까? 생각보다 많은 신자들이 다윗과 요압처럼 이기적인 사람, 이기적일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이런 이기적인 모습은 은혜받은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받은 은혜는 조건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은혜 받은 자로서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3.은혜를 주시는 이유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이유는 나만 잘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해 주신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철저히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예를들면,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 살던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은혜를 주셨습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은혜를 주셔서 애굽나라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한 은혜를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근 가운데 있던 사람들을 돕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열방 중에서 가장 미약했던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삼아 열방의 중보자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포로 민족의 여인이었던 에스더를 바사제국의 왕후가 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민족 말살의 위기에 처해 있던 유다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초대교회 곧 예루살렘교회에 큰 은혜를 베풀어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무엇보다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것 역시 다른 사람을 위함인 것입니다. 조금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하시기 위함이고, 다른 사람을 더 잘 섬겨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은혜를 받은 것에 대해서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는 착각을 할 때가 종 종 있습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한 사람은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너무나 위험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누구에게 먼저 은혜를 주시겟습니까? 당연히 위험한 사람에게 먼저 은혜를 줄 것입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 해를 덜 끼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자신에게 큰 은혜가 임하는 것을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이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방식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누군가보다 먼저 은혜를 받고, 더 많은 은혜를 받았다면, 여러분이 잘나가서 더 나아서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결국, 은혜받은 자 다운 삶은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해주고, 섬겨주고, 유익을 끼치는 삶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이고, 기대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삶을 소원하는 자들에게 더 더욱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자격없는 다윗과 그의 나라에,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본문과 삶
1)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시다.
2)그리고 은혜받은 자 답게, 은혜받은 자로서의 책임을 다합시다.
3)그것은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고, 유익을 끼치는 삶인 것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은혜를 알고, 은혜 받은 자로서의 책임을 다함으로, 더 더욱 강해지는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