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호3:1-5절 호세아서강해6
제목 : 시간으로 일하시는 분!
성도들의 삶속으로
오늘도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속담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시간이 약이다.’ 또는 ‘세월이 약이다.’ 라는 말을 아실 겁니다. 그 뜻은 시간이 흐르면 어떤 일을 받아 들이게 되고, 시간이 흐르면 상처도 잊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어떤 문제가 해결이 된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 말이 다 옳은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간이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시간이란 우리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일하시는 대단히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은 시간으로 일하시는 분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간으로 일하신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며,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세월)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태도를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극적(劇的)인 신앙은 안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북왕조 이스라엘의 신앙의 실패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의 신앙의 실패는 단순히 해야 할 것을 안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정도의 실패가 아니라, 또, 하나님과 더불어 우상을 함께 숭배한 정도의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을 우상처럼 숭배했다는 측면에서의 실패였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북왕조 이스라엘의 신앙의 실패의 이유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도 신앙의 다양한 신앙의 실패를 합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실패, 사랑의 실패, 겸손의 실패, 감사의 실패, 용서의 실패..., 등 모든 신앙의 실패의 원인이 하나님을 올바르게 더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점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이 알아야 할 하나님에 대해서, 특별히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 분인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아내의 자리를 버리고 떠나 음녀가 된 그 여인을 다시 데리고 오고, 그녀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절을 보면, 호세아는 은15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그 여인을 사서 다시 데리고 옵니다.(대략 은30세겔 - 종 한명의 값으로 예상) 그리고 3절을 보면, 그 여인에게 호세아는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4-5절에서 그 의미를 알려주십니다. 즉, 4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게 될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다는 말은 이스라엘이 주권을 빼앗겨, 남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을 말하며,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다는 말은 이스라엘이 완전히 붕괴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표현은 ‘많은 날 동안’ 이라는 말입니다. 즉,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이스라엘은 환란을 당하고 인고의 세월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5절을 보면,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고 말을 합니다. 즉, 환난과 인고의 많은 날을 보낸 후에야 이스라엘이 다시 돌아올 것이고, 회복될 것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절을 보면,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먼저,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여러분은 간증을 듣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간증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마도 대부분의 신자들이 간증을 좋아하는 이유는, 극적(劇的)이기 때문입니다. 즉, 누가 봐도 안되고, 망하고, 끝날 상황인데 기사회생을 하는 극적인 감동의 이야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증을 들으면 은혜가 되고, 소망이 생깁니다. 그런데 간증에는 큰 장점과 큰 단점이 있습니다. 먼저, 큰 장점은 우리가 실패하고 포기하고, 절망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는 점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포기하고, 절망하는 그 순간에도 우리를 위해서 끊임없이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간증이 잘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큰 단점은 간증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극적인 신앙을 기대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런 단점이 발생하는 이유는, 간증을 하는 사람이 잘못 간증했거나 또는 간증을 듣는 사람들이 과정보다는 결과에만 집중하기 때문일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극적인 신앙을 기대하게 만든다는 큰 단점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극적인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시간의 의미와 가치를 모르고, 시간에 성실하지 않는 신앙을 말합니다. 좀 쉽게 말하면, 시간이 걸려야 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시간을 뛰어 넘거나, 단축되거나, 즉각적으로 되어지기를 바라는 신앙을 말합니다.
물론, 극적인 신앙의 요소들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아도 극적인 사건들이 얼마든지 있고, 하나님은 그렇게 극적으로도 일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크게 2가지로 설명하겠습니다. 첫째는, 신앙 성장입니다. 신앙은 결코 하루 아침에, 짧은 시간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신앙 성장을 극적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을 하면, 어떤 설명과 어떤 지식과 교육으로 그렇게 간단하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신자들이 하루 아침에 한순간에 신앙이 달라지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극적인 신앙입니다. 저 역시 한때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제가 오래전에 갖었던 경험을 말한다면, 전 부흥회에 대한 특별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흥회 전부터 은혜를 사모하며 기도로 준비를 많이 했고,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했습니다. 심지어 대학교때에는 교회 부흥를 위해서 학교도 안갔습니다. 제가 이렇게 부흥회를 사모했던 이유는, 3박4일의 부흥회가 나를 전혀 딴 사람으로, 신앙의 능력자로 바꾸어 주시리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없이 참석한 부흥회 중 단 한번도 저를 극적으로 변화시켜 준 적이 없습니다. 또, 저는 수련회 저녁집회에 대한 기대감이 항상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흔히 쓰는 말로, 뒤집어져서 수련회 마치면 사람이, 삶이 완전히 달라질 것을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제가 부흥회에서 수련회에서 은혜를 못받은 것은 아닙니다. 많이 울기도 했고, 하나님께 붙들려 기도하는 것도 경험했고, 특별한 경험도 했고, 은혜상도 여러번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한번의 부흥회나 저녁집회가 저를 딴 사람으로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다. 제가 극적인 신앙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립니다. 이 시간을 배제하는 것이 극적인 신앙인 것입니다. 둘째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일에도 극적으로 일하지 않으십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또, 저의 경우를 예를 들면, 지금까지 제 인생을 뒤돌아보면,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시간이 안걸리고 해결해 주신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예를들면, 결혼 후에 대학원을 다녔는데 등록금 낼 형편이 아니었는데 아무리 기도를 해도 즉시 해결이 안되고, 기간 만료 직전에 해결을 해주시고, 사역지을 구할 때에, 개척을 준비하는 이에도, 그리고 아이를 주시는 일에도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해결해 주신적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것 일수도 있지만 제 경우는 그랬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신자들이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일에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물론, 하나님이 능력이 없거나 부족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즉각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또한 기독교 신앙안에 극적인 요소가 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전부 극적인 것들입니다. 그러나 제가 기독교 신앙을 극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격 없는 자들을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측면에서 기독교 신앙이 극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수단으로 삼아 시간을 뛰어 넘어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의미의 극적인 신앙은 참다운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적어도 신앙이 성장하는 일, 문제가 해결되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극적인 신앙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2.시간으로 일하시는 하나님!
그렇다면, 우리들이 극적인 신앙 곧 시간을 뛰어 넘어 결과를 바라는 신앙을 가지면 안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시간으로 일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4-5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지내다가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고 말을 합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 같습니까? 북왕조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께 나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까지 가기 위해서는 많은 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부부사이와 같습니다. 서로 남 남으로 살던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고, 혼인신고를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부부다워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수없이 많이 날 동안,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갈등과 다툼, 그리고 합의와 존중과 노력이라는 정말 많은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3절에서도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 라고 명령하십니다. 즉, 신뢰가 깨어져 버린 호세아 부부의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도 많은 날이 필요하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많은 시간을 가지고 자신의 민족, 자신의 사람을 위해서 일하시는 분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가지고 일하시는 분입니다. 이러한 점은 성경에서 너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천지창조 역시 하나님은 시간을 가지고 일하셨습니다. 즉,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실 때, 시간안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만드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통해서, 시간안에서 일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시는 일에도 최소한 25년, 최대 100년이라는 많은 시간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25년이라는 시간속에는 하갈과 사건, 이스마엘과의 사건,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 했던 사건..., 등 정말 수없이 많은 현실들이 있었습니다. 또,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17살 무렵에 꿈을 꾸고 30살이 되어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을 이루시는데 적어도 13년이 걸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13년안에는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노예로 팔려가고, 노예가 되어 일을 하고, 유혹을 받고, 억을 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고, 정말 많은 일들을 격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받는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또, 출3:1-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기 위해서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기도에 응답하시는데 결린 시간은 무려 430년이 걸렸다는 점이고, 또한 모세를 이스라엘 나라의 지도자로 세우시는데 걸린 시간도 무려 40년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땅에서 해방시키시는 일에도 10가지 재앙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을 쓰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인류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시기 까지는 확인할 수 있는 시간만 대략 4200년 (출애굽 bc1446년, 애굽땅 이주 BC 1876년, 야곱의 출생 BC 2006년, 아브라함 출생 2166년 노아의 홍수 2500년, 노아의 출생 3100여년, 그 이상은 정확히 알기 어렵다, 단지 인물들의 나이만 합하면, 약 4200년) 이 걸렸습니다. 이것을 갈4:4절에서는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가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이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때가 찼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시간안에서 그리고 시간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시간으로 일하신다는 말은 단순히 시간을 사용한다는 말만이 아니라, 시간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모든 순간을 사용하신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반문하고 싶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통해서 일하실까? 그냥 한순간에 하시면 되지 않나? 물론,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안하시고 시간안에서 시간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변화시키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변화, 문제 해결이 목적이라면 하나님은 시간을 통해서 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얼마든지 시간을 뛰어넘어서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순한 변화와 해결이 목적인 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시간을 통해서 일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방법이며, 함께 하시는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시고, 무엇보다 하나님 자신을 우리의 인생속에 채우시기 위함입니다. 즉, 하나님을 알아가고, 깨달아 가고, 하나님께 나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자식을 키우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돈, 관심, 돌봄..., 아닙니다. 시간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아내가 임신을 하고, 하루만에 출산을 하고, 하루만에 아이가 성인이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과연 부모자식의 관계는 존재하게 될까요? 가정은 존재하게 될까? 부모를 배우고, 사람을 배우고, 삶을 배울수 있을까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무서운 일들이 일어날 겁니다. 또, 하나님이 여러분의 신앙을 하루 아침에 성장시키고, 여러분의 문제로 하루 아침에 해결해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수 있을까요? 결국, 시간과 현실이란 하나님 입장에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게 해주며, 하나님을 우리에게 채워주시는 순간(context)이며, 우리 입장에서는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배워가고 더 나은 신자로 자라가는 순간인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시간 또는 현실의 가치이며 의미인 것입니다.
3.하나님을 채우가는 오늘을 살라!
그렇다면, 우리는 주어지는 시간, 현실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첫째,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 더 구체적으로 내 신앙이 자라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 않을 때에도 조급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이미 우리들이 살펴본 대로 하나님은 시간과 현실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로 조급함은 너무나 큰 불신앙인 것입니다. 둘째, 여러분의 기도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도구로 쓰여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시간을 앞당기거나, 단축시키는데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좀 더 넓게 말하면, 신앙을 동원해서 고통스러운 현실을 바꾸거나 피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기도가 시간을 단축하거나 앞당기기 위해 쓰여지는 것이 아니가, 주어진 시간과 현실을 성실히 감당하기 위해 기도가 쓰기를 바랍니다. 셋째, 오늘을 사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오늘보다는 과거를 살려고 합니다. 그리고 내일 살려고만 합니다.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날은 하나님이 지금 일하시는 오늘입니다.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특별히 그 오늘을 하나님을 알아가는데 사용하십시오! 과연 여러분은 오늘은 무엇을 사셨습니까? 오늘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위해 사셨습니까?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과 삶
1)특별히 하나님은 시간(현실)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2)그래야만 우리와 우리의 인생속에 하나님을 알게 하고, 채우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3)이러한 시간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야 참다운 신앙, 참다운 신앙의 삶을 살수 있습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조급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오늘을 하나님을 알아가는데 사용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으로 부요하게 채워진 인생을 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