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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내가 나를 알게 하리라!(호세아서강해5)
 본문말씀 : 호2:14-23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8.5.9
조회 : 8,635   추천 : 0  
본문 : 호2:14-23절  호세아서강해5
제목 : 내가 나를 알게 하리라!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은 ‘아는 게 힘이다’ 라는 말을 아실 것입니다. 이 말은 중세시대 경험주의 철학자인 베이컨이 한 말입니다. 예를들면, 당시 많은 사람들은 번개가 치면, 신이 노여움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대단히 두려워 했습니다. 그러나 그 번개가 수증기를 머금은 구름에서 전기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현상임을 알게 되었을 때, 더 이상 번개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는게 힘이다’ 라는 말과 반대되는 말도 있습니다. 바로, ‘모르는 게 약이다.’입니다. 이 말은 어떤 일에 대해서 차라리 모르는 것이 유익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아는게 힘이다 라는 말과 모르는게 약이라는 말 중에 어떤 말이 맞는 말일까요? 사실 상황에 따라 이 두가지 말은 모두 맞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는 게 힘이 되고, 어떤 경우에는 모르는게 약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르는게 약이라는 말보다는 아는게 힘이라고 말을 합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아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이 자신을 알게 하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일이 왜 중요한가를 배우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북왕조 이스라엘의 신앙의 실패! 
 우리는 지난 시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땅에서 해방시키신 목적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리로 이끄시기 위함이라는 점과 또한 그들을 심판하며 바벨론 포로됨을 격게 하신 이유 역시 그들을 영광스러운 자리로 이끄시기 위함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근거로 성경이 말하는 복은, 내가 바라는 것을 얻고, 소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 기준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 지간에 영광의 자리로 나가게 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복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 역시, 우리를 영광의 자리(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으로만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로 이끄시기 위함임을 살펴보았고, 그러므로 우리 모두도 하루 하루를 더 영광스러운 자리로 나가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점을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북왕조 이스라엘의 신앙의 실패를 소개하며, 그 이유가 무엇이며, 또한 그 신앙의 실패에 대한 해결책이 무엇인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거친들로 데리고 가시겠다고 말을 합니다. 또, 15절에서는 아골 골짜기로 데리고 가시겠다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이 표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북왕조 이스라엘에게 벌을 주고, 심판하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에게 벌을 주고,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북왕조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을 하면, 그들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신앙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북왕조 이스라엘의 신앙의 실패는 무엇입니까? 이미 우리가 2시간에 걸쳐 살펴본대로, 북왕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번영을 바알이 준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을 외면하고, 바알을 사랑하고 바알에게 나갔습니다. 즉, 우상숭배에 빠진 것입니다. 물론, 북왕조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 빠졌다는 말은 하나님을 버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면서 여전히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종교적인 의식들을 행했습니다. 다시말해,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숭배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북왕조 이스라엘이(물론, 유다민족도 포함)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숭배했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입니다.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섬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마치 우상처럼 숭배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구약성경에서 우상숭배를 책망하는 내용의 본질입니다. 즉, 하나님을 우상처럼 숭배했기 때문에, 다양한 우상을 숭배하는 일을 저지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북왕조 이스라엘의 신앙의 실패는 하나님을 우상처럼 숭배한 것이고, 그러 인해 바울을 비롯한 여러 우상수배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 여러분이 잘 아시는, 출32:1-6절의 금송아지 사건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율법을 받기 위해서 시내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오래도록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론을 통해서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아론을 앞세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든 금송아지는 누구를 염두하고 만든 형상일까요? 그것은 분명히 자신들을 애굽땅에서 구원해 내신 하나님을 염두하고 만들어 낸 형상일 것입니다. 그래서 출32:5-6절을 보면,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고, 그런 자신들의 정성을 하나님께서 받으셨을 것이고 믿고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는 하나님을 염두하고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게 뭐가 문제가 됩니까? 1차적으로 그들이 만든 금송아지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고, 2차적으로는 하나님을 어떠한 형상으로 제한시킨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자신의 의지대로 하나님을 조종 하고자 했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이유는, 그들의 마음대로 하나님을 조종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보고 싶을 때 보고, 만지고 싶을 때 만지고, 어딘가를 가고 싶을 때, 언제든 데리고 갈수 있고, 능력이 필요할 때는 언제는 주는 그런 하나님이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생각과 행위는 우상숭배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상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우상은 사람이 창안해 내고,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능력을 부여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우상을 창안하고, 만들고, 능력을 부여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서 자신이 가질 수 없는 능력을 이용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예를들면, 알라딘 램프와 같습니다. 알라딘이 램프를 문지르면 거인이 나옵니다. 그리고 알라딘에게 묻습니다. ‘주인 부르셨습니까? 무엇을 해드릴까요?’ 알라딘은 자신이 소원하는 것을 이룰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램프의 거인은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은 램프를 문지른 알라딘의 요구대로만 쓰게 됩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금송아지 사건은 우상숭배 사건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속에서 끊임없이 우상숭배의 문제가 발생한 이유 역시, 하나님을 우상처럼 숭배했기 떄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으로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면, 하나님 우상숭배일 때가 사실은 너무나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내가 가지지 못한 하나님의 능력만을 바랄 때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골3:5절에서는 ‘탐신은 우상 숭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북왕조 이스라엘 사람들 넓게는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의 모습이 늘 이랬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처음부터 하나님을 숭배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잘못된 생각들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우상숭배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북왕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실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북왕조 이스라엘과 같은 신앙의 실패는 없습니까? 하나님을 단지 우상으로 만들고, 하나님의 능력만 내가 원하는 일과 소원을 위해서 쓰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까? 이것은 가장 무서운 신앙의 실패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신앙의 실패에서 다양한 신앙의 실패가 생겨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용서의 실패, 사랑의 실패, 인내의 실패, 순종의 실패, 겸손의 실패, 감사의 실패, 기도의 실패, 섬김의 실패, 절제의 실패, 온유함의 실패..., 등 그래서 욕심 부리고,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미워하고, 나쁜 감정을 쉽게 들어내는 신앙의 실패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모습속에서 신앙의 실패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신앙의 실패에서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북왕조 이스라엘의 신앙의 실패의 이유! 
 우리는 지금까지 북왕조 이스라엘의 신앙의 실패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우상처럼 숭배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다양한 우상들을 숭배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이 생각할 것은, 과연 북왕조 이스라엘 백성, 그리고 우리들이 다양한 신앙의 실패를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합시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렇게 신앙이 실패한 북왕조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복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예들면, 14절에 거친 들에서 말로 위로하고, 15절에서는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게 하고, 16절에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17절 다시는 그의 이름을(바알)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18절에 전쟁이 없이 평화하게 하며, 19-20절에는 네게 장가들어라고 말하고, 21절에 그날에는 응답하겠다고 말을 하고, 22절은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고 말하고, 23절에는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이라 하리나..., 그들이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고 말을 합니다. 결국, 오늘 본문 전체는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다르게 말을 하면, 그들이 신앙에 실패한 이유와 원인을 찾아서 해결함으로, 그들의 신앙의 실패를 다시 고쳐서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북왕조 이스라엘의 신앙의 실패 이유, 원인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0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23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북왕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 곧 신앙에 실패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많은 우상 중 하나로만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상과 다른 분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이 참되고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겠다고 말을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것이 신앙의 실패의 이유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가 가장 힘있게 외쳤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호4:6절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했다는 것이고, 호6:3절에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라고 외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애굽땅에 종이었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특별히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데 10가지 재앙이 동원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번에 그들을 해방시킬 수 없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홍해바다를 가르셨던 사건을 보십시오! 분명히 얼마든 단번에 그들을 해방 시키실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그들을 해방시키셨고, 홍해사건을 경험하게 하시고, 광야 40년을 경험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출6:2-7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너희를 내 백성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즉, 이스라엘을 해방 시키신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그들의 주인이시며, 그들로 하나님의 통치아래 살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 내 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오해했고, 하나님과 우상을 구별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금송아지 사건이고, 법궤를 들고 전쟁터에 나간 사건이고, 다양한 우상숭배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북왕조 이스라엘을 심판하심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이 바알(우상)과 다른 존재임을 증명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가 ‘내가’ 인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우상과 다른 존재임을 증명하시는 일을 하시고, 뷱왕조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다 알게되기까지 그들을 놓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끝까지 찾아가서, 설득하고, 항복을 받아 내시겠다는 것입니다.(14절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호세아서가 말하는 하나님의 분노이고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북왕조 이스라엘의 신앙의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중 하나로면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 역시, 신앙생활 가운데 다양한 실패를 하게 됩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사랑의 실패, 용서의 실패, 감사의 실패, 순종의 실패, 겸손의 실패..., 등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앙의 실패의 근본적인 이유 역시,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수준은 하나님을 아는 만큼이고, 우리들이 하나님을 아는 만큼만 신자로서 살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3.하나님을 더 알아 가십시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이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여러분이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삶을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다양 순간들을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다양한 순간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알아가도록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서 타이르시고 설득하시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여러분의 삶의 다양한 순간을 원망과 불평으로 마주하거나, 염려와 걱정으로 마주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묵상하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다양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더 알아 가는 일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많이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멈추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교만을 떨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을 너무나 많이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자들은 마치 하나님을 다 아는냥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정말 무지하고 교만한 모습입니다. 과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어느 정도나 될까요? 50% 30% 10%? 어떤 유명한 목회자가 임종 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한평생을 살면서 알게 된 하나님은 큰 태산에서 삽 한자루 정도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을 많이 모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예배에 열심히 나오십시오! 열심히 성경을 묵상하십시오! 그 밖에도 하나님을 더 알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계시의 하나님이십니다. 즉,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알리시는 분입니다. 
 본문과 삶
  1)그러나 북왕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상들 중 하나로만 알았습니다. 
  2)그 결과 신앙의 실패를 하게 되었습니다. 
  3)그러나 하나님은 북왕조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알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삶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알아감으로 신앙의 성공자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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