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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영광의 자리로 이끄시는 분!(호세아서강해4)
 본문말씀 : 호2:2-15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8.5.2
조회 : 10,385   추천 : 0  
본문 : 호2:2-15절  호세아서강해4
제목 : 영광의 자리로 이끄시는 분!   

  성도들의 삶속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복’일 것입니다. 물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주된 관심사도 역시 복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복을 받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물론, 하나님께 복을 받고자 하는 자세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이 ‘진정한 복인가’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즉, 내가 원하는 것, 소원하는 것을 얻는 것을 복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때로는 복이 아닌 것을 복으로 여기고, 받고자 할 때도 많습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우리가 복이라고 여기는 것이 복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고, 반대로, 복이 아니라고 여기던 것이 복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복이 되는 길, 복이 되는 인생을 소원히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번영이 무조건 복일까?
 우리는 지난 시간 북왕조 이스라엘이 가진 착각들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그들이 누린 번영과 복을 바알이 주었다고 착각했고, 둘째는,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는 것으로 하나님 백성으로서 할 일을 다 했다고 착각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북왕조 이스라엘이 이러한 착각을 하게 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복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보통 세상 사람들은 잘되는 것,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는 것, 내가 바라고 소원하는 것을 가지고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내가 바라고 소원하는 것을 가지고 이루는 것이 복일까요? 성경은 그것을 복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을 합니다. 먼저, 웃픈 이야기로 예를들면, 얼마전 베트남의 한 해안에서 고기를 잡이를 하던 한척의 배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고기잡이 하러 나가는 어부의 소원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고기를 많이 잡는 것입니다. 만선으로 귀항하는 것이 소원일 것입니다. 이 날 고기잡이를 하러 나간 어부 역시도 만선을 소원하며 나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그 어부의 소원대로 배안 가득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 어부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고기를 가득 실은 배가 해안가에 도착할 무렵, 너무 많은 고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배가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과연 어부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 축복이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수고는 수고대로 하고, 고기는 다 잃고, 심지어 생계에 가장 중요한 수단인 배와 그물을 잃었습니다. 차라리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이 나았을 것입니다.  또, 어느 70살먹은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천사가 나타나 이 부부에게 평생을 변함없이 살았으니 소원 하나씩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먼저, 할머니가 말을 합니다. 죽기 전에 세계여행을 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세계여행권을 주었고, 이번에는 할아버지 차례입니다. 할아버지가 말합니다. 그 세계여행을 나보다 30살 어린 여자와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할아버지를 100살이 되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소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제 다시 묻습니다. 정말 바라고 소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복일까요?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의 여러 본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아브라함 조카 롯을 생각해 보십시오! 롯은 삼촌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함께 따라 나온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롯의 소유가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아브라함과의 갈등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갈라서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롯은 자신이 살 거주지로 소돔성이 있는 지역에 거주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땅을 거주지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일어난 일이 무엇입니까? 가나안의 남 북 전쟁이 발발 했고, 그 전쟁에서 롯이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훗날 소돔성의 멸망으로 인해서, 사위들, 아내, 그리고 소유를 다 잃게 됩니다. 그리고 조금 과하게 말하면, 딸들과 있어서는 안될 일까지 생기게 됩니다. 롯이 바라고 소원하는 것이 이루어진 것은 결코 복이 아닙니다. 또,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의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들의 바램과 소원대로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졌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라고 소원하는 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과연 그게 그들에게 복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도리어 그로 인해서 더 많은 어려움을 당하게 되고, 신앙의 타락이 발생하게 됩니다. 또, 여러분은 탕자의 비유를 아실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에게 유산을 요구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마음대로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탕자의 바라고 소원하는 대로 유산을 물려 받았습니다. 이것이 그에게 복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허랑방탕한 삶을 살게 되었고, 무엇보다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아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북왕조 이스라엘은 바라고 소원하는 대로, 다양한 번영을 누렸습니다. 과연 북왕조 이스라엘에게 복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의 번영으로 인해서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바알을 사랑하고 바알을 숭배하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 심각한 것은,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번영이 자신들의 신앙이 좋아서 생겨난 결과물로 여기기까지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북왕조 이스라엘의 번영은 결코 그들에게 복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을 가지고, 내가 소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을 무조건 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때로는 내가 바라고 소원하는 것 중에는, 나에게 해가 되고, 더나가서 다른 사람에게 아픔과 상처를 줄만한 소원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바라고 소원하는 것을 가지고 누리는 것을 무조건 복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뿐만 아니라, 내가 바라는 것을 가지고 내가 소원하는 것을 이룬다고 해서 그것이 여러분의 신앙을 인정해주는 결과물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신자들이 현실적 세상적 잘됨을 자신의 신앙의 증명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관점이 아니라, 진화론적 관점이며, 우상종교의 관점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성경이 말하는 복은 무엇인가를 소유하는 유무로 기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복은 무엇일까요?

  2.심판이 무조건 저주일까?
 이제 오늘 본문을 보도록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망각하고, 바알을 사랑하고, 형식주의적 종교가 되어버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하나님 백성 노릇 잘하고 있다고 착각했던, 북왕조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3절에 ‘내가 그를 벌거벗여’ 라고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이방 여러나라에게 수치를 당하게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하리라.’ 고 말을 합니다. 즉, 이방나라에게 압제와 고통을 당하게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 9절에 ‘그러므로 내가 내 곡식을 그것이 익을 계절에 도로 찾으며 내가 내 새 포도주를 그것이 맛 들 시기에 도로 찾으며 또 그들의 벌거 벗은 몸을 가릴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복을 거두어 가시겠다고 그리고 부끄럽게 하시겠다고 말을 합니다. 13절 ‘바알들을 섬긴 시일대로 내가 그에게 벌을 주리라.’ 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14절에서는 ‘기친들로 데리고 나가서’ 라고 말을 합니다. 이러한 모든 표현들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을 의미하는 말로서, 이방나라에 의해서 멸망하다고, 여기 저기 흩어지고, 끌려 가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북왕조 이스라엘이 앞으로 겪게 될 심판은 저주일까요? 아닐까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시고, 그들에게 벌주시고, 그들을 이방인의 손에 심판하시는 그 일이 저주가 아닌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 삼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신 목적을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점을 살펴보기 위해서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중요한 2가지 사건을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는, 출애굽 사건이고, 둘째는, 바벨론 포로(앗수르 포로)사건입니다. 여기서 한번 더 묻겠습니다.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복일까요? 저주일까요? 복입니다. 그렇다면, 출애굽 사건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복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노예에서 해방 되었으니까?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니까? 새로운 거주지로 가게 되었으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출애굽 사건이 진짜 복이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하신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로 이끄시기 위함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여러분 애굽땅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통과한 첫 번째 관문은 무엇입니까? 바로 홍해바다를 건너는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홍해바다를 건너는 사건을 무엇으로 가르칩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를 씻기는 것(세례)으로 가르칩니다. 그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맞이한 두 번째 관문은 무엇입니까? 바로 시내산입니다. 그러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십계명은 단지 하라 하지 말라는 수준의 명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이렇듯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이 계신 영광의 자리로 이끄시는 사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 사건이 이스라엘에게는 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심판, 바벨론 사건은 저주일까요? 복일까요? 복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영광의 자리로 이끄시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라고 말을 합니다. 참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심판과 포로로 끌려가는 사건을 타일르는 사건, 말로 위로하는 사건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15절에서는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포로귀환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2의 출애굽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 삼으시고, 구원하시고, 그들을 영광의 자리로 이끄시고자 했던 그 목적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그 목적을 이루어가신다는 말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중요한 2가지 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바로 출애굽사건과 바벨론포로 사건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출애굽 사건이나, 바벨론 사건 모두, 이스라엘을 영광의 자리로 이끌어가시는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런 의미로 본다면, 광야 40년,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속에서 격었던 수없이 많은 고통의 순간들 역시, 그들을 영광의 자리로 이끄시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모두 역사가 복된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된다고 무조건 좋아만 하지 마십시오! 또 안된다고 무조건 절망만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잘되는 것이 복이 아닐 수 있고, 안되는 것이 도리어 복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복과 저주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광의 자리로 나가는 유무인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성공, 잘됨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더 더욱 영광스러운 자리로 나가게 한다면 그것은 복이 맞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여러분의 성공과 잘됨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멀어지게 한다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인 것입니다. 반대로 말해봅시다. 여러분의 실패와 안됨이 여러분을 영광스러운 자리로 나가게 한다면, 그것은 저주가 아닙니다. 도리어 복인 것입니다. 이렇듯 성경이 말하는 복은 내가 바라는 것을 소유했느냐가 아니고, 내가 소원하는 것을 이루었느냐가 아닌 것입니다. 오직 성경이 말하는 복은 영광스러운 자리로 나가게 되었는가? 가 유일한 복의 기준인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으로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잘되고 성공하는 것이 복으로 적용되고 있습니까? 안되고, 힘든 것이 복으로 적용되고 있습니까? 저는 여러분의 매일의 삶이 복이 되는 삶, 복이 되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
 이제 우리들의 구원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과연 우리들이 구원받은 것은 왜 복일까요? 죄사함을 받았기 때문, 영원한 형벌에서 벗어났기 때문, 의인이 되었기 때문, 천국에 갈수 있게 되었기 때문, 하나님을 어버지라고 부를수 있는 자녀가 되었기 때문..., 등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복인 이유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 한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엡1:3절 이하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고 말을 합니다. 즉, 죄와 심판에서 꺼냈다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오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은혜와 복을 주시는 이유 역시도,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로 나가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나아가기까지 하나님은 우리와 타협하지 않으시고,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서 손을 놓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앗수르 사건이고, 바벨론 사건이고, 이것이 우리의 삶에 주어지는 징계의 사건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요청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날마다 영광의 자리로 나가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날마다 거룩함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룩은 무엇입니까? 보통 신자들은 거룩을 종교적인 색깔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들면, 엄숙해 보이고, 근엄해 보이고, 신령해 보이고, 아마도 카톨릭적 분위기를 거룩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거룩은, 크게 두가지 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이웃사랑 포함)이야 말로 최고의 거룩입니다. 둘째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이고, 이것이 영광의 자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북왕조 이스라엘이 실패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끊임없이 실패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영광의 자리로 나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본문과 삶
  1)그러나 그 복은 단지 우리가 원하는 소유를 갖게 하시고, 소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2)하나님께로 가까이,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로 우리를 이끄시는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3)이것이 복의 기준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날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으로 인해서 더 만족하고 기뻐하는 자리, 그 영광의 자리로 나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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