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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설교]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사무엘상강해1)
 본문말씀 : 삼하1:1-27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8.4.27
조회 : 9,294   추천 : 0  
본문 : 삼하1:1-27절 사무엘하 강해1
제목 :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   

  성도들의 삶속으로  
 오늘 말씀을 준비하다 보게된 글을 하나 소개합니다. 제목은 “당신은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입니다. ‘자신의 실수보다 남의 실수를 더 너그러이 보아주는 당신은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자신이 흘리고 있는 눈물보다 남이 흘리고 있는 눈물을 먼저 닦아주실 줄 아는 당신은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자신이 조금 더 가진 것을 자신보다 조금 부족한 이들과 기꺼이 나눌 줄 아는 당신은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자신이 지고 가는 짐도 무겁지만 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이의 짐을 함께 들어주실 줄 아는 당신은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자신이 가야할 길도 바쁘지만 자신보다 먼저 그 길을 가야하는 이를 위해 손을 흔들며 길을 내어주실 줄 아는 당신은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이제 나도 당신을 닮은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참 좋은 글입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말하는 사람이야 말로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가진 다윗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살펴봄으로 여러분 모두도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소원하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
 오늘 본문은 사울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1절을 보면, 다윗이 아말렉 족속과의 전쟁을 마친후 시글락성에 돌아온 후 있었던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사울의 죽음이 다윗과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다윗은 블레셋 편에 있었고, 다윗과 사울의 관계가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얼마든 사람들이 사울왕의 죽음을 다윗과 관련짓는 오해의 소지가 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4절을 보면, 시글락성에 머문지 3일째 되던 날 아말렉 소년이 다윗에게 찾아와 사울왕과 3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줍니다. 사울왕의 왕관과 팔찌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10절을 보면, 이 소년이 사울왕의 요청에 의해 자신이 죽였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다윗과 함께한 사람들은 12절에 슬픔 가운데 울며 금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15절을 보면 다윗은 사울왕을 죽였다고 말한 아말렉 소년을 죽이게 됩니다. 그리고 17-27절에 사울왕과 왕자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활의 노래’라는 애가를 부르게 됩니다. 참고로, 이 활의 노래는 야살의 책이 기록되었고, 야살의 책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의인들과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한 책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들이 첫번째로, 묵상할 것은,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성경을 많이 아는 것, 기도를 오래 잘 하는 것, 봉사의 일을 많이 하고, 전도를 열심히 하고, 교회가 하고자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하나님의 일이라면 앞장서고..., 등 일까요? 물론,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열심히 해야 할 것들이 맞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더 높은 수준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누군가의 아픔과 슬픔에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12절을 보면, 다윗이 사울왕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과 함께 했던 사람들도 사울왕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사울왕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스라엘 나라를 불신앙으로 이끈 왕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라를 세우는 일보다는 다윗을 죽이는 일에 정신이 팔려 10여년의 시간을 허비한 왕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나라가 약해지고, 블레셋에게 참패를 당하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그리고 다윗 개인에게 사울왕은 원수와 같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오랜 기간동안 여러차례 다윗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왕이 다윗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다윗과 함께한 600명 역시, 사울왕과 그의 권력으로부터 성처와 배신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다윗과 그리고 함께 한 사람들이 사울왕의 죽음으로 인해서 매우 슬퍼했습니다. 그것도 울며, 금식까지 했고, 심지어 사울왕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 애가까지 만들었고, 야살이라는 이스라엘의 의인이나 영웅들의 이야기를 적어두는 책에 기록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애가의 핵심은 19절을 보면,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곧 이스라엘의 영웅의 죽음이라고까지 표현했습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인간적으로 본다면, 다윗에게 사울왕의 죽음은 슬픔이 아닌, 기쁨과 환호를 해야 당연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울왕의 죽음으로 도망자의 삶을 끝낼수 있고, 블레셋에서의 비참한 망명생활도 그만해도 됩니다. 무엇보다 이제 다윗이 이스라엘 나라의 왕으로 등극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말렉 소년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사울왕을 죽였다고 말하면 상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기에 다윗을 찾아온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생각한다면, 지금 사울왕의 죽음을 애도할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자신의 정권을 세우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적어도 사울왕의 죽음의 소식이 다윗에게 환호와 기쁨의 소식으로 여겨져야 할 상황입니다. 그래야 당연해 보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왕의 죽음에 슬퍼하고 마음 아파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사도 바울은, 롬12:13-15, 17절에서,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 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고 동일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 이미 여러분이 잘 알고 있듯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사도됨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고후11:28-29절에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이 자신이 사도라는 증명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이러한 애타는 마음이 없으면 그 사람은 진짜 사도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상대방이 어떠한 사람이든지 간에 아파하는 자와 함께 아파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와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늘 서로를 향해 늘 염려하고 애타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바로 참다운 그리스도인 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더 구체적으로 묻습니다. 여러분 주변 사람들의 어려운 처지를 보며,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주변 사람의 실수와 잘못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십니까? 여러분 주변의 누군가의 문제로 불쌍한 마음이 드십니까? 그 사람이 계속 마음에 남습니까?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까? 늘 누군가에 대한 염려, 애타는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게 맞습니다. 그러나 뭔가를 아무리 잘해도, 마음 아프고, 안타깝고, 불쌍하고, 염려되고, 애타는 마음이 없이 살아간다면,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할수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서로를 향한 안타까움, 염려, 애타는 마음을 가진, 그래서 그 누군가의 짐을 짐어져 줄수 있는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2.과연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왜 누군가를 향한 안타까움, 염려, 애타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까요? 첫째는,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마5:38절 이하를 보면,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안타까움, 염려, 애타는 마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5:45절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향해 불쌍히 여기고, 안타까워 하시고, 사랑하시고, 염려하시고, 애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런 분이라면,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도 그러해야 한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마음이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기준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대우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마18장의 일만달란트 비유를 잘 아실 것입니다. 어떤 임금에게 일만달란트 빚진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임금에게 모든 빚을 탕감 받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임금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임금이 이 사람에게 한말일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거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를 향해서 자비와 긍휼의 마음, 애타는 마음을 가지고 대우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마음이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기준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셋째는, 주님이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기준을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25장을 보면,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옵니다. 참고로, 양은 의인을 염소는 악인을 말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의인과 악을 구분하는 기준이 우리가 생각하는 기준과 많이 다릅니다. 무엇을 기준했습니까? 마25:34절 이하를 보면,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으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해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은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아시겠습니까? 마지막날 심판의 기준을 이웃에 대한 우리의 모습이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향해 귀한 마음을 갖는 것이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기준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기준이며 증표인 ‘서로에 대한 염려와 애타는 마음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을 하면, 우리 스스로 창출해 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안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서로에 대해 염려하는 마음과 애타는 마음을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안에서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오면 됩니다. 어떻게 받아 올수 있습니까? 첫째,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서로에 대한 염려하는 마음과 애타는 마음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분명히 주실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이러한 기도를 하고 계십니까? 하셔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다시 기억하십시오! 즉, 우리들이 서로를 염려하지 못하고, 서로를 향해 애타는 마음을 품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그런 사랑과 은혜를 받은 것을 잊기 때문이고, 여전히 누군가의 염려해줌과 애통해줌을 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본문이 있습니다. 바로 마18장의 일만달란트 비유입니다. 이미 말씀드린바와 같이 일만달란트를 탕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00데나리온 빚지 동료를 용서하지 못하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 동료에 대한 염려와 애타는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마음이 왜 안생겼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임금에게 탕감받은 사랑과 은혜를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탕감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 다르게 말하면, 염려해주심과 애타해주심을 말할 수 없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염려해주심과 애타해주심이 필요합니다. 이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서로에 대해 염려함과 애타하는 마음을 회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신앙의 성숙이란 무엇인가?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그렇다면, ‘과연 신앙의 성숙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의 성숙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성경을 더 많이 알아가는 것, 기도를 더 길게 해가는 것, 일을 더 많이 해가는 것..., 등 아니라는 것 아시지요?

 사무엘상과 사무엘하의 출발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슬픔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의 시작은 불임여인었던 한나라는 여인의 슬픔, 사무엘하는 사울왕의 죽음으로 인해 다윗의 슬픔입니다. 이렇듯 똑같은 슬픔으로 시작을 합니다. 그러나 차이가 있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문제로 인한 슬픔을 가진자였고, 다윗은 다른 사람으로 인한 슬픔을 가진자였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은 신앙의 성숙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숙의 기준은 크게 2가지입니다. 고전3:1-3절을 보면, 첫째는, 말씀에 대한 태도입니다. 1절의 말씀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향해,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어린아이를 대함과 같이 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2절에 보면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한다’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젖과 밥은 무엇을 말합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수준이나 정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의 성숙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 수용성이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한 태도가 깊어지는 것이 신앙의 성숙인 것입니다. 둘째는, 사람에 대한 태도입니다. 3절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교회 신자들을 향해서 ‘육신에 속한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라고 책망을 합니다. 즉, 그들의 신앙은 아직도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그들에게 지식이나 은사, 헌신, 구제가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여전히 시기와 분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그들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앙의 성숙이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깊어지고 넉넉해 지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런 의미로 신앙이 성숙해지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가 기능적으로 잘하는 신자가 아닌, 참다운 신자이기를 원하십니다.
  본문과 삶
 1)다윗과 같이 서로를 보며 마음 아파하고, 염려하고, 애타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2)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내가 받은 은혜와 사랑을 잊으면 안됩니다.
 3)그래서 더 성숙한 신자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서로를 더 깊이 사랑하고, 서로에 대해 더 긍휼함과 넉넉함을 나타내는 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지고, 또한 여러분으로 인해서 더 많은 사람이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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