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호2:2-13절 호세아서강해3
제목 : 착각하지 마십시오!
성도들의 삶속으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어느 인적이 드문 어두운 길을 한 여자가 걸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한 남자가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무서워 더 빨리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계속 따라오면서, 심지어 같이 가 처녀~ 같이 가 처녀~ 라고 소리까지 쳤습니다. 너무 놀란 여자는 그만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보고, 그 남자가 자기를 보더니 길을 가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갈치가 천원’ ‘갈치가 천원’ 이 여자는 혼자 착각을 한 겁니다. 우리들도 살다보면 종 종 우스운 착각을 할 때가 있고, 때로는 하지 말아야 할 착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북이스라엘 사람들의 착각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하지 말아야 할 착각을 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그들의 착각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또한 우리들에게는 그러한 착각이 없는지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바알이 주었다는 착각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음행을 고발하는 내용으로 시작을 합니다. 즉, 2절을 보면, ‘너희 어머니와 논쟁하고 논쟁하라 그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그의 남편이 아니라 그가 그의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마치 고멜이 호세아를 떠나 다른 남자에게 간 것처럼, 이스라엘 온 나라가 하나님을 외면하고 바알신을 사랑하고 섬긴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음행을 고발한 후에, 3-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음행을 제거하지 않으며 크게 분노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5절 이하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었던 심각한 착각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었던 착각은 무엇이었을까요?
첫째로, ‘이스라엘의 번영은 바알(우상)이 주었다.’ 는 착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이 어떠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5절을 보면,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알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구절에 등장하는 떡, 물, 양털, 삼, 기름, 술은 모두가 경제적인 풍요를 상징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경제적으로 풍로운 시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1절을 보면, ‘내가 그의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은 종교적인 행위도 번성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 종교적인 번영은 결국, 나라 안밖으로 정치적인 안정이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당시 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 종교적인 번영과 정치적인 안정을 누렸던 시대입니다. 아마도 여로보암2세가 통치하던, bc750년 쯤,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기 30년 전쯤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렇게 번영을 누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알우상을 숭배한 것입니다. 5절에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경제적인 풍요를 주셨고, 정치적인 안정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바알우상을 사랑하고 따랐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번영과 안정을 하나님이 아닌 바알이 주었다고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5절을 보면, ‘그들이 ...,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 또, 12절을 보면, ‘이것을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이러한 표현은 이스라엘이 누리는 경제적인 번영과 정치적인 안정을 바알이 주었다고 여기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8절을 보면, ‘내가 준 것이요...,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그가 알지 못하도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듯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누리는 번영을 하나님이 아닌, 바알이 주었다고 착각했고, 그래서, 하나님은 외면하고 바알을 사랑하고, 바알을 따른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가진 첫 번째 큰 착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착각은 남유다의 모습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렘44:17-18절을 보면, ‘하늘의 여왕(아스다롯 우상)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그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 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유다사람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번영과 안정이 하늘의 여왕(아스다롯)에 의한 것이라고 착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외면하고, 유다 여러 성읍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바알이나, 하늘의 여왕이 준 것을 착각하는 그러한 착각이 우리들에게는 없을까요? 사실은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부터 얻은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들면, 어떤 신자들은 자신이 지금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들을 내 힘과 능력으로 이루었다고 착각을 합니다. 또, 어떤 신자들은 지금 나의 신앙의 수준을 내 열심히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또는, 어떤 신자들은 내가 하나님께 많은 은혜와 복을 받은 것을 내가 남다르기 때문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또, 어떤 신자들은 내가 뭔가를 잘하는 것을 열정의 산물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또, 어떤 신자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는 것을 자신의 실력 때문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착각들이 없습니까? 이 점을 쉽게 확인하는 방법이 있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사람들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사람들 앞에서 자기 자랑, 자기 과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지금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던 그 착각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반대로 말하면, 다른 사람을 쉽게 비판하고 정죄한다면, 역시 마찬가지 착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착각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야 우리 중 누가 자기를 자랑하고 과시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착각이 아니고서야 누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이런 착각을 가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2.할 도리를 다했다는 착각
또한, 두 번째, 이스라엘의 착각은 ‘종교적인 의식을 행함으로 자신들은 할도리를 다했다.’ 는 착각을 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스라엘은 바알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종교의식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잘 지켰습니다. 11절을 보면, ‘내가 그의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라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종교의식들을 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그들이 지금 큰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착각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종교적인 의식을 지키고, 어떤 요구되는 신앙의 행위를 하는 것으로 그들이 할 도리를 다했다는 착각입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큰 착각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종교적인 의식이나 신앙의 행위 그 자체는 결코 신앙의 핵심이가나 본질이 될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 신앙의 핵심이고, 신앙의 본질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사람들은 종교적인 의식과 행위를 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할 도리는 다 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바알을 사랑했고, 하나님께서 요청하시는 삶을 살아내는 일에는 무관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착각은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모습속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됩니다. 마23:23절을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우선,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는 열정적인 신앙의 행위들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칭찬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러한 신앙의 행위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인 ‘정의 긍휼과 믿음’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더 간단히 말을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는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이 할 도리를 다했고, 그래서 자신들은 누구보다도 신앙이 좋다는 착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또, 막10:17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을 찾아온 한 부장청년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먼저, 부자 청년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영생 얻을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5-10번째 계명을 지킬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부자 청년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자 부자 청년은 슬픈 기색을 하며 근심 띤 모습으로 사라졌습니다. 이 부장 청년은 율법의 궁극적인 요구인 이웃 사랑을 놓쳤음에도 불구하고 5-10번째 계명이라는 행위로 가진 것을 근거로 자신이 해야 할 도리를 다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착각은 없습니까? 어떤 성도들은 주일예배에 안빠지는 것으로 신자로서 할 도리를 다했다고 착각하는 분이 잇습니다. 물론, 주일을 지키는 일이 별것 아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내가 구원받은 사람이며,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선언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을 지킨 것으로 신자로서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또, 어떤 성도들은 헌금을 많이 하는 것으로 신자로서의 할 도리를 다했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물론, 헌금은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헌금이 중요하다는 것은 교회차원에서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라, 신자 각 개인의 차원에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헌금은 하나님의 주권 신앙을 훈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헌금을 많이 하는 것으로 자신이 할 도리를 다했고, 신앙이 좋다고 여기는 것은 너무나 큰 착각입니다. 그 밖에도 기도를 많이 하는 것, 봉사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성경을 많이 읽는 것을 근거로 내가 할 도리를 다 했다고 여기는 것은 정말 무서운 착각인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신앙은 하나님을 외면하게 만들고, 더나가서 하나님과 상관없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얼마전 기도설교에서 했던 말대로, 우리는 하루를 살기 위해서 음식을 먹어야 하고, 잠도 자야 하고, 쉬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습니다. 먹고 자고 쉬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먹고 자고 쉬는 것이 하루의 전부일수는 없습니다. 먹고 자고 쉬는 것은 하루의 다양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배, 기도, 성경..., 두말하면 잔소리가 될 정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배, 기도, 성경이 신자된 여러분의 삶의 전부일수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예배, 기도, 성경을 보는 이유는 신자로서 해야 할 다양한 삶을 살아내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신자들은 예배에 열심히 나오고, 기도를 많이 하고, 성경을 많이 읽는 것을 신앙생활의 전부, 신자로서 할 도리를 다 한 줄로 여기고, 심지어는 그것이 자신의 신앙의 실력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신자다운 삶을 살아내는 일 곧 하나님 편에 서는 일, 사랑을 실천하는 일, 용서하는 일, 겸손해지는 일, 감사하는 일, 인격과 성품을 가꾸어 가는 일, 말과 행동을 고쳐가는 일..., 등에 대해서는 전혀 노력하지 않는 신앙의 오류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착각이 여러분에게 더 이상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3.은혜와 사랑을 아는 일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었던, 2가지 착각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그들의 번영을 하나님이 아닌, 바알이 주었다고 여기는 착각이었고, 둘째는, 특정한 종교행위를 가지는 것으로 자신이 할 도리는 다 했다고 여기는 착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사람이 이런 말도 안되는 착각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그러므로 ...., 도로 찾으며...., 빼앗으리라’고 말합니다. 또, 12절에 ‘....,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에게 먹게 하리라’ 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들을 빼앗고, 들짐승에게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이 누리고 있는 모든 번영이 그 누구도 아닌, 하나님이 준 것임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말도 안되는 착각을 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기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속에서 하지 말아야 할 착각을 하는 이유는, 그래서 마땅히 살아내어야 할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우리들이 신자로서 사랑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용서가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감사가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작은 시험 앞에서도 갈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작은 이익 앞에서 타협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일을 포기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쉽게 분노하고 예민하게 될까요? 왜? 신앙의 기쁨과 감격이 없을까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고, 알게 될 때, 여러분 안에 변화와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즉, 지금 할 수 없었던 일에 순종할수 있게 되고, 세상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하게 되고, 아무리 큰 유혹 앞에서도 갈등하거나 타협하지 않게 되고, 그리스도인다워 질것이고, 무엇보다도 기쁨과 감격이 여러분의 삶을 매일 새롭게 그리고 능력있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만져주셔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고 고백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우리는 참 어리석고 미련합니다. 그래서 많은 착각을 합니다.
본문과 삶
1)하나님이 주신 것을 다른 방법으로 얻었다는 착각을 합니다.
2)내가 열심히 하는 그것으로 신자로서의 도리를 다했고, 잘한다고 착각을 합니다.
3)이러한 착각의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고 앎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기쁨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