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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설교] 어떻게 살 것인가?(사무엘상 최종회)
 본문말씀 : 삼상31:1-13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8.4.20
조회 : 9,511   추천 : 0  
본문 : 삼상31:1-13절  사무엘상 최종회
제목 : 어떻게 살 것인가?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은 무엇인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십니까? 가난, 질병, 열악한 환경, 만만치 않은 현실... 아닙니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본질은 내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잘못된 생각 때문입니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느 본문이 있다면, 바로 탕자의 비유일 것입니다. 탕자는 왜 불행하고 비참했습니까? 돈을 떨어졌기 때문입니까? 친국를 다 떠나서 입니까? 먹을게 없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아버지를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은 불행한 인생을 살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은 사울왕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왕의 죽음을 통해서 어떻게 해야 복되고 행복한 삶을 살수 있는지를 배우는 시간 되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자살은 큰 범죄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도록 합니다.  1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길보아 전투에서 블레셋에게 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2절을 보면, 길보아전투에서 사울왕의 3명의 아들이 죽게 됩니다. 그리고 3절을 보면, 도망가던 사울왕이 블레셋 사람이 쏜 화살에 맞아 심각한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4절을 보면, 사울왕은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는 것을 모욕을 생각하고, 부하에게 죽여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부하가 거절을 합니다. 그러자 사울왕은 칼을 뽑아 그 위에 엎드러져 자살을 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예언대로 사울왕과 3아들이 한날에 죽게 됩니다. 다음날 블레셋 사람들이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 길보아산에 옵니다. 그리고 9절을 보면, 블레셋 군인들이 사울왕과 그의 3명의 아들의 시체를 보고, 그들의 머리를 자릅니다. 그리고 그들의 시체를 벧산의 성벽에 못박았습니다. 그리고 13절보면, 사울왕과 3왕자들의 죽음 소식을 들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 이 그들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식(화장)을 치루어 줍니다. 결국, 오늘 본문은 비참한 죽음을 당한 사울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첫번째 생각할 것은 “자살”에 대해서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그리고 5절에 ‘병기든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입니다. 사울왕이 자살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왕과 함께한 부하도 자살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사울과 같이 자살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예를들면, 아비멜렉입니다. 삿9장을 보면, 아비멜렉은 스스로 높여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세겜사람들이 반대를 했고, 세겜 사람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 여인이 망대위에서 던진 멧돌에 머리가 맞아 심각한 부상을 당합니다. 그러자 여자의 손에 죽었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부하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말을 합니다. 간접자살을 한 것입니다. 또, 아히도벨입니다. 삼하17장을 보면, 아히도벨은 이스라엘의 최고 전략가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했을 때, 압살롬 편에 섰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이 다윗의 세력을 잔멸하려고 할 때, 자신의 전략이 아닌, 당시 라이벌 이었던 후새라는 사람의 전략이 채택되자,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자살(목 맴)하고 말았습니다. 또, 시므리입니다. 왕상16장을 보면, 당시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이었던 시므리가 쿠테타를 일으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쿠테타가 7일 천하로 끝나게 되자, 왕궁에 불을 지르고 자살을 하게 됩니다. 또, 가륫 유다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30에 팔고 난 후, 목을 매고 자살을 하게 됩니다. 이렇듯 성경안에도 자살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물론, 오늘날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 한해에 자살하는 사람이 무려 3만명 가량이 된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가운데 그리스도인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자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네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예를들면, 아비멜렉은 명예 때문에, 아히도벨은 자존심 때문에, 시므리는 절망감 때문에, 가룟 유다는 죄책감 때문에, 그리고 오늘 본문의 사울왕은 수치심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 모두에게도 이유는 있습니다. 예를들면,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삶의 무게와 압박 때문에, 살아갈 용기가 없어서, 억울해서..., 등 물론,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겠느냐는 생각은 듭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나 명분으로도 자살은 결코 정당화 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2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자살로도 어떤 이유와 명분을 충복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자살한다고 자존심, 절망감, 죄책감, 수치심이 해결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자살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나 답이 될 수 없습니다. 도리어 자살을 선택한 사람의 가족, 친구, 이웃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이기적인 방법이며 인생 최고의 오답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자의 자살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고, 복음 전파를 가로막는 행위임을 잊으면 안됩니다. 둘째는, 자살은 하나님이 엄격하게 금하시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자살은 정말 무서운 죄악이라는 말입니다. 자실이 왜 죄입니까? 우선은 살인하지 말라는 6계명을 어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생명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도 오직 하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생명에 내가 손을 대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도전하는 행위이며, 불신앙의 극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로다 자살은 정당화 할 수 없는, 인생 최대의 실패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은 살면서 차라리 죽는게 낫다는 생각을 하신적이 있습니까? 앞으로는 그런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농담이나 화김에라도 ‘나가 죽어’ ‘내가 빨리 죽어야지’‘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라는 말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생명을 허락하시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생명을 허락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여전히 여러분을 위해 일하고 계시다는 증명임을 잊지 마십시오! 즉,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을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을 힘을 다해 사십시오! 죽음 힘을 다해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2.사울의 죽음을 말하는 이유!
 세상에서 가장 오래산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므두셀라입니다. 그는 969세를 살았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은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노아입니다. 노아는 950세를 살았습니다. 아마 이 두 사람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산 사람일 것입니다. 그 외에도 현재 기네스북에 등재된 가장 오래산 사람은 122세 6개월을 산 프랑스의 장 루이스 칼먼트라는 여자분이고, 이 분은 자신의 손주보다 34년을 더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사신 분은 최남수 할머니로 115세를 살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오래산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자들이다, 소식한다(적게 먹고 거북이처럼 움직여라),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그밖에도 장수하는 사람의 특징은 친구가 많다고 합니다. 즉, 인생을 살면서 격게 되는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는 친구가 많은 사람이 장수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십니까? 아무리 오래 살아도 죽습니다. 단지 누군가보다 조금 더 오래사는 것 뿐이지 모두 죽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세워졌고, 누구보다도 뛰어난 신체적 조건을 갖었고, 누구보다도 부귀영화와 명예와 권세를 누렸던 사울왕도 결국에는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사울왕의 죽음을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사무엘상에 사울왕의 죽음만 소개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무엘상을 보면, 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소개됩니다. 예를들면, 전쟁터에서 죽은 많은 무명의 사람들, 그리고 엘리대제사장의 죽음, 그리고 엘리 대제사장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의 죽음, 그리고 비느하스의 아내의 죽음, 아비가이의 남편인 나발의 죽음, 그리고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인 사무엘의 죽음이 소개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죽음 가운데 가장 구체적으로, 그리고 가장 많은 분량으로 죽음을 소개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사울왕일 것입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31장 한 장 전체입니다. 참고로, 이스라엘의 영적인 리더였던 사무엘선지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삼상25:1절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이 1구절 뿐입니다. 그런데 사울왕의 죽음에 대해서는 한 장 전체를 할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울왕의 죽음을 유혹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왕도 죽는다, 권세를 가진자도 죽는다, 부귀영화를 가진 자도 죽는다..., 이런 것을 말하기 위함일까요? 네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죽음을 소개하는 진짜 이유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너희가 틀렸다.’ 라고 말씀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사무엘상의 시작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사무엘상은 한나의 가정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한나는 불임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나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 이름이 바로 사무엘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엘리와 그의 아들들이 죽고,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영적인 리더가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사무엘 선지자가 나이가 많아 늙게 되었고, 사무엘의 2아들인 요엘과 아비야가 사사의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들은 아버지 사무엘과 같이 경건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는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더욱이 블레셋이라는 나라가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약탈하는 일이 빈번해졌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 선지자에게 찾아옵니다. 그리고 삼상8:5절을 보면,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왕을 세워주기를 요청했을까요? 왜 왕을 세우주기를 기대했을까요? 그것은 다른 나라처럼 왕을 세우면, 나라가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했고, 부요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왕을 세우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방과 같이 왕을 세워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요청에 의해 세워진 첫 왕이 바로 사울왕입니다. 그는 백성들보다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았습니다. 누가 봐도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생각대로 되었습니까? 그들이 기대하던 대로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런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공격과 위협을 받아야 했고, 오늘 사무엘상 마지막 장에서도 블레셋의 공격 앞에 처참히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더욱이 그들이 그렇게 기대했던 첫 왕인 사울왕가지 비참하게 죽고 말았고, 그의 시신은 원수 나라에 조롱거리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수 있는 유일한 한가지는 꽁지 빠리게 도망치는 일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상을 읽게 될 후손들은 그리고 후대 독자들은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처럼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한 것이 틀렸다는 점,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요청하고 기대했던 그 왕 때문에 도리어 이스라엘이 더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세우고자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열방 특별히 블레세세처럼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이유는, 자기들 마음대로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께 간섭받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삼상8:7절을 보면,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왕노릇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틀렸고, 그러한 생각과 그러한 삶의 방식의 결과가 오늘 본문 31장이라는 것입니다. 

  3.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한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내 힘으로 살면 안됩니다. 물론, 이 말을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도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 내가 원하는 결과를 창출해 낼수 있다는 착각은 버려야 합니다. 더나가서 내가 왕노릇하는 인생을 살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 왕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이 왕이 되시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의 왕은 하나님이십니까? 여러분의 일터의 왕은 하나님이십니까? 여러분의 인생의 왕은 하나님이십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에 복종하는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그런데 우리들의 삶을 보면,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를 거부할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곧  성경의 가치와 기준과 원리대로 살아보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자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통치를 받으려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이 얼마나 축복 된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강해 설교가 척 스미스 목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척 스미스가 신학교 다닐 때 그의 삼촌이 폐기종으로 매우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문병을 갔습니다. 그리고 그 삼촌을 보면서 기도해주고 싶은 마음이 아주 강하게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삼촌에게 성경에 삼촌보다 더 심한 병에 걸린 사람들도 고침받았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기도하기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삼촌은 매우 완강하게 거절을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만일 그렇게 해서 정말 병이라도 낫게 된다면, 그 후로는 평생 하나님이라는 분에게 남은 인생을 매어 살아야 하는 것이 싫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왕으로 삼고,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는 것이 재미없고,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는 것은 번거롭거나 재미없는 인생을 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을 때 우리는 기쁘고 자유롭고, 평안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왕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에 복종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모든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본문과 삶
 1)어떤 이유, 어떤 경우에라도 자살은 죄이며, 불신앙입니다.
 2)그러나 생명만이 아니라, 내 모든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3)하나님만이 내 삶의 왕이십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왕되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통치와 다스림에 복종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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