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호1:10-2:1절 호세아서강해2
제목 : 살아계신 하나님!
성도들의 삶속으로
우리나라 속담에 ‘아니땐 굴뚝에 연기나랴’ ‘핑계없는 무덤없다’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들이 무엇을 말하려하는지 아시지요? 바로 원인없는 결과는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말해, 모든 결과는 다 그 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들면, 행복한 가정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불행한 가정에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행복한 사람에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고, 불행한 사람들에게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또, 공부를 잘하는 아이에게는 그 만한 이유가 있고, 공부를 못하는 아이에게도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에게는 다 그 만한 이유가 있고, 신앙이 좋지 못한 사람에게도 그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처럼 어떤 결과이든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되고, 복 될 것을 말하면서 그럴 만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과 복될 것의 이유가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복된 이유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호세아서의 주제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호세아서의 첫 대목은 ‘하나님의 분노’였습니다. 그것도 정말 무시 무시한 분노였습니다. 예를들면, 이스라엘 나라를 폐할 것이다.(4절) 긍휼히 여겨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6절)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않을 것이다.(9절) 정말 무시 무시한 하나님의 분노가 선포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호세아서의 1/4 이상이 하나님의 분노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꼭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분노는 죄가 아니라 공의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 호세아서에서 하나님의 분노가 강하게 표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분노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는, 북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은 사랑을 포기할 수 없다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지 않으시다면, 하나님은 분노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내치시면 되고, 외면하면 되고, 나 몰라라 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사랑하시기에 분노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는, 분노의 자리에 있는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고, 그들을 품고 계신다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분노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랑, 내 마음을 알아 달라는 메시지였습니다. 결국, 호세아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분노는 우리를 향한 가장 적극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의 표현인 것입니다. 물론, 다른 성경, 다른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분노 역시, 포기할 수 없는 사랑, 가장 적극적인 사랑의 표현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가서, 우리도 서로를 이와같이(누군가 처한 그 자리에 내려가 공감하고, 끌어안아 주는 사랑) 사랑할 것을 촉구하는 매시지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들을 향해 공의로운 분노하십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들을 향해 꾸중하시고, 책망하시고, 징계하십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12:5-6절을 보면,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꾸중하시고, 책망하시고, 징계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의 꾸지람, 책망, 징계는 가장 적극적인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그리고 우리들을 꾸중하시고, 책망하시고, 징계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오늘 본문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시작은 ‘그러나’입니다. 그러나가 무엇입니까? 앞에 했던 말을 뒤집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에 했던 말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파멸시키겠다는 것입니다.(4절 이스르엘)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과 파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10절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것이라.’또, 11절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앞 부분에서는 이스르엘이 심판과 파멸의 의미로 쓰였다면, 이 구절에서는 원래의 의도대로 번창케 하시겠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또, 2:1절에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암미의 뜻은 무엇입니까? 내 백성이다. 또, 루하마의 뜻은 무엇입니까?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결국, 다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 더 온전하게 하고, 복되게 하시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분노하시는 이유이고, 이것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기백성을 심판하시고 파멸케 하시는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향해 꾸중과 책망과 징계를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꾸중하시고 책망하시는 이유는 벌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단 한번도 벌이 목적인 꾸중과 책망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우리를 더 온전하게 하시고, 복되게 만드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꾸중하시고 책망하시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점을 성경의 많은 인물들의 인생속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자기 백성들을 수없이 꾸중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온전히 세우시고, 복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주님은 다메섹에서 사울을 꾸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꾸중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고, 그를 복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자기 사람들을 꾸중하시는 이유는 더 온전히 세우시고, 복되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지금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께 꾸중을 받고 있는 분은 안계십니까? 하나님께 책망이나 징계를 받고 있는 분은 안계십니까? 우선,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여 주심에, 그리고 여러분을 더 온전하게 하시고, 복되게 하시려는 이유에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감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꾸중과 책망을 통해서 여러분을 더 온전하게 하시고, 복되게 하시려는 그 일에 여러분도 집중하시고,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의 지혜입니다.
2.하나님만이 모든 것의 이유가 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파멸케 하시는 이유, 그리고 우리를 꾸중하시고 책망하시는 이유가 회복, 더 온전하게 하고, 복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는 조금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내용을 다시 생각해봅시다.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고, 더 온전하게 하시고, 복되게 하시겠다는 내용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북이스라엘에게 선포되어진 화를 복으로 바꾸시겠다는 말입니다. 또 다르게 말을 하면, 이스라엘의 운명을 바꾸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질문을 합니다. 과연 이스라엘에게 선포된 화가 복으로 바뀌게 된 이유, 그들의 운명이 바뀌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화가 복으로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의 회개 때문일까요? 이스라엘의 변화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고,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앗수르에 의해서 bc722년에 멸망당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약속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꼭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화가 복으로 바뀐 이유는 조금도 이스라엘 안에는 없다는 점입니다. 이유를 하나라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10절에서 ‘그러나’ 를 쓰는 진정한 이유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에게 선포된 화가 복이 되는 이유는 그들 안에는 없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화가 복으로 바뀌고, 그들의 운명이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 하나의 이유와 조건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10절의 ‘하나님의 살아계심’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이 유일한 이유이며,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살아계시다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단지 하나님이 목숨만 붙어 있고, 생존해 계시고, 실존하신다는 뜻일까요? 물론, 맞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며, 영원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하나님은 영원히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1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언급합니다. 여러분 이 약속은 언제적 약속입니까? 오늘 본문을 기준한다면, 1000년도 훨씬 이전의 약속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1000년전 약속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영원하심이, 당연히 벌을 받아 마땅한 이스라엘의 오늘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미래를 축복으로 바꾸는 유일한 이유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말과 대단히 흡사한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있는 자’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말과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의 어근이 거의 같습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나는 하나님이기를 중단할 수 없는 자니라'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과 연관해서 말한다면, 나는 내 백성에게 하나님 노릇해주는 일을 중단할 수 없는 자‘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모세를 부르고 바로에게 보내겠다는 말인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운명이 화에서 복을 바뀐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영원하신 신실하심과 하나님 노릇해주시기를 중단할 수 없는 분이라는 이유 때문인 것입니다. 즉, 너희가 나를 배반하고 나를 떠났지만, 나는 너희의 하나님인 것을 중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복된 운명, 우리 인생의 모든 복된 결과의 이유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우리의 구원문제입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구원받을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혹시, 그 이유가 여러분안에 하나라도 있습니까?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은 이유도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영원하심,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라는 이유뿐인 것입니다.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롬4:21-22절을 보면, 바울은 아브라함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조건이 성립되었기 때문에 그가 의롭게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이 그에게 약속을 먼저 주셨기 때문에 믿었고, 의롭게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아브라함이 의롭게 되고,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어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주셨기 때문에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선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모든 결과의 이유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 부분을 조금 넓혀가봅시다.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께 축복을 많이 받았지요? 여러분이 축복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에게 어떤 조건과 이유가 성립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이 축복받은 이유는 하나님의 영원한 신실하심과 하나님되심을 중단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또,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것을 아시지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에게 사랑받을 만한 어떤 조건과 자격과 이유가 있기 때문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안에는 단 한가지 이유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원한 신실하심과 하나님되심을 중단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또, 여러분이 뭔가를 잘합니다. 그리고 뭔가를 열심히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안에 뭔가 남다른 능력과 특별함이 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원한 신실하심과 하나님되심을 중단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 밖에 여러분의 삶에 복된 일, 복된 결과의 이유는(복되지 않은 것은 없음) 하나님의 영원한 신실하심과 하나님되심을 중단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우리들이 요청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범사에 감사하라’ 인 것입니다. 이제 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영원한 신실하심과 하나님 되심을 중단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붙들고 사는 것이 믿음의 삶이고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이유를 내안에서 찾는 것이 교만이고, 하나님안에서 찾는 것이 정직이고 겸손인 것입니다.
3.하나님이 이유가 되는 삶을 살라!
여러분은 송명희 시인(문화선교사)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뇌성마비로 인해서 생후 1주일을 제외한 모든 순간을 장애우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17살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에 대한 시를 쓰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어떤 사람이 송명희 시인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그런 몸을 주신 하나님이 원망스럽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송명희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아니요’ 그러자 그 사람이 또 물었습니다. 어떻게 원망스럽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러자 송명희 시인은 ‘그분을 사랑하니까요?’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많은 시를 썼고, 지금은 어느 교회에서 문화선교자라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즉, 그의 삶의 이유는 오직 하나님을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분의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이제 우리의 삶의 이유에 대해서 말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은 왜 삽니까? 돈은 왜 벌고, 건강을 왜 챙기십니까? 그렇게 열심히 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자신을 위함입니까? 하나님을 위함입니까? 하나님을 위함이 되어야 합니다. 즉, 고전10:31절의 말씀처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왜 그래야 하냐고요?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의 복된 모든 것의 이유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제는 나를 위함이 아닌, 하나님이 이유가 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이 이유가 되고, 우리가 서로를 용서하는 것도 하나님이 이유가 되고, 우리가 누군가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것도 하나님이 이유가 되고, 우리가 순종하는 것도 하나님이 이유가 되고, 우리가 참고 견디고 인내하는 것도 하나님이 이유가 되고..., 등 이렇듯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이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이유가 되는 삶이 바로 진정한 헌신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이유가 되는 삶을 결단해야만 합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롬11:36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본문과 삶
1)하나님은 우리 인생속에 모든 복된 것들의 이유이십니다.
2)왜냐하면,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 스스로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3)즉, 영원히 우리들에게 신실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 됨을 중단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이제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이유로 하는 인생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