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삼상30:9-31절 사무엘상 강해39
제목 : 신자의 보람과 삶의 원리!
성도들의 삶속으로
먼저,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천국에 가면, 흔히 말하는 금면류관, 은면류관, 개털모자와 같은 차등이 있을까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이 바로 마20장의 포도원비유입니다. 즉, 오전6, 9시, 12시, 오후3시, 오후5시에 포도원 품꾼을 부릅니다. 그리고 1시간 일한 사람과 12시간 일한 사람에게 동일하게 1데나리온을 줍니다. 이런 것들을 본다면, 천국에는 차등이 없습니다. 그래서 종 종 드는 생각은 ‘내가 너무 일찍 예수를 믿었나?’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예수를 믿으나, 죽기 직전에 예수를 믿으나 천국가는 것이 똑같다면, 미리 믿고 하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을 못하고 살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만일 차등이 있다면, 지금 믿고 고생하는 것이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등이 없으니 조금은 억울하게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잠시 쉬었다가 다시 오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래도 열심히 믿음생활을 하시겠습니까? 그래야지요! 그렇다면,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일찍 시짝하고, 열심히 한 것에 대한 보람은 무엇일까요?
1) 연결 - 오늘 본문은 자신들만 전쟁터에 나간 것을 억울하게 생각한 400명의 다윗의 부하들과 이들의 잘못됨을 지적하는 다윗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보람이 무엇이며, 원리가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시간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무엇이 복인가?
오늘 본문의 내용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9-10절을 보면, 아말렉을 추격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확인한 후, 다윗은 600명의 군사들과 함께 아말렉을 추격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브솔시내에 도착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피곤하여 전쟁에 참여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몸이 피곤한 200명을 브솔시내에 남겨두고, 400명만이 아말렉을 추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18-20절을 보면, 다윗의 군대가 하나님의 은혜로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하게 되었고, 빼앗겼던 가족과 재산을 모두 되찾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아말렉의 많은 소유를 전리품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1절을 보면, 돌아오던 길에 피곤하여 낙오되었던 200명의 부하를 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22절을 보면, 아말렉과의 전투에 참여했던, 400명이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200명에게는 가족만 돌려주고, 그 어떤 재산이나 전리품은 주지 말것과 심지어 그 200명을 다윗의 공동체에서 추방하자고 다윗을 압박했습니다. 어쩌면, 이 400명의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200명은 자신의 가족을 찾는 일을 포기했던 사람들이고, 그런 자들이 함께 하면, 다윗공동체에 유익보다는 해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3절을 보면, 다윗은 그러면 안된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전투에 참여한 사람이든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든 똑같이 가족과 재산과 전리품을 나누도록 합니다. 그리고 25절을 보면, 이러한 다윗의 결정이 이스라엘 나라의 원칙이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생각할 첫번째 내용은, “더 많이 일한 사람의 보람과 기쁨”에 대해서입니다. 왜 우리들이 이 부분을 생각해야 하냐면, 오늘 본문의 다윗과 함께 아말렉과의 전쟁을 치룬 400명의 사람들이 고민했던 부분이고, 우리들이 교회안에서 또는 신앙생활속에 고민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400명의 군인들이 느꼈을 마음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전쟁에 나간사람과 나가지 않은 사람이 똑같은 보상을 받는 것에 대한 억울함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교회에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고, 신앙생활도 누구보다 열정을 다해서 했는데, 결국 천국에서 똑같은 보상을 받는다면 내가 더 나은 것은 뭘까? 그리고 억울하다는 생각을 종 종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더 많이 일한 사람, 더 열정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 사람에게 더 나은 보람과 기쁨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과 연관해서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본문이 있습니다. 바로 마20장의 포도원 품군의 비유입니다. 보면, 포도원 주인이 품군을 부르는 장면입니다. 첫 번째 사람은 오전 6시에, 그 다음은 순서대로, 9시, 12시, 오후3시, 오후5시에 일군을 부릅니다. 그리고 주인이 오후6시에 품값을 줍니다. 먼저 1시간 일한 사람에게 1데나리온을 줍니다. 이를 본 12시간을 일한 사람의 마음에는 자신은 더 많이 일했으나 더 많은 품값을 받을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똑같이 1데나리온을 받게 되자, 포도원 주인에게 불만을 말합니다. 본문과 연관하면, 400명은 12시간 일한 사람이고, 200명은 1시간 일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식으로 말하면, 모태신앙은 12시간 일한 사람이고, 죽기전에 믿은 사람은 1시간 일한입니다. 이 비유대로 말한다면, 12시간 일해도 1데나리온을 받고, 1시간 일해도 1데니리온을 받는다면, 어느 편이 좋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느 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분명히 1시간만 일하는게 나을거라 생각하실 것입니다. 다시말해 모태신앙으로 어릴때부터 재미없는 인생을 사는 것보다, 마음대로 즐기면 살다가 죽기전에 믿는 것이 좋지 않을까? 전쟁에 나가는 것보다 안나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이 모태신앙, 또는 일찍 예수를 믿고 살아가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전쟁에 나간 400명 역시 전쟁에 나가게 됨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특별한 보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보상을 받았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하나님의 전쟁을 치룰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 자체가 보상입니다. 다시 포도원비유를 보시면, 1시간 일한 사람은 11시간을 허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12시간 일한 사람은 전혀 시간을 허비 하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태신앙, 또는 이미 오래전부터 신앙생활을 함의 보람과 기쁨은, 불신자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는 것,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는 것,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수고할 수 있었다는 것..., 등 그 자체가 보상이고, 보람이고, 기쁨인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보람이고 보상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사는 것 그 자체가 영광이며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신자로 행하는 모든 일이 보상임을 알고, 그 일을 하는 것에 보람과 기쁨을 찾을 수 있기를, 그리고 더욱 신자로서의 살아가는 것과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보람이며 보상이며 기쁨임을 잊지 않고, 그 일과 그러한 삶에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은혜로운 신자의 삶!
오늘 본문을 두부류의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전리품을 나누어주지 말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고, 둘째는, 비록 함께 전쟁하지는 않았지만 전리품은 나누어야 한다고, 그리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26-30절을 보면, 유대의 각 고을에도 전리품을 나누어주자고 주장하는 다윗입니다. 과연,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같은 환경과 같은 결과 앞에서 이렇게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번 전쟁에서의 승리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느냐에 따른 차이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금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말고, 공동체에서 내 보내자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번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원인이 바로 자신들의 힘과 노력에 의한 산물이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강조하는 표현이 ‘우리’또는 ‘내가’ 입니다. 그러니까? 함께 싸우지 않은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떻습니까? 다윗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가족을 찾은 것, 재산을 찾은 것, 그리고 전리품을 얻게 된 것..., 등 이 모든 일이 일의 원인이, 자신들의 힘과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 것임을 분명히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고, 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모든 전리품을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200명과 유대 여러 고을 사람들에게 차등없이 나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400명의 군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의 삶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 즉 하나님께서 내 삶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아는 사람은 결코 계산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400명은 군인들이 나누어주는 일에 반대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전쟁속에 베푸신 은혜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계산적인 사람인 된 것입니다. 마치 포도원 품군 비유에서 가장 많이 일한 자신에게 더 많은 품값을 주지 않았다고 말한 사람과 같습니다. 그 품군은 주인의 은혜를 몰랐던 것입니다. 주인이 자신을 불러주지 않았다면, 아무런 일을 할수 없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잊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주인의 은혜를 잊어버림으로 1시간 일한 사람에게 1데나리온을 주었다면, 12시간 일한 자신에게는 12데나리온을 주는 것이 올바른 계산이라고 주인에게 말한 것입니다. 이처럼 은혜를 모르면 계산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신자들 중에도 이들처럼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알지 못하고, 늘 계산적인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내게 잘해주면 그 사람을 잘해주고, 나를 미워하면 나도 미워하고, 손해보는 일은 하지 않고, 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자신의 몫을 챙기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 중요한 것은, 은혜로운 사람의 특징은 항상,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고 따듯하게 대한다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의 400명은 하나님의 은혜를 몰랐습니다. 그들은 은혜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아주 인색하고, 차가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들은 적어도 10년 이상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들입니다. 그런데 작은 이익 앞에서 인색하고 차가운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참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은혜가 충만한지 아니면 은혜가 식어버렸는지는 ‘이웃에 대한 나의 태도와 자세’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 즉, 은혜가 없는 사람은 인색하고, 차갑고, 냉정하고 무심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은혜가 충만한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정이 많고, 따듯하고, 포근하고, 어깨를 빌려줄 수 있는 삶, 그리고 부족해도 좋게 봐주고, 실수를 해도 가능성을 봐주고, 나쁜 점이 많아도 좋은 점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을 사는 것입니다. 참 궁금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신자입니까? 400명 또는 다윗..., 저는 여러분 모두가 400명같이 은혜를 잊고 계산적이고, 냉정한 사람이 아닌, 늘 내게 베푸시는 은혜를 알고, 서로에게 희생하고, 너그럽게 대하는 신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렇듯, 서로에게 은혜로 대하는 것이 우리 신자의 삶의 중요한 원리입니다.
3.한 팀입니다!
축구 경기를 보면서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만일 골키퍼를 제외한 10명의 선수를 모두 공격수로 하면 어떻게 될까? 이길까? 질까? 틀림없이 경기에서 질것입니다. 가장 강한 축구팀은 공격수, 미드필드, 수비수의 조화를 이루는 팀입니다. 세계에서 축구를 가장 잘하는 나라는 아마 독일이나 브라질일 것입니다. 이들은 공격만 잘하는 팀이 아니라, 수비도 잘하는 팀입니다. 그래서 축구를 잘하는 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400명의 군인들이 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와 더불어, 그들이 모두가 한팀이라는 것을 잊었습니다. 여러분! 브솔시냇가에서 남아 있던 200명 그들은 마치 수비수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400명이 아말렉과의 전쟁에 편안하게 나가게 하기 위해, 그들의 짐을 맡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돌아오는 동료들을 박수로 환영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400명은 군인들은 이들의 역할을 생각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남아 있던 200명을 똑같은 팀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러기에 똑같이 나누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념이 훗날, 다윗의 왕조를 세우는 일에 축복으로 되돌아 옵니다. 다윗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충신이 많아지게 됩니다.
성경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한팀이라는 점을 중요하게 강조합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도 ‘우리’ 라는 인칭을 사용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 교회 일은 결코 혼자 할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우리들이 한팀이 될 때, 큰 일을 해낼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까? 모두가 한팀이라는 것을 굳게 믿는 교회입니다.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지역으로 나간 선교사님만으로가 아니라, 후방에서 물질로 돕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수고도 중요합니다.
여러분!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데 몇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지 아십니까? 약 2만개라고 합니다. 2만개의 부품이 한팀이 되어 성능 좋은 자동차가 되는 것입니다. 그 부품 각각은 별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남극 지방의 혹한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한겨울의 기온은 영하 60, 70도가 보통이며, 1968년 8월에는 영하 88도까지 내려간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곳에서 생활하는 동물이 있습니다. 바로 펭궨입니다. 그런데 펭궨들이 어떻게 그런 혹한 이기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서로 몸을 맞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의 체온을 의지하며 혹한을 이겨낸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 신자들이 이래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한팀의식을 가지고 신자의 삶을, 교회생활을 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서로 한팀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무슨 일에든 협력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오늘 본문의 다윗을 통해 함께한 군사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승리 이상의 감동과 기쁨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다음과 같아야 합니다.
본문과 삶
1)신자의 삶, 신자로서의 열심 자체를 보람이며 보상이며 기쁨으로 알아야 합니다.
2)모든 것이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계산하지 마시고, 은혜로 대우하십시오!
3)우리 모두가 한 팀임을 알아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이 신자로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보람이고 보상임을 확신하시고, 보상과 보람이 되는 삶을 더 많이 만들어가는 인생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