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i TV > 설교말씀 > 하나님의 분노와 사랑!(호세아서강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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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하나님의 분노와 사랑!(호세아서강해1)
 본문말씀 : 호1:1-9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8.4.11
조회 : 10,343   추천 : 0  
본문 : 호1:1-9절  호세아서강해1
제목 : 하나님의 분노와 사랑!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유치부 아이들이 예배시간에 자주 부르는 찬양 중에 ‘예배시간에 떠드는 아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배시간에 떠드는 아이 예수님이 보시면 뭐라하실까? 기도 시간에 장난꾸러기 예수님이 보시면 뭐라하실까? 아니 아니 안되요 예수님이 화내실거야 우리 모두 조용히 성경말씀 잘 배울래요.’  당시 유치부였던 주서진아이가 집에 가서 엄마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고 합니다. ‘엄마 화내는 것은 나쁜거 잖아! 그런데 하나님도 화를 내셔?’ 그리고 서진이 엄마는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은 화를 내실까요? 물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내는 화와는 많이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도 화를 내시고, 분노하시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화 또는 분노를 발하시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분노속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가를 확인함으로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호세아서에 대해서 
 이제 오늘부터 호세아서를 16주정도 묵상하려고 합니다. 먼저, 먼저, 호세아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사실 성경에는 호세아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습니다. 1절을 보면, 호세아선지자는 브에리(하나님은 나의 마르지 않는 원천)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호세아의 이름의 뜻은‘여호와는 구원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호세아 선지자는 북왕조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북왕조 이스라엘에서만 사역한 선지자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북왕조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왕 때부터 북왕조가 멸망한(BC722년) 이 후까지 북왕조에서만 사역한 선지자입니다. 대략적으로, BC753년경부터 BC715년경까지 약 40년간(또는, BC755-710년간 45년 동안) 북이스라엘에서 사역한 선지자이며,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슬픔 가운데 지켜보아야만 했던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이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호세아 선지자의 부르심이 다른 선지자들의 부르심과 많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예를들면, 보통의 경우에는 선지자를 부르시고, ‘백성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또는, ‘누구에게 가서 이 말을 전하라’는 식으로 선지자를 부르고 사역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호세아의 경우에는 전혀 다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에게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나으라’는 명령을 먼저 받습니다. 그러자 호세아는 3절을 보면,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아내로 삼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창녀였다고 말하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2절 하반절을 보면,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 시대 사람 모두 음란했고, 고멜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참고, 사6:5절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중에 거주하면서) 그리고 고멜을 통해서 호세아선지자는 2남1녀를 낳게 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아이들의 이름까지 명령하셨습니다. 4절을 보면, 첫째 아들은 ‘이스르엘’ 이라고 지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심으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정반대의 의미로 쓰여진 이름입니다. 이 점은 잠시후에 설명하겠습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둘째 딸을 낳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로루하마’ 라고 지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9절을 보면, 세번째 아들을 낳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로암미’ 라고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내 백성이 아니다’입니다. 그리고 호3:1절을 보면, 호세아와 결혼했던 고멜이 집을 나가 다른 남자를 찾아간 음녀가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음녀가 된 아내를 다시 데리고 와서 다시 아내로 사랑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참 특이합니다. 호세아를 선지자로 부르시고, 그로 하여금 백성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선포하라고 말하기 이전에 음녀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을 것을 명령하심으로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런 특이한 방식으로 호세아 선지자를 부르시고, 특이한 것을 명령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북이스라엘의 타락의 심각성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즉, 북이스라엘이 고멜로 묘사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정치적, 사회적, 신앙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흥미로운 예로, 구약성경 중 욥기서를 제외하고 성경보전이 가장 안 된 책이 호세아입니다. 그래서 극단적 해석이 많이 나옵니다. 고멜은 창녀였고, 호세아가 낳은 3명은 호세아의 아이가 아니라 창녀 시절 낳은 아이들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을 뜨겁게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을 호세아선지자에게 알게 하시기를 원했고, 그의 체험적 사랑으로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게 하시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결국, 호세아서의 가장 중요한 주제 및 메시지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 인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라는 주제는 호세아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모든 역사속에 모든 시간속에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메시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고멜입니다. 또한 오늘날 한국교회 성도들도 고멜입니다. 아니,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는 고멜과 같은 사람입니다. 사랑받을 자격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크신 사랑으로 사랑해 주십니다. 감사합시다.

  2.하나님의 분노가 의미하는 것!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사랑으로 보여지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진노하시고, 분노하시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맞습니다. 오늘 본문을 분명히 하나님의 분노하심입니다. 이것은 호세아의 3자녀의 이름을 통해서 여실히 보여집니다. 첫째, 이스르엘입니다. 뜻은 하나님이 심으신다라는 복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스르엘에 대해서 아십니까? 이스르엘은 이스라엘의 지명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사마리아와 갈릴리 호수 사이에 있는 대단히 비옥한 땅입니다. 그러나 이 땅은 북이스라엘의 왕중 가장 악한 왕이었던 아합왕 이후에는 멸망과 파멸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아합왕과 그 가문이 얼마나 악했는지 아실 것입니다. 온 땅을 우상숭배 천지로 만들었고, 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죽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합과 이세벨과 그의 아들 70명이 잔인하게 죽은 곳이 어디입니까? 그곳이 바로 이스르엘입니다. 그래서 아합시대 이후로 이스르엘은 멸망과 파멸을 상징하는 곳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호세아의 첫아들에게 이렇게 이름을 지으라고 말을 합니다. 물론, 이것은 단순이 호세아의 장남의 이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파멸시키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호세아의 두 번째 아이는, 로루하마입니다. 뜻은 이미 말씀 드린데로, 긍휼을 베풀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이스라엘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호세아의 세 번째 아이는 로암미입니다. 그 뜻은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선민사상을 가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충격 그자체의 선언입니다. 이렇듯 호세아의 3명의 자녀들의 이름만 보아도 하나님은 지금 대단히 분노하고 계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호세아서의 1/4 가량이 북이스라엘에 대한 저주와 심판의 이야기입니다.(참고로, 축복에 대한 이야기는 1/10정도 일뿐입니다.) 이처럼 호세아서에는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가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분노하셨다는 말이 부담스러운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분노라는 것을 죄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분노한다면 그것은 죄일 확률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분노하시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공의이고, 하나님이 아무리 분노하셔도 그 분노는 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오늘 말씀을 들으시면서, 여러분이 이런 질문을 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호세아서의 중심 주제와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셨는데, 호세아서의 시작부터, 호세아서 상당 부분이 하나님의 분노하심이라는 앞뒤가 안 맞는 것 아닙니까? 사랑은 꺼녕 너무 무시 무시하고 무정한 내용아닙니까? 라는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구약성경을 보면,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분노하시는 장면이 너무나 많이 등장합니다.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아담에게, 동생을 쳐 죽인 가인에게, 사람의 딸과 관계를 맺었던 노아시대 사람들에게,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에게, 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끊없이 불평하던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불순종한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고 왕정국가 모든 기간 동안 이스라엘 나라위에..., 등 하나님은 정말 많이 분노하셨습니다. 도대체 사랑으로 정의되시는 분이 분노하시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사랑과 분노가 어떤 관계인가를 설명하겠습니다.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그렇다면, 하나님의 분노하심에 담겨진 메시지는 무엇인가? 를 생각해야 합니다. 크게 3가지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과 그들을 향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점을 쉽게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bc722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면 생각해 보십시오! 어차피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스라엘은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크게 화를 내시고, 분노하실 이유가 있을까요? 예를들면, 이혼도장 찍기로 결심했는데 상대방의 실수에 화를 내고 분노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화를 내고 분노를 한다는 것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비록 이스라엘을 향해서 분노하시지만, 그리고 멸망을 당하게 하시지만,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겠다, 그들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호11:8절을 보면,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기로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이 점은 성경전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과 그들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그들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시고, 메시야를 통한 회복의 약속을 주셨습니다.(창3:15절) 노아시대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죄악이 관영한 삶을 살았습니다. 심지어 생각하는 모든 것이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홍수로 벌하셨지만, 그들과 그들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노아의 방주를 통해서 보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무지개언약까지 주셨습니다. 또,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제자로 부름받았지만 여전히 세상적인 권력을 갖기를 원했고, 심지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으며 베드로의 경우에는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부인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이 죽자 제자들은 제자의 삶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들과 그들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먼저 그들을 찾아가셨고, 다시금 제자로 부르시고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이렇듯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이 바로 눅15장의 탕자의 비유입니다. 즉, 아버지의 아들로 살기를 거부하고 집을 나간 아들을 한없이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의 표현이 분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분노하심에 담겨진 메시지 두번째는, 하나님께서 우리 수준, 우리의 현실, 우리의 한계에 찾아오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분노하신다는 말에 거부감을 갖습니다. 그 이유는 분노는 하나님의 수준이 아니라, 우리의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또, 목회자가 화를 내거나 분노하면 성도들은 실망합니다. 그것은 목회자의 수준이 아니라 성도의 수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분노하신다는 말은 결국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순히 화를 했다, 분노했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수준으로 내려 오셨다는 말이고, 우리의 수준에 동참하신다는 말인 것입니다. 예를들면, 출32장을 보면,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이후 시내산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게 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크게 분노하셨습니다. 그 결과 3000명 가량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출33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가나안 땅에 안들어가시겠다고 분노하십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크게 분노하십니다. 그 말은 지금 분노를 당하는 그들의 자리에 함께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대로 말하면, 긍휼을 거두신 그 자리, 내 백성이 아니라고 말한 그 자리에 하나님은 함께 계신다는 말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분노란 하나님께서 우리가 실패한 자리, 우리가 넘어진 자리, 우리가 있는 그 자리에 찾아오셨다는 표현인 것입니다.

 분노안에 담겨진 메시지 세번째는,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살면서 누군가에게 화를 내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화를 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심 내 진심, 내 마음을 알아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분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호세아에게 내 마음을 알아 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 마음을 알아 달라고 내 마음을 이해해 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분노속에 담겨진 메시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결국, 포기할 수 없는 사랑, 분노 당할 자들의 자리에 찾아가신 사랑, 내 마음을 알아 달라는 무시 무시한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이것이 호세아서가 말하는 하나님의 분노의 이유이며,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결국, 호세아서에서 하나님의 분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랑도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3.그 사랑을 본받 자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분노가 하나님의 무시 무시한 사랑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 앞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첫째는, 하나님의 분노, 진노, 징계하심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도리어 여러분 가까이 더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여러분도 더 수준 높은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여러분은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어쩌면 우리들이 생각하는 사랑은 대부분 누군가보다 높은 자리에서 베풀어 주는 호의일 때가 많습니다. 예를들면, 가진 자로서 없는 자에게 뭔가를 주는 것, 높은 곳에서 낮은 자에게 따뜻한 눈빛과 웃음을 주는 것..., 이런 사랑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더 수준 높은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처한 그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고,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사람의 못남, 약함, 실수, 실패까지도 끌어안고 품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이 있습니다. 바로, 요11장입니다. 보시면, 나사로의 죽음 사건이 소개가 됩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사로의 집으로 찾아가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은지 3일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때, 마리아와 마르다가 예수님께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예수님이 여기 계셨다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안았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비통히 여기시고 우셨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살려주실 능력도 있고, 살려주실 건데 왜 우실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의 아픔과 그들의 슬픔에 동참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요구하는 사랑인 것입니다. 또, 요3:16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말할 때, 독생자를 주심으로 말을 합니다. 이 말은 단지 대속자를 주셨다는 뜻만이 아니라, 우리의 자리에 찾아오셨고, 우리의 삶에 동참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실천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분노하십니다. 
 본문과 삶
  1)우리를 향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다는 메시지입니다.
  2)우리의 수준으로 우리의 자리에 찾아 오시는 사랑이라는 메시지입니다. 
  3)내 마음을 알아 달라는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감사하고 감격합시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품어주는 사랑을 실천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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