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28:16-20절
제목 :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
성도들의 삶속으로
기독교 역사 가운데 전해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즉,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위임하시고 승천하시자, 한 천사가 예수님에게 찾아와 다음과 같은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너무 제한된 지역에서 되어진 일이라 온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에는 미흡한 것 같은데, 천사들을 보내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이 물음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그 천사에게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시며 제자들에게 다 부탁해 놓았으니 안심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천사가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예수님의 제자들이 별로 신통치 않은데 정말 괜찮을까요?’ 라고 물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걱정마라. 나는 그들을 믿는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기독교 역사속에 살아가던 신자들이 서로에게 사명을 말하기 위해 전해진 이야기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제자들에게 주신 사명,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제자의 삶과 사명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제자로서의 삶을 결단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제자이십니까?
오늘 본문은 부활의 증인들인 여인들을 ‘갈릴리로 가라’는 명령대로 11명의 제자들이 갈릴리로 갔고, 그들에게 주님이 나타나셔서 자신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의 소유주가 되셨음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네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는 지상명령을 주시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아마 이 본문을 수없이 읽고, 설교를 통해 여러번 들으셨을 것입니다. 심지어 암송하신 분도 꽤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본문의 말씀을 보면서 어떤 궁금증이 없으셨나요?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특히 16절을 묵상하면서 “왜 예수님께서 그렇게 중요한 말씀을 오직 11명의 제자들에게만 말씀을 하셨을까?” 라는 고민을 갖아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11명의 제자들보다 예수님을 향한 더 많은 사랑과 용기를 가지고 있던 많은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신앙과 더불어 권세를 가진 자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당시 예수를 믿고 따르던 사람들이 매우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모두 불러 모아 놓고 명령하셨으면 더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왜 11명의 제자들에게만 이러한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것이 오늘 본문을 깊게 묵상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제자들에게 남다른 실력이 있어서, 믿음이 좋아서, 돈이 많아서.., 등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오직 11명의 제자들만이 예수님의 삶에 동참했고 예수님이 어떤 삶을 살았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이 11명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3년간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 기도하고, 배우고, 여러 사역에 함께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을 제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자라는 것은 예수님에 대해서 정보를 알고, 가르침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제자는 주님의 삶을 배우고 주님의 삶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로 여러분은 제자입니까?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복받기 위함입니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함도 아닙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들이 성경을 배우고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 많은 복을 받는 법을 알기 위함입니까? 더 더욱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며 말씀을 배우고 기도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함인 것입니다. 다시말해, 신앙생활의 목적은 주님의 삶을 재현(구현, 실현)해 내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주님의 말씀대로 죄에 대한 태도를 고치셨습니까? 배우자에 대한 잘못된 모습을 고치셨습니까? 그래야 합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수십년 교회를 다녀도 이웃들에게 칭찬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성경도 많이 알고 기도도 많이 하는 사람이 세상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합니까? 그것은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고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을 고치지 않는다면 여러분에게 신앙의 성장과 성숙은 불가능한 기도제목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에 대한 정보나 많이 아는 교인이 아니라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지금 여러분의 구원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문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지난 1년간, 또는 지금까지 신앙생활하는 동안 여러분의 삶을 뜯어 고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은 제자가 아닙니다. 단지 예수님의 주변에 맴도는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진정 주님의 제자라는 것은 주님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더 묵상하기 이전에 먼저 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부터 내가 제자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아멘하시겠습니까? 반드시 그러셔야 합니다. 만일 아멘을 하지 않으신다면 더 이상 여러분에게 전할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에게 간절히 원하시는 것이 바로 제자로서 주님의 삶을 배우고 닮아가며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2.너희는 가라!
이제 주님께서는 11명의 제자들에게 19-20절의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지상명령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이 명령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님의 명령을 간략하게 말한다면, “너희는 가라”는 것입니다. 어디로 갑니까? 19절을 보면, “모든 족속에게”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럼 모두 선교사가 되라는 말입니까? 너무 막연합니까? 그러면 주님이 3년간 사역하시면 찾아 가신 곳에 갈것을 말씀하심이라 이해하시면 됩니다. 여러분! 주님이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찾아가신 곳이 어디입니까? 그곳은 가난한자 있는 곳이며, 병든자가 있는 곳이며, 소외당하여 외로움속에 있는 자들이며, 죄인들이 있는 곳이며, 소망없는자들에게 가셔서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하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도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주님처럼 그러한 사람들에게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그들에게 발걸음만 옮기고 관심을 갖으라는 정도의 말이 아닙니다. 물론 관심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실천은 관심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관심 정도로 머무르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주님이 하신 것처럼, 마음이 상한자를 위로해 주고, 가난한 자에게 물질을 나누어주고, 여러 가지로 두려워하는 자들과 함께하며, 오해와 불신으로 멍들어가는 가정과 아이들을 보살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가서 주님의 복음을 알지 못함으로 소망없이 살아가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을 들으며 여러분은 어디를 생각하셨습니까? 누구를 생각하십니까? 혹시, 버려진 아이들이 모여있는 고아원입니까? 아니면 인생의 마침표를 찍고 있는 분들이 모인 노인시설, 장애인시설, 아니면 먼 나라를 생각하십니까? 네 귀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직 너무 멀리만 바라보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가야 할 첫 번째 곳은 바로 여러분의 아내이며, 남편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배우자가 마음이 상한자, 외로운자, 소망없는자, 복음없는자가 아닙니까? 주님이 여러분이 여러분의 배우자에게 주의 사랑과 주의 복음을 가지고 가서 섬겨주기를 원하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다음은 여러분의 자녀이며 부모이며, 가족들입니다. 그리고 이웃이며, 또한 하나님이 더 큰 마음을 주신다면 몽골로, 아프리카로, 중국으로, 북한으로 가셔야 합니다. 다시말해 주님이 “모든 족속에게로 가라”고 말씀하실 때 어느 특별한 장소를 염두하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주의 사랑과 복음이 필요한 그 어느곳이든 가야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의 사명이며, 우리 교회의 사명인 것입니다. 여러분! 왜 주님이 자신과 3년간 함께 동거동락한 11명에게만 이 말씀하셨는지 아시겠습니까? 오직 그들만이 가난한자, 병든자, 외로운자, 죄인, 소망없는자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보았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난 1년간 “가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소망을 주셨습니까? 아니면, 주님이 가지 않으신 곳에 있기를 즐겨하지는 않았습니까? 주님이 하지 않은 행동을 하지는 않으셨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이 여러분을 향해 “모든 족속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명령의 말씀을 들으면서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부담스럽습니까? 내가 안해도 누군가 할것이라 생각합니까? 교회일에도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할것이라 생각을 하십니까? 맞습니다. 분명히 누군가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그것은 즐거운 일이 아닐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받아야 할 축복을 다른 누군가가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주님이 이일을 바로 여러분이 하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이제 주님은 19절에 제자들에게 “제자 삼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들이 누군가를 제자 삼는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들이 이미 살펴본대로, 주님의 삶을 배우고, 주님의 삶을 닮아가고, 주님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까지 제자로서 살아오는 가운데 몇 명을 제자를 삼으셨습니까? 우선 믿지 않던 사람을 교회에 등록시키는 것이나 예수를 믿게한 적은 몇 번이 있으십니까? 그리고 더 중요 한 것은 여러분으로 인해 주님이 하신 그 일과 삶에 여러분과 같이 동참하는 제자가 되게 해야 하는 경우는 몇 번이나 있으십니까? 다시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몇 명의 제자를 삼으셨습니까? 혹시 한명도 없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제자삼는 일을 실패합니까? 이것을 알기 위해 주님이 제자들을 제자 삼는 전도여행을 보내셨을 때 하신 말씀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그것은 마10:16절에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제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만 우리가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때,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양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제자삼는 일에 실패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신앙생활 똑바로 안할래? 아내와 남편에게 그러면서 무슨 집사야! 이런 식으로 양이 아닌 이리노릇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웃과 일터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사역을 바라본 세례요한의 고백을 기억하십니까? 그것은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무엇을 타고 들어가신지 아십니까? 백마가 아닙니다. 아무도 타보지 않은, 아니 아무도 타기를 부끄러워하는 어린나귀를 타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양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같이 섬기는자가 되지 않고, 이기려고만 들기 때문에, 또는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이리의 본성대로 살기 때문에 제자삼는 일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를 삼기 위해 여러분은 사자나 이리가 아니라 양이 되셔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승리의 비결입니다. 주님의 승리를 잊지 마십시오!
혹시 여러분 중에 “모든 족속에게 가서 제자삼으라” 이 말씀 앞에, 나는 아직 초신자니까, 어리니까, 삶에 여유도 없으니까, 건강도 안좋으니까, 내가 아닌 믿음이 좋고, 성숙미도 있고, 생활에 여유 좀 있고 건강도 있는 사람이 할 일이라고 발뺌하시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17절을 보십시오!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지상명령의 위임을 받은 제자들은 모두가 못난자들임도 알아야 합니다. 예를들면, 야고보와 요한은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다. 도마는 매사에 의심이 많고 부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베드로는 성격이 급해서 실수할 가능성이 높았던 사람이며, 안드레는 너무 내성적이어서 매사에 추진력이 떨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는 혁명가적인 기질이 있어 언제 사고칠지 모르는 위험한 존재였고, 세리 출신 마태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제자들 중 가장 적격자는 가룟 유다였습니다. 그는 학식과 경험을 겸비한 인물이며 실업가의 감각과 사교성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기독교 역사를 변화시킨 사람은 바로 실격자로 판정난 11명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지상명령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 역시 제자들과 같은 그 일을 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3.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제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 11명의 제자들이, 그리고 우리들이 못났지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서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0절을 보면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신다”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냥 옆에 있어주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능력있는 하나님이 옆에 있어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도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돕겠다고 말씀하신 주님은 18절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모든 것에 명령하실 수 있는 분이며, 모든 상황속에서도 도우실수 있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여러분에게 최선의 도움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의 사명이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그 위대한 사명을 완수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서 제자삼으라는 말씀에 도전해 보십시오! 우리들이 하나님의 능력과 도움을 경험하지 못함은 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전하는 자에게 주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도전하십시오! 하나님의 위대하고 풍성한 능력과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부족함이 없는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감사함으로 끝날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왜 부족함없는 은혜를 주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이 맡기신 사명에 집중하고, 잘 감담하게 하시기 위함임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과 삶
1)진정한 제자란? 주님과 같은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제자가 됩시다.
2)가서 제자삼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양의 모습으로 사랑과 섬김으로 살아야 합니다.
3)분명히 주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일하심을 경험하게 될것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제자의 삶을 살겠습니다. 모든 족속을 주님의 제자로 삼겠습니다. 이런 결심과 헌신을 다짐하는 여러분에게 임마누엘의 축복이 늘 풍성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