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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열매를 맺으려면!
 본문말씀 : 마27:11-26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8.3.28
조회 : 8,222   추천 : 0  
본문 : 마27:11-26절   
제목 : 열매를 맺으려면!   

  성도들의 삶속으로
 우리들이 살다보면, 알면서도 못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예를들면, 운동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운동을 못합니다. 또,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와주지를 못합니다. 어떤 일에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못합니다. 가족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대화를 잘 못합니다. 이렇듯 우리의 삶에는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옳은 것,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것을 하지 못했던 빌라도의 모습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왜 재판을 받으셔야만 했는가?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빌라도 총독에서 사형을 선고 받는 장면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재판을 통해서 죽임을 당하셨을까요? 왜 유대지도자들이 직접 예수님을 죽이지 않으셨을까요? 재판을 통해서 예수님을 죽게 하려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유대지도자들에게는 예수님을 사형시킬 권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당시는 유대나라가 로마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면에서 통제를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많은 자유가 보장이 되었고, 특별히 신앙의 자유도 보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법률이나 어떤 중요한 결정에 관해서는 로마의 간섭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는 재판을 통해서 사람을 죽이는 사형선고권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로마가 세운 빌라도 총독에서 사형승인을 받기 위해 찾아 온 것입니다. 둘째는, 백성들에게 민심을 잃지 않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당시 최고로 주목을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반대하고 미워하는 무리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예수님을 추종하는 사람들 역시 적지는 않았습니다. 더욱이 많은 백성들이 유대지도자들이 예수님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유대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인다면 민심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유대지도자들에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담스러운 문제를 로마로 떠넘기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세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재판을 통해서 예수님의 죽음이 무죄한 자의 죽음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며, 증거삼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의 몇몇 구절로 예수님의 무죄하심에 대해서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4절을 보십시오! ‘한 마디로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무슨 말입니까?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다른 죄수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8절을 보면, 빌라도는 유대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이유가 죄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시기심)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분명히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잠시 후 19절을 보면, 빌라도의 아내(프로클라)가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은 ‘옳은 사람’ 곧 무죄한 분임을 전달하고, 유대인들의 일에 간섭하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계속해서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함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23절을 보면, 빌라도가 유대지도자들에게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도리어 반문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죄없는 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예수님을 놓아주기 위한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24절을 보면, 자신의 노력에도 유대인들이 물러서지 않자, 빌라도는 하는 수 없이 예수님에 대한 사형을 승인해주게 됩니다. 이렇듯,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게 하시고, 그 재판의 기록을 우리에게 소개하시는 이유는, 결국, 예수님의 죽음이 무죄한자의 죽음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기 위한 의도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이십니다. 이 점은 성경 여러곳에서도 확인을 할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마27:5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하늘이 어두워지고 큰 지진이 나는 것을 보고, 백부장, 그리고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라고 고백을 합니다. 다시말해, 예수님의 죽음이 무죄한 자로서의 죽임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 눅23:41절을 보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던 한 강도가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라고 고백을 합니다. 역시, 예수님의 죽음이 무죄한 자의 죽음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4:15절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는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라고 말을 합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죽음은 무죄한자의 죽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죽음이 무죄한 자의 죽음임을 강조하는 이유,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자기 자신을 위한 죽음이 아니라, 죄인들을 위한 죽음, 바로 죄인된 우리 각 사람을 위한 대속적인 죽음임을 분명히 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 부분은 26절에 분명히 소개됩니다. 여러분 바라바가 누구입니까? 강도, 폭동, 살인을 저지른 당시 극악무도한 죄수입니다. 그리고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당시 유월절이면 특별사면이 있었는데, 그 특별 사면에서도 제외된 사람입니다. 당연이 죽어야 할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사면을 받게 된 것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바라바 대신에 죽임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대속적인 죽음을 위해 예수님의 무죄함이 중요한 것이고,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생육법으로 태어나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무죄함이 중요한 것입니다.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죄를 위한 죽음임을 알고 우리는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2.열매를 맺지 못하는 우리들
 이제 다시 한번 빌라도 총독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그는 분명히 예수님이 무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살려주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어느 정도 노력도 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결국 예수님에 대한 사형을 승인해주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풀어주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며 마땅한 일임을 알면서 그 일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옳은 일, 마땅한 일에 대한 열매를 맺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빌라도는 왜 예수님을 옳고 마땅한 일인 놓아주는 일을 하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를 24절에서는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금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었다가는 유대땅에 큰 민란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재판이 열리는 시점이 바로 유월절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유월절이 어떤 절기입니까? 유월절은 전국에서, 또는 해외에 살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성에 모여 지키는 가장 큰 절기입니다. 요세푸스를 보면, 유월절에 최소한 200만명(고양시가 100만명) 이상의 인구가 모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월절때마다 로마에 대한 크고 작은 폭동들이 자주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로마정부도 가장 신경 쓰이는 절기였습니다. 특별히 3년간 이스라엘 땅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예수님에 대한 재판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라도에게 이 재판은 양날의 검과 같았습니다. 즉, 재판을 잘못하게 되면 빌라도는 자신의 자리에서 좇겨날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고, 그러나 반대로 예수님의 재판 문제를 잘 해결하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자리에 오르거나, 적어도 로마황제에게 두터운 신임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이 재판 하나가 빌라도의 인생에 다시올수 없는 최고의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한 사형을 승인해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빌라도가 예수님의 무죄함을 알면서도 사형을 승인해준 이유는, 자신의 만족과 이익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만족과 이익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사형을 승인한 빌라도를 보며, 여러분은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나쁜 놈, 비겁한 논, 저주 받을 놈..., 입니까? 정말 그래도 될까요? 그래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습이 빌라도의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봅시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못합니다. 빌라도와 같은 모습입니다. 또한 우리는 누군가를 미워해서는 안되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군가를 미워할 때가 참 많습니다. 빌라도와 같은 모습입니다. 또, 우리는 누구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못합니다. 빌리다와 같은 모습입니다. 또, 우리들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빌라도와 같은 모습입니다. 또, 우리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너무나도 잘 압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지 않을 때가 적지 않습니다. 빌라도와 같은 모습니다. 또,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도 잘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하심보다는 내가 원하는 쪽을 선택하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빌라도와 같은 모습입니다. 또, 우리는 강팍한 자가 되면 안된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강팍한 자로 살아갑니다. 빌라도와 같은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도망치거나 피하면 안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감당하는 것보다는 도망치고 피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빌라도와 같은 모습니다. 그 밖에는 그리스도인이 맺어야 신앙의 열매가 무엇인지 알지만, 열매 맺지 못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빌라도와 같은 모습입니다. 이렇듯 우리들이 역시 자기 만족과 이익을 위해서 빌라도와 같이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우리들이 이 시대의 빌라도라는 점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들은 빌라도보다도 더 못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빌라도는 예수님을 살려야 한다는 옳은 일을 위해 노력하려는 의지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살아가고,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신앙의 열매를 맺고자 하는 노력과 의지조차 없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더 이상 ‘빌라도와 같이 열매맺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나가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3.열매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그렇다면, 우리들이 이 시대의 빌라도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스도인 다운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가지로 간단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계산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면 안됩니다. 오늘 본문의 빌라도를 보십시오! 그가 예수님의 무죄함을 알면서도 왜 풀어주지 못했을까요?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느 쪽이 자신에게 미래에 만족과 이익을 줄것인가를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제자다운 열매를 맺지 못한 이유 역시 계산적인 신앙을 갖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 향유를 부은 여인 사건입니다. 어느 한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제자들이 그 순간 향유가 300데나리온의 가치라고 언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돈으로 바꾸면 더 많은 구제를 할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제자들은 대단히 계산에 빨라던 사람들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제자다운 열매를 맺을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 역시 그리스도인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들도 생각보다 계산적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예를들면, 십일조의 문제, 새벽예배의 문제, 전도의 문제, 주일을 지키는 문제, 내 생각을 포기하는 일, 내 주장을 내려 놓는 일, 양보하는 일, 용서하는 일, 감사하는 일, 분주한 일과 중 묵상하는 문제, 이웃을 돌아보며 돕고 섬기는 문제..., 등 저는 여러분에게 한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계산적인 신자가 되지 마십시오! 그리고 더 나가서 하나님이 마음에 주시는 감동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의 삶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는,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빌라도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은 19절입니다. 즉, 빌라도의 아내가 꿈을 꾼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무죄한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이러한 은혜를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 결과 옳은 일에 대한 열매를 맺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 역시 그리스도인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 받은바 은혜의 풍성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하나님께 받은바 은혜의 풍성함을 안다면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열매가 풍성히 맺힐 것입니다. 바울을 생각해보십시오! 그가 사도로서 많은 열매를 맺을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은혜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고전15:10절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중요한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만큼 열매를 맺을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깨달게 되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무죄하신 예수님의 죽음이 여러분을 위함이라는 은혜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우리는 진리안에 속한 자들입니다.
 본문과 삶
 1)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너무나도 잘압니다.
 2)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몰라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3)계산하고, 자신의 이익과 만족만을 따르기 때문이며,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계산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감동을 따르고, 더나가서 은혜 깨달게 됨을, 그리스도인으로서 풍성한 열매는 맺는 인생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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