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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바울의 마지막 권면! (고린도후서강해 최종회)
 본문말씀 : 고후13:11-13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8.3.7
조회 : 11,367   추천 : 0  
본문 : 고후13:11-13절  고린도후서강해 최종회
제목 : 바울의 마지막 권면!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여러분은 설교의 황태자라 불리우는 찰스 스펄전 목사님을 아실 것입니다. 그분은 죽음 앞두고 다음과 같은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주님은 날 위해 돌아가셨다.’ 또,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또,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우리의 하나님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요. 우리의 하나님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사망을 피할 수 있는 우리의 주님이 십니다.’ 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위대한 신학자인 존 칼빈은 ‘주님. 당신께서 저를 묻어 주시는 군요. 이것이 당신의 섭리로 된 일이기에 저는 더할 수 없이 만족합니다.’ 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언제일지 모르지만, 마지막 말을 무엇이라고 남기시겠습니까?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마지막 유언은 아니지만,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유언하는 마음으로 남겼던 마지막 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무엇인가를 확인함으로 우리들이 남은 신앙생활 동안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힘써야 할 지를 배우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온전해 지라! 
 먼저,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1절을 보면, 바울이 얼마나 훌륭한 사도였으며, 얼마나 성숙한 그리스도인이었는지 알수 있습니다. 보시면,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형제들아’ 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바울의 양육 받고 성장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 거짓교사들에서 속아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하고, 공격했고, 그래서 자신에게 말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준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배은망덕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신앙의 실력이고, 신앙의 위대함인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실력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해서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5가지 명령을 합니다. 첫째는, 기뻐하라. 둘째는, 온전하게 되라. 세 번째는, 위로를 받으라. 네 번째는, 마음을 같이하라. 다섯 번째는, 평안하라. 그리고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입니다. 물론, 우리가 보기에는 5가지 명령이지만, 크게 한가지 교훈입니다. 이 부분은 잠시 후에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12절을 보면,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고 말을 합니다. 즉, 바울과 함께하거나 바울과 소식을 주고 받고 있던 교회들의 안부를 전하는 말입니다. 아마도 마게도냐교회 성도들일 것이고, 넓게는 데살로니가교회, 베뢰아교회, 빌립보교회 성도들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마지막으로 13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라고 축복합니다. 참고로, 이 구절이 오늘날 목회자들이 하는 축도의 샘플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이 생각할 것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마지막으로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온전 하라’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고린도전후서를 통해서 권면하고 꾸중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 또는 치사하고 마음 상하는 일이지만 자신의 사도됨을 변명하려 했던 이유는 바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온전해지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이 점은 우리가 지난 주간에 살펴보았던, 본문에서도 언급되었습니다. 즉, 9절에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자신이 약한자로 보여지고, 약한자로 전락하더라도 고린도교회 성도들만 온전해진다면 자신은 기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럴 정도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온전함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는 ‘온전함’ 이란 무엇입니까?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고상함을 갖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여기서 ‘온전하다’ 라는 헬라어 단어의 뜻은 ‘합당한 상태가 되다’또는 ‘회복되다’ 라는 뜻입니다. 종합해서 말하면, 온전함이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합당히 여기던 그 모습으로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자된 우리 모두 온전한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우리들이 예수를 믿고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은 것은, 실질적인 의로움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도리어 법률적인 의로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칭의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의롭지 않은 우리들을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목표이며 의지의 표현이고, 우리에게 신앙의 목표를 분명히 제시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즉, 의롭다고 하신 그 의를 완성해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성화라고 말하고, 신앙의 완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바울이 말하는 온전하게 되라는 말은, 성화를 말하는 것이고, 신앙의 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뭘 많이 하는 겁니까? 대단한 일을 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가장 바라시는 것은 나의 신앙을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삼하7장의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삼하7장을 보면, 다윗이 모든 대적을 이기고 나라의 평안을 누릴 때, 법궤를 예루살렘의 성막으로 옮겨옵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쁘셨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짓겠다는 다윗의 마음을 단호하게 거절을 하십니다. 다음과 같이 거절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삼하7:11절을 보면,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집은 건물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집은 다윗 자신입니다. 그리고 넓게는 이스라엘 나라이고, 다윗의 후손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전을 짓겠다는 다윗을 거절하시고, 하나님이 다윗이라는 집을 짓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가장 바라시는 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 자신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들고, 완성해 가는 것을 가장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를 많이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자신을 완성해가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성해가는 일을 놓치고, 단지 신앙의 열심만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열심을 자신의 신앙의 수준이라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열심히 여러분의 수준이 될 수 없습니다. 예를들어 봅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신앙의 열심히 있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신앙적인 열심히 있었습니다. 마23:23절 ‘화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시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무슨 말입니다. 대단한 열심히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그들을 꾸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즉, 자신을 완성해 가는 일에는 무관심했다는 말입니다. 또, 마7:22절을 보십시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거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꾸중하셨습니다. 역시, 열심은 있지만 자기를 완성해가는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예수님은 불법을 행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또는 우리들이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성해가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이것이 바울의 마지막 권면이며, 참다운 신앙생활이면, 하나님의 요구사항입니다.

  2.균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바울의 마지막 권면이 ‘온전하라’ 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온전하라는 권면 말고도 4가지의 권면이 더 있습니다. 즉, ‘기뻐하라, 위로받으라, 마음을 같이하라, 평안하라.’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여러 가지 권면들을 덧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온전함과 더불어 놓치면 안되는 중요한 한가지를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바로, ‘신앙의 균형’입니다.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온전하라는 권면과 더불어 사용된 4가지 권면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먼저, ‘기뻐하라’고 말을 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기뻐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9절의 기뻐하라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면, 9절의 기뻐하라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강한 자가 된다면 자신은 약한자가 되어도 기쁘다고 말하기 위해 사용한 것입니다. 즉, 바울의 기쁨은 자기 희생을 감수함과 연관되는 기쁨입니다. 이런 기쁨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또, ‘위로를 받으며’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더 정확한 해석은 격려하며가 맞습니다. 그러나 위로든 격려든 중요한 것은 관계속에서만 성립하는 말이라는 점입니다. 또, ‘마음을 같이 하여’ 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평안할지어다’ 라는 말 역시 이웃과의 관계를 염두하고 하는 말인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신앙의 온전함, 신앙의 완성을 말하면서, 강조하는 것은 이웃과의 관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신앙의 온전함과 더불어 이웃과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고린도교회성도들이 신앙이 온전해지기 위해서 채워져야 할 것이 바로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금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신앙이 균형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 가운데 방언을 제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다른 은사를 멸시했습니다. 균형을 잃은 것입니다. 그 결과 모두가 방언이라는 은사만 가지려고 한 것입니다. 또,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성경적 지식을 제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리고 서로 비난하고 정죄하고, 그래서 다툼과 분쟁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또, 영혼은 중요하지만 육체는 소홀히 여겼습니다. 그 결과 방탕과 방종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신앙의 균형을 잃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신앙은 온전함을 이루기 위해서는 균형을 잡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 시급한 문제는 이웃과의 관계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건강하십니까? 건강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오늘날 현대인들이 격는 여러 질병의 가장 큰 원인은 ‘비만’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비만은 단순히 살이 많이 찌거나, 영양이 과잉된 상태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비만이란 영양상의 균형을 잃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비만인 사람은 결코 건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좀 비슷한 이야기인데,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중에서 결핵 발생률이 압도적으로 1위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결핵을 못 먹던 시대에나 걸리는 병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꾸준히 발병하고 있고, 매년 약 3000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결핵으로 죽습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것은, 지난 10년전보다 발병률이 높아져 있습니다. 과연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대단히 잘 먹지만 영양의 균형을 잃었기 때문에 발병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렇듯 건강이란 몸의 여러 가지 것들이 균형이 잘 잡혀 있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방의학에서는 건강을 음과 양의 균형이라고 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신앙의 균형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균형이란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신앙의 요소중에 어느것 하나만 전부인 것처럼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신앙의 요소를 다 중요하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 묻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접하게 되는 신앙의 요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예배, 설교, 말씀, 기도, 찬양, 봉사, 전도, 교제..., 등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모든 것이 다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각자가 경험한 은혜에 따라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일이라고 말을 합니다.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예들들면, 여러분은 자녀를 키우는데 무엇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교육입니까? 그러면 밥 안먹여도 되고, 안 입히고, 사랑이 없어도 잘 큽니까? 아닙니다. 또, 여러분은 개신교가 어떻게 만들어졌지는 아실것입니다. 중세시대 부패한 카톨릭에 대항하여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라는 구호를 외치며 개혁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개신교입니다. 참 잘한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직 성경만 외치다가 너무나 중요한 다른 신앙의 내용들을 놓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여러분 이단이 왜 생기는지 아십니까? 균형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우리나라에는 한 때 은사운동, 빈야드운동..., 등과 같은 성령운동과 연관된 이단이 많았습니다. 왜 생겨났을까요? 그것은 신앙의 균형을 잃음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이렇듯 신앙의 균형을 잃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일하시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의 완성을 이루가시는 분이심을 놓치는 일이 되기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의 균형을 잡으십시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에게 더 채워져야 할 신앙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신앙의 균형을 잃고 부족한 상태인 것은 무엇일까요? 성경, 찬양, 기도, 사랑, 전도, 감사, 실천, 너그러움, 인내, 기다림, 교제, 순종, 봉사..., 그 부족한 것을 채워가는 일에 힘쓰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의 신앙이 온전하게 성장해 갈 것입니다.
 
  3.온전하게 되려면!
 이제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우리가 더 균형 잡히고 온전한 신앙의 사람이 되려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첫째는, 하나님만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의 완성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우리의 신앙생활을 보면, 도토리 키 재기를 할 때가 참 많습니다. 즉, 누가 더 낫네 못 낫네의 싸움을 너무나 많이 합니다. 

 둘째는, 실천적 훈련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바울의 마지막 권면이 ‘평강 할지어다’입니다. 이것은 이웃과의 관계의 평강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덧붙이는 말이 무엇입니까?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입니다. 당시 입맞춤은 통상적인 인사였습니다. 실천적 훈련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Ad2세기 문헌을 보면, 성찬식을 하기 이전에 온 성도가 모두 함께 입맞추는 시간도 있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앙은 이론으로만 완전해질 수 없습니다. 이건 상식입니다. 예를들면, 기도 많이 한다고 달리기를 잘하게 될까요? 기도한다고 사랑의 사람이 될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기도는 단지 달리기를 잘하고, 사랑의 사람이 되기 위한 동기 부여나 그 일을 꾸준히 노력할 수 있는 힘을 공급받는 것 뿐입니다. 기도 자체가 달리기를 잘하게 하거나 사랑의 사람이 되도록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달리기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훈련이 필요합니다. 또, 사랑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훈련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제자훈련(경건훈련)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제자훈련이 무엇입니까? 제자훈련은 단지 성경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훈련의 핵심은 신앙을 연습하는 훈련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제자훈련이란? 내 생각이 나를 움직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며, 내 속이 요구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이 요구하는 것을 따라는 훈련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훈련들을 통해서 삶에서 반응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천적인 훈련과 연습을 통해서 우리는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신 신앙의 목표는 완전함입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다른 무엇이 아닌, 날마다 나의 신앙을 완성해가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2)또한 신앙의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나의 부족한 것들을 채워가야 합니다. 
 3)신앙을 이론과 지식으로 여기지 말고 신앙대로 반응하게 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날마다 신앙의 완성을 이루어가는 참다운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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