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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이유가 중요합니다!(고린도후서강해71)
 본문말씀 : 고후13:6-10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8.2.28
조회 : 8,144   추천 : 0  
본문 : 고후13:6-10절  고린도후서강해71
제목 : 이유가 중요합니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어느 나라의 왕이 성밖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병사가 궁궐 밖 외딴길에서 혼자 보초를 서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보초병이 서 있는 곳은 보초를 설 필요가 전혀 없어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그 병사를 불러 그 곳에서 보초를 서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병사는 ‘모른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왕은 그 병사의 상관을 불러, 왜 그곳에 보초를 서게 했는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상관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하며, 단지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왔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보초는 서는 이유도 모르고 보초를 서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이 보초병만의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우리의 삶속에서도 이유를 모르고 하는 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결혼을 하는 이유, 아이를 낳는 이유, 직장에 다니는 이유, 돈을 버는 이유, 그리고 사는 이유..., 등 특별이 우리의 신앙생활속에서도 이유를 모르고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예배를 드리는 이유, 설교를 듣는 이유, 성경을 공부하는 이유, 교회에 다니는 이유, 예수 믿는 이유..., 등 그러나 이유를 모르고 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잘못된 이유를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1) 연결 – 그러나 오늘 본문의 바울은 달랐다고 말을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임을 변명하는 것과 그가 사도로 살아가는 올바르고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바울의 이유? 
 우리는 지난 시간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기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아닙니다. 자기 자신은 결코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기준이 될 수 없고, 특별히 잘되고 못되고,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으로도 신앙을 점검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예배, 성경, 기도, 봉사, 헌금..., 이러한 것은 궁여지책으로는 사용될 수 있지만 올바른 신앙점검의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며, 더 정확히 말하면, 십자가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십자가만이 나의 신앙을 점검하는 가장 정확한 기준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자기 부인이며,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이었습니다. 이러한 십자가를 근거로 우리 모두는 날마다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날마다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 모두는 너무 쉽게 자신의 신앙에 대해 착각하고, 변질되고, 교만해질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나의 신앙을 점검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신앙을 점검하고, 비난하고, 정죄하는 큰 죄를 짓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계속해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있습니까? 매일 매일 그래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사도됨을 변명하는 이유’, 그리고 사도로서 고린도교회 성도들 향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6절을 보면, ‘우리가 버림 받은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을 포함한 주의 종들은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라는 사실을 알기 바란다는 말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자신이 하나님이 세우신 사도임을 인정하기를 바란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7절을 보면,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변명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요.’ 라고 말을 합니다. 즉, 자기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고,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과시하기 위한 이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오직 우리는 버림 받은 자 같을지라도 너희는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악을 행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나쁜 행동, 죄를 짖는 것을 말합니까? 아닙니다. 회개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선을 행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변명하는 이유는 그들이 회개하기를 바라는 이유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그들의 신앙의 유익을 위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사도됨을 변명하는 것과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유익이 무슨 상관입니까? 이미 여러 차례 말한바와 같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여러 가지 잘못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바울은 권면하고 올바르게 세워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큰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거짓 사도들에게 현혹되어,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하는 지경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바울이 어떤 권면을 해도 그것을 받아 들일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의 권위가 세워지지 않으면 양육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저에 대한 권위를 곧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게 결국에는 여러분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변명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자신이 사도라는 것을 변명하는 이유는, 결국,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유익을 위함인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8-10절을 보면, 바울이 사도로 사역하는 이유에 대해서 2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8절에 진리를 위함이라고 말을 합니다. 즉, 많은 사람들에게 진리를 올바르게 선포하고자 하는 이유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9절에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또, 10절에 ‘세우려 하여’ 라고 말을 합니다. 즉, 바울이 사도로 사역하는 이유는 모든 성도들을 특별히 범죄함 가운데 있던 고린도교회를 진리로 세우고 진리로 온전하게 하고자 하는 이유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변명하는 이유와 사도로 사역하는 이유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유익을 위함이며, 구체적으로 말하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진리로 세우고, 진리로 온전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자신이 옳은자로 들어나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옳은 자로 들어나게 되게 하고자 하는 이유라는 것입니다.

 이런 바울에게서 우리들이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가 지금 하고자 하는 것 곧 사도됨을 변명하는 일이든, 사도로서 사역을 하는 일이든 올바른 이유,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2.우리의 이유?
 우리는 지금까지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변명하는 것과 사도의 역할을 수행하는 이유가 올바른 이유였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이유였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행하는 모든 일들에는 어떤 이유가 있습니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묻습니다. 오늘 저녁에 예배에 나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 설교를 듣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경을 매일 열심히 읽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경을 열심히 알아가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새벽마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헌금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구체적으로 십일조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도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교회안에서 수고와 봉사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열심을 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가 부흥하기를 바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과연 올바른 이유입니까? 과연 하나님도 기뻐하실 만한 이유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의 이유를 분명히 그리고 정확하게 그리고 날마다 점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신앙생활 가운데 무엇인가를 하는 이유가 너무 쉽게 변질 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성경을 보면, 신앙의 이유가 변질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상당히 많습니다. 예를들면, 마6장을 보면, 구제, 기도, 금식에 대한 경고가 나옵니다. 먼저, 회당이나 거리에서 나팔을 불며 구제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구제를 이유가 올바르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에게 보이고 사람에게 영광을 얻고자 하는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이유로 구제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이들이 처음부터 사람에게 보이고 사람에게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이나 거리에서 나팔을 불며 구제를 했을까요? 아닙니다. 처음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구제를 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회당이나 거리로 나갔을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을 모아 구제하기 위해 나팔을 불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올바른 이유로 구제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이 주목하고, 사람이 박수쳐고,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게 되자, 본인도 모르게 구제하는 이유가 사람에게 보이고, 영광받으려는 이유로 변질이 된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도하는 이유가 올바르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이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회당이나 큰 거리에 서 서 기도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역시 사람들에게 보이고 칭찬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정말 이들이 처음부터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 서 기도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 정한 기도의 시간을 지키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을 보며 사람들은 친찬을 했고 박수를 쳤을 것입니다. 그러자 본인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박수와 영광을 얻기 위한 이유로 기도 시간이 될 무렵 회당과 큰 거리 어귀를 찾아가게 된 것입니다. 기도하는 이유가 변질된 것입니다. 금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슬픈 기색을 보이며 금식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역시 처음에는 올바른 이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유로 금식을 시작했다가 사람들의 박수와 영광을 얻게 되자 금식의 이유가 변질된 것입니다. 마17장의 9명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여러 지역을 다니며 귀신을 쫓아 내는 능력을 행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한 영혼 영혼을 불쌍을 여기는 마음으로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이 충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3명의 제자만 예수님을 따라 산에 올라갔고, 그들 마음에는 섭섭한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때 때마침 귀신들린 아이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귀신을 쫓아내주기 위해 열심히 기도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귀신을 쫓아 주고자 한 이유가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외일까요?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대부분 올바른 이유,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이유로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신앙의 이유가 변질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성경을 읽는 것(감격으로 시작하지만 지식적 자랑이 이유로), 봉사하는 것(하나님을 위해서라면으로 시작하지만 자기만족과 자기자랑을 이유로), 기도하는 것(하나님과의 만남이 좋아서로 시작하지만, 내 소원과 목적을 이유로) ..., 등 이렇게 우리는 쉽게 신앙의 이유가 변질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날마다 신앙의 이유를 정직하게 그리고 엄격하게 점검하는 일을 게을리 하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올바른 이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분명한 것은 자기 만족, 자기 자랑, 자기 과시는 아닙니다. 이것은 신앙의 올바른 이유가 될수 없고, 도리어 가장 나쁜 이유입니다. 이런 이유가 여러분에게 없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모든 신앙의 내용을 아우를 수 있는 올바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경은 크게 2가지로 말을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보답니다. 이것은 여러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제가 늘 강조를 많이 하는 것입니다.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풀어주신 자비와 긍휼과 은혜와 사랑이 한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대한 감사와 보답이 신앙의 가장 올바르고 정당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 이유에서 벗어나면, 아무리 대단하고 휼륭한 명분을 앞세워도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신앙의 이유가 감사와 보답이 맞습니까? 그 이유가 변질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둘쩨는, 다른 사람의 유익입니다. 이 점은 오늘 본문의 바울의 모습에서 분명히 확인이 됩니다. 즉,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변명하는 것이나, 사도의 사역을 하는 이유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유익, 곧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그들을 온전하게 세워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내 유익이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함입니다. 또한 우리들이 신앙이 더 성숙하고 성장해야 하는 이유도 역시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를 위해, 더 많은 복을 받기 위함입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은 기복신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복만 구하는 신앙입니까? 맞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기복신앙이란 자기만족, 자기자랑, 자기과시가 이유인 신앙이 기복신앙입니다. 즉, 자신이 이유고 목적인 신앙이 기복신앙인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들이 갖어야 하는 신앙의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보답이며, 다른 사람의 유익인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식대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라입니다. 이것만이 모든 신앙의 가장 올바른 이유인 것입니다. 평생 이 이유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3.약한 자가 되라.
 그렇다면, 우리들이 신앙의 올바른 이유인 감사와 보답, 특별히 서로에게 유익이라는 이유를 놓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틀린 자가 되고, 약한 자가 되면 됩니다. 이것이 바울의 모습입니다. 즉, 7절 ‘오직 우리는 버림을 받은 자 같을 지라도 너희는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무슨 말입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은 틀린 자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9절 ‘우리가 약할 때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무슨 말입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강하게 하기 위해 자신은 약한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왕상3장을 보면, 솔로몬의 유명한 재판이 나옵니다. 어느날 한 아기를 데리고 두 여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서로 자기 아기라고 우깁니다. 도무지 재판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솔로몬은 아기를 반으로 나누어 주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 친모가 그 아이를 상대방 여자에게 주라고 말을 합니다. 그 말의 의미를 압니까? 내가 거짓말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왜 거짓말 쟁이, 죄인이 되기를 자처 했습니까? 아기를 살리기 위함입니다. 우리도 신앙의 올바른 이유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 마음, 이 자세를 갖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다른 사람의 유익이라는 신앙의 이유를 놓치고 쉽게 변질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옳은 자, 강한 자, 잘 난자가 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어린양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백수의 왕인 사자가 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이 이런 사람은 아닙니까? 그러지 마십시오! 사람들 앞에서 약한 자가 되고, 못난 자가 되고, 틀린 자가 되는 것, 바보가 되는 것, 자존심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 마십시오! 주님이 그 길에 계십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얼마나 많이 했냐고 묻지 않을 것입니다. 
  본문과 삶
 1)그러면 무엇을 물으실까요? 그것을 왜 했냐? 고 이유를 물으실 것입니다. 
 2)지금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답하시겠습니까? 
 3)감사와 보답, 다른 사람의 유익이라고 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그러기 위해 저는 여러분 모두가 약한 자, 틀린 자, 못난 자, 자존심 없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주님은 나도 그랬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런 복되고 영광스러운 삶을 소원하며 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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