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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설교] 승리의 삶을 원하십니까?(사무엘상강해34)
 본문말씀 : 삼상26:1-25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8.2.9
조회 : 8,741   추천 : 0  
본문 : 삼상26:1-25절  사무엘상 강해34
제목 : 승리의 삶을 원하십니까?  

  성도들의 삶속으로  
 옛날 어느 나라에 충신이 되고자 하는 한 젊은 신하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 신하가 임금님께 질문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정과 부패를 이기고 나라를 위한 깨끗한 충신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임금님은 그 젊은 신하의 말에 감동을 받고 다음과 같이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컵에 물을 가득히 채워서 제한된 시간 안에 시내를 한 바퀴 돌되, 물을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큰 벌을 내리겠다.’고 하명했습니다. 그리고 창과 칼을 든 군사들을 그 젊은 신하 뒤를 따르게 했습니다. 젊은 신하 임금님이 명하신 대로 제 시간에 물 컵을 들고 궁전으로 돌아왔습니다. 임금님은 크게 칭찬하며 그리고 물었습니다.  ‘자네가 시내를 한 바퀴 도는 동안 무엇을 보았는가? 여자나 술집인가? 아니면 많은 사람들인가?’  신하가 말하기를 ‘임금님, 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임금님은 ‘바로 그것이야. 자네에게 주어진 나라 일에 집중하게 될 때, 자넨 훌륭한 충신이 될것일세’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인 하나님의 뜻에만 집중하여 산다면, 반드시 하나님께 충성하는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의 뜻에 집중함으로 승리의 약속을 받은 다윗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승리의 삶의 비결을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승리를 약속하신 하나님!
 오늘 본문은 다윗이 십 광야에 있었을 때, 있었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2절을 보면, 사울왕이 다윗이 십광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훈련된 3000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다윗을 찾아나섭니다. 그런데 7절을 보면, 다윗의 조카이며 직속 부하인 아비새와 함께 사울의 숙소에 찾아갑니다. 그리고 8절을 보면,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말하며 사울왕을 죽이자는 아비새의 의견에 반대하며, 다윗은 11절에 사울왕에게 자신의 본심만을 전하자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창과 물병만을 가지고 자기 진영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21절에 사울왕은 다윗은 본심을 확인한 후 또다시 다윗을 죽이려 했는 일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25절을 보면, 사울이 다윗에게 ‘큰 일을 행할 것과 반드시 승리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사울왕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후로 다윗과 사울은 다시 만나지 않게 됩니다. 

 오늘 우리들이 첫번째로 묵상해야 할것은, 승리에 대해서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에 하나님께서 사울을 통해, 다윗에게 반드시 승리의 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을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승리를 주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신약성경 고전15:57절에서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시고자 하는 승리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승리는 어떤 것인가요? 혹시, 어디서든지 머리가 되는 것, 다른 경쟁 업체보다 매출을 올리는 것, 어떤 위기를 극적으로 해결하는 것, 자식이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 것,  또는, 남들보다 빨리 승진하는 것, 더 넓은 평수의 집을 사는 것, 기도하면 무엇이든 응답받는 것, 무엇이든지 잘되는 것..., 등 혹시 이러한 것을 하나님이 약속하신 승리라고 생각하고 기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하나님은 그러한 것들을 승리의 내용으로 얼마든지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한 승리의 내용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승리의 내용들은 과연 무엇일까요? 우선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약속을 받은 오늘 본문 이후의 다윗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27:1절을 보면, 다윗은 자신이 결국에는 사울왕의 손에 죽게 될 것을 예상하고 적국인 블레셋의 가드 땅으로 도망을 갑니다. 그리고 시글락이라는 작은 성에 살게 됩니다. 그리고 30장을 보면, 다윗과 군사들이 성을 비운 사이, 아말렉 사람들이 공격을 하여, 남아 있는 가족들과 재산을 모두 빼앗아 갑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이 일로 인해서 다윗을 믿고 따르던 600명의 부하들에게 죽을뻔한 위기를 맞기도 합니다. 그리고 비록 하나님께 승리를 약속받았지만 수년간 별로 나아진 것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과연 이런 다윗을 보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승리가 무엇일까? 라는 고민을 안할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다윗은 수년 후에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그러나 그 왕이 되는 것 한가지만을 승리로 약속한 것은 아닙니다. 다윗의 모든 삶에 승리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다윗에게,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승리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이런 것들입니다. 다윗은 승리를 약속받은 후 계속해서 고난, 실패, 외로움의 문제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앞으로 묵상하면 알겠지만, 다윗에게 더 이상 고난이라는 문제가 신앙의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승리는, 고난도 문제가 되지 않고, 실패도 문제가 되지 않고, 가난도 질병도 문제가 되지 않고, 외로움도 문제가 되지 않고, 어떤 말도, 어떤 상황도 문제가 되지 않고, 심지어 어떤 실수도 문제가 되지 않는 신앙과 마음과 태도...., 를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좀 다르게 말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 ‘모든 격는 일들이 해가 되지 않고 유익이 되게 하시는 것’ 바로 이러한 것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승리의 본질인 것입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또하나의 본문이 있습니다. 바로 창39장의 요셉이야기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가 애굽나라의 보디발 장군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요셉을 형통하게 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던 가운데 요셉은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절을 합니다. 그 일로 인해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형통하였다고 말을 합니다. 이해가 되는 말입니까? 남의 집 종이 되었는데 형통이라고 말을 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는데 형통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요셉의 이야기속에 등장한 형통은 무엇입니까? 이 점을 요셉은 스스로 고백을 합니다. 창50:20절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그렇습니다. 형들에게 미움을 받은 것, 종이 된 것, 억울한 누명을 쓴 것, 감옥에 갇힌 것..., 이러한 일들이 요셉의 신앙과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승리이고, 형통인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승리와 형통을 우리 모두에게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인생에 격고 있는 일, 마주한 현실, 환경..., 여러분의 신앙이나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복된 계획을 방해하거나 막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승리와 형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롬8:37절에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약속을 주심을 기억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모든 순간에 감사하십시오! 

  2.하나님의 뜻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러한 승리를 약속해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다윗의 신앙에서 꼭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걸어감’입니다. 이제 이 점을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다윗이 부하 아비새와 함께 한 밤중에 사울의 진영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잠들어 있는 사울왕을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부하들도 모두 잠들어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입니까? 다윗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다윗의 고생을 끝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입니다. 더욱이 8절을 보면, 다윗과 함께 갔던 아비새가 다윗에게 자신이 죽이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아비새는 왜 자신이 사울왕을 죽이겠다고 말을 합니까? 그것은 다윗이 기름부음받은 자를 죽이는 것을 할 수 없다고 이미 24장에서 이야기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충신이었던 아비새가 자신이 모든 것을 감당하겠다는 마음으로 다윗에게 사울왕을 죽이겠다고 말을 한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손 안대고 코 풀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9절을 보면, 다윗은 아비새에게 사울왕을 죽이지 말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사울왕을 죽이지 말라고 말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을 죽여본적이 없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다윗은 이미 많은 전투를 치룬 사람입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여본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왜 다윗은 사울왕을 죽이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9절에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11절을 보면,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라고 말을 합니다. 결국, 다윗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 것 같습니까? 그것은 사울왕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이고, 사울왕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사울왕을 죽이지 않은 이유입니다. 어쩌면, 다윗의 조카이며 부하인 아비새의 입장에서 볼 때, 다윗은 참 답답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생을 끝낼 수도 있는데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원하심을 운운하며 고생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옳았습니다. 다윗은 고생스러운 순간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집중력을 놓치지 않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에서 이탈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승리를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은 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보디발 장군의 유혹을 이길수 있었고, 감옥에 갇힌 후에도 하나님의 원하시는 길에서 이탈하지 않아 낙심이 아닌 성실함으로 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요셉에게 승리와 형통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승리와 형통이 약속으로 주어졌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매일의 삶속에서 승리와 형통을 누리고 계십니까? 혹시라도 승리와 형통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은 그 이유를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걷지 않기 때문.’ 이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하나님께 승리와 형통을 약속 받았지만, 우리 주변의 수없이 많은 아비새의 속삼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걷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승리와 형통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집중력을 가지고 계십니까?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뜻에 대한 갈망의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매 순간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에 대한 간절함이 있습니까?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주간을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사셨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되는 일에 뚝심을 가지고 그 길을 가셨습니까? 혹시, 내 뜻도 있고, 내가 원하는 길도 있는데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길을 가야 하냐고 묻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2가지만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선하고 복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더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의 왕이시며 주인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에 왕이시고 주인되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주변의 수없이 다양한 아비새의 속삭임에 너무나 쉽게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집중력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에서 쉽게 이탈합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는 인생이 되십시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갈급함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뜻 곧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에서 이탈하지 마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에게 약속하신 바 승리와 형통의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3.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어떻게 하면,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에서 이탈하지 않을수 있을까? 에 대해서 입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될까요? 바로 조급함을 이겨야 합니다. 예를들면, 만일 다윗이 빨리 왕이 되어야 겠다는 조급함을 갖었다면, 또, 요셉이 하나님이 주신 꿈을 빨리 성취해야 한다는 조급함을 갖었다면, 그들은 그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집중력을 잃었을 것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에서 이탈했을 것입니다. 이 점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있습니다. 출32장의 금송아지 사건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시내산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조급해졌습니다. 그래서 아론을 앞세워 무엇을 만들었습니까? 금송아지 형상을 만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금송아지를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도 아닙니다. 그들은 조급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집중력을 잃었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길에서 이탈하고 만 것입니다. 이렇듯 조급함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집중력을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집중력이 약해집니까? 언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에 이탈하게됩니까? 조급할 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 곳에서 조급함에 대해 경고를 합니다. 잠14:29절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잠29:20절 ‘네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조급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때’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10절을 보면,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다윗이 사울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않은 이유, 그가 조급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울을 어떻게 죽이실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그를 죽이실 때가 있다는 것, 반대로 말을 하면, 하나님이 자신을 왕으로 세우실 때가 있다는 점을 그가 확신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전3장을 보면,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면....’ 라고 말을 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또한 우리를 향한 어떤 뜻과 계확을 이루시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조급함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확신이 없다면, 우리는 조급함에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한  뜻과 계획을 이루실 다양한 때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 때를 믿음으로 넉넉함을 가지고 기다리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에서 이탈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z용  
 하나님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승리와 형통이 약속하셨습니다.
  본문과 삶
 1)물론, 그 약속은 세상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뭐든 잘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2)어떤 일이든 우리의 신앙에 방해가 되지 않고, 도리어 유익이 된다는 뜻입니다.
 3)이 약속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다양한 아비새의 유혹, 무엇보다 조급함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에 더 집중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걸으며 승리와 형통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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