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12:19-21절 고린도후서강해68
제목 : 계속 고쳐가야 합니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어느 교회가 섬기던 목사님께서 은퇴하시고, 새로운 담임목사를 청빙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청빙위원회를 구성하고, 새로운 담임목사님을 청빙하기 위해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설교 잘하기로 유명한 어느 목사님을 청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새로운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소문대로 정말 설교를 잘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 주일은 설교 제목은 ‘순종해야 합니다.’ 였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두 번째 주일설교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담임목사님께서는 지난 주일과 동일한 본문과 제목으로 그리고 같은 내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성도들은 당황했지만, 부임하시고 얼마나 바쁘면 그랬을까? 라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주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주일에도 처음과 같은 본문, 제목, 내용으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러자 성도들이 웅성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청빙위원회 장로님들에게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그러자 장로님들이 담임목사님을 찾아가 정중히 새로운 설교를 해주기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주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담임목사님은 처음과 같은 본문, 제목, 내용을 가지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러자 설교를 듣던 성도들의 안색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설교 말미에 목사님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순종하라’ 는 말씀을 매주 반복해도 순종하지 않는데 어떻게 다른 설교를 할 수 있습니까? 무엇을 말하는 교훈하려는 것인지 아실 것입니다. 아무리 설교를 들어도 고치지 않는 성도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이야기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고쳐가기를 바라는 바울의 안타까운 마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도 자신을 점검하고 잘못된 것들을 고쳐가는 일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계속 고쳐가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부모의 마음 곧 자기 희생과 헌신을 근거로 자신의 사도됨을 변증하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참다운 주의 종의 모습 역시, 부모의 마음인 자기 희생과 헌신을 가진자이어야 한다는 점과 참다운 성도의 모습 역시 서로에게 부모의 마음인 자기 희생과 헌신을 가진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교회란 부모의 마음을 가진 자가 많은 교회이고, 따라서 서로에 대한 감사가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이며, 훌륭한 교회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먼저, 19절을 보면, ‘우리가 자기 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하는 구나.’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변명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한 일로 오해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변명하는 이유는 자신의 옳음이나 자신의 이익을 위함이 아닌,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20절을 보면, ‘내가 갈 때에’ 라고 말을 합니다. 즉,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3번째 방문할 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20-21절을 보면, 바울은 ‘두려워한다.’ 라는 말을 4번이나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3번째 방문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이 두려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교회 방문을 앞둔 바울의 마음에 두려움이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이 바울의 마음에 두려움을 갖게 했을까요? 20절을 보면,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렵다.’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방문했을 때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자신이 기대하고 바랬던 모습이 아닐까 두려웠고, 자신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원하는 사도의 모습이 아닐까 두렵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비위를 못 맞출 것을 두렵게 여긴 것이 아니라,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을 고치지 않는다면, 바울은 여전히 그들이 원하는 사도의 모습이 아닐 것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20절 중반절을 보면,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라고 말을 합니다. 즉, 이미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꾸중하고 책망한 일들이 여전이 있을까봐 두렵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21절에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라고 말을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자신을 낮추는 것, 자신이 낮아지는 것을 두렵다고 말하는게 아닙니다. 이 말의 의미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자신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고, 2번째 방문때와 마찬가지로 냉대를 할까봐 두렵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보시면,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고 말을 합니다. 즉,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회개하지 않고 있을까봐 두렵다는 것입니다. 결국, 고린도교회에 3번째 방문 계획을 가지고 있던 바울의 두려움은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부모의 마음으로 꾸중하고 권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회개하고, 자신을 고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지금 바울이 바라는 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자신을 대접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인정하고 잘못을 고쳐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우리 모두를 향한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잘못들을 꾸중하고, 권면하십니다. 예를들면, 설교를 통해서, 큐티를 통해서,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다양한 상황을 통해서 꾸중과 권면을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들을 꾸중하고 권면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잘못된 것들을 고쳐가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거룩하고, 흠도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가도록 자신을 고쳐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날마다 자기 자신을 고쳐가는 일을 하고 계십니까? 혹시, 여러분 가운데 내가 왜 고쳐야 하냐고 반문하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먼저 한가지 묻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마치 ‘정치적인 망명’과 같습니다. 즉, 사단의 나라에 속했던 자가 하나님의 나라로 망명하는 사건이 예수를 믿는 사건입니다. 예전에 북한대사관의 직원들이 한국대사관으로 망명을 요청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북한의 체제를 버리겠다는 말입니다. 즉, 지금까지는 북한의 통치아래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대한민국의 체제를 받아들이고, 대한 민국의 통치안으로 들어오겠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지금까지 받아온 죄의 통치를 거부하고, 내가 왕노릇하는 체제를 버리고, 이제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통치를 받겠다는 결심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의 잘못들을 고쳐내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또 묻습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때 되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 정해 놓은 대로 하루에 3장씩 성경을 읽고 하루 10분이라도 기도하는 것, 피곤하지 범위안에서 최소한의 봉사를 하는 것, 부담이 없는 선에서 적당한 헌금을 하는 것..., 이러한 것들을 신앙생활 또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신앙생활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기준하여, 끊임없이 나를 점검하고, 고치고 교정함으로 나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형상)으로 나를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신앙생활이며, 성경이 말하는 부흥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우리들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이고, 봉사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더 많은 복을 받는 것이고,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 일이고, 고난을 피해 더 편한 삶을 사는 것이고, 신앙의 자랑거리들을 만드는 것..., 등에만 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 결과 무엇인지 아십니까? 신앙의 성장과 성숙이 없는 것입니다. 즉, 신앙생활을 10년을 하고, 20년, 30년, 심지어 40년을 해도 신앙의 레벨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늘 신앙이 제자리 걸음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신을 날마다 점검하고 고쳐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종말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벌써 2000년이나 지났습니다. 이렇게 종말이 늦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결국,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즉, 우리들이 더 온전한 신자로 세워지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표준으로 삼고, 우리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고쳐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도 예외없이 주님을 만나는 그날까지 자신을 고쳐가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2.우리들이 특별히 고쳐야 할 것?
그렇다면, 여러분이 고쳐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고치기를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특별히 바울의 모습을 보면, 우리들이 특별히 고쳐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할수 있습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을 논하는 사람에서 덕을 세우는 사람으로 고쳐가야 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변명하는 내용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변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의 옳음을 나타내기 위함일까요? 아닙니다. 19절을 보면, 보면, 바울이 자신을 변명하려는 이유가 덕을 세우기 위함이라고 말을 합니다. 사도로서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사도로서의 권위를 회복하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래야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한 권면이나 꾸중이 받아 들여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변명하는 이유는 자신의 이익이나 만족, 자신을 옳음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닌,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잘못된 신앙의 오해, 신앙의 견해를 고쳐주고, 그들에게 신앙의 유익 곧 그들의 덕을 세우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울의 사역의 목표이고, 그가 품은 부모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신앙은 어느 자리, 어느 수준에 와 있습니까?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자리, 그래서 누군가에게 옳고 그름을 말해 줄수 있는 자리입니까? 잘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적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옳고 그름을 말해 줄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말해주는 자리에서 덕을 세워주는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말하는 자리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러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우상에 대한 성경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우상은 없으며, 따라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훌륭한 것이지요! 그러나 문제는 아직 그런 성경적인 지식이 없고, 믿음이 없고, 감당할 만한 신앙의 담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우상의 고기를 왜 못 먹냐고.’ 비난하고 정죄하고, 죄인 취급하고, 그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달랐습니다. 고전8:13절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방간이 많아서 입니까? 채식주의자라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아직 연약한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덕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결국,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마치 이런 사람입니다. 음식을 남기면 안되니까 억지로라도 다 먹으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맞습니다. 음식을 남기면 안됩니다. 옳은 말입니다. 하지만, 음식을 남기지 않으려고 억지로 먹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배탈이 납니다. 이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차라리 같이 먹어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옳고 그름만 알았지 사랑이 무엇인가를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감정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바울이 말하는 사랑은 무엇입니까? 고전8:1절 ‘사랑은 덕을 세우고’ 라고 말을 합니다. 또, 고전10:23절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라고 말을 합니다. 또, 롬15:1-2절‘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이게 성경이 말하는 사랑입니다. 즉,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덕을 세우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옳고 그름은 알았지만 사랑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옳은 말을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게 되고, 신앙이 주저앉게 되고, 결국, 그 옳은 말이 남에게는 쓸모없는 말이 되고, 자신을 증명하고 과시하는 도구로 변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혹시, 여러분도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그리스도인은 아닙니까? 다시말해, 옳고 그름만을 따지다가 사랑을 놓치지는 않습니까? 사실 이런 경우가 참 많습니다. 예를들면, 부부싸움을 할 때 그렇습니다. 부부 싸움을 하다 보면 옳고 그름을 따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놓치고 상처와 아픔만 남길 때가 참 많습니다. 또, 우리들이 어떤 성도의 실수를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옳고 그름을 쉽게 비판합니다. 그러나 비판뿐이고 사랑이 발휘되지 않을 때가 참 많습니다. 봉사의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일 하는게 효율적이고 좋은 것인지는 알지만 그것 때문에 사랑이 뒷전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시대 바리새인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우리안에는 많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처럼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에서 바울과 같이 하나도 알고 둘도 아는 사람으로 고쳐가기를 바랍니다. 즉,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말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해주는, 그 사랑의 신앙에 유익을 주고, 그 사람의 덕을 세우고, 그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는 사람이 되도록 자신을 고쳐가기를 바랍니다.
3.그러나 우리들이 자신을 고쳐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제,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묻습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자신을 고쳐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아니라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너무 완전하고 흠이없어서 고칠 것이 없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너무나 고쳐야 할 것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고쳐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요?
첫째는, 자신을 고치는 일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왜 자신의 잘못을 고쳐내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관심이 다른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신앙상의 관심사는 무엇이었을까요? 자기 자랑, 자기 과시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자신의 못난 것 잘못된 것을 찾고 고치는 일에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자신을 고쳐가는 것보다 다른 것에 관심사가 많습니다. 예를들면, 복받는 것, 잘되는 것, 자기 자랑, 자기 과시...,등 관심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저는 여러분 모두가 다른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원칙과 표준으로 삼고 자신을 고쳐가는 일에 큰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자신이 아닌 남을 고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숨은 그림을 찾듯 남의 흠을 찾고, 비판, 정죄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늘 다른 사람을 고치려고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으면서도 ‘이 설교 아무게 집사가 들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닙니다. 주님은 자기 눈의 들보를 먼저 빼라고 하셨습니다. 셋째,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계3:14절 이하를 보면, 주님이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즉,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그들의 영적인 상태, 신앙의 상태입니다. 그들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자신의 부족과 못남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더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신을 고치고 만들어가는 일을 하지 않는 이유는, 교만하여서 자신의 못남과 부족함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매일 성경이라 거울, 설교라는 거울로 자신의 부족함과 못남을 깨달게 되기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을 날마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고쳐가십시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우리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본문과 삶
1)그리고 하나님께 복된 약속들을 많이 받았습니다.
2)그러나 약속만 받은 것은 아닙니다. 신자로서의 의무와 책임도 받았습니다.
3)오늘 본문을 그것은 자신을 더 나은 신자로 고쳐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매일 매일 자신을 고쳐가는 일에 관심과 노력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옳고 그름을 논하는 수준이 아닌, 사랑으로 덕을 세우는 수준의 사람을 고쳐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