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i TV > 설교말씀 > 서로에게 부모가 되어주라!(고후강해67
HOME 로그인회원가입
교회안내 설교말씀 목장 및 양육 선교사역 부서소개 사랑방

  사랑 i TV  
     설교말씀 
     찬양영상 
     행사영상 
     성가대찬양 
     찬양소개 
     QT영상 





설교말씀
    > 설교말씀 >>  수요설교
 
[수요설교] 서로에게 부모가 되어주라!(고후강해67
 본문말씀 : 고후12:14-18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8.1.31
조회 : 9,485   추천 : 0  
본문 : 고후12:14-18절  고린도후서강해67
제목 : 서로에게 부모가 되어주라!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옛날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에게는 사랑하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도 나무를 무척 사랑했고 나무도 행복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소년도 점점 나이가 들었고,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나무를 찾아가서 말을 했습니다. ‘내가 재미있게 놀려면 돈이 필요해’이 말을 들은 나무는 소년에게 자신의 사과를 내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그 사과를 팔아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시간이 흐르고 소년이 다시 나무를 찾아왔습니다. ‘나는 아내와 가족이 필요하고 집도 필요해’ 나무는 자신의 나뭇가지를 꺽어 집을 지으라고 주었습니다. 비록 가지가 꺽이는 아픔이 있었지만, 나무는 소년이 행복해 하는 것을 보며 기뻤습니다. 또 시간이 흘러 소년이 나무를 다시 찾아왔습니다. ‘나는 늙어서 힘들어, 여행을 떠날 배가 필요해’나무는 자신을 베어 배를 만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배를 만들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또 흘러 소년이 나무를 찾아 왔습니다. ‘난 너무나 힘들어, 이제 앉아서 쉬고 싶어’ 나무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 내 밑둥에 앉아서 쉬어..., 나무는 소년을 위해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었습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모든 것을 줄수 있는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참다운 주의 종의 모습이 무엇이며, 참다운 성도의 모습이 무엇이며, 무엇보다도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부모의 마음이 있습니까?
  이제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4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이 고린도교회에 방문할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 방문이 성사되면, 3번째 방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첫 번째 방문은 2차 전도여행 당시 처음 복음을 전하기 위한 방문이었고, 두 번째 방문은 고린도전서를 보낸 이후의 어느 때의 방문이었고, 이번에 성사가 되면 세 번째 방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고린도교회를 방문하는 목적이 물질적인 부담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고린도교회에 침투한 거짓교사들이 바울을 물질적인 이득만 추구하는 삯군이라는 모함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를 방문하는 목적이 물질적인 부담을 주기 위함이 아님을 명확히 하고 있고, 도리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 뿐임이고, 그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 까지 내어줄수 있다(15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6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받고 있는 또 다른 모함에도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을 합니다. 즉,  고린도교회안에 침투한 거짓교사들이 바울을 ‘교활한 자’ 라고 모함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활하다는 것은 사기꾼이라는 말입니다. 즉, 바울이 구제헌금을 유용했다고 모함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결코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17-18절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일군들 즉, 디도, 디모데..., 등도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 자신은 물질적으로 청념하다는 말일까요? 물론, 맞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오해 받을 만한 일이 없었고, 뿐만 아니라, 거짓교사들의 모함처럼 구제헌금을 유용한 적도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더 더욱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은 항상 부모의 심정으로 사역을 했고, 부모의 심정으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대우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에서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다른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서 부모의 마음, 아비의 마음을 사역을 했습니다. 이 점은 고전4:15절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는 말씀, 또, 살전2:11절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의 말씀을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이 부모의 심정으로 사역하고 있음을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이 참다운 하나님의 사도임을 변증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사도됨을 의심받았으며, 그로 인해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변증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이 참된 사도임을 무엇을 기준, 근거하여 말하고 있습니까? 바로 부모의 심정이 있다는 점을 기준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의 심정이야 말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증명이고 기준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기 위해 제시했던 모든 근거와 기준을 종합한 것이 바로 부모의 심정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모의 심정을 가졌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단순히 애정만을 말하는 것입니까? 물론, 애정이 빠질 수 는 없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자신에게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사역을 했다고 말할 때에는 더 중요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사역을 하는 이유와 목적이 개인의 어떤 이익을 목적하지 않는다는 것과 무엇보다 성도들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이용해 먹지 않습니다. 또 자식을 자신의 이익을 재로로 삼지 않습니다. 도리어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희생합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5절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빌2:17절에서도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라고 말을 합니다. 이렇듯 사도바울은 그의 사도됨을 통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사역의 대상인 성도들을 이익을 도구로 삼기 않았습니다. 도리어 바울은 사역 가운데 그리고 성도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시겼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자신이 사도임을 말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고린도교회안에 침투한 거짓교사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사역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도구로 삼았고, 성도들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모습을 고후11:20절에서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빰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이 자신이 사도됨을 무엇으로 말했습니까? 부모의 마음이었고, 자신을 희생시키는 모습을 근거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참된 목회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실력과 능력이 있고, 자랑과 과시할 것이 많은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실력과 능력, 자랑거리과 과시거리는 참다운 목회자의 기준이 될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참다운 목회자의 기준이 됩니까? 그것은 절대로 성도와 교회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지 않는 것이고, 도리어 오직 부모의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시킴으로 교회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돌보는 자입니다. 이 부분은 제가 스스로 돌아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참다운 성도는 어떤 사람입니까? 신앙을 자신의 이익의 도구로 삼지 않는 자입니다. 또한, 신앙을 보상을 위해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이유는 감사와 보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신자들이 신앙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 보상을 위한 도구로 삼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또한 참다운 성도는 서로를 자기 이익, 자기 만족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사람입니다. 도리어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의 희생시킬 줄 아는 신자가 참다운 신자인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시키고 있습니까? 그런 훌륭한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2.서로 부모가 되어 주라!
 우리는 지금까지 바울이 참된 사도라는 증거가, 그가 부모의 마음 곧 성도와 교회를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과 재료로 이용하지 않았고, 도리어 부모의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시켰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는 조금 더 말씀의 의미를 넓혀 가보도록 합시다.

 그렇습니다. 사도는 교회와 성도들의 부모입니다. 또한 오늘날 목회자도 교회와 성도의 부모입니다. 여러분은 이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도나 목회자가 모든 면에서 부모가 되어 부모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나 목회자들이 부모의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양식을 먹이는 자리에서 부모이고, 또, 설교하는 자리에서 부모이고,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자리에서 부모이고, 진리와 생명을 가르치는 자리에서 부모이고, 성도와 교회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일에 부모이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편을 드는 자리에서 부모이고, 부모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도와 목회자에게 맡겨진 자리이고 역할입니다. 그러나 그 밖의 다른 자리에서는 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이 행6장의 구제사역입니다. 초대교회는 유대나라가 하지 못했던 구제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제하는 일에 문제들이 생겼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대단한 사도들이 부모 역할을 했는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7명의 집사를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부모의 역할을 맡기게 됩니다. 그러자 교회가 더 힘을 얻고, 부흥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식대로 예를들면, 목회자는 주방 자리에서 부모가 될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평생 콩나물을 먹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주방에서는 주방을 맡은 자가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또, 목회자는 찬양팀이나 성가대 자리에서도 부모가 될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평생 제대로 된 화음을 듣지 못할 것입니다. 또, 이번 주일에 목장데이로 목장연합 윷놀이를 하려고 합니다. 그 일에도 제가 부모가 될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껏 교제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또, 예전에 어떤 교회가 부흥을 해서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모든 것을 기도 많이 하는 목회자에게 맡겼습니다. 그렇게 건축이 되었다고 합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강단의 높이를 결정하는 일을 목회자 결정을 했습니다. 그 목회자는 권위주의가 나타나면 안되니까 최대한 강단의 높이 낮추도록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목회자의 결정을 은혜 중에 따랐습니다. 그런데 건축이 마치고 첫 번째 예배를 드리는 순간에 그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뒷자리에 앉는 성도가 강단에 선 목회자를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공사를 다시 할 수는 없으니까 강대상을 놓은 부분만 높이는 공사를 다시해서, 참 볼품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일에도 목회자는 부모가 될수 없습니다. 그밖에도 목회자에게 주어진 부모의 자리 말고, 다른 자리에서 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실력과 능력의 문제는 아닙니다. 예를들면, 어떤 목회자는 성도보다 요리를 더 잘 할수 있고, 음악을 더 잘 알고, 레크레이션 진행도 더 잘할 수도 있고, 건축에 일각연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실력과 능력이 있다고, 모든 자리에서 부모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목회자에게 부모의 역할을 맡기신 자리가 구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맡기신 부모의 자리가 또한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정말 훌륭한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목회자가 모든지 다 잘 하는 교회일까요? 아닙니다. 우선은 목회자는 부모의 역할을 성도는 자식의 역할을 잘하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더 나가서 교회안의 여러 가지 자리에서 부모의 심정으로 부모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교회입니다. 그리고 더 나가서 서로가 서로에게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부모의 역할을 해주는 교회입니다. 그렇지요. 자식이 잘되기만 한다면 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마음, 보상을 바라지 않는 마음, 희생하려는 마음을 가진 성도가 많은 교회가 훌륭한 교회입니다. 우리 사랑하는교회가 이런 의미로 훌륭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듯, 교회안에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여러 가지로 발생되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교회안에서 목회자와 성도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여러분이 저의 부모가 되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저를 위해 기도하고, 저를 돕고..., 등 또한 서로가 부모가 되기도 하고 자식이 되어야 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이게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나 두가지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부모의 자리에서 부모의 역할을 할 때, 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남들보다 모든면에서 더 나아서 그 자리에서 부모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식 자랑을 할지언정, 자기 자랑은 하지 않습니다. 또, 나를 위함인지 자식을 위함인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부모가 하는 가장 잘못된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너 잘 되라고 하는 말’ 이라는 말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자식 잘되라고 하는 말이기 이전에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부모의 역할을 할 때에 스스로 속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3.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참다운 목회자는 부모의 심정으로 부모의 역할을 하는 자이며, 훌륭한 교회는 교회안에서 부모의 심정을 품고 부모의 역할을 감당하는 자, 서로에게 부모의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많은 교회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서로 부모가 되었다가, 자식이 되었다가 하는 관계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관계속에서 넘쳐나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감사입니다. 골3:15절을 보면,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또, 롬16:3절 이하를 보면,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기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고 말을 하고, 그 뒤를 이어서 계속헤서 ~에게 문안하라는 말을 많이 반복합니다. 여기서 문안하라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사하라는 말만이 아니라, 격려하고 존경하고,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부모역할을 해주는 분들에게 감사를 해야 합니다. 사실 모든 사람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내 마음에 드냐야와 상관없이 부모이기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신앙공동체안에는 항상 감사가 넘쳐야 마땅한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가 되십시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부모 역할을 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까? 모든 서로에게 감사하고 있습니까? 만일 감사함이 없다면, 여러분은 교회가 무엇이며, 서로의 관계가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감사합시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아낌 없이 주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과 삶
 1)그러기에 참다운 목회자의 증명도, 부모된 마음과 희생이어야 합니다.
 2)그러나 목회자만 부모는 아닙니다. 우리는 때로는 부모가 되고, 때로는 자식이 되는 관계입니다.
 3)그러므로 우리는 피차 감사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우리 교회안에 부모가 많아지기를 바라며, 그로인해서 함께 성장하고 감사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Share

 
 

번호 말씀제목 보기 본문말씀 설교자 설교일자 조회 추천
2533 [주일설교] 다시 걷기-변화된 삶으로   롬12:1-2절 최용민목사 2026.4.5 65 0
2532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롬12:1-2절 최용민목사 2026.4.5 8 0
2531 [특별새벽기도] 소망하기!(고난주간5) 롬8:18-25절 최용민목사 2026.4.3 43 0
2530 [특별새벽기도] 사랑하기!(고난주간4) 롬5:6-11절 최용민목사 2026.4.2 610 0
2529 [특별새벽기도] 한 걸음 내 딛기!(고난주간3) 잠16:1-9절 최용민목사 2026.4.1 490 0
2528 [특별새벽기도] 방향 묻기!(고난주간2) 시119:57-64절) 최용민목사 2026.3.31 658 0
2527 [특별새벽기도] 기억하라!(고난주간1) 시77:1-12절 최용민목사 2026.3.30 350 0
2526 [주일설교] 거룩한 멈춤! 집중!(고난주간) 시46:1-11절 최용민목사 2026.3.29 3580 0
2525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시46:1-11절 최용민목사 2026.3.29 110 0
2524 [수요설교] 다시 세워진 신앙!(사사기강해15) 삿6:25-32절 임승철목사 2026.3.26 2142 0
2523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삿6:25-32절 임승철목사 2026.3.25 108 0
2522 [주일설교] 신앙 성장과 습관(習慣)!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2306 0
2521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116 0
2520 [주일설교] 주일2부실시간예배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160 0
2519 [수요설교] 원칙(原則)이 있는 신앙!(사도행전강해96) 행17:1-9절 최용민목사 2026.3.18 185 0
2518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행17:1-9절 최용민목사 2026.3.18 227 0
2517 [주일설교] 신앙 성장과 결단! 왕하5:15-19절 최용민목사 2026.3.15 365 0
2516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왕하5:15-19절 최용민목사 2026.3.15 176 0
2515 [수요설교] 위로받고 위로하고!(사도행전강해96) 행16:35-40절 최용민목사 2026.3.11 154 0
2514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행16:35-40절 최용민목사 2026.3.11 255 0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