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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신앙의 성숙함이란?(고린도후서강해66)
 본문말씀 : 고후12:11-13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8.1.17
조회 : 8,062   추천 : 0  
본문 : 고후12:11-13절  고린도후서강해66
제목 : 신앙의 성숙함이란?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여러분은 어른과 아이의 차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물론, 모든면에서 차이점이 있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지적인 능력이라는 면에서도 차이점이 있고, 신체적인 능력면에서도 차이점이 있고, 경험에서 나오는 문제해결 능력면에서도 차이점이 있고, 그 밖에도 대단히 많은 면에서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과 연관해서 한가지 더 말한다면, 다른 사람을 향해 태도라는 면에서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어린아이 일수록 남보다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가면 나보다 남을 생각할 줄 아는 배려가 생겨나게 됩니다. 물론, 어른들 가운에는 어린아이 같이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도 있기는 합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신앙의 어른이 어떤 사람인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신앙의 어른 곧 신앙이 성숙한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가를 확인함으로 신앙의 유익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신앙이 성숙함의 기준?
 먼저, 여러분에게 한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과연 신앙이 성숙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과연 신앙이 성숙하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보통 신자들의 경우에는 신앙이 성숙한 사람의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를들면, 예배에 참여하는 횟수가 많은 사람, 성경적인 지식이 많은 사람, 기도도 잘하고 기도의 시간이 긴 사람,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 교회에서 봉사를 많이 하는 사람, 또는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사람...,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사람들을 다 신앙이 성숙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배에 많이 참석하는 사람들 중에서 성숙하지 못한 성도가 있고, 성경을 많이 알고 기도를 잘하는 사람들 중에서 성숙하지 못한 성도가 있고, 헌금을 많이 하고 직분을 맡은 사람 중에도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참 안타까운 일이고,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이 성숙한 사람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이 점을 잘 기록한 성경이 있습니다. 바로 고전3:1-3절입니다. 그리고 본문을 보면, 신앙이 상숙한 사람의 기준을 2가지로 소개를 합니다.   첫째로, 말씀에 대한 태도가 기준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1절의 말씀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향해,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어린아이를 대함과 같이 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2절에 보면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한다’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젖과 밥은 무엇을 말합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수준이나 정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의 성숙함의 첫 번째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 수용성이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한다면 성숙한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만, 성숙하지 못한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여 신앙의 원리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성숙하지 못한 신자는, ‘원수를 사랑하라’ 는 말씀을 들을 때, 내가 왜? 난 그럴 수 없어! 라고 반발을 합니다. 하지만 성숙한 신자는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또, 성숙하지 못한 신자는, ‘매일 말씀과 기도의 삶을 살라’ 는 말을 들을 때, 꼭 그럴 필요 있어! 라고 거절을 하지만, 성숙한 신자는 매일 말씀과 기도의 삶을 살라는 말씀에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또, 성숙하지 못한 신자는 ‘서로를 섬기는 종이 되라’ 는 말을 대단히 기분 나쁘게 듣고 거절을 합니다. 하지만, 성숙한 신자는 아멘으로 받아들입니다. 또, 성숙하지 못한 신자는 ‘고난은 유익하다’ 라는 말에 콧방귀를 뀝니다. 하지만 성숙한 신자는 아멘으로 받고 인내합니다. 이처럼 성숙한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 권면을 받아들입니다. 즉, 신앙의 원리가 통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성숙하지 못한 신자는 교회는 다니고 믿음도 있다고 말하지만, 신앙의 원리, 말씀의 원리가 통하지 않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하여 볼 때 여러분은 성숙한 신자입니까? 성숙하지 못한 신자입니까? 말씀, 권면, 신앙의 원리를 잘 받아 드린다면 여러분은 성숙한 신자일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성숙하지 못한 신자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갖기 위해 노력함으로 성숙한 신자가 되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말하려는 더 중요한 성숙함의 기준이 있습니다. 둘째로, 사람들에 대한 태도가 기준이 됩니다. 3절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교회 신자들을 향해서 ‘육신에 속한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라고 책망을 합니다. 즉, 그들의 신앙은 아직도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그들에게 지식이나 은사, 헌신, 구제가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도리어 고전13:1-3절의 말씀을 보면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 예언하는 능이 있고,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고, 내게 있는 것으로 구제하며,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그들 안에 매우 많은 능력과 지식과 은사와 헌신과 수고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고린도교회는 어린아이 같이 미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에게 여전히 시기와 분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그들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도 바울이 말하는 신앙 성숙의 기준은 말씀에 대한 태도와 서로를 대한 태도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신앙이 성숙한 사람입니까?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저는 오늘 특별히 여러분에게 강조하고 싶은 신앙의 성숙함은 바로 서로에 대한 태도라는 점입니다. 이점을 오늘 본문에서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도 계속해서 바울이 자신을 변호하는 내용입니다. 과연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무엇을 증명하려고 하는 확인해봅시다. 먼저, 11절 ‘내가 어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거이니’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이 자신을 자랑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된 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자랑이라는 방식이 아니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계속해서 자신이 자칭 스스로 큰 사도라고 여기는 거짓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12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의 증명을 말합니다. 즉,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자신이 사도라는 표에 모든 참음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차라리 모든 참음을 빼고 말하는 것이 훨씬 사도의 증명다워 보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모든 참음을 포함했고, 그것도 가장 먼저 언급을 합니다. 결국, 이 표현은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모든 참음 가운데 행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바울이 고린도교회에서 사역할 때, 사역의 원리는 참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참음의 원리가 사도의 중요한 증명이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참음을 사역의 원리로 삼았을까요? 그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신앙이 하루 아침에 좋아지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13절을 보면, 바울은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 밖에는 다른 교회 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라고 묻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폐를 끼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우리들이 이미 살펴본바와 같이 자비량 사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고린도교회 사역 가운데 자비량 사역을 했을까요? 그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유익을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오늘 본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바울이 자신을 자랑한 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수준을 맞추어 유익을 위함이었고, 또한, 바울이 고린도교회교회 사역을 참음으로 한 것과 자비량 사역을 한 것 역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유익을 위함이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이 자신이 사도됨을 증명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유익을 끼치고, 그것을 위해서 힘쓰고 있다는 점인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고린도교회안에 침투한 거짓사도들은 고전11:20절에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 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즉, 그들은 오직 자신의 유익만 생각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유익을 끼친 것을 근거로 증명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다운 목사의 증명은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히 성도들에게 신앙의 유익을 끼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 묻습니다. 참다운 신자의 증명은 또한 무엇이겠습니까? 그것 역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유무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이 성숙한 신자일수록 다른 누군가에게 유익을 끼치게 됩니다. 이것이 그의 목표이며, 가치입니다. 예를들면, 여러분이 잘 아는 고전8:13절을 보면, 바울은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형제’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다. 당시의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고기는 모두 우상에게 제물로 드려진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약한 형제들이 우상에게 드려진 고기를 먹는 것 때문에 마음에 시험이 들게 된다면, 바울 자신의 권리와 자유까지 포기하겠다는 결심이며 선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바울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가장 완전한(성숙한) 인간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목숨까지 다른 사람을 위해 내 놓으셨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성숙한 신자의 모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신자들은 항상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자기 밖에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어릴수록 나타나는 특징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입니다. 예를들면, 갓난아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엄마가 피곤하다고 잠을 잘 자줍니까? 아빠가 밥 먹는다고 응가를 참아 줍니까? 아닙니다. 항상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대로 말하고, 항상 자신의 감정을 들어내놓고, 항상 자기 주장이 강하며, 항상 자기 만족을 구하고, 이렇듯 항상 늘 자기 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밖에 모르는 성숙하지 못한 고린도성도들을 향해 고전3장에서 어린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의 성숙이란? 서로에게 얼마나 신앙의 유익을 끼치는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조금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는지, 얼마나 배려하는지, 얼마나 좋게 보는지, 얼마나 좋게 말해주는지? 이것이 성숙의 기준인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한가지는,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고 배려하느냐가 결국에는 신앙의 수준이며, 신앙의 실력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성숙한 신앙의 소유자이십니까? 아니면, 신앙의 연수는 오래되었지만, 아직 어린아이 같이 성숙하지 못한 신앙의 소유자는 아닙니까? 저는 여러분 모두가 신앙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바랍니다.

  3.자존심을 극복하십시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서로의 유익을 위할 줄 아는 신앙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요?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꼭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계속해서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사실 바울의 입장에서는 참 치사한 일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바울에게는 대단히 괴로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생각해보십시오! 자신을 통해서 구원을 얻고, 성도가 되고, 양육과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을 사도가 아니라고 말한 일 그 자체만으로도 괴로운 일이고, 그 일을 생각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고, 그 일을 해결하는 과정도 대단히 마음이 괴로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고자 한 것입니다. 과연 이유는 무엇일까요? 억울하고 괘씸해서일까요? 아니면, 자신이 수고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일까요? 자기를 위함일까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도로서의 권위를 되찾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자신을 위함이 아닌,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을 위함인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을 참 많이 사랑했습니다. 바울은 늘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늘 애타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최선을 다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양육하고, 그들을 위해서 늘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거짓교사들이 다가갔고, 그 결과 신앙의 많은 문제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책망하고, 권면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즉, 바울이 아무리 애정을 가지고 권면을 해도 받아 드려지지 않는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책망을 받아들이고, 권면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바울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인정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책망과 권면을 받아들이고, 신앙의 회복과 성숙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바울이 그토록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려고 한 것은, 사도로서의 권위를 되찾기 위함이고, 또, 사도로서의 권위를 되찾으려는 이유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잘 들으십시오! 바울이 자신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되찾으려는 것, 사도됨 증명하는 것은 조금도 자존심 싸움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는 대접받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만일 자존심의 싸움이었고, 대접받기 위한 싸움이었다면, 그는 결코 성숙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충분히 알고 있듯 바울은 지금 자존심 싸움이나 대접받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바울은 자존심, 대접받음을 내려 놓았습니다. 오늘 본문 11-13절을 다시보십시오! 바울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하는 말들이 보이실 것입니다.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라,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너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 여기서 우리들이 신앙이 성숙해지지 못하는 이유는, 서로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는 이유를 찾을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서로 자존심 싸움을 하고, 대접받기 위한 싸움을 하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가운데에는 자존심이 싸움이 없을 것 같습니까? 대접받기 위한 싸움이 없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교회안에, 성도들 사이에 자존심의 싸움과 대접받기 위한 싸움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를들면, 누군가 인사를 먼저 할때까지 안하고, 잘못했다고 할때까지 쳐다보지도 않고, 집사 권사 장로, ‘님’ 자 안붙이면 기분 나쁘고..., 이러한 것들 말고도 얼마든지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숙한 신앙의 소유자,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성도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자존심을 내려 놓으십시요! 대접받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십시오! 그래서 더 이상 자존심의 싸움, 대접받기 위한 싸움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신 주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심을 생각하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은 성숙한 신앙을 가지게 될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신앙이 성숙한자가 되어가기를 원합니다.
  본문과 삶
 1)신앙 성숙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2)말씀에 대한 올바른 태도이며, 특별히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올바른 태도입니다.
 3)이것을 위해서 우리 모두는 자존심의 싸움, 대접받음의 싸움을 중단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자존심, 대접, 높음, 잘남.., 등과 같은 의미 없고 무가치한 싸움을 하지 말고, 서로에게 유익을 주는 선한 싸움을 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더 성숙의 사람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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