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삼상21:1-15절 사무엘상 강해29
제목 : 인생의 밑바닥으로 추락할 때!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지만, 몇 년전만 해도 청량리 윤락촌 한가운데 가나안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는 노숙자, 실직자, 출소자, 알콜중독자, 독거노인..., 등 인생의 밑바닥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섬기는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개척한 김도진목사님이라는 분 역시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신 분이십니다. 이분은 원래 독립군 가정에서 태어났고, 4. 19 의거때 불의에 항거하다 강제적으로 군에 입대하게 되었으며, 군복무 기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마음에 주최할 수 없는 분노를 품게 됩니다. 제대후에도 그 분노심으로 술과 폭력, 그리고 알콜중독으로 망가진 밑바닥 인생을 살게 했되었습니다. 이런 밑바닥 인생은 결혼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사업을 하다 전 재산을 잃고 판자집에서 부인과 2아들이 살아야 했고, 계속해서 빚쟁이의 빚독촉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빚쟁이들을 피하기 위해 기도원에 숨어 들었다가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후 김목사님은 자신과 같이 인생의 밑바닥에서 사는 사람들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섬기고자 신학을 공부하고 가나안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만일 김도진목사님에게 인생의 밑바닥이 없었다면, 지금까지의 귀한 사역도 없었을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인생의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다윗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한 다윗을 통해서, 인생의 밑바닥에서(절망에서, 최악의 상황이라고 느껴지는 순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인생의 밑바닥으로 추락한 다윗
오늘 본문은 사울왕이 자신을 죽이려는 확고한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한 다윗이 망명을 결정하고 사울을 떠나는 내용입니다. 즉, 다윗은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게 됩니다. 먼저 1절을 보면, 다윗이 놉이라는 땅에 있는 아히멜렉 제사장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5절을 보면, 다윗은 떡 5덩어리를 줄것을 요청합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이 얼마나 힘든 상황이었는가? 를 알수 있습니다. 다윗이 누구입니까? 왕의 사위입니다. 장군입니다. 당시 국민영웅입니다. 그럼에도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주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1절을 보면, 수행원이나, 부하들이 없이 자신을 혼자 찾아온 다윗이 이상해서 아히멜렉이 왜 혼자왔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2절에 다윗은 사울왕의 비밀명령을 수행하러 왔다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7절을 보면, 그곳에 사울의 신복 도엑(사울의 목자장)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윗은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8절에 아히멜렉에게 너무 급하게 와서 칼이 없으니 칼을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이것은 두려움에 흔들리고 있는 다윗의 연약한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골리앗의 칼을 받은 다윗은 위험을 감지하고, 10절에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망명을 갑니다. 뜻밖의 결정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가드는 어떤 곳입니까? 다윗이 죽인 골리앗의 고향이며, 지금 다윗의 손에는 골리앗의 칼이 들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기스의 신하들 중에 다윗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죽음의 위기를 맡게 되었고, 13절에 다윗은 미친척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너무 힘들고 괴로우면, 거짓말도 하게 되고, 우왕좌왕하게 되고, 의지와 상관없는 길을 걷게도 되는 것입니다. 이런 다윗의 모습과 판단을 본다면, 분명히 다윗은 지금 인생의 가장 밑바닥(가장 깊은 절망, 최악의 순간)까지 추락하고 있는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인생의 밑바닥, 최악의 순간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함께 하셨고, 가장 힘든 순간을 보내고 있는 다윗에게 2가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첫째는, 6절에 굶주려 있는 다윗에게 거룩한 떡을 먹이셨고, 둘째는, 9절에 골리앗의 칼을 주셨습니다. 이렇듯, 인생의 밑바닥에 있는 다윗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셨고, 그 밑바닥을 극복할 힘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우리도 종 종, 너무 힘들고 어려워 큰 절망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은 최악의 순간에 있고, 인생의 밑바닥까지 추락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적어도 인생의 밑바닥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판단이 흐려지고, 이성이 마비되고, 생각이 막히고, 감정을 주체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힘겨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그런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감당할 은혜와 극복할 힘을 주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생의 밑바닥에 있는 다윗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힘을 주셨는지, 인생의 밑바닥에 있는 다윗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2.위로와 방향을 제시하시는 하나님
첫째, 6절에 오직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거룩한 떡(진설병)을 다윗에게 주셨습니다. 여러분! 거룩한 떡에 대해서 아십니까? 거룩한 떡이라는 것은 성소 북쪽에 놓여진 상에 올려진 12개의 떳이고, 2줄로 놓고, 이스라엘 12지파를 상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안식일마다 새 떡으로 교체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떡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떡을 제사장이 아닌, 다윗과 그 일행에게 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배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생의 고통과 배고픔에 지친 다윗을 위로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을 보며, 하나님께서 마음이 아프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다윗을 위로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 중에 제사장만 먹어야 할 떡을 먹는 것은 법을 어기는 것 아니냐? 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아닙니다. 아히멜렉은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안 사람입니다. 법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사랑이 모든 율법의 완성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하나님 본심, 마음입니다. 저는 아히멜렉의 모습을 보며, 여러분이 머리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슴으로 신앙생활을 할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향해 옳고 그름보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는 따듯한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 하나님은 다윗을 위로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위로로만 끝나는 분이 아니라, 힘을 얻고 나가야 할 방향을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즉, 거룩한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거룩한 떡을 먹게하심으로 다윗에게 아무리 힘들고 숨막히는 순간속에 살지만, 구별된 삶,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그것이 인생의 밑바닥에서도 놓치면 안되는 가장 중요한 것임을 가르쳐주고 계신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사람이지만, 미국의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긍정의 힘』에 나오는 실화를 하나 소개합니다. 미국의 한 큰 공장에 18륜 디젤 트럭을 수리하는 기계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신앙이 좋아서 매우 성실했으며, 정직하게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신앙 때문에 일터에서 오랫동안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참고 견뎠습니다. 7년 동안 승진이나 봉급 인상도 없었지만, 신자의 삶을 저버리지 않고 묵묵하게 이겨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회사 사장이 말단 직원인 그를 불렀습니다. 사장은 그에게 은퇴할 때가 되어 회사를 맡을 사람을 찾고 있는데, 거짓말하는 사람, 아부하는 사람은 많아도, 회사를 사랑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없다며, 이 기계공에게 회사를 맡아달라고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회사를 물려받아 사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의 고통과 아픔을 아시고,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향해서, 지금 당장은 떡먹는 것이 급하고, 돈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하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하지만...,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거룩한, 구별된 삶, 신자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분이심을 잊으면 안됩니다. 즉, 인생의 고통속에서, 최악이라 느껴지는 순간에서도 세상 방식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방법대로, 즉, 거룩하고 진실한 방법으로, 믿음의 방법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구체적으로 찾을 수 있는 구별됨과 거룩한 삶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바로 거짓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사단을 거짓의 아비라고 소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인생의 밑바닥을 벗어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우리의 하루를 생각해보면, 많은 거짓하며 살아갑니다. 옛날 어느 마음에서 거짓말 대회가 열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단한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이 단에 올라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거짓말 대회에 나왔지만 자신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태어나서 이때까지 한 번도 거짓말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거짓말은 정말 못합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자꾸 대회에 나가보라고 해서 나온 것뿐입니다. 저는 거짓말을 정말 못하기 때문에 그만 내려가겠습니다.’ 누가 일등을 했는지 아시지요? 바로 이 사람이 일등을 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별된 삶, 거룩한 삶를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거짓말부터 버려야 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여러분의 입술과 혀가 거룩해져야 합니다. 거룩의 시작이 입술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말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할 뿐 아니라, 우리의 신앙의 수준을 결정하는 정말 중요한 요소입니다. 좀 억지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다 근거가 있습니다. 먼저, 약3:2절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신앙이 온전한 사람일수록 말에 실수가 없고, 말에 있어서 신중하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심도있는 이야기를 해봅시다. 여러분은 어떻게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믿음으로 받으셨습니까? 정말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닙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믿고 입으로 시인(말)했기 때문입니다. 즉, 롬10:10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믿음으로 말로 고백할 때 하나님은 구원을 주셨다는 말인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말이 믿음의 출발이 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행2장을 보면,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왜 다락방에 숨어서 기도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지만, 아직도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런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성령이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120명 모두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됩니다. 그들의 신앙이 조금 더 성숙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이 성숙한 그들에게 나타난 첫 번째 변화는 무엇일까요? 바로 말의 변화입니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방언의 사건’입니다. 그렇습니다. 120명 성도 모두 방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신앙의 출발도 말로 시작되고, 신앙의 성숙도 말의 변화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의 신앙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샘플은 바로 말인 것입니다. 물론, 이 점은 여러분의 모습을 통해서 쉽게 확인 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여러분이 은혜가 있을 때와 반대로 은혜가 없을 때에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말입니다. 은혜가 있을 때에는, 사랑스러운 말, 감사의 말, 긍정적인 말, 칭찬의 말, 여유인는 말, 온유한 말, 간증의 말..., 등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은혜가 없을 때에는 말부터 바뀝니다. 즉, 원망과 불평의 말, 부정적인 말, 비난과 정죄의 말, 가시돋인 말, 무시하는 말, 상처를 주는 말..., 등 하게 됩니다. 많이 경험해보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의 수준은 어느 정도이십니까? 뭘 보면 알까요? 바로 여러분의 말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여러분이 어떤 말을 하는지를 늘 점검하십시오! 특별히 여러분의 신앙이 더 성숙하기를 원한다면, 무엇을 하면 될까요? 바로 말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은 말을 하도록 말을 고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삶이 바뀌게 되고, 여러분의 신앙도 성숙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말을 지키는 것을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것으로 여기고, 말을 다스리고, 신자다운 말을 하도록 말을 고쳐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아히멜렉을 통해서 성소에 보관하고 있던 골리앗의 칼을 다윗의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이 모습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시고자 말씀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여러분! 다윗에게 골리앗의 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의지할 때 거둔 승리라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골리앗의 칼을 주시면서 아마 이런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너가 어릴 때, 힘도 없고 아무것도 없을 때, 어린 목동에 불과 했을때, 그러나 그런 네가 나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이 칼의 주인인 골리앗을 넘어트린 것을 기억하라’ 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즉, 앞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인생을 걸어간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실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갈 때, 승리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렇듯, 다윗은 인생의 밑바닥에서 하나님께 위로를 받았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힘을 얻고, 어떤 상황속에서도 거룩하고 구별된 길을 걸어야 할 것을 깨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밑바닥에 처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잠시 살펴볼 성경이 있습니다. 시34편 입니다. 보면, 다윗의 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는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체하다가 쫒겨나서 지은 시’ 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이 있고난 후, 곧, 하나님께 위로와 힘을 얻고 말씀을 들은 이후입니다. 그의 첫 고백이 무엇입니까? 내가 여호와를 송축함이며..., 내 영혼이 여호와로 자랑하리니...,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쉽게 말하면, 지금 내 환경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을 자랑한다는 고백입니다. 더 이상 다윗은 밑바닥을 사는 인생이 아닙니다. 그는 하늘을 나는 전혀 다는 인생을 출발한 사람이 된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인생의 밑바닥이야 말로, 여러분의 새롭게 만드는 순간이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믿음의 사람들이라 손꼽는 사람들 모두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예를들면, 욥이 그랬습니다. 요나가 그랬습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모세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만난 인생의 밑바닥은 그들은 전혀 새로운 사람, 어느 환경에도 지배받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만든 것입니다.
3.아히멜렉을 통해, 나를 통해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게 하시는 일을 누구를 통해 했는가? 입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제사장 아히멜렉입니다. 하나님은 아히멜렉을 통해 다윗의 굶주림을 채우셨고, 위로하셨고, 용기를 주셨고, 당신의 뜻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뭔가 느껴지는게 없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아히멜렉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어려움을 만났을 때 찾아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사람, 배고픔을 채워주는 사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마음과 메시지를 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즉,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이 되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손길이 되고, 여러분이 하나님이 다윗에게 쥐어준 칼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스스로가 아히멜렉이 되기를 소원하셔야 합니다. 더나가서, 늘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일하시기를 사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누구에게나 인생의 밑바닥(절망, 최악)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본문과 삶
1)그러나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함께하시고 위로하시고, 힘주시길 원하십니다.
2)더 원하시는 것은 어떤 환경속에서도 구별된 삶,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3)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아히멜렉과 같은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다윗처럼 인생의 밑바닥에서도 신자됨을 놓치지 않고, 아히멜렉처럼 위로의 사람이 되기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