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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고난을 쓰시는 이유!(고린도후서강해62)
 본문말씀 : 고후11:21-27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7.12.6
조회 : 11,823   추천 : 0  
본문 : 고후11:21-27절  고린도후서강해62
제목 : 고난을 쓰시는 이유!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미국의 36대 대통령이었던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이야기로 오늘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존슨대통령은 참모들을 채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원칙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너무 빨리 출세한 사람이나,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채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었습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존슨 대통령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너무 쉽게 출세한 사람은 독선적이고 쉽고,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남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리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도 어떤 사람을 쓰실 때, 여러 가지 고난과 실패를 격은 사람들을 많이 쓰셨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을 하면, 고난과 시련을 겪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어 가셨습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이 귀하게 쓰셨던 바울 사도가 격었던 고난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사람들에게 고난을 격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이해 할 수 없는 고난?
 우리는 계속해서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변증하는 내용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히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기 위한 목적만이 아니라, 자신의 사도됨을 변증하는 것을 통해서 참다운 신앙에 대해서 교훈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바울이 어리석은 일임을 알면서도 자신을 자랑하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어리석은 자랑을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랑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고, 그러기에 자신은 하나님의 사도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이 자랑한 것들은 전부 그가 겪었던 고난의 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일들을 일회적이 아닌, 반복적으로 당한 것은, 그 일이 자기를 위한 일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고,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면 참 사도가 맞지 않냐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더나가서 올바른 신자는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자들이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자들은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어떤 순간에도 감당하는 자들이라는 교훈을 더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난 한주간 하나님을 위해서 사셨습니까? 앞으로도 하나님을 위해 기쁨과 감사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들이 먼저, 생각할 것은, ‘바울이 당한 고난’ 에 대해서입니다. 이미 말씀 드린바와 같이 오늘 본문은 바울이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당한 일들입니다. 그리고 그가 당한 일들은 모두 고난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여러분은 한가지 궁금증이 들지 않습니까? 지금 바울은 누구를 위해 일한 것입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 것입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감당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을 일을 하는 바울에게 하나님은 왜 고난을 겪게 하셨을까요? 물론, 오늘 본문이 소개하는 바울이 당한 고난 중에는 이해가 되는 고난은 있습니다. 예를들면, 24-25절에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새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또, 26절에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가짓형제들의 위험.’이것들은 이해가 갑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유대인들이 십자가에서 처형시킨 예수를 그리스도로 메시야로 말했기 때문이고,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는 그들의 신앙이 틀린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자들에게는 저주 받을 잘못이라고 지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유대인들, 이방인들, 거짓형제들에게 미움을 당하고, 박해를 당하고 고난을 당하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고난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고난들입니다. 25절 중반 절에서 27절을 보면,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수고하며 애쓰며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것은 사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바울을 위해 하나님이 얼마나든지 배려해주실 수 있고,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고난이 아닌, 축복과 형통을 주실 수도 있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먹을 것을 부족하지 않게 공급해 주시고, 편안한 잠자리를 주시고, 여러 가지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해주시고....,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주신것처럼(만나, 메추라기, 반석의 물, 구름과 불기둥), 엘리야에게 해주신 것처럼(까마귀) 해주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런 측면으로 바울이 당한 고난은 사실 이해가 되어 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해되지 않는 고난은 바울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아브라함에게도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있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 땅에 살던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지시할 땅을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주신 약속이 무엇입니까? 큰 민족을 이루실 것이고, 복을 주시어 이름을 창대케 하시고, 복이 되게 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게 됩니다. 과연 쉬운 일일까요? 아닙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을 가지고 떠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브라함이 겪은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가나안 땅에 생긴 심각한 기근입니다. 오늘날 기근은 그렇게 무섭지 않습니다. 적어도 대한민국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근의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살던 시대에 기근은 생명과 직격된 문제였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겪은 것입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꿈이 총리가 되는 사건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요셉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께서 자신을 높은 자리에 앉게 하시리라는 점까지는 확신했을 것입니다. 반복되는 꿈에 대한 이해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겪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형들에게 미움, 구덩이에 던져짐, 미디안 상인에서 팔려감, 보딜발 장군의 집의 노예가 됨,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힘..., 등 오랜 시간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요셉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었습니다. 물론, 우리들에게도 때때로 이해가 되지 않는 고난과 시련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열심히 순종의 삶을 살려고 하는데 찾아오는 고난과 어려움의 문제들, 주님 나라를 위해서 힘 다해 충성하는데 찾아오는 고난의 문제들, 그 밖에도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격을 때가 많습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 가운데서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겪고 있는 분이 안계십니까?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여러분이 이해 할 수 없는 것 뿐이지, 이유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고난을 당하는 것을 이해 할수 없는 것으로 여길까요? 그것은 우리의 잘못된 기대와 바램 때문입니다. 즉,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특별 대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현실적인 특별대우는 없습니다.  

  2.고난을 쓰시는 이유?
 카프만 부인이 쓴‘광야의 샘’이란 책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번은 카프만 부인이 테이블 위에다가 누에고치를 놓고 거기서 나비들이 동그랗게 구멍을 뚫고 나오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그 고치 속에 있는 나비가 동그랗게 구멍을 뚫고 나오는데 구멍은 좁고 나비의 덩치는 구멍보다 크니까 그 구멍을 빠져 나오는데 무척 고생을 하며 힘들게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한 나비가 누에고치 구멍으로 나오려고 할 때에 이 부인이 조그만 가위로 고치의 구멍을 넓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나비는 쉽게 나왔는데 윤기도 나고 덩치고 크고 보기에 썩 좋았습니다. 그때에 카프만 부인이 하는 말이‘신의 지혜가 이것만은 나만 못했구나. 내가 신이었다면 고치의 구멍을 좀 더 넓게 뚫고 나오도록 했을 텐데.’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나비들이 이제는 날기 시작했습니다. 좁은 구멍에서 고생스럽게 나온 나비는 훨 훨 모두 날아가는데 자기가 구멍을 뚫어 쉽게 나온 나비는 날지를 못하고 날개만 파닥파닥하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겨 이에 대하여 연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고치 속의 나비는 모두 영양분이 어깨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 어깨에 있는 영양분이 좁은 구멍으로 나올 때 어깨의 영양분이 점점 날개로, 그리고 밑으로 밀려 내려가서 골고루 영양분이 퍼져 균형이 잡힌 나비가 되어 어디든지 훨훨 날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구멍을 뚫어주어 쉽게 나온 나방은 영양분이 어깨에만 있어서 깡패 모양으로 어깨만 으쓱거렸지 전혀 날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카프만 부인이 또 말하기를‘역시 신은 나보다 지혜가 있으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 아시지요? 고난 시련의 유익을 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제 이제 우리는 너무나 중요한 주제를 다루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을 겪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를 향해서 고난을 쓰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당한 고난들을 언급합니다. 그런데 32-33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의 신앙초기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행9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합니다. 행9장을 보면,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다메섹에 가까이 다 달았을 때, 빛 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밝은 빛으로 인해서 바울(사울)은 앞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다메섹에 살던 아나니아라는 제자를 부르시고 그에게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될 것을 알리시고, 바울의 눈을 고치게 하십니다. 그리고 바울은 예수 믿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즉시로 회당을 다니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뭔가 대단한 복음의 진리를 가지고 전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단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곧 메시야라는 사실만 전한 것입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당황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바울을 죽이기로 공모했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성문을 지켰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바울은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광주리를 타고 성 밖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말 그대로 야반도주를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울은 자신의 신앙의 초기의 모습을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 자신의 신앙이 성장했고, 성숙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앙의 성장과 성숙이 바로 자신이 겪은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즉, 신앙의 성장과 성숙은 고난의 결과물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이해 할 수 없는 고난을 겪게 하신 이유는, 바울의 신앙을 더욱 성장하게 하고, 바울의 신앙을 더욱 더 성숙하게 만드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 점은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아브라함의 모습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해할 수 없는 고난들을 겪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이해 할 수 없는 고난을 겪게 하신 것 역시, 그의 신앙을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만드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 40년이 필요했던 이유도 역시, 그들의 신앙을 성장, 성숙하게 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시고 세우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때때로 겪는 이해 할 수 없는 고난은, 우리의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내기 위한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임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고난만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순간이 우리로 하여금 더욱 더 성장하고, 성숙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쓰시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하나님은 우리를 성장시키시고, 성숙하게 만들어 가시는 일에 고난을 즐겨 쓰시는 것입니다. 물론, 무조건 고난을 당한다고, 다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이 성장하지만 어떤 사람은 신앙에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연 무슨 차이일까요? 하나님을 더 붙드느냐 놓치느냐의 차이이고, 말씀을 붙드느냐 놓치느냐의 차이입니다. 다시말해,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면 신앙은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놓치면 그 고난은 큰 유익을 주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이 고난을 마주 할 때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성장시키기 위해 쓰시는 도구라는 믿음의 안목을 가지고, 고난 중에 더 더욱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을 붙드는 여러분이 되어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 갈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3.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하는 자리로 나가십시오!
 예전에 어떤 성도가 제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제가 만약 목사님이라면 신앙생활을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교회생활도 해야 하고, 세상에서 일도 해야 하니 신앙생활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늘 교회안에서, 성도들만 상대하니 신앙생활을 하는게 쉬울 것 같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성도로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는게 어려울 것 같습니까? 목사로 교회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게 어려울 것 같습니까?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목사는 자기 인생만 사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모든 성도들의 인생을 함께 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목사는 각 각의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아픔, 상처, 슬픔, 눈물, 염려, 걱정, 두려움, 시험의 삶을 함께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것을 29절에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입니다. 이런 측면으로 본다면, 적어도 저는 여러분 보다 신앙생활을 힘들게 하고 있는게 분명합니다. 물론, 제가 여러분에게 ‘나 힘들다’ 라고 말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목사는 성도들 보다 신앙이 더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에게 말씀 드린 것처럼 목사는 맡겨진 성도의 매일의 삶을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예로, 제가 부교역자 생활을 15년 정도 했습니다. 그리고 담임목사생활은 이제 13년차가 되어갑니다. 분명히 부교역자 생활이 더 길었습니다. 그런데 제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한 것은 지난 13년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교역자 시절에는 성도들의 삶을 함께 사는 일에 노력했지만 많이 서툴렀습니다. 그러나 담임목사가 되면서 성도들의 삶을 함께 사는 일이 많아진 것입니다. 그래서 담임목사의 자리에서 더 많은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한 것입니다.

 제가 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여러분을 신앙의 성장의 자리로 초대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쓰셔서 우리를 성장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고, 어떤 고난이 오기까지 기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난이 되는 자리, 여러분의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는 자리로 여러분은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어떤 자리입니까? 목사와 같은 자리, 곧 누군가의 짐을 짊어져야 하는 자리, 더 많은 사람의 짐을 짊어질 수 있는 자리, 리더의 자리로 나가십시오! 제발 누군가에게 위로나 받고, 누군가에게 덕을 보는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제 고난을 격게 되더라도 더 많은 사람의 짐을 짊어지는 자리로 나가셔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놀라운 신앙의 성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나가서 바울의 자리까지 나갈 것이고, 더 나가서 예수님의 자리까지 나가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을 성장하게 하기 위해 축복도 쓰지만, 고난을 더 즐겨 쓰십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고난을 당할 때, 특별히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할 때 성장과 성숙의 시간임을 기억하십시오!
 2)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을 더욱 붙드십시오!
 3)그러나 고난이 오기만을 기다리지 마시고, 고난의 자리 곧 누구가의 짐을 짊어지는 자리로 나가십시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서로의 짐을 짊어지는 자리로 부르심을 알고, 감사함으로 그 부르심의 자리로 나감으로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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