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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포기하지 않고 감당함!(고린도후서강해61)
 본문말씀 : 고후11:21-27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7.11.29
조회 : 10,220   추천 : 0  
본문 : 고후11:21-27절  고린도후서강해61
제목 : 포기하지 않고 감당함!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아이돌 중에는 오랜 연습생 기간을 보낸 뒤 데뷔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레드벨벳의 슬기, 엑소의 수호는 7년의 연습생 기간이 있었고, 조권은 8년의 연습생 기간(초등), 프리스틴의 시연은 9년의 연습생 기간, 우주소녀의 설아, 트와이스의 지효는 10년, 빅뱅의 지드래곤은 11년의 연습생 기간을 보냈고, jyp 소속사의 가수인 지소울은 15년간의 연습생 기간을 거쳤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추측하다싶이 연습생 기간은 참 힘들고 눈물나는 시간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어떻게 그렇게 긴 연습생 기간을 포기하지 않고 견딜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들이 가진 꿈이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진짜였기 때문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힘들고 눈물 나는 순간들, 아니 절체절명(絶體絶命 - 궁지(窮地)에 몰려 살아날 길이 없게 된 막다른 처지(處地))의 순간 속에서도 하나님의 일에 포기하지 않았던 바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바울의 포기하지 않고 감당한 그 신앙을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바울의 어리석은 자랑
 우리는 지난 시간 참사도의 증명은 ‘겸손’ 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겸손이 무엇이었습니까?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여주는 것, 늘 낮은 자세...,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겸손이란 내속에 선한 것이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내게 그 어떤 선하고 거룩하고 복된 것이 나갈 수 없고, 생명과 진리가 창출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타나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의 올바른 태도가 바로 겸손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이러한 겸손을 근거로 자신이 하나님의 사도임을 말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역시 계속해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다른 측면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자신을 자랑하는 방법으로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은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조금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속에는 선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자랑이라는 어리석은 방법으로 자신의 사도됨을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1절을 보면, ‘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자신이 자랑하지 않고, 과시하지 않으니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자신을 사도가 아니라고 여기기에 어리석지만 자신을 자랑하고 과시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2절부터 바울은 어리석은 자랑거리를 나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어리석은 자랑거리를 나열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대단히 깊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바울의 자랑거리를 확인해봅시다. 먼저, 22절을 보면,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23절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계속해서 23절이하를 계속 보면,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태형을 말하며, 우리나라의 곤장과 비슷하다. 그런데 신25:3절에는 40대까지 때리게 되어 있다. 그런데 39대만 때렸다.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숫자를 잘 못 세어 40을 넘겨 율법을 어기는 실수를 막기 위함이고, 40대를 때리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서운 벌이다.) 세 번 태장으로(몽둥이 또는 납이나 뼈 조각이 붙은 채찍)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 자랑합니다. 대단한 자랑거리들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비록 자랑하고 있지만 그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즉, 자랑하는 것 같지만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32-33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다메섹에서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야반도주했던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자신을 자랑하고 과시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다메섹에서 야반도주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을 자랑하려는 것이 의도나 목적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만들어 놓은 자랑거리들이 있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내가 말이야~ 로 시작해서 할 말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어느 것도 어리석게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이미 여러차례 말했지만 여러분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의 것으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어서 가능했던 것 뿐이고, 만일 여러분이 받은 그 은혜가 다른 누군가에게 임한다며 그 사람도 여러분 만큼은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자랑거리를 기억하고, 과시하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단지, 그런 은혜를 주심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눅17장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눅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만일 하루에 입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고 말을 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라고 요청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믿음이 더 커져야 가능할 것 아니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용서하는 일은 믿음의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가장 작은 겨자씨 한알을 등장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시려는 말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다음 구절에서 등장을 하게 됩니다.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겠느냐 도리어 그러더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을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주님이 종의 비유를 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결국, 용서라는 것은 믿음의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닌, 종이라는 자기 확신,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는 자기 확신속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제가 너무 장황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눅17:10절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을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라는 말씀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떤 일을 했던지 간에 ‘할 일을 한 것뿐’ 이라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익한 종’ 이라는 자세를 놓치면 안됩니다. 이 자기인식을 놓치게 되면, 우리는 결국, 자기 자랑과 자기 과시를 하게 되고, 결국, 바리새인으로 만들어 가는 길을 가며, 더나가서 우리를 광명한 천사로 가장 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해 보십시오! ‘할 일을 한 것 뿐입니다.’ ‘무익한 종입니다’ 아멘 이 마음 평생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가?
 이제 여러분에게 대단히 중요한 질문을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리석은 자랑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말 자기를 자랑하기 위함일까요? 아닙니다. 바울은 지금 자신이 사도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어리석은 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자신이 참된 사도임을 증명하기 위해 제시한 기준은 무엇인 것 같습니까?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하기 때문’ 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기 때문에 자신은 참 사도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그런 말이 어디에 있냐고요? 있습니다. 다시한번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십시오! 가장 반복되는 말이 무엇인 것 같습니까? ‘횟수에 대한 표현’입니다. 예를들면, 23절 ‘수고를 넘치도록,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매도 수없이, 여러분 죽을 뻔’ 24절 ‘매를 다섯 번’ 25절 ‘세번 태장으로 맞고, 세 번 파선’ 26절 ‘여러번’ 27절 ‘여러번’ 이와 같이 횟수에 대한 기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을 위해 일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만약에 바울이 자기를 위하는 사람이었다면, 1번 이상은 격지 않을 것입니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자신을 위하고,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1번 이상 그 고통의 순간들을 격겠습니까?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개인적으로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함이 아닌,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기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이것을 말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바울이 제시한 참 사도와 거짓 사도의 구별은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입니다. 즉, 자신을 위해 일하면 참 사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고린도교회에 침투한 거짓사도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고린도교회에 침투한 거짓사도들은 자기를 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고난을 감당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20절을 보면, 그들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종으로 삼고, 잡아 먹고, 빼앗고, 높이고, 빰을 치는 자였습니다. 철저히 자신만을 위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온 갖 고난을 감수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위한다는 증명이고, 참 사도의 증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다운 목회자는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올바르지 목회자는 자신을 위해 살고,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만족, 자신의 기쁨, 자신의 행복, 자신의 자랑, 자신의 높아짐, 자신의 미래..., 를 위해 일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더나가서 참다운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다운 성도도 무엇이든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성도입니다. 고전10:31절을 말씀처럼,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 의 말씀처럼 무슨 일이든 하나님을 위해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의 잘됨, 형통, 복, 기쁨, 만족, 자랑을 목적으로 하는 성도는 올바른 성도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참다운 성도의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무엇을 묻는지 아시지요? 누구를 위해 사냐고 묻는 것이고, 누구를 위해서 일하냐고 묻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고 계십니까? 잘 모르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쉽게 확인을 시켜드리겠습니까? 그것은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닌, 지금 여러분이 하는 일에 포기가 있느냐 없느냐를 보시면 됩니다. 사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일을 하다보면, 어려움을 격거나, 아픔과 상처를 격게 되는 순간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속상하고, 지치고, 그만둘까? 라는 생각이 들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순간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감당해 나간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게 맞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위해 살고, 나를 위해 일한다면, 내가 힘든 그 일을 계속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힘들고, 지치고, 다 내려 놓고 싶은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모세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로에게 가서 내 백성을 풀어 줄 것을 말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계속되는 반대를 당했고, 위협을 당했습니다. 그것도 10번이나, 물론 그 과정속에는 불평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바로에게 나가는 그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출애굽한 이후에도 원망과 불평이 많은 백성들을 이끄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러한 백성들을 이끄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런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차라리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워 달라고 까지 요구하며 감당했습니다. 모세가 이렇게 할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명하셨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음을 알기 때문이고, 자신의 일이 아닌,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임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 분명히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흔들릴 수도 있고, 주저 앉을 수도 있고, 확신을 잃을 때도 있고, 낙심할 수 도 있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어진 일을 끝까지 감당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증명이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군이라는 증거이며, 여러분이 참다운 성도라는 증표인 것입니다.

   3.포기하지 않고 감당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
 그렇다면, 우리들이 하나님의 일군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포기하지 않고 감당하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보상의 개념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보상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보상에 대해 소개하는 구절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마5:12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마6:1절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마10:42절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고전3:8절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히11:6절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계22: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저와 여러분의 삶을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보상을 주실까요? 현세와 내세의 2가지 측면으로 보상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현세에서 주시는 보상에 대해서만 말하겠습니다. 과연 현세에 주시는 하나님의 보상은 무엇일까요? 아니 여러분이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보상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아마도 물질축복, 건강축복, 자녀축복,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사는 것...,등을 미안하지만 여러분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방식의 보상은 없습니다. 물론,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보편적인 보상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 점은 성경의 여러 인물들을 생각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제자들은 물질의 복을 누리며 살았을까요? 바울은 건강의 복을 누리며 살았을까요? 초대교회 성도들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들을 누리며 살았을까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도리어 반대의 경우가 더 많이 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가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다 하나님이 물질의 복, 건강의 복을 다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현세에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보상은 무엇일까요? 2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버지 노릇 해주심’이 보상 입니다. 즉,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고, 섭리하시고, 지키시고, 복되게 하시는 것..., 등 그리고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보상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 그 자체가 보상입니다. 마20장을 보면, 포도원 품군 비유가 소개됩니다. 즉, 포도원 주인이 품군을 불러 일을 시킵니다. 가장 먼저는, 오전6시, 다음은 9시, 12시 오후3시, 그리고 오후5시에 품군을 불러 일으시켰습니다. 그러나 품값은 12시간 일한 사람이나, 1시간 일한 사람이 같았습니다. 과연 일을 많이 한 사람의 나음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이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려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들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하나님께 쓰임받은 것 그 자체가 보상이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쓰임받고, 하나님을 위해 아무나 사는 것이 아니고, 그것 자체가 대단히 큰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보상을 마음 새겨 넣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포기하지 않고, 감당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우리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본문과 삶
 1)마땅히 할 일을 한다고 고백하고, 여전히 무익한 종이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2)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일을 포기하지 않고 감당해야 합니다.
 3)그것이 신자의 증명이며, 일군의 증명인 것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포기하지 않고, 감당하는 그 자체가 보상이 되는 삶을 소원하며 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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