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신26:8-11절
제목 : 감사의 사람이 됩시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은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우는 장기려박사를 아실 것입니다. 어느날 장기려박사가 친구 사무실을 방문하고 나오다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서 한쪽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곧장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병상에서 3가지 감사를 고백했다고 합니다. 첫째, 자신의 교만함을 깨달게 되어서 감사. 둘째, 그동안 만나보지 못했던 많은 친지와 제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됨을 감사. 셋째, 바빠서 읽지 못했던 책들을 병상에서 조용히 읽을 수 있게 됨을 감사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잃어버린 건강이 아닌, 지금 내게 가지게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비록 광야에서의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주셔서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을 통해서 감사할 것을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것으로 인해 감사할 줄 아는 감사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비교의식 때문에
오늘 우리들이 함께 묵상할 본문의 내용은, 광야 40년의 시간을 보내고,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 준비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를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즉, 10절을 보면, 가나안 땅에서 얻은 소산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11절을 보면, 모든 사람과 함께 즐거워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 감사하며 즐거워 하는 삶을 살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번 한주간 감사를 회복하고 있습니까?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의 모습을 보면, 감사하지 못하고, 여전히 하나님과 서로에게 원망과 불평의 말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욕심을 부리고, 내가 가진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감사를 나중으로 미루고.., 등으로 인해 감사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속에서 또 한가지 중요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비교의식”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 40년간의 삶속에서 감사가 없었던 이유는 정말 그들에게 감사할 것이 없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먹을것이 없고, 마실것이 없었고, 은혜가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들은 단 하루도 굶지 않았고, 단 하루도 목마르지 않았으며, 단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손길을 경험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계속해서 원망과 불평을 한 것은, 늘 비교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의 삶과 지금 광야의 삶을 비교했기 때문입니다. 즉, 민11:5-6절을 보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로 매일 만나를 먹으면서도 애굽에서는 자극적인 음식을 먹었을 때가 그립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교의식이 그들로 하여금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성경에 또 있습니다. 바로, 사울왕입니다. 사울왕 당시는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잦은 침공을 받아 어려움을 겪었을 때입니다. 그때, 사울왕은 블레셋과 열심히 싸웠습니다. 그러나 골리앗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때, 어린 다윗이 나타나 골리앗을 이김으로, 이스라엘은 블레셋을 이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하여 돌아오는 사울와 다윗을 백성들은 환호하며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삼상18:7절을 보면, 사람들이 ‘사울이 죽인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라’고 외쳤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울왕은 비교의식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사울왕은 감사함을 잃었고, 뿐만 아니라, 그의 신앙도 무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왜 감사하는 삶을 살지 못합니까? 그것 역시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중요한 이유는 바로 ‘비교의식’ 때문입니다. 즉,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는 나쁜 습관 때문에 감사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지금 나는 24평짜리 전세에 사는데, 내 동창생은 50평짜리 자기 집에 살고, 내 남편은 300만원 벌어 오는데, 내 친구 남편은 301만원 벌어오고, 내 아니는 전교 2등인데 옆집 아니는 전교 1등, 우리 부모는 물려줄 재산도 없는데 친구 부모는 건물을 물려 주었다더라..., 등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나쁜 습관 때문에 감사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감사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게 비교의식 때문은 아닙니까? 아마데우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생애를 다룬 영화로서 비교의식이 얼마나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살리에리는 당시 최고의 음악가였습니다. 그러나 모차르트를 만나면서 불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모차르트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그의 인생은 불행의 늪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를 화나가게 만드는 것은, 자신은 밤잠을 설치며 온힘을 다해 작곡을 해도 사람들이 기억해주지 않는데, 모차르트는 여자들과 어울려 놀 것 다 놀면서 그저 자투리 시간에 취미삼아 작곡하는 것은데도 그의 음악은 불후의 명작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 것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보는 자신의 안목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비교의식으로 말미암아 그의 인생을 파멸로 치닫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면 결코 감사의 삶을 살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점을 사단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감사의 삶을 살지 못하도록, 다른 사람과 내 자신을 비교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남과 나를 비교하는 나쁜 습관을 갖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감사하지 못하게 하고, 뿐만 아니라,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 여러분 자신을 비교하지 마십시오! 비교하는 나쁜 습관을 버리십시오! 그럴 때, 감사의 사람으로 삶이 회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2.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감사
그렇다면, 우리들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안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들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면, 나에 없는것만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결국에는 감사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반대로 말하면, 우리들이 감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는 있고, 내게 없는 것을 보지 말고, 내게 있는 것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감사의 사람이 되는 비결인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십시다. 어떤 내용입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가나안땅에 들어간 후 첫 번째 얻은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라는 내용입니다. 그 이유는 지난 40년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의 고백을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은 참 귀한 신앙입니다. 물론,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의무조항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님은 첫열매를 드리고자 하는 마음은 대단히 기뻐하실 것입니다. 예를들면, 한달의 첫날을 드리고, 하루의 첫 시간을 드리고, 수입의 첫 열매를 드리고, 무슨 일이든 처음 것을 드리고자 하는 귀한 마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 모두가 처음것을 드리고자 하는 귀한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단순히 첫 열매를 드리라는 교훈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신’입니다. 9절에도 땅을 주셨다고 말을 하고, 10절에서도 토지의 소산을 주셨고, 11절에도 복을 주셨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경배하며 감사하며 즐거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감사에 대해서 배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감사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르게 말을 하면, 지금 내게 없는 것이 아닌, 지금 내게 있는 것을 볼때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 중요한 감사의 비결입니다. 이런 감사의 비결은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자신에게 없는 것 곧, 무화과나무, 포도열매, 감람열매, 양과 소를 보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신에게 있는 것,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을 보았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 역시, 늘 감사의 사람이 되고, 감사의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내게 없는 것이 아닌, 내게 있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감사의 삶이 아닌, 원망과 불평의 삶을 살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들, 그래서 지금 내게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내게 안주신 것들, 그래서 지금 내게 없는 것들만 보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지금 나에게는 없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있는 것을 볼 때입니다. 이렇듯 남에게만 있고 내게 없는 것만 볼 때, 우리는 감사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보기 시작하면, 감사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 사실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먼저, 구원을 주셨고, 생명을 주셨고, 남편과 아내를 주셨고, 자녀를 주셨고, 손주를 주셨고, 건강을 주셨고, 돈을 주셨고, 살집을 주셨고, 입을 옷을 계절마다 주셨고, 믿음을 주셨고, 교회를 주셨고, 공기를 주셨고, 태양을 주셨고, 수도꼭지를 열면 물이 나오고, 일터를 주셨고, 사람으로 태어났고, 10손가락, 10발가락을 주셨고, 팔 다리를 주셨고, 2눈을 주셨고, 뚫린 코를 주셨고, 불편함 없는 입을 주셨고, 소리를 들을수 있는 귀를 주셨고, 웃을수 있는 것, 눈물을 흘리수 있음, 추위를 느낌..., 등 정말 많은 것을 우리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점을 더 실감나게 확인시켜드리겠습니다. 지금 지구상에 사는 인구는 대략 72억명 정도 됩니다. 그런데 이 72억의 인구를 100명으로 축소해서 작은 마을로 생각을 해보십시다. 그러면, 57명은 아시아인, 21명은 유럽인, 14명은 미주인, 8명은 아프리카인, 52명은 남자, 48명은 여자, 70명은 비기독교인, 30명은 기독교인, 80명은 기초 생활시설이 없는 열악한 주거환경에 사는 사람, 70명은 문맹인, 50명은 영양부족인 사람, 1명만이 대학교육은 받은 사람, 1명만이 컴퓨터를 소유한 사람. 우리가 이와 같이 생각해본다면 나의 삶은 어떠한지요? 세계의 1%안에 들어가는 상류층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적어도 지붕이 있는 집에 물이 나오고 화장실이 집안에 있으며, 냉장고에 먹을 것이 있다면, 세계의 20% 안에 드는 환경 속에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이 많은 것입니다. 그리고 대단히 감사할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이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닌, 내게 없는 것만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들을 보는 안목을 키워가야 합니다. 그리고 내게 있는 것 하나 하나씩 감사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감사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양이와 강아지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강아지는 주인이 잘해준 것만 기억하고, 고양이는 주인이 잘못해 준것만 기억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고양이 보다 강아지를 더 예뻐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고양이 가까운 신자입니까? 강아지에 가까운 신자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 그래서 내게 있는 것을 보며 감사합시다.
3.모든 것을 안주심도 감사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묵상할 것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들에게 원하는 모든 것을 주지 않으시는가?” 에 대해서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혹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일까요?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잘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주고 싶지만 줄수 없기 때문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뭔가를 주시는 것이 아까워서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위해 자신의 사랑하는 독자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지 않는다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바울에게는 심각한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육체의 가시를 위해 3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바울이 이 정도로 간절히 기도했다면, 분명히 그의 사역속에 육체의 가시가 걸림이 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고하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즉, 바울을 위해서 주지 않으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2가지를 명심해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모든 일에는 다 그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안주고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지극한 사랑에 근거한 것, 다시말해,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신 것에도 감사해야 하지만, 우리에게 주시지 않은 것까지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 선한 것만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감사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나쁜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2)그리고 내게 있는 것을 바라보며 감사해야 합니다.
3)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내게 주지 않으심도 유익을 위함임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더욱 감사의 사람이 되기 위해 힘쓰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