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11:7-15절 고린도후서강해59
제목 : 내가 아닌 하나님이!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있다면, 유명인의 간증집회입니다. 예를들면, 연예인, 스포츠스타, 기타 전문 분야에서 성공한 유명인들... 등의 간증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간증에도 흐름이 있나봅니다. 오래전에는 전과자들 중에서 회심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 후로는 북한에서 탈북한 분들이 많았고, 그리고 얼마 전 부터는 유명인들의 간증이 대단히 많아지고 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유명인의 간증집회를 좋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간증집회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가 사실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혹시, 돈 때문은 아닌가? 또는 활동의 공백기를 떼우기 위함은 아닌가? 재기의 발판을 놓으려는 것은 아닌가? 물론, 모든 유명인 간증자들이 그런 것은 아닐것입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유명인 간증자들이 의심스러운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몇해전까지만 해도 유명인 간증집회 섭외 1,2위를 하던 분이 룸싸롱에서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행패를 부린 사건이 보고가 되었고, 또 어떤 사람은 목사 임직까지 받고 간증집회를 다녔는데, 나중에 알려진 사실을 보면, 아내 폭행, 불륜까지 저질렀다고 합니다. 그것 말고도 지나친 금전 요구가 너무 많습니다. 올바른 간증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간증은 무엇일까요? 전적으로 하나님만 들어내고, 하나님만 자랑하고, 듣는 자의 마음에 하나님만 남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잘못된 간증은 무엇일까요? 자신을 들어내고, 자신을 자랑하고, 듣는 자의 마음에 자신을 남기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참 사도와 거짓 사도를 구별하는 기준을 내가 아닌 하나님을 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가 아닌, 하나님만을 들어내는 삶을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참 사도됨의 기준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
우리는 계속해서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변증하는 내용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무엇으로 변증했는지 기억하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열심 내는 그 일에 자신이 열심을 내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자신의 사도됨을 변증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일에 열심을 내셨습니까?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세우시는 일에 열심을 내십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도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세우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사도됨을 변증하려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를 알수 있는 것은 참 사도와 거짓사도, 참 목회자와 거짓 목회자의 구별 기준, 더나가서 참된 신앙과 거짓된 신앙의 기준은 ‘하나님이 열심 내는 일에 열심을 내는가?’ 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참 목회자는 사람을 세우는 일에 열심 내는 자이며, 참다운 신앙을 가진 성도 역시,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가는 일에 열심을 내는 자인 것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참된 목회자가 아니고, 참된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난 한주간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셨습니까? 앞으로도 자신을 더 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고 세워가는 일에 집중하고 열심을 내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역시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먼저,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7-9절을 보면, 바울은 돈(사례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먼저, 7절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높이기 위해 자신을 낮추었다고 말을 합니다. 즉,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유익을 위한 자기 희생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즉, 고린도 지역에서 사역을 할 때, 돈(사례)을 받지 않고 사역을 했다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그의 전 사역 사운데 사례를 받지 않고 사역을 했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8절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서 사역을 할 때, 다른 여러 교회에서 돈을 받았다고 말을 합니다.(탈취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 교회들이 어려운 형편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돕지 않을 수 없었던 자신의 형편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9절을 보면, 다른 교회들에게 돈을 받은 이유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내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서 사역을 할 때, 빈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그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선교비를 전달한 사람들)에게는 받았다고 말을 합니다. 누구에게는 돈을 안받고 누구에게는 돈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돈을 받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례를 받을 자격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었고, 그것을 요구할 권리도 성경적 근거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지 않은 것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당시 철학자들의 연설과 다르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고린도지역에 많은 강연가들이 사례를 받고 강연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돈을 받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상관이 있습니다. 만일 그런 돈을 받고 강연하는 문화속에서 바울 역시 교회 앞에 돈을 받으며 복음을 전한다면 강연가들의 말과 다를 바 없는 말로 인식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돈 받고 강연하는 사람들의 말과는 다른 것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돈을 받지 않고 사역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10, 12절을 보면, 바울은 계속해서 아가야(고린도를 포함한 지역) 지역에서 복음이 막히지 않도록 돈 받지 않고 사역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거짓 사도들이 자기를 합리화할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돈을 받지 않는 또 다른 이유를 11절에서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렇듯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의 유익을 위해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보기에 바울이 돈을 받지 않는 것은 스스로가 사도로서 자격이 없기 때문에 요구하지 못한 것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물론, 그 배후에는 거짓사도들의 음모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13-15절까지 거짓사도들에 대해 언급을 합니다. 먼저, 13절을 보면,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라고 언급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가장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도의 모습이 아닌 사탄의 속한 자들의 모습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14절 ‘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15절에서는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 이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자신을 가장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자기를 변장한다는 말입니다. 예를들면, 옷을 바꾸어 입거나 얼굴을 변장하거나..., 등 더 간단히 말을 하면, 자신을 꾸며서, 자신을 대단하게, 자신을 옳게 들어낸다는 말입니다. 핵심은 자신을 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바울 사도가 말하려는 의도를 아실 것입니다. 참 사도인 바울은 철저히 자신은 감추고 하나님만을 들어내려고 한 반면에, 거짓 사도들은 하나님 보다 자기 자신을 나타내고 들어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이 말하려는 참 사도와 거짓사도의 구별되는 기준은 ‘하나님을 들어내는가? 자신을 들어내는가?’ 인 것입니다. 즉, 자신을 들어내면 참 사도가 아니고, 하나님을 들어내면 참 사도라는 것입니다.
2.올바른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오늘 바울의 말씀을 우리들에게 적용해보도록 합시다. 여러분은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난주 말씀과 이번주 말씀을 근거로 말한다면,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나를 들어내기 위해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들어내는 일에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내 모습을 통해서 내가 아닌, 하나님을 들어내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이 아닌, 내가 들어나고, 내가 과시되고, 내가 자랑이 되는 것은 결코 올바른 신앙생활이라고 말할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모습을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것이여,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는 것이며,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을 보면, 광명한 천사로 자신을 가장하는 자들에 대한 꾸중이 많이 나옵니다. 먼저, 눅18장을 보면, 바라새인과 세리가 기도의 장면이 나옵니다. 먼저, 바리새인이 먼저 따로 서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바리새인의 기도를 통해 누가 들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들어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혀 들어나지 않습니다. 오직 그 자신만 들어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리를 짓밟으면서 자신이 잘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다음은 세리가 기도합니다. 그는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 기도를 통해서 누가 들어납니까? 긍휼의 하나님만 들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이며, 참된 신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바리새인이 아닌 세리가 의롭다 함을 받고 내려갔다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신자의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또, 마7장을 보면, 주님께서 거짓선지자들을 꾸중하는 내용이 소개됩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정확히 오늘 본문의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는 자들과 일치합니다. 그들은 이리이면 양의 옷을 입고 양으로 가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짓선지자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무슨 말입니까? 신앙의 열심히 있었고, 신앙상 많은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입니다. 왜 불법입니까? 왜 이렇게 꾸중하십니까?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들어내기 위해서 했기 때문입니다. 즉, 주의 이름을 내걸고 행한 모든 일이 자기 치장이고, 자기 자랑이고, 자기 과시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이고, 그래서 그들은 거짓선지자이며, 그들의 행위는 올바른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가지만 더 생각해봅시다. 왕하19장에서는 예루살렘을 포위했던 앗수르군대 185,000명이 모두 진멸당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왕하20장을 보면, 히스기야왕이 죽을 병에 걸렸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15년의 생명을 연장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당시 신흥강국으로 급부상하던 바벨론왕이 히스기야왕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사신들 편에 보냅니다. 진짜 의도는 당대 강대국이었던 앗수르 군사 185,000명을 완전히 진멸하게된 경위를 알고자 한 것입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보물고, 군기고, 창고..., 모든 것을 다 보여주게 됩니다. 물론, 단순히 보여준 차원이 아니라, 자랑이고 과시였던 것입니다. 참 웃기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 앗수르에 바칠 금 30달란트의 조공을 충당할 길이 없어 성전 기둥의 금을 긁어냈던 히스기야가 이제 와서 자신의 군사력과 지도력을 은근히 자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일군이고, 의의 일꾼일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여러분의 모습속에서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는 일들을 없습니까? 즉, 자신을 들어내고 자신을 과시하고 자신을 자랑하고 있는 일은 없습니까? 내가 기도해주었더니..., 내가 위로했더니..., 내가 권면했더니..., 그 밖에도 나의 신앙의 경험을 근거로 권면하는 일속에서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는 일이 있고, 신앙의 체험을 간증하는 순간 속에서도 나를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는 일이 있고, 어떤 일을 하는 과정속에서도 나를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는 일이 있고... 특별히 누군가 비판하고 정죄하는 일이 자신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 밖에도 우리는 광명한 천사로 자신을 가장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그것은 참 신자의 모습이 아니고, 참다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떤 말을 하든, 어떤 일을 하든... ‘과연 누가 들어나고 있는가?’ ‘누가 들어나기를 바라고 있는지?’를 늘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3.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십시오!
아주 오래전 옥스퍼드 대학 축제기간에 있었던 일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옥스퍼드 대학 내에 있던 기독교 동아리에서 당시 가장 영향력 있던 목회자이며 설교가인 마틴 로이드 존슨 목사님과 당시 무신론자로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버트란트 러셀(철학자이며 노벨문학수상자)과의 신앙대담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과 복음이 이기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제안을 받은 버트란트 러셀은 대담에 응하기로 답을 주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마틴 로이드 존슨 목사님께서 대담에 응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마치 사람들 보기에는 무서워서 결투를 회피하고, 도망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로이드 존슨 목사님께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논쟁의 주제나 대상이 될 수 없고, 신앙은 논리로 습득되거나 항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라고 답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로이드 존슨 목사님이 신앙대담을 거절하는 일은 쉬웠을까요? 누구라도 자신 없어서 피했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또, 기대했던 신자들이 자신에게 실망하는 일을 격어야만 했을 것입니다. 결코 쉬운 거절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이드 존슨 목사님은 거절한 것입니다. 대단히 용기 있는 분입니다. 우리도 자신을 자랑하고, 과시하고, 자신을 들어내고자 하는 일을 중단할 수 있는 용기를 갖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앙의 용기는 어디에서 나올까요? 하나님의 심판을 인식함에서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행위를 아시는 분입니다. 물론, 사람은 속을 수 있습니다. 신령한 척, 거룩한 척, 사랑이 많은 척, 은혜로운 척..., 등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가장된 행위에 속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을 인식하며 살아갈 때, 나를 들어내고자 하는 마음을 중단하고 하나님만을 들어 낼 수 있는 신앙의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자꾸 나를 들어내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다 아심과 하나님의 심판하심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심판을 위한 하나님의 시선을 인식한다면,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는 일을 사람들 앞에서 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시선, 하나님의 심판을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는 일을 중단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만을 들어내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계시의 하나님이십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들어내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본문과 삶
1)1차적으로는 성경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는 분입니다.
2)그리고 2차적으로는 우리를 통해서 들어나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를 구원하시고, 사도로 세우시고, 목회자로 세우시고, 성도로 세우신 것입니다.
3)그러므로 하나님을 들어내는 삶이야 말로, 참 목회자, 참 신자, 참 신앙의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들어내고, 증명하는 신자답고, 영광스럽고 복된 삶을 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