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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하나님의 열심!(고린도후서강해58)
 본문말씀 : 고후11:1-6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7.11.1
조회 : 10,544   추천 : 0  
본문 : 고후11:1-6절  고린도후서강해58
제목 : 하나님의 열심!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설교의 황태자로 불리우는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하신 말 중에 유명한 말이 많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과 연관해서 유명한 말을 하나 소개합니다. ‘열심을 내라. 열심이란 꾸밀 수 없다. 열심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스펄전 목사님은 자신의 말대로, 하루에 18시간 이상을 읽고, 쓰고, 전하는 열심이 있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선교사님이 스펄전 목사님을 찾아와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스펄전 목사님께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합니다. ‘나 혼자가 아니고 둘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자신의 사역속에서 열심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자신도 열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스펄전 목사님의 열심의 근거는 하나님의 열심인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바울 자신의 열심의 근거가 하나님의 열심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은 무엇에 열심을 내는가를 확인하고, 우리들이 열심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배우고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하나님의 열심에 대해서
  우리는 계속해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의 사도됨을 변증하는 내용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특별히 지난 시간에는 바울이 자신이 사도라는 점, 더나가서 참사도와 거짓사도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제시한 것이 무엇인지 기억 나십니까? 바로 꾸중이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도들을 꾸중하는 사람이 참된 사도이며, 성도들을 꾸중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짓사도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꾸중이 참사도와 거짓 사도됨의 구별의 기준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도들을 꾸중하는 일이 참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 편에 서지 않고, 하나님께만 점수 받으려는 마음이 없이, 또는 하나님만을 위하지 않고는 결코 성도들을 꾸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을 꾸중하는 사도가 참 사도인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기를 위하는 사람은 성도들을 꾸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위해 성도들에게 점수를 따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꾸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참 사도가 아닌 것입니다. 이 점은 구약성경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거짓 선지자들은 항상 자기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래서 죄악된 삶을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늘 평안하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참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심지어 멸망까지 선언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꾸중하는 것을 근거로 자신의 사도됨을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훌륭한 목사도 역시 성도들을 꾸중할 줄 아는 목사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성도는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한 꾸중을 마치 하나님께 꾸중을 받는 것처럼 겸손하게 꾸중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도 바울은 참사도와 거짓사도를 구별하는 또 한가지 기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2절을 보면, ‘내가 하나님의 열심히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라고 말을 합니다. 바울이 참사도와 거짓사도를 구분하는 기준을 찾으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열심’ 이 있는가? 입니다. 이 점을 더 정확히 말을 하면, 하나님이 열심내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참 사도이고, 하나님이 열심 내는 일에 열심을 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참 사도가 아니라 것입니다.  

 이 점을 살펴보기 위해서 우리들이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과연 하나님은 어떤 일에 열심을 내시는가?’ 에 대해서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열심내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먼저,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에 열심을 내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2가지 측면에서 하나님의 열심을 말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는 일에 열심을 내십니다. 예를들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해 주시고, 그 땅으로 인도하시고, 그 인도하심 속에는 먹을 것을 주시고, 마실 것을 주시고, 의복과 신발을 닳지 않게 하시고,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지키고 보호하시며, 가나안 원주민을 이기게 도우시고..., 등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을 베푸시고, 사랑해주시고, 인도하시고, 복이 되게 하시는 일에 열심히 있는 분이십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벌을 내리시는 일에도 열심을 내십니다. 예를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할 때마다 재앙을 내리시고, 이방나라에 공격을 당하게 하시고, 다양한 어려움을 격게 하시고..., 등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이 불순종하고 어긋난 길을 갈 때면 꾸중하시고, 분노하시는 분이며, 이일에 열심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꾸중하시고, 분노하시고, 벌을 내리시는 것은 우리가 미움의 대상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도리어 반대로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에게 우리는 대강의  대상이 아니고, 절대 손을 놓을 수 없는 대상이고, 관심을 끊을 수 없는 대상이고, 애정을 끊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벌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벌을 내리실 이유가 없습니다. 내버려두면 됩니다. 그러면 지옥에서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기에 분노하시고, 진노하시고 벌을 내리시는 일에 열심을 내리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열심은 우리를 위하시는 일과 우리에게 벌을 주시는 일에 열심을 내십니다. 

 그러나 이 2가지 측면의 하나님의 열심은 결국,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알고, 붙들게 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시기 위한 열심인 것입니다. 어느 시골에 아주 마르고 병약한 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그 남자의 문 앞에 큰 바위가 있어 출입이 늘 불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꿈에, 하나님께서 그 남자에게 ‘사랑하는 아들아, 문 앞의 바위를 매일 밀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남자는 하나님께서 바위를 옮겨주실 것이 기대하고 매일 매일 열심히 바위를 밀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을 무렵, 그 남자는 바위가 얼마나 움직였나 확인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바위는 1㎝도 움직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순간 그 남은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그 남자에게 물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왜 슬퍼하느냐?’ 그 남자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매일 바위를 밀었지만 전혀 움직여지지도 않았습니다. 이게 뭡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가서 거울을 보렴!’ 거울 앞에선 남자는 근육질의 건강한 몸으로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 남자에게 불편을 주는 바위를 옮겨주는 것보다, 그 남자를 더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열심이 발휘되는 목적인 것입니다.

 이 점은 창세기에 나오는 여러 족장들의 인생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숭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식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75세에 부르셨고,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25년만에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명령을 하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심을 하고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중단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한 유명한 신앙고백이 무엇입니까? 바로 ‘여호와 이레’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께서 무엇을 준비하셨다는 말인가요? 이삭 대신 번제로 드릴 수양을 준비하셨다는 말일까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극적인 순간에 아브라함이 고작 그런 고백을 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지금 지난 25년 동안 자신이 겪었던 모든 순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숭배자였던 자신을 독자를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 곧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불리울 만한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인생 전체를 통해서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고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또,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은 어떤 사람입니까?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꿈치를 잡을 정도로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물론, 야곱은 신앙이 있었던 사람이지만 늘 조건적인 신앙이었고 무엇보다 야곱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며 살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야곱은 형 에서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얍복나루로 나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 앞에 지나온 인생을 회개하고, 비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과연 이 의미가 무엇일까요? 단순한 개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힘과 방법을 의지하던 야곱을 이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바꾸셨고 앞으로도 더욱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꾸어 주시겠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 결과 야곱은 인생 말년에 애굽으로 이주하게 되고, 애굽왕 바로를 만났을 때, 축복을 하게 됩니다. 예전의 욕심쟁이고 이기적인 야곱의 모습속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은 애굽에서 얻은 부요함이 아닌, 가나안 땅의 작은 매장지를 소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야곱의 인생에 간섭하신 이유는 욕심쟁이고, 이기적이고 비신앙적인 야곱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고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또,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의 인생에 간섭하신 이유 역시, 단지 그를 애굽나라의 국무총리로 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고 세우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고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일을 다양한 모습의 열심히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2.우리들이 열심 해야 할 것?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열심의 의도와 목적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더 세우기 위함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이 사람을 세우는 일에 열심을 발휘하는 것처럼, 참사도와 거짓사도의 기준이 사람을 세우는 일을 하느냐?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은 꾸중을 통해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참 사도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또 한가지는, 훌륭한 목사란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일에 열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제가 그리고 우리교회 동역자들이 그런 사역자가 되도록 기도바랍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이 한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관심 갖고, 가장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지금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것에 가장 관심을 갖고 계십니까? 예배 참여 횟수, 기도의 시간, 성경의 지식 축적, 다양한 봉사의 경력,  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여러분이 가장 힘쓰고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성해가고, 나를 더 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일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 또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시간이 되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 정해 놓은 대로 하루에 3장씩 성경을 읽고 하루 10분이라도 기도하는 것, 피곤하지 범위안에서 최소한의 봉사를 하는 것, 부담이 없는 선에서 적당한 헌금을 하는 것..., 이러한 것들을 신앙생활 또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신앙생활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기준하여, 끊임없이 나를 점검하고, 고치고 교정함으로 나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신앙생활이며, 성경이 말하는 부흥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우리들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이고, 봉사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더 많은 복을 받는 것이고,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 일이고, 고난을 피해 더 편한 삶을 사는 것이고, 신앙의 자랑거리들을 만드는 것..., 등에만 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 결과 무엇인지 아십니까? 신앙의 성장이 없는 것입니다. 즉, 신앙생활을 10년을 하고, 20년, 30년, 심지어 40년을 해도 신앙의 레벨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늘 신앙이 제자리 걸음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불리울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참다운 신자요 참다운 성도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혹시 가짜일수도 있습니다.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여러분의 못나고 부족한 것들을 고친 것이 있습니까? 아니 고쳐가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있다면, 여러분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신 것이고,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사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 자신을 고치는 일이 없었다면, 미안하지만 올바른 신앙생활을 한 것이라고,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열심 내는 그 일에 열심을 내는 참다는 신자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3.우들이 집중해야 할 것
 우리들이 집중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나를 더 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성시켜갈까요?  3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 자신의 부족하고 못남을 깨달아야 합니다. 계3:14절 이하를 보면, 주님이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즉,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그들의 영적인 상태, 신앙의 상태입니다. 그들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자신의 부족과 못남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더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신을 고치고 만들어가는 일을 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못남과 부족함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매일 성경이라 거울, 설교라는 거울로 자신의 부족함과 못남을 깨달게 되기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하나님의 사람(형상)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즉, 고후4:4절을 보면,‘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이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예수님이 어떤 삶을 사셨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셨는지? 예수님이 어떤 마음을 품고 사셨는지? 예수님은 어떤 목표와 소원을 가지고 사셨는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지? 날마다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고 닮아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셋째는, 고난과 시련의 시간을 지혜롭게 보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일에 가장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 고난과 시련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야곱, 특별히 요셉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요셉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일에 고난과 시련의 순간을 사용하셨음을 알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종 종 하나님은 고난과 시련을 겪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시련을 말씀과 기도로 지혜롭게 보낼 때, 더욱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질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성실하신 분 곧 열심있는 분입니다.
  본문과 삶
 1)특별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일에 열심 있는 분입니다.
 2)그러므로 참된 목사는 성도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3)또한 참된 신자다움도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날마다 하나님의 열심처럼, 자신을 고쳐가고, 만들어가고, 완성해가는 일에 열심을 다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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