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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신앙의 중매자!(고린도후서강해57)
 본문말씀 : 고후11:1-6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7.10.18
조회 : 9,259   추천 : 0  
본문 : 고후11:1-6절  고린도후서강해57
제목 : 신앙의 중매자!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옛 말에 중매를 잘하면 술이 석 잔이고, 중매를 못하면 빰이 석대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생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토크쇼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래리 킹’ 이라는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첨단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과 사람의 연결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그러나 사람과 사람과의 연결보다 더 중요한 연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과 하나님과의 연결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극동방송 이사장이신 김장환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을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역사가 일어나고, 사람과 하나님이 만나면 기적이 일어난다.’ 사람과 하나님이 만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하나님을 연결해 주는 중매자의 사명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잘 감당하려고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사도됨의 증명
  우리는 계속해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의 사도됨을 변증하는 내용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어떤 점으로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려고 했을까요?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먼저, 1절을 보도록 합시다. 1절을 보면,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자신의 어리석음을 용납하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정말 자신이 어리석어서 용납을 바라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지혜로운 사람이고, 누구보다도 신중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지금 자신의 어리석음을 용납해 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바울이 중요한 말을 하기 위함입니다. 둘째는, 자신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이미 엄중하게 꾸중했고, 또한 계속해서 꾸중하기 위해서입니다. 3절을 봅시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즉, 미혹에 넘어가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신앙이 유혹받아 흔들리고 있음을 꾸중하는 것입니다. 또, 4절을 봅시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지금 복음과 진리를 말하는 자신을 대적하면서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에는(예수가 아닌 예수, 복음이 아닌 복음, 진리가 아닌 진리) 호의적이고, 관대하고, 용납 것 곧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꾸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꾸중하는 것이 이번은 처음은 아닙니다. 고린도전, 후서를 보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꾸중하는 내용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고린도전서에서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분쟁을 꾸중했고, 음행함을 꾸중했고, 무분별한 이혼 문제를 꾸중했고, 우상숭배에 대해서 꾸중했고, 차별에 대해서 꾸중했고, 왜곡된 은사관에 대해서 꾸중했고, 잘못된 부활신앙에 대해서 꾸중했고, 사랑이 없음에 대해서 꾸중했고..., 고린도전서에서는 상당히 많은 꾸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상당히 줄었지만, 고린도후서에서도 바울의 꾸중은 계속 나타닙니다. 예를들면, 율법주의에 대해서 꾸중했으며, 신비주의적 신앙에 대해서도 꾸중했고, 방종에 대해서 꾸중했으며, 은혜를 모르는 일에 대해서 꾸중했으며, 중단한 구제헌금에 대해서도 꾸중했고,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거짓교사에 대한 무분별한 용납을 꾸중했고.., 등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꾸중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물론, 바울의 꾸중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구원의 교리가 흔들려 있는 로마교회 성도들의 잘못을 꾸중했고,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율법주의에 빠진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을 꾸중했고, 빌립보서를 통해서 다툼가운데 있던 빌립보교회를 꾸중했고, 데살로니가전후서를 통해서는 종말에 대해 무지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꾸중했고... 바울은 각 각의 서신서들을 통해서 각 각의 교회 성도들의 잘못을 꾸중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변호하는 가운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꾸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꾸중이야 말로, 사도됨을 증명하는 너무나도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도로 부르시고, 사도로 세우신 이유가 2절에 나오는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즉, 사도의 가장 중요한 역할과 책임이 사람을 그리스도의 신부로 중매하는 역할, 또는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로 세우는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와 똑같은 의미로, 롬15:16절에서는 바울은 중매자라는 말대신에 ‘제사장’ 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즉,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중매자라는 말이나 제사장이라는 말은 같은 의미와 목적을 가진 표현들입니다. 결국,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꾸중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가 신앙의 중매자로서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신부로 세우기 위함이며, 제사장으로서 성도들을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제물이 되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성도들을 꾸중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꾸중이 자신이 사도라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거짓교사들을 성도들을 꾸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위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누구도 꾸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도는 하나님을 위한 사람이기 때문에 꾸중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좋은 교회는 어떤교회입니까?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신부로 중매하는 교회 다르게 말하면, 꾸중해주는 교회입니다. 또, 훌륭한 목사는 어떤 목사일까요? 성품이 좋은 목사, 뭘 잘하는 목사, 특별히 성도들에게 잘한다 잘한다 하는 목사, 괜찮아 괜찮아만 하는 목사..., 또 묻습니다. 과연 저는 훌륭한 목사일까요? 제가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신부로 중매를 잘한다면, 다르게 말한다면 여러분을 꾸중하는 일이 많다면 저는 훌륭한 목사입니다. 그러나 만일 제가 여러분을 꾸중하는 일이 없다면 저는 결코 훌륭한 목사는 아닙니다. 제 자신을 참 많이 돌아보았습니다. 과연 나를 훌륭한 목사인가? 적어도 설교 시간 만큼은 여러분을 꾸중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아직 여러분을 꾸중하는 일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은 훌륭한 목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훌륭한 목사가 되도록 기도바랍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지요? 제가 여러분을 올바르게 꾸중할 수 있도록 기도바랍니다. 

  2.신자됨의 증명!
 그러나 여러분이 제가 훌륭한 목사가 되도록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훌륭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훌륭한 성도는 어떤 성도일까요?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신부로 중매하는 자입니다. 2가지 측면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오늘 말씀의 중요한 주제처럼 목사의 꾸중을 받아 들일 줄 아는 성도인 것입니다. 이런 성도가 훌륭한 성도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 수 있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성도는 꾸중을 받아야만 하는 완전하지 않고, 연약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맞습니다. 우린 아직 그리스도의 신부로 온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꾸중을 받아 들이는 사람은 결국, 신앙의 성장과 성숙, 그리스도의 순부로 갖추어 갈수  있지만, 꾸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올바른 신앙을 갖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꾸중하는 자를 존경하고, 꾸중을 감사히 받는 겸손한 성도가 됨으로, 여러분의 신앙이 갈수록 성장하고 온전해지고, 더더욱 그리스도의 신부로 자신을 순결하게 가꾸어 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을 잘못을 인정하고, 꾸중을 겸손히 받아들 수 있는 사람은 훌륭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누군가의 꾸중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은 어떻습니까? 누군가 나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꾸중하면 기분 나빠합니다. 그리고 핑계거리를 찾습니다. 더 심한 경우는 나의 잘못을 꾸중하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 나쁜 사람으로 공격합니다. 이것이 보통 꾸중을 받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누군가의 꾸중을 기분 나뻐 하지 않고, 겸손히 받아 들이는 분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훌륭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잘 모르겠습니까? 그러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지난 한 달을 살면서 누군가가 여러분을 꾸중한 일은 있습니까? 만일 있다면, 여러분은 꾸중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사람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아무도 여러분을 꾸중한 적이 없다면, 여러분이 완벽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거나, 아니면 여러분이 꾸중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누군도 여러분을 위해서 꾸중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확인이 되셨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꾸중을 받을 줄 아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 꾸중을 받을 줄 아는 사람과 꾸중을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이 소개됩니다. 먼저, 꾸중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은 누가 있습니다. 바로 다윗왕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이 다윗은 밧세바를 간음했고, 그 가운데 밧세바가 임신을 하게 되었고,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밧세바의 남편이자 충신인 우리야를 전장에서 죽게 했습니다. 그때, 나단선지자가 다윗을 찾아와 다윗의 잘못을 꾸중했습니다. 그때 삼하12:13절을 보면, 다윗은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라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꾸중을 받아 들인 것입니다. 또, 히스기야왕입니다. 히스기야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민족에서 위문사절단이 찾아옵니다. 그 중에는 바벨론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바벨론 사절단에게 자신을 과시하고 자랑하기 위해 나라안에 있는 값진 것들을 다 보여주게 됩니다. 교만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이사야선지자가 찾아와 히스기야왕의 잘못을 꾸중하고 유다의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됩니다. 그때, 히스기야왕은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나이다’ 라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꾸중을 받아들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꾸중을 들었고, 회개했습니다. 꾸중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꾸중을 받을 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사울왕입니다. 어느날 하나님은 사울왕에게 아말렉과의 전쟁을 할 것과 승리 할 것, 그리고 모든 전리품을 남겨두지 말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아말렉왕과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끌고 왔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선지자 사울을 찾아가 꾸중을 합니다. 그때 사울왕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라고 핑계합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다시한번 꾸중하자,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끌고 왔나이다’라고 또 핑계했습니다. 결국, 이일로 인해서 사울왕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꾸중을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예수님을 이들을 호되게 꾸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꾸중을 받아들이지 않고, 도리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꾸중을 받아 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아직 신앙이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온전히 이루지도 않았습니다. 더욱이 여러분은 아직 순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겸손히 꾸중을 들으십시오! 꾸중받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꾸중 받은데로 고쳐가십시오!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훌륭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3.훌륭한 목사와 성도가 되는 방법
 우리는 지금까지 훌륭한 목사는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신부로 중매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꾸중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자기의 기분이나 감정에 따른 꾸중이 되면 안됩니다. 오직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꾸중해야 합니다. 또, 훌륭한 성도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신부로 세우기 위해 겸손히 꾸중도 받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훌륭한 목사, 훌륭한 성도가 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즉, 꾸중하고 꾸중받는 사람이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사람에게 점수를 따려 하면 안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목사가 성도에게 점수를 따려 한다면 과연 꾸중하는 설교를 하고, 꾸중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꾸중을 근거로 변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짓교사들은 사람에게 점수를 따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꾸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게 점수를 따려고 한다면 꾸중을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목사와 성도들이 사람에게 점수를 따려고 합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직 우리들은 하나님에게만 점수를 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위할 때, 우리는 꾸중을 할 수도, 꾸중을 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목사는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신부로 중매는 일만이 목적이고, 성도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신부로 중매하는 일을 목적할 때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중매자됨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꾸중하고 꾸중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모든 성도, 그리고 이 땅의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자들입니다.
  본문과 삶
 1)특별히 목사는 성도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중매해야 할 자입니다.
 2)물론, 성도 자신도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중매해야 할 자입니다.
 3)그러므로 목사나 성도 모두 신앙의 중매자인 것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목사인 저는 여러분을 진리로 꾸중하고, 성도인 여러분은 꾸중을 잘 받음으로 순결하고 정결한 신부로 신랑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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