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10:12-18절 고린도후서강해55
제목 :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는 ‘권위부재’의 시대입니다. 예를들면, 부모의 권위가 사라진 시대이며, 교사의 권위가 사라졌으며, 어른의 권위도 사라진 시대입니다. 그 결과 더 이상 자식들이 부모의 훈계를 받지 않고, 학생들이 교사의 말을 듣지 않고, 젊은이들이 어른을 무서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심각한 결과는 마땅히 인정되어야 권위가 사라지면서 사회가 흔들리고, 정말 상상 할 수 없는 참혹한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권위가 추락하고 사라지는 것은 세상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안에서도 주의 종 곧 목회자의 권위가 추락하고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 말씀이 힘을 잃게 되고, 결국, 교회과 힘을 잃고 성도들의 신앙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사도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 바울이 사도로서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서 사도됨을 변증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양한 권위, 특별히 주의 종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사도됨을 변증하는 이유?
우리는 계속해서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변증하는 내용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변증하기 위해 기록된 본문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하게 된 그 배후세력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보면, 그들을 자기를 칭찬하는 자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자랑거리 예를들면, 유명인의 추천서, 또는, 육신적 자랑거리, 뛰어난 웅변력..., 등을 앞세워 자신들이 참다운 사도이며,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자랑거리들을 가지지 못한 바울은 거짓사도라고 말한 것이며, 그들의 말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흔들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진정한 사도란‘자기 스스로를 칭찬(자랑)하는 자가 아니라, 18절처럼 하나님께 칭찬받는 자가 진정한 사도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칭찬의 기준은 어떤 외형적인 조건이나 육신의 것이 아니라, 15절처럼 성도들의 믿음을 자라게 하느냐, 성도들에게 신앙의 유익을 주느냐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준으로 본반다면 내가 사도가 맞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더 깊은 내용은 생략하고, 바울이 왜 자신의 사도됨을 변증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자신의 사도됨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증명하려고 했을까요? 다르게 말하면, 바울은 왜 자신의 사도라는 권위를 되찾으려 하는 것일까요? 사실 바울의 입장에서는 참 치사한 일 아닙니까? 자신을 사도가 아니라고 말하는 성도들에게 자신은 사도가 맞다고 증명하려고 하는 것..., 마치 어린 아이 앞에서 어른이 자기를 증명하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참 치사 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에게는 대단히 괴로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생각해보십시오! 자신을 통해서 구원을 얻고, 성도가 되고, 양육과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을 사도가 아니라고 말한 일 그 자체만으로도 괴로운 일이고, 그 일을 생각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고, 그 일을 해결하는 과정도 대단히 마음이 괴로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고자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치사하게 보이고, 또 힘들고 괴로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도됨을 변증하려고 하는 이유는 자신의 유익을 위함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만일 자신의 유익이 목적이었다면, 안하는게 더 나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그토록 사도됨을 증명하려고 했을까요? 다르게 말하면, 바울이 사도로서의 권위를 되찾으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존심 때문일까요? 아니면, 억울하고 괘씸해서일까요? 아니면, 자신이 수고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일까요? 자기를 위함일까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도로서의 권위를 되찾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자신을 위함이 아닌,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을 위함인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을 참 많이 사랑했습니다. 바울은 늘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늘 애타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최선을 다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양육하고, 그들을 위해서 늘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거짓교사들이 다가갔고, 그 결과 신앙의 많은 문제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책망하고, 권면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즉, 바울이 아무리 애정을 가지고 권면을 해도 받아 드려지지 않는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책망을 받아들이고, 권면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바울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인정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책망과 권면을 받아들이고, 신앙의 회복과 성숙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바울이 그토록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려고 한 것은, 사도로서의 권위를 되찾기 위함이고, 또, 사도로서의 권위를 되찾으려는 이유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 신앙의 위대함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성경을 기록하고, 병든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많은 교회를 세우고...,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울의 위대함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울의 위대함은 어떤 것도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도리어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해 했습니다. 예를들면, 자유를 사용하는 것, 고기를 먹는 것, 마시는 것, 어떤 계획과 결정..., 모든 것을 다른이의 유익을 위해 바울은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 신앙의 위대함인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바울의 위대함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역시 모든 것을 자신의 유익이 아닌, 다른 이의 유익을 위해 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인가를 하고자 할 때, 누구를 위해 하십니까? 하나님이십니까? 정말입니까? 말은 하나님을 위해 한다고 하지만, 여러분 자신을 위해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고전10:31절의 말씀처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는 말씀처럼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하나님을 위한 일입니까? 바울은 고전10:31절 이후에 32-33절에서‘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고 말을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한다는 말은, 우리의 이웃에게 유익을 줄만한 뭔가를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바울처럼 자신의 유익이 아닌, 다른 이의 유익을 위할 줄 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2.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이제 바울이 자신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되찾으려는 노력과 관련해서 이제 우리들의 이야기를 해봅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급속도로 침체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과 연관해서 이 시대 한국교회가 침체하는 이유를 2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권위주의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목사, 장로, 권사, 안수집사라는 직분을 계급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계급을 통해서 성도들을 지배하려는 너무나 잘못된 자세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목회자의 권위가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교회 성도들이 목회자들을 하나님이 세운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고, 존경하지 않고, 복종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단지 목회자를 교회가 채용한 직원 정도로만 여기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권위주의는 나쁘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교회안에 권위주의가 있으면 안됩니다. 하지만 목회자(하나님이 세우신 리더)의 권위는 반드시 존중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목회자의 권위가 무너지면 교회가 올바르게 세워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신앙도 바르게 설수 없습니다. 마치 아버지의 권위가 무너지면 가정이 올바르게 세워질 수 없고, 교사의 권위가 무너지면 올바른 교육이 될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이 세운 종에 대한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목회자들의 권위를 인정해야 할 성경적인 근거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종 곧 목회자가 여러분과 다른 존재 특별한 사람들이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이미 여러 차례 설명한 바와 같이 목회자는 특별한 사람중에서 부름받은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받았다고 해서 특별한 사람이 되게 해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과 똑같은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하나님의 종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권위에 복종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셨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롬13:1-2절을 보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고 말씀합니다. 물론, 이 말은 목회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나라의 대통령, 정치인, 교사, 부모, 어른..., 등을 포함한 말입니다. 핵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세운 자들의 권위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고 그러한 자를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히13:17절을 보면,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목회자의 권위에 순종하고 복종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아무리 부족하고 못났더라도 그들의 권위를 인정하는 마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회자의 권위를 인정함으로 얻는 유익은 무엇일까요? 크게 2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더 잘 복종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권세자들, 그리고 목회자들의 권위를 인정하라고 말씀하신 의도가 있습니다. 예를들면, 나라, 가정, 교회라는 공동체를 이끌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의도는, 하나님께 대한 복종을 훈련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회자의 권위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하나님께 더욱 복종하는 신자가 될수 있다는 유익을 얻을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여러분이 목회자들의 권위를 인정할 때, 여러분의 신앙의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봅시다. 여러분이 목회자의 권위(하나님이 세운자)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가 되겠습니까? 신앙의 권면을 받아 들이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면 결국 여러분의 신앙의 유익이 없게 되는 입니다. 이 점은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모습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신앙의 유익을 전혀 얻지 못했습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실력이 부족해서 일까요? 예수님 잘 못 가르쳐서 일까요? 아닙니다. 말도 안되는 말입니다. 그럼 그들은 왜 신앙의 유익을 얻지 못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님의 메시야로서의 권위를 전혀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에 예수님은 한낮 나사렛 출신이며, 목수의 아들로 밖에는 안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그들이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과 권면으로도 어떤 신앙의 유익을 얻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점 때문에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그토록 증명하고, 자신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으려고 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여러분에게 목회자들에게 대한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잠시 여러분에게 민망한 권면을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제가(교역자들 포함) 하나님이 세운 주의 종, 목회자라는 점과 권위를 인정하셔야 합니다. 정말 민망합니다. 물론, 실력도 없고, 유명하지도 않고, 잘하는 것도 없고,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러분은 저를 하나님이 세운 주의 종 곧 목회자로 인정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신앙에 큰 유익이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교회가 올바르게 세워질 수 있고, 교회가 부흥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말하는게 여러분에게 어떤 인정, 존경, 대접을 받고자 하는 마음은 아닙니다. 물론, 조금은 그런 욕심이 들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말하는 가장 긍극적인 이유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그리고 여러분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저와 사랑하는교회 교역자들을 권위를 인정하고, 목회자의 권위를 세워주는 지혜로운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초원지기, 목자, 찬양인도자..., 등 하나님 세우신 다양한 리더의 권위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3.권위를 인정하기 어려운 순간에?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간단히 생각할 것은, ‘목회자의 권위를 인정하기 어려운 순간’에 대해서입니다. 왜 이런 경우를 생각해야 합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미 여러차례 여러분에게 말씀 드린 것처럼 목회자는 특별난 사람 중에서 부른게 아니고, 목회자로 부름을 받았을지라도 특별한 사람이 되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올바르게 전할지라도 성도들과 똑같이 말 실수를 할 때가 있고, 어긋한 행동도 할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때로는 성도보다도 더 못난 모습일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목회자의 모습을 성도들이 본다면, 목회자로서의 권위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한다면 그리고 다른 부족하고 연약한 것이 있다해도, 하나님이 세운 목회자로서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심판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세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잘못을 책망하실 것이고, 필요하다면, 매를 드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특별히 여러분의 자녀에게 목회자를 험담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자세는, 목회자로서의 권위를 인정하기 어려운 목회자를 권위를 인정받을 만한 목회자가 되도록 기도하고 지혜롭게 도우십시오! 왜냐하면, 그것이 성도된 여러분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모든 권세, 특별히 목회자의 권위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우리는 목회자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2)심지어 목회자가 부족하고 못났어도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3)그럴 때 목회자와 성도들과 교회에 큰 유익이 있습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목회자들과 리더의 권위를 세워주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개인과 교회가 신앙의 큰 유익을 얻고, 교회가 더욱 견고히 세워져 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