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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신자 됨의 정당한 근거!(고린도후서강해53)
 본문말씀 : 고후10:7-8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7.9.6
조회 : 11,270   추천 : 0  
본문 : 고후10:7-8절  고린도후서강해53
제목 : 신자 됨의 정당한 근거!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제가 학생부 시절에 교회에 문학의 밤이라는 정기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때 했던 콩트가 있었습니다. 다는 정확히 기억에 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먼저, 어떤 사람이 꼬끼오~ 하고 닭 흉내를 내며 등장하면서 말을 합니다. ‘저는 닭입니다. 왜냐하면 어제 밤에 닭장에서 잠을 잤거든요!’ 그리고 잠시 후 또 다른 사람이 등장하며 비행기 소리와 흉내를 내며 말을 합니다. ‘저는 비행기랍니다. 왜냐하면, 어제 밤에 비행기 격납고에서 잠을 잤거든요!’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등장을 하면서 ‘저는 신자랍니다. 왜냐하면, 매주 교회에 다니거든요’ 뭘 의미하는 콩트인지 아시지요? 우리들이 교회를 다니고, 종교적인 활동을 하고, 또는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신자라는 점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참된 신자됨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가 참된 신자임을 증명할 만한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확인하시고, 더욱 더 신자다움을 증명할 만한 삶을 소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생각하는 신자 됨의 증명 근거
 우리는 계속해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의 사도됨을 변증하는 내용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사도됨을 변증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왜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했습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자신들이 생각하는 사도의 모습과 바울의 모습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지난 말씀을 예로 든다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생각하는 사도의 모습은 자신들과 전혀 다른 특별한 존재이며, 특별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성도들이 목회자를 특별한 존재일 것이라는 착각과 기대를 갖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보기에 바울에게는 사도로서의 특별함이 없어 보였고, 심지어 자신들과 너무나도 똑같은 존재였고, 특별한 무엇인가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주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종들 곧 목회자들에게 대해서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이나 기대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종을 특별한 사람 중에서 세우지 않고, 자신의 종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이 은혜임을 알고, 사명을 겸손하게 잘 감당하도록 하게 하시기 위함이고, 또 하나는 성도들의 아픔, 성도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함으로, 성도들을 바르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나가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오늘 본문, 7절에서 ‘너희는 외모만 보는 도다’ 라고 꾸중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지금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하는 이유가, 외모만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외모는 무엇입니까? 바울의 얼굴, 바울의 몸매를 말합니까? 물론, 전혀 아니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바울의 외모 때문에도 사도됨을 의심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말하는 외모는 조금 더 포괄적인 의미입니다. 즉, 내세울 만한 것, 자랑 할만 모든 외적인 요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뜻이 되는 것입니다. 즉,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하는 이유는 바울에게 어떤 내세울 만한 것, 또는 자랑 할 만한 외적인 요소가 없어 보였다는 것입니다.(증명서나 유명인의 추천서도 받지 못한 사람으로 여김)  

 그런 이 말은 다르게 말하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자신의 신자 됨을 확신하는 근거를 누군가에게 내세울 만한 것, 자랑 할 만한 어떤 외적인 요소였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신자됨을 증명할 근거로 2가지 요소를 주장했습니다. 첫째는, 풍부한 성경적 지식이었고, 둘째는, 부족함 없는 성령의 은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는 풍부한 지식과 부족함이 없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이 점은 바울도 인정하고 칭찬하였습니다. 고전1:5-7절을 보면,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내심을 기다림이라.’이렇듯 분명히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는 풍부한 지식과 부족함이 없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들에게 지식과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과 상관없이 그것들을 단지 자신을 내세우고, 자신 자랑하는 근거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신자됨과 자신의 신앙의 수준을 나타내는 근거로 삼은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지식과 은사를 누군가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도구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바울의 사도됨의 판단하는 근거로 삼았고 그 결과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안의 장점이 우리안의 가장 큰 단점이 될수 있다는 점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지식과 은사는 대단히 큰 장점이 맞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지식과 은사는 큰 축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의 장점이 스스로 교만하게 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게 한 것입니다. 즉, 그들의 장점이 그들의 신앙의 발목을 잡는 치명적인 단점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경우는 성경에 참 많이 나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다윗의 3번째 아들인 압살롬입니다. 성경은 압살롬이 대단히 외모가 뛰어난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삼하14:25-26절을 보면,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 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압살롬이 1년마다 머리털을 깍았는데 그 무게가 200세겔 우리식대로 말하면, 2.3kg이나 되었답니다.(왕의 저울로 계산하면, 약 2.8kg 정도) 무슨 말입니까? 그 만큼 건장하고 건강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압살롬의 자랑거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압살롬은 어떻게 죽게 됩니까? 반역 진압군을 보고, 노새를 타고 도망을 치다가 상수리 나뭇가지에 머리털이 걸려 매달려 있다가 진압군의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마치, 아름다운 뿔을 자랑하던 사슴이 그 뿔이 나뭇가지에 걸려 사냥군에게 잡히는 격이 된 것입니다. 결국, 압살롬의 자랑거리였던 머리털이 그를 죽게 한 치명적인 단점이 된 것입니다. 또,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은 대단히 머리가 좋은 사람입니다. 그의 형의 장자권을 가로챌 정도로 머리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그 장점은 곧 그의 신앙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즉, 하나님 보다는 자신을 더 의지하게 만든 것입니다. 결국, 야곱의 장점이 그의 단점이기도 했습니다. 가룟유다를 보십시오! 그는 계산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제자공동체안에서 돈궤를 맡는자가 될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계산 실력은 유다의 큰 장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뛰어난 계산 실력이 제자됨에 있어서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그 계산 실력이 예수를 판 제자라는 오명을 씌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자랑거리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잘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열심입니까? 꼼꼼함입니까? 과묵함입니까? 신중함입니까? 신앙의 체험입니까? 교회생활에 대한 노하우입니까? 그 밖에도 여러분은 장점이 있고, 신앙의 자랑거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더 주의하지 않으면, 그 장점, 그 자랑거리가 여러분의 신앙생활의 발목을 붙잡는 단점 곧 아킬레스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장점, 자랑거리에 더 많은 주의를 할수 있기 바랍니다.

  2.내가 신자라는 확신의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누군가에게 내세울만한 것, 곧 자랑거리를 신자됨의 근거로 여겼다는 점을 살펴보았고, 그것으로 인해서 바울의 사도됨까지 의심하게 되었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이 중요하게 확인해야 할 것은, 그렇다면, ‘과연 나의 신자 됨의 정당한 증명, 또는 근거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신자가 맞습니까? 맞다면, 여러분이 스스로 신자라고 확신하는 정당한 근거는 무엇입니까? 세례받은 일, 교회에서 직분을 받은 것, 교회에서 오랜 시간 봉사활동을 한 것, 성령을 체험한 것, 성경을 좀 아는 것, 교리를 아는 것, 교회생활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것... 과연 이런 것이 여러분 스스로가 신자라고 확신하는 정당한 근거가 될까요? 아닙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는 여러분의 종교가 기독교라는 것만을 증거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신자임을 확신하는 근거를 무엇으로 말하고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누군가에게 내세울 만한 것, 자랑거리가 신자됨의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스스로 신자라고 확신하는 정당한 근거는 무엇일까요? 먼저, 7절을 다시한번 봅시다. ‘너희는 외모만 보는 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고 말을 합니다. 이 구절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너희(고린도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속했듯 나(바울)도 그리스도에게 속했다. 너희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결국, 이 구절의 핵심은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은혜 받은 자이고, 여전히 은혜 받아야만 하는 자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지금 이런 말을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스스로 신자라고 확신하는 정당한 근거를 2가지로 말하기 위함입니다. 즉,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이고, 둘째는, 여전히 자신은 은혜가 필요한 사람임을 아는 것임을 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자됨의 확신의 정당한 근거는 어떤 능력도 자랑거리도, 우월감도, 고상함도 아닙니다. 오직 내가 받은 바 은혜를 알고, 끊임없이 은혜를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신자라는 확신의 가장 중요한 근거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께 은혜 받은 자라고 확신하십니까? 그리고 더 나가서 여러분은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할 존재라고 확신하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여러분이 신자라는 확신의 가장 중요한 근거인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가 은혜 받은 자임을 알지 못하고, 더나가서 하나님의 은혜 베풀어 주심을 소원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신자라는 확신을 가질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은혜받은 자이며, 은혜가 필요한 자임을 아십니까? 잘 모르면 정확히 확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의 태도를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 항상 불쌍하게 여기고, 그래서 너그럽게, 따듯하게, 관대하게 대우한다면, 여러분은 은혜받은 자임과 은혜가 필요한 자임을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은혜가 필요한 것을 알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은혜가 필요함을 알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쌍히 여기는 태도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은혜를 모르고, 은혜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누군가에게도 불쌍히 여기는  태도를 갖을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일만달란트 비유를 보십시오! 왜 일만달란트 탕감받은 사람이 백데나리온 빚진자를 불쌍히 여기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받은 은혜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여전히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아주 중요한 한가지 신앙의 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신앙의 점검, 나의 신앙의 수준의 확인은 내안에서 점검되거나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를들면, 내가 성경을 아는 것, 내가 은사를 가지는 것, 내가 뭘 잘하는 것..., 등으로는 나의 신앙을 점검하고 수준을 확인 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의 신앙을 점검하고 수준을 확인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다른 사람을 근거로 점검되고, 확인된다는 점입니다. 예를들면,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지에 대한 점검과 수준은 이웃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 확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결국, 나의 신앙의 점검, 나의 신앙의 수준의 확인은 이웃을 통해서만 확인 될수 있고, 이웃을 통해서 확인된 것만이 올바른 점검이고 확인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여러분의 이웃은 여러분의 신앙의 시금석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신자들은 자신안에서 신앙을 점검하고, 신앙의 수준을 확인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신앙이 좋은 줄 알고, 교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신앙의 시금석은 바로 여러분의 이웃입니다. 

  3.신자됨의 가장 분명한 확신의 근거!
 우리는 지금까지 나의 신자됨의 확신의 정당한 근거는, 내세울 만한 것이나 자랑거리가 될수 없고, 오늘 우리들이 은혜를 알고, 은혜를 필요로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확신의 근거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결국,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이라는 전제를 가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주셨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8절을 보면,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고 말을 합니다. 먼저, 주께서 주신 권세라는 말의 핵심도 하나님의 은혜주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이유는 ‘사람을 세우려 하심’ 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신 이유는, 우리를 자랑하고 과시하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은혜 받은 우리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더 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 또는 은사를 주시는 하나님의 가장 궁극적인 의도이며 목적인 것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의 요지는, 신자됨의 확신의 정당한 근거는 자랑거리가 아니라, 내가 은혜받은 자임을 알고, 나도 누군가에게 은혜를 끼쳐 그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는 일을 하고 있는가 아닌가? 누군가의 신앙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는가? 아닌가?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자랑거리고 자신의 신자됨의 정당한 확신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렸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힘입어, 다른 사람의 신앙에 도움을 주고,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세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그것이야 말로 신자됨을 확신하는 가장 정당한 근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바울이 말하는 신자됨의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까? 신앙생활이란 이런 내 자랑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자됨의 정당한 근거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게 누군가의 신앙을 돕는 것이며, 세워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들을 신자 삼으셨습니다.
  본문과 삶
 1)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2)그것은 신자 된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다른 사람을 세워주기 위함입니다.
 3)그러므로 이것이 여러분이 신자라는 확신을 가지게 할 가장 정당한 근거인 것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자기 자랑거리를 만드는 신앙생활이 아닌, 서로에게 유익을 주고, 세워주기 위한 신앙생활을 통해서, 여러분이 신자라는 정당한 근거를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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