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i TV > 설교말씀 > 특별하지 않은 이유!(고린도후서강해52)
HOME 로그인회원가입
교회안내 설교말씀 목장 및 양육 선교사역 부서소개 사랑방

  사랑 i TV  
     설교말씀 
     찬양영상 
     행사영상 
     성가대찬양 
     찬양소개 
     QT영상 





설교말씀
    > 설교말씀 >>  수요설교
 
[수요설교] 특별하지 않은 이유!(고린도후서강해52)
 본문말씀 : 고후10:2-6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7.8.30
조회 : 9,436   추천 : 0  
본문 : 고후10:2-6절  고린도후서강해52
제목 : 특별하지 않은 이유!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성도들은 목회자에 대해서 신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성도들은 목회자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 때문에 종 종 실망을 하고, 때로는 시험에도 듭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의 경험이 있었습니다. 제가 학창시절 목사님은 저와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목사님이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가면 갈수록 생각지도 못했던 목사님의 모습에 놀란 일이 많습니다. 예를들면, 소파에 누워 자고 있는 모습, 가다듬지 못한 머리스타일, 식사하면서 트림을 하고, 방귀를 뀌고, 사모님과 다투는 모습..., 등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이제 생각해보면, 참 우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당연히 목사도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는 목사님은 먹지도, 자지도, 싸지도 않는.., 우리와 전혀 다른 존재, 특별한 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사도라면, 하나님의 종이라면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사도, 하나님의 종’ 도 똑같은 존재임을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특별하지 않다고 사도됨을 의심받은 바울.
 우리는 지난 시간 바울의 이중성으로 인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사도됨을 의심받았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바울은 얼굴을 마주 대할 때는 온화하고 따듯하게 대했지만, 서신으로 대할 때에는 대단히 냉정하고 엄격하게 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신서안에서도 어떨 때는 위로와 격려와 같이 부드러운 말을 하지만, 어떨 때는, 너무나 과할 정도로 독한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바울의 이중성으로 인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이중성의 의미는 무엇이었습니까? 교회와 성도들에게 신앙의 목표를 제시할 때에는 냉정하고 엄격하고 독하게 대한 것이고, 신앙의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 실수하고, 실패하고, 낙심한자들에게는 따듯하고 온화하게 대한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어느 것과도 타협할 수 없는 진리의 문제, 신앙의 목표에 대해서는 엄격했던 사람이지만, 그 목표로 가는 성도들에게는 따듯하고 온화하게 대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신앙의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마치, 조교가 훈련병들을 강한 군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대단히 무섭고 엄격하게 대하지만, 힘든 훈련을 받을 때에는 강한 군인이 되는 일을 포기하지 않도록 낙오하지 않도록 격려하고 따듯하게 대해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바울의 이중성을 통해서 우리들이 배울수 있었던 교훈은, 먼저, 자신을 향해서는 그 무엇과도 진리와 신앙의 목표에 대해서는 절대로 타협하는 자가 되면 안된다는 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진리를 향해서, 신앙의 목표를 향해서 가는 길에 실수하고, 넘어지고, 실패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신앙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신앙의 낙오자가 되지 않도록 위로하고, 격려하고, 붙들어주어야 할 책임이 서로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우리들이 살펴보게 될 본문 역시,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사도됨을 의심받았던 한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로 2절입니다.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게 해하여’ 라고 말을 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 일부는 바울을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라고 오해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라는 말은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이 세운 종이라면 왜 성도들의 도움을 받고 살고, 왜 교회의 헌금으로 먹고 사는가? 진짜 하나님의 종이고, 신령한 하나님의 종이라면 하나님이 먹이고 입혀주지 않겠는가? 라는 오해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지역에서 처음 사역할 때에는 자비량으로 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당시 철학자들의 강연과 같은 부류라는 오해받지 않고, 자신도 철학자중 하나라는 식의 오해받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비량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세워진 이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도움으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때에 따라 성도들로 하여금 필요를 공급받았습니다. 그런 바울을 육체에 따라 행하는 자이며, 하나님의 종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을 따라 행하는 자라는 말속에는 더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은 왜 특별하지 않습니까?’ 라는 질문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즉, 당신이 하나님의 종이고 사도라면 우리와 다른 특별함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왜 우리처럼 먹어야 하고, 왜 우리처럼 마셔야 하고, 왜 우리처럼 쉬고 자야 합니까? 왜 우리처럼 아프고 병이듭니까? 왜 사도된 당신에게 우리와 다른 뭔가 특별함이 없습니까? 정말 사도가 맞습니까? 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대답은 무엇입니까? 3절을 보면,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즉, 맞다. 나는 사도임에도 육신적으로 너희와 다른 특별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사실 육신적으로 특별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싸움은 육신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4-6절을 보면,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 모두의 싸움은 육신을 무기 삼는 육신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마음의 악한 소욕과 부패한 성향과의 싸움이며, 죄와의 싸움이며, 어두운 세력과의 싸움이며, 모든 형태의 악한 것들과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육신의 특별함이 있어야 하느냐? 라는 것입니다. 

  2.왜 목회자들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지 않으실까?
 결국,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한 이유는, 사도된 바울에게 자신들과 비교해 볼 때, 다른 특별함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사도 곧 주의 종이라면 자신들과 전혀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여긴 것입니다. 참 우스운 생각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의 신자들 사이에서도 목회자들을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는 일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성도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목사님과 함께 사는 사모님은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면 사모님들이 하는 말이 있지요? 너 가 살아봐라~ 왜 농담이 나옵니까?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목회자들을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목사님은 뭐다 다 알고, 목사님은 뭐든 잘하고, 목사님은 항상 성령충만하고, 목사님은 고민도 없고, 목사님은 항상 기쁘고, 목사님은 항상 감사하고, 목사님은 춥지도 덥지도 않고..., 등 여러분 목회자들에게 실망할 때가 언제입니까? 대부분이 목회자는 특별하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예를들면, 목사님이 어떻게 욕심을 부릴 수 있어, 목사님이 어떻게 화를 낼수 있어, 목사님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수 있어? 목사님이 어떻게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어? 그 밖에도 목사님이 어떻게 그럴수 있어..., 등 이런 것들 때문에 목회자들에게 실망을 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결론부터 말할까요? 목회자는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목회자라고 해서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직도 이해가 안되십니까? 그렇다면, 성경본문 하나를 소개합니다. 출24장을 보면, 먼저,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론, 나답,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명과 함께 여호와께로 올라오라고 말을 하십니다. 그리고 9-10절을 보면,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 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 고 소개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 그리고 70명의 장로들을 부르시고, 자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의 일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그 대표자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먹고 마시는 일이었습니다. 조금 더 실감나게 말하면, 배설하는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고 배설을 합니까? 요지는 하나님은 자신이 부른 이스라엘의 대표자들 그들을 특별한 존재로 부르거나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보면 죽을 수밖에 없는 하나님 앞에서도 먹어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도 마셔야 하는 그런 존재들을 대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꼭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은 목회자를 특별한 자중에서 부르지도 않았고, 목회자가 된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이 특별할 것이라는 기대와 착각에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더 잘 할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목회자를 특별한 자중에서 부르지 않으셨을까요? 또는, 왜 하나님은 목회자가 된 자들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지 않으셨을까요? 첫째는, 목회자 자신을 위함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을 목회자로 부르신 것은 자신의 실력이나 능력, 또는 남다름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은혜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만일 자신이 남다른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하나님이 들어날 수 없고, 따라서 올바르게 목회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목회자를 세울 때, 그렇게 잘나고 대단한 사람을 세우지 않습니다. 도리어 평범한 사람들, 또는 평범 이하의 사람들을 목회자로 세웁니다. 그러니 특별할 것이라는 기대와 착각은 버려야 합니다. 둘째는, 성도들을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사역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바로 설교 사역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의 진리를 밝혀 선포하는 사역,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사역, 성도들을 말씀을 꾸중하고 세우는 사역, 이러한 설교 사역이 목회자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사역이고, 우선되는 사역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설교 사역을 잘하기 위해서는 성도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필요합니다. 예를들면,  밥 안먹으면 어떻게 되고, 못자고 못쉬면 어떻게 되고, 성도들이 격는 인생의 아픔이 무엇고, 신앙상의 갈등이 무엇이고..., 등 이러한 성도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있을 때, 올바른 설교 사역을 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목회자가 특별한 존재로 살아간다면, 안먹어도 되고, 안자도 되고, 안아프고, 인생의 문제가 없는 그런 특별한 삶을 산다면, 성도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설교 사역을 할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모든 성도들이 가는 길을 가야하고, 모든 성도들이 겪는 일을 격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목사들을 특별한 사람으로 바꾸지 않고, 특별한 환경을 주시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훌륭한 하나님 종은 어떤 사람입니까? 훌륭한 목회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풍채가 좋고, 목소리가 좋고, 박사 학위가 있고, 누가 봐도 목사다워 보이고...,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훌륭한 목회자는 충성하는 목회자입니다.(고전4;1절) 특별히 하나님 편을 열심히 드는 목회자가 훌륭한 목회자인 것입니다. 이런 목사가 되도록 기도바랍니다.

  3.왜 성도들 역시 특별하게 해주지 않는가?
 그런데 아직 특별함과 관련해서 한가지 풀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신자된 자기 자신을 향해 가지는 잘못된 기대에 대해서입니다. 즉, 대단분의 신자들은 자신이 신자라는 이유로 하나님께 대해여,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특별대우를 받을 것이라는 착각과 기대를 가집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신앙의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부르고 세운 주의 종에게도 특별함을 주지 않으시듯, 신자로 부름받은 여러분에게도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특별함을 주시지 않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한다면,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아무리 열심히 잘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런 여러분에게 무병장수하게 해주시지는 않고, 하는 일마다 성공하고 잘되게 해주지 않으시고, 여러분이 바라고 소원하는 것을 다이루어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반대로 말하면,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지라도 병들 수 있고, 하고자 하는 일에 실패할 수 있고, 가난에 처하게도 되고, 낙심과 슬픔의 일을 격게 될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더 간단히 말하면, 여러분이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여러분의 믿음의 분량, 신앙의 수준과 상관없이 세상 사람들이 격는 동일한 현실속에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특별대우를 해주지 않으십니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은, 마13장의 ‘알곡과 가라지 비유’입니다. 여러분이 알곡과 가라지가 어디에 심겨져 있습니까? 각 각 다른 밭에 심겨져 있습니까? 아닙니다. 같은 밭에 심겨져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알곡이든 가라지이든 같은 조건, 같은 환경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비가오면 다 비를 맞고, 가물면 다 같이 가뭄을 겪고, 병충해가 생기면 다 같이 병충해를 겪는다는 것입니다. 알곡이라고 해서 다른 조건이나, 다른 환경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 신자들에게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특별대우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성경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몇개의 구절만 생각해봅시다. 먼저, 전7:14절에서 ‘형통할 때 기뻐하고 곤고할 때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형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사람과 같은 현실을 격는다는 말입니다. 또, 렘31장을 보면 ‘환란날에 내게 부르짖으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세상 사람들처럼 환란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시23편을 보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아니할 것은’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푸른초장만 걷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걷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몇 몇 성경구절만 보아도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특별대우는 없다는 것이 들어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특별대우를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특별대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처음 신앙을 가졌을 때에는 그런 기대를 갖을 수 있습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상당수 여러분은 더 이상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특별대우를 기대하면 안됩니다. 현실적 특별대우가 없음을 알고, 인정하고, 기대를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르고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특별대우를 해주지 않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상사람들과 똑같은 환경, 똑같은 현실속에 살아가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래야, 우리 그리스도인의 다름이 분명히 입증되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증거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행16장을 보면,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파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물론, 그곳에는 많은 다른 죄수들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다른 죄수들은 틀림없이 절망과 두려움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찬송을 불렀습니다. 똑같이 절망스러운 상황이지만 달랐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바울과 실라로 인해서 간수가 하나님을 고백하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환경과 현실에 두시는 이유는, 우리의 다름을 나타내시고, 그로 인해, 하나님이 증거되시고자 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환경과 현실속에서 다름이 있는 삶을 놓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목회자를 세우고, 신자를 세우십시오! 
  본문과 삶
 1)그러나 목회자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2)물론, 신자들에게도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특별함을 주지 않습니다.
 3)그러므로 목회자에게나 자신에게나 특별함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특별함을 기대하는 관계가 아닌, 함께 충성하고, 함께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만을 들어내는 일에 힘쓰는 관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Share

 
 

번호 말씀제목 보기 본문말씀 설교자 설교일자 조회 추천
2533 [주일설교] 다시 걷기-변화된 삶으로   롬12:1-2절 최용민목사 2026.4.5 61 0
2532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롬12:1-2절 최용민목사 2026.4.5 7 0
2531 [특별새벽기도] 소망하기!(고난주간5) 롬8:18-25절 최용민목사 2026.4.3 43 0
2530 [특별새벽기도] 사랑하기!(고난주간4) 롬5:6-11절 최용민목사 2026.4.2 609 0
2529 [특별새벽기도] 한 걸음 내 딛기!(고난주간3) 잠16:1-9절 최용민목사 2026.4.1 488 0
2528 [특별새벽기도] 방향 묻기!(고난주간2) 시119:57-64절) 최용민목사 2026.3.31 658 0
2527 [특별새벽기도] 기억하라!(고난주간1) 시77:1-12절 최용민목사 2026.3.30 350 0
2526 [주일설교] 거룩한 멈춤! 집중!(고난주간) 시46:1-11절 최용민목사 2026.3.29 3580 0
2525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시46:1-11절 최용민목사 2026.3.29 110 0
2524 [수요설교] 다시 세워진 신앙!(사사기강해15) 삿6:25-32절 임승철목사 2026.3.26 2142 0
2523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삿6:25-32절 임승철목사 2026.3.25 107 0
2522 [주일설교] 신앙 성장과 습관(習慣)!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2306 0
2521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116 0
2520 [주일설교] 주일2부실시간예배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160 0
2519 [수요설교] 원칙(原則)이 있는 신앙!(사도행전강해96) 행17:1-9절 최용민목사 2026.3.18 185 0
2518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행17:1-9절 최용민목사 2026.3.18 227 0
2517 [주일설교] 신앙 성장과 결단! 왕하5:15-19절 최용민목사 2026.3.15 365 0
2516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왕하5:15-19절 최용민목사 2026.3.15 176 0
2515 [수요설교] 위로받고 위로하고!(사도행전강해96) 행16:35-40절 최용민목사 2026.3.11 154 0
2514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행16:35-40절 최용민목사 2026.3.11 254 0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