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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바울의 이중성!(고린도후서강해51)
 본문말씀 : 고후10:1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7.8.23
조회 : 6,905   추천 : 0  
본문 : 고후10:1절  고린도후서강해51
제목 : 바울의 이중성!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군대에 입대를 하게 되면,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이 바로 조교입니다. 그리고 조교들을 만나면, 너무나 무섭습니다. 조교들은 왜 그렇게 무섭게 훈련병을 대할까요? 강한 군인으로 만들어야 하는 목표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힘든 훈련을 마치고 나면 조교들이 미소를 짓고, 따듯하게 말해줄 때도 있습니다. 특별히 행군을 하다보면, 조교들은 파이팅도 외치고, 다왔다고 격려도 하고, 밀어주기도 하고, 대신 군장을 들어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강한군인으로 만들고자 하는 목표에 낙오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렇듯 강한군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조교들은 이중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바울의 이중적인 모습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확인하며, 그런 이중적인 모습을 통해서 우리들이 배워할 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함으로 여러분 모두가 신앙의 지혜의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바울의 이중성
 오늘부터 묵상하게 될 고전10-12장의 내용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변호하는 내용들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변호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시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서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하고, 비난하고, 공격하는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하고 공격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굉장히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에 우리들이 앞 부분에서 이미 살펴본 6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바울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떄문입니다. 즉,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방문하기로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방문을 계속 늦추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책망과 꾸중의 방문이 되지 않도록, 그들에게 회개의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방문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않자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한 것입니다. 둘째는,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에 대한 권면 때문입니다. 즉, 이미 여러분이 잘 알고 있듯이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구제연보에 동참하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그것은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권면을 마치 바울 자신의 업적이나 자랑거리를 만들기 위함이라고 오해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오해를 통해서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한 것입니다. 셋째는, 바울이 사도라는 증명서나 또는 유명인의 추천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문화에는 강론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증명서와 추천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사도라는 증명서도 또는 누군가의 추천서도 없었습니다. 그것을로 인해서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한 것입니다. 넷째는, 자유를 포기하는 삶 때문입니다. 즉, 당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구원을 자유로 이해를 했습니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 하나님을 위해 살수 있는 자유가 맞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당시 철학에 영향을 받아 육체적인 자유로 이해를 한 것입니다. 즉, 마음대로 살수 있는 자유를 구원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 바울은 육체의 자유 보다는 절제와 금욕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한 것입니다. 다섯째는, 자비량 사역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지역에서 일정 기간 동안 자비량으로 사역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당시 철학자들의 연설과 다르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많은 강연가들은 사례를 받고 강연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강연가들이 말하는 것과 다른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자비량 사역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돈을 좋아하고, 돈을 밝히는 삶으로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하게 된 것입니다. 여섯째는, 결과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신앙이 좋으면 무엇이든 잘되고, 신앙이 나쁘면 무엇이든지 안된다고 여긴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신앙을 세상이 평가한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볼 때, 바울에게는 고난이 끊이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런 바울을 보며, 사도됨을 의심한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한 이유가 또 소개가 됩니다. 1절을 보면,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이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생각하는 바울의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생각하기에 바울은 성도들을 마주하면 너무나도 유순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편지는 대단히 냉정하고, 엄격하고,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식대로 쉽게 말하면, 앞에서는 말 못하고, 뒤에서는 투덜거리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또는, 어떨 때는 부드럽고, 어떨 때는 사나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그랬습니다. 성도들을 마주하면 한없이 부드럽고, 겸손하며, 따듯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서신들을 보면, 대단히 냉정하고, 엄격하고, 무시 무시하게 말을 합니다. 또, 바울의 서신에서 어떤 부분을 보면, 한없이 부드럽고, 자상하고, 이해심 많은 모습이지만, 어떤 부분을 보면, 지나칠 정도로 냉정하고, 날카롭고, 무시 무시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예를들면, 고후11:28절에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얼마나 따듯하고 부드러운 모습입니까? 그러나 반대로, 갈1:8절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입니다. 그렇게 온화하고 따듯하고 유순했던 바울이 때로는 이와같이 냉정하고, 엄격하고, 무시 무시하게 바뀝니다. 이런 바울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한 것입니다.

  2.바울의 이중성이 갖는 의미와 교훈
 그렇다면, 과연 바울의 이중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정말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생각한 것처럼 앞에서는 아무 말 못하는 겁쟁이면서, 뒤에서는 투덜거리고, 비난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이해해야 할까요? 또는 감정기복이 큰 사람으로 이해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바울은 결코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이거나, 감정기복이 큰 사람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이중성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먼저, 바울이 냉정하고, 엄격하고, 무시 무시하게 말하는 것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됩니다. 무엇인 것 같습니까? 그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목표를 말 할 때입니다. 바울은 대단히 냉정하고, 엄격하고, 무섭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고전3:3절 ‘너희는 아직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라고 말을 합니다. 참 강한 표현입니다. 또, 고전3:16절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역시 대단히 강하고 엄중한 표현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다. 바울은 교회가 지향해야 할 목표, 그리스도인들이 완성내야 할 신앙의 목표를 말할 때는 어김없이 냉정하고, 단호하고, 엄격하고, 무섭게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와 신자의 목표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바울이 너그럽고, 부드럽고, 온유하고, 자상하게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들면, 고후1:3-4절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또, 오늘 본문 1절에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라고 말을 합니다. 참 부드럽고, 자상하고, 위로가 되고, 따듯한 말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렇게 너그럽고 따듯하게 말할 때가 언제입니까? 그것은 교회와 신자들이 주어진 신앙의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실수하고 실패하고 낙담했을 때입니다. 고린도후가 그렇습니다. 고린도후서는 분명히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회심한 이후에 쓰여진 서신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실수와 실패가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바울은 위로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신앙의 목표를 향해서 그때 교회와 신자들을 향해서는 한없이 너그럽고, 부드러우며, 따듯하며, 격려의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실수, 실패, 낙담은 목표를 향해 가려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신앙의 목표를 향해 나가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실수, 실패, 낙담도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도 바울이 사도됨을 의심받으면서 까지 이중성을 가지는 이유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성도들에게 신앙에게 신앙의 목표를 제시하기 위함이며, 그리고 목표를 향해 포기하지 않도록, 그들을 더욱 신앙의 목표로 이끌어 가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바울은 이중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으로 인해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사도됨을 의심받게 된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훌륭한 목사는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근거로 내린 결론은, 강단에서는 단호하고, 엄격하고, 분명하게 말하지만 강단아래서는 여러분이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돕는 자 인 것입니다. 이런 제가 될 수 있도록 기도바랍니다. 그렇다면, 훌륭한 리더는 어떤 사람입니까? 분명한 신앙의 목표를 제시할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신앙의 목표를 향해 포기하지 않고 가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이런 리더가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3.바울의 이중성이 주는 교훈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바울의 이중성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2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신앙의 분명한 목표를 갖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목표를 가지는 일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분명한 목표를 가질 때, 신앙생활을 더 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신앙생활을 할 때, 하루의 목표, 한주의 목표, 한달의 목표, 한해의 목표를 가지고 할 때 더 잘할 수 있고, 신앙의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신앙의 분명한 목표가 없으면, 신앙생활이 재미없고, 잘 할 수 없고, 자랄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도리어 신자로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예를들면, 여러분은 고린도교회를 잘 아실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어떤 교회입니다. 고린도교회는 현대 교회가 지향하는 교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안에는 훌륭한 목회자가 있었고, 성경의 지식도 많았으며, 성령의 은사도 많았고, 교회 재정도 넉넉했고, 열정도 대단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계속해서 급성장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교회안에 분쟁, 음행, 소송, 사기, 성적타락, 외도와 이혼, 교만, 우상숭배, 차별대우..., 등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좋은 조건의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심각한 문제를 가지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에게 성경적인 신앙의 목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한 권면이 무엇입니까?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도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신앙의 목표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윗을 보십시오! 더 이상 목표가 없을 때 간음죄를 저질렀습니다. 제자들 역시 분명한 목표가 없었고 그 결과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왜 쉽게 신앙이 흔들립니까? 우리들 왜 쉽게 지칩니까?  우리들이 왜 쉽게 신자다움을 잃습니까? 왜 신앙이 자라가지 않습니까? 왜 감사가 줄고, 원망 불평이 많아집니까? 그 이유는 인생의 목표, 곧 신앙의 목표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신앙의 분명한 목표를 갖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제시하는 신앙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일주일에 예배 9번, 기도 10시간, 성경 30장, 전도 1명..., 등 아닙니다. 성경이 이런 식으로 우리들에게 신앙의 목표를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제시하는 신앙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거룩하라, 하나님을 닮아라, 성령충만하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 맞습니다. 그 모든 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바로 ‘의’입니다. 그렇다면, 의는 무엇입니까? 단순히 옳은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의의 핵심은 ‘하나님의 요구, 하나님의 원하심’입니다. 결국, 성경이 제시하는 신앙의 목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의 완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들에게 ‘의인’ 이라고 불러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은혜이며, 신앙의 목표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의 완성이라는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신앙의 목표가 있습니까? 의외로 이런 신앙의 목표를 놓친 신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꼭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신앙의 목표를 향해 가는 일에 돕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즉, 신앙의 목표를 향해 가다가 실패하고, 실수하고, 낙담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바리새인의 가장 큰 잘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들은 백성들에게 신앙의 목표는 제시했지만, 그 목표를 향해 전진해 가도록 백성들을 돕는 일은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도리어 신앙의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 실수하고 실패하고 낙담한 자들을 비난하고 정죄해서, 그들은 주저앉도록 만들어 버리는 실수를 너무나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이 이 바리새인은 아닙니까? 오늘 이곳에 있는 여러분들은 신앙의 연륜이 있고, 그래서 신앙에 대해서 아는게 많은 분들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실수를 금방 봅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하십니까? 실수와 실패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시대에 바리새인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서로의 실수와 실패에 위로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사람, 곧 그 사람이 신앙의 목표에 도착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 일을 잘하는 성도가 훌륭한 성도인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 주변을 둘러 보십시오! 아직 신앙의 목표를 찾지 못한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분명하게 신앙의 목표를 제시해주십시오! 또, 여러분 주변에 신앙의 목표를 향해 나가다가 실수하고 실패하고 낙담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다가가서 괜찮다고 말하고, 위로하고, 힘을 내라고 말하고, 다시 신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하십시오! 마치 예수님께서 고기잡이 돌아간 베드로에게 다가가 하셨던 일을 여러분도 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이중성을 통해 사도됨을 의심받는 것을 감수했던 이유이며 우리들에게 주는 결론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들에게 두렵게 다가오시지만, 때로는 사랑과 따듯함으로 다가오십니다.
  본문과 삶
 1)우리를 신앙의 완성의 자리로 이끄시기 위함입니다.
 2)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도들을 신앙의 목표로 이끌기 위해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따듯하게 했습니다.
 3)우리도 ‘의’ 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합니다. 그러나 서로 위로, 격려, 용기주는 일을 놓치면 안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우리 사랑하는교회 신앙의 목표를 분명히 제시하고, 그 목표를 향해 함께 나가도록 돕는 훌륭한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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