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왕상19:1-14절
제목 : 다시 새로운 목표를 갖아야 합니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올림픽이나 큰 대회에 참석했던 선수들, 특별히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 대부분이 격는 2가지 증상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심리적 공허함을 느끼는 것이고, 둘째로, 그 공허함을 이기기 위해 다양한 중독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미국의 수영황제인 펠프스는 올림픽과 같은 큰 대회를 마치면, 1주일에 3,40시간 이상을 전투시뮬레이션 게임에 빠진다고 하며, 또 어떤 선수들은 마약, 술, 향락, SNS, 성중독...,등 에 빠지게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왜 선수들이 공허함에 빠질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올림픽이 끝나게 되어, 더 이상 그들에게 목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선수들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올림픽 기간동안 매일 밤마다 올림픽을 시청한 우리들도 공허함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일에 열심을 내거나, 어떤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신앙의 무기력함을 느끼거나, 신앙의 침체를 격게 됩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목표를 잃어버림으로 신앙의 무기력함과 신앙의 침체를 격은 엘리야선지자를 소개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목표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수련회를 마친 우리에게,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신앙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를 확인함으로, 신앙의 무기력함이나 침체의 침체를 격지 않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엘리야의 열심있는 신앙
먼저, 우리들이 생각할 것은, 엘리야가 어떤 사람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엘리야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엘리야를 선지자의 대표로 인정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엘리야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천국에 올라간 사람입니다. 이정도로 엘리야는 아주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엘리야를 “신앙의 열심이 있었던 사람” 이라고 소개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엘리야가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열심을 품고, 얼마나 열심이 충성했는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보시면,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4절에서도 다시한번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얼마나 유별한 열심을 품고 있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유별이라는 말은, 두드러지게 다르다, 특별하다는 뜻입니다. 즉, 엘리야는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단한 열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이방선지자 850명 선지자 앞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라고 담대히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리고 당시 아합왕과 이세벨 여왕에게 특별 대접을 받던 이방의 거짓선지자 850명을 죽이는 일에도 전혀 두려움이 없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방선지자에 미혹되어, 하나님과 우상 앞에서 갈팡 지팡 머뭇거리는 어리석은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그들의 신앙을 바로 잡기 위해 목숨을 걸고 용감히 앞장선 사람이 바로 엘리야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엘리야는 하나님을 향해 대한한 열심, 신앙의 특별한 열심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꼭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도 엘리야처럼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맡겨진 사명을 위해, 또 신앙생활 가운데 엘리야와 같이 열심을 본받고, 열심을 갖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열심이 있으십니까? 지금 여러분은 어떤 일에 가장 열심이 있으십니까? 혹시, 돈버는 일, 성공하는 일, 자식키우고 손주 봐주는 일,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일..., 등 에만 열심이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일에든 열심을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놓치지 말아야 할 열심의 내용들이 있음을 잊으면 안됩니다. 즉, 우리들이 성경을 읽다보면, ‘열심히’라는 부사와 함께 사용되는 가르침들이 나옵니다. 예를들면, 롬12:11절에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고 말을 하고, 벧전3:13절에서는 ‘열심으로 선을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계3:19절에는 ‘열심으로 회개하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벧전4:8절에서는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주를 섬기는 일, 선을 행하는 일, 회개하는 일, 서로 사랑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물론, 열심히 라는 부사가 없어도 우리들이 열심을 낼 것은 많습니다. 예를들면, 묵상하는 일도 열심내야 하고, 기도도 열심내야 하고, 예배도 열심내야 하고, 찬양도, 감사도, 순종도, 헌신도, 인내, 찬양, 전도도, 봉사도, 섬김도, 구제도..., 열심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엘리야처럼, 열심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마땅한 것들에 대한 열심을 회복하고, 열심을 낼수 있기를 바랍니다.
2.엘리야가 격은 신앙의 침체
우리는 지금까지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대단한 열심을 가진 사람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소개되는 엘리야는 전혀 딴 사람입니다. 4절을 보면, 엘리야가 이세벨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소리를 듣고, 광야로 도망을 칩니다. 그런데 광야로 도망친 엘리야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그가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의 보편적인 행동과 같이 혼자 있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을 비교합니다.(10절) 그리고 로렘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합니다. 이것만 보아도 엘리야는 예전의 엘리야가 아닙니다. 도리어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고, 심각한 신앙의 무기력함과 신앙의 침체에 빠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참으로 선지자 답지 못하고 않고, 열정도 없고, 감사도, 은혜도, 소망도 없는 아주 형편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물론, 엘리야 자신도 자신에게 찾아온 신앙의 무기력함과 신앙의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안한 것은 아닙니다. 3절을 보면, 신앙의 무기력함과 침체에 빠진 엘리야는 브엘세바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단순히 엘리야가 이세벨의 위협을 피해 브엘세바로 도망한 차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찾아온 신앙의 무기력함과 침체를 극복하고자 하는 그의 처절한 노력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브엘세바는 아브라함이 에셀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께 처음으로 신앙의 고백을 한곳이며,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도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나 아브라함의 언약을 다시한번 재확인한 곳이며, 또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도 이곳에서 단을 쌓음으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한 장소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브엘세바는 성지와 같았고,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곳을 영적인 장소로 삼고 즐겨 찾았던 곳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엘리야는 자신의 신앙의 무기력함과 침체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성지인 브엘세바로 찾아간 것입니다. 마치 요즘식대로 말하면, 기도원에도 가고, 신앙의 특별한 시간은 갖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야의 신앙의 무기력함이나 침체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엘리야에게 왜 이런 신앙의 무기력함과 신앙의 침체가 온 원인은 무엇일까요? 사역으로 인해서 너무 피곤하고 지쳐있었기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본문 5-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충분한 음식도 주셨고 충분한 쉼도 주셨고, 힘도 주셨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9절을 보면, 엘리야는 여전히 신앙의 무기력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신앙의 침체에 빠져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신앙의 무기력함이나 침체는 잘 쉰다고, 아무것도 안한다고 해결되는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엘리야가 신앙의 무기력함과 신앙의 침체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엘리야에게는 동역자가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늘 혼자 일하는 것을 좋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나누고, 신앙의 문제를 함께 나눌 대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쉽게 신앙의 무기력함과 침체에 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 마음과 삶을 나눌 수 있는 그런 동역자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배우자와는 그런 관계이며, 여러분의 자녀에게 그런 동역자가 되어주고 있습니까? 이러한 동역자가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축복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서로를 붙들어주고 이끌어주고, 세워주는 이런 동역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엘리야에게는 10절을 보면, 교만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즉, 다른 사람들은 모두 우상 앞에 무릎을 꾾었지만 자신 만큼은 그러지 않았다라는 심각한 우월감과 교만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렇지 않았습니다. 엘리야가 모르는 우상에게 무릎꾾지 않은 7000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자신만 우상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다는 우월감과 교만을 가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만한 마음을 품으면 신앙이 무기력해지고, 신앙의 침체를 격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중에 엘리야와 같은 교만한 마음을 품고 있는 분은 안계십니까? 예를들면, 내가 아니면 안될 것 같고, 나만 잘하는 것 같고, 나만 옳은 것 같고, 내 말과 생각만 옳은 것 같고, 내 방법이 제일인 것 같고..., 등 이게 교만입니다. 아직 잘 모르겠습니까? 간단히 말하면, 누군가를 평가하고 답을 제시하고 싶어 하는게 교만인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교만한 마음 때문에 신앙이 무기력해지고, 신앙의 침체를 격게 되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저는 교회에서 열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이런 교만한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늘 조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엘리야에게 신앙의 무기력함과 침체가 찾아온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셋째로, ‘더 이상의 선지자로의 목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선지자로서 자신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누구보다도 열심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에게 우상천지가 된 북이스라엘 땅에서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는 사명 곧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목표를 다 이루고, 더 이상 엘리야가 감당해야 할 사명과 목표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엘리야는 무기력해지고, 신앙의 치명적인 침체를 격게 된 것입니다.
이 점은 오늘 우리들이 읽지 않은 다음 본문에서 쉽게 확인할수 있습니다! 신앙의 무기력함과 신앙의 침체에 빠진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끄시고 세우시는가?를 확인하면 됩니다. 먼저 하나님은 탈진하여 지친 엘리야에게 5-7절을 보면 먼저 하나님께서 어루만져주고 계십니다. 원어적인 의미는 하나님이 안마하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께서 축 쳐진 엘리야의 어깨를 주물러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표현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탈진한 우리들을 격려하시고, 일으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혹시, 여러분이 신앙의 무기력함과 침체에 있다면, 하나님께 엘리야를 어루만져 주신 것처럼 나를 어루만져 주시기를 간구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들이 함께 읽지는 않았지만, 18절을 보면, 엘리야가 보지 못했던 7000명의 동역자가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15-17절을 보면, 엘리야를 어루만져 주신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새로운 사명 곧 목표를 주십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하사엘을 아람의 왕으로 세우고, 예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고, 엘리사를 자신의 후계자로 세울 사명 곧 새로운 목표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왕상21장에 가면, 그렇게 두려워하던 아합과 이세벨 앞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새로운 목표가 엘리야의 신앙의 무기력함과 침체를 극복하고, 예전처럼 위대한 선지자의 모습으로 회복되게 한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엘리야를 묵상하면서, 바울이라는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바울 역시, 엘리야처럼 위대한 하나님의 일군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 평생의 사역속에 신앙이 무기력해지지 않았고, 신앙의 침체의 순간도 격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바로 바울에게는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목표가 무엇입니까? 빌3:12-14절을 보면,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라고 말을 합니다. 이런 분명하고 영원한 목표를 바울이 가졌기에 그는 무기력하지 않았고, 신앙의 침체 또한 격지 않은 것입니다.
이처럼 목표가 있는 삶과 목표가 없는 삶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게 됩니다. 리더십 전문가인 John Maxwell 은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간단히 정의했습니다. 즉, 성공하는 사람들은 ‘삶의 목표가 분명한 사람들’ 이지만,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현재만 보고, 지금만 보는 사람들’ 이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30대에 백만장자에 오른 폴 마이어라는 분은 자신의 성공 원인의 75%가 바로 목표 설정에 있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처럼 목표가 중요합니다. 학생도 목표가 중요하고, 가정도 목표가 중요하고, 사업도 목표가 중요합니다. 더욱이 신앙생활에도 목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신앙의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열심과 열정이라는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신앙의 분명한 목표가 없다면, 여러분은 무기력하고 다 귀찮고 싫은 마음뿐일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걸어간 신앙의 무기력함과 침체의 길을 따라 걷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신앙생활이 무기력해지고, 그래서 아무것도 안느껴지고, 아무런 마음의 감동도 없고, 신앙생활에 열심을 낼 생각조차 없는 것은, 환경이나 다른 이유가 아니라, 여러분에게 신앙생활의 목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제 우리교회에 너무나 중요한 목장연합수련회를 은혜 가운데 마쳤습니다. 제가 오늘 설교를 준비한 이유는, 여러분이 오늘 본문의 엘리야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즉, 더 이상의 목표가 없으면 여러분은 마음이 우울해 질 것이고, 탈진을 느끼게 될 것이고, 교만하게 될 것이고, 원망과 불평이 생기게 될 것이고, 공허하게 될 것이고, 열정이 사그라 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목표를 마친 여러분 모두에게 새로운 목표가 재설정되기를 바랍니다.
3.우리 모두의 새로운 신앙의 목표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어떤 신앙의 목표를 갖어야 할까요? 우리 교회적으로 보면, 예배위원 훈련하는 일, 9월부터 목장별 심방하는 일, 10월부터는 목장전도축제를 준비하는 일, 그리고 11월부터는 한해 결산 및 새해 계획하는 일..., 등입니다. 이런 목표를 다시 품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들 모두에게 원하시는 신앙의 목표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 부분은 스스로 고민하시기를 바랍니다. 예만든다면, 성경읽기라는 목표, 기도라는 목표, 잘못된 삶을 고친다는 목표, 전도에 대한 목표, 가정안에서의 목표..., 등 그 외에 저는 여러분이 구체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날마다 열심을 낼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활력이 넘치고, 신앙의 성장이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들이 항상 열심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이 무슨 일에든지 열심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2)그러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신앙의 목표를 세우는 일입니다. 만일 신앙의 목표를 놓치게 되면, 누구라도 엘리야처럼 무기력하게 되고, 신앙의 침체를 격게 되는 것입니다.
3)그러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표를 늘 세우며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신앙의 목표를 가짐으로 힘있고,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