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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즐겨내는 자 되라!(고린도후서강해49)
 본문말씀 : 고후9:7-9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7.7.26
조회 : 9,540   추천 : 0  
본문 : 고후9:7-9절  고린도후서강해49
제목 : 즐겨내는 자 되라!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논어에 보면, '知之者不如好之者(지지자 불여호지자) 好之者不如樂之者(호지자 불여락지자)' 라는 말이 나옵니다. 즉,  '아는 자는 결코 좋아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좋아하는 자는 결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말로는,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노력을 해야 하며, 노력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도 즐기지 못하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을 하면, 어떤 일이든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구제연보를 즐거움으로 할 것을 권면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도 헌금생활이든, 신앙생활이든 즐거움을 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계산적인 신자가 되면 안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나 하지 말지니’ 라고 말을 합니다. 즉, 구제연보를 하는 일에 3가지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마음에 정한 대로 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인색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고, 셋째는, 억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3가지 권면을 하나로 요약을 하면, ‘즐겨내는 자’ 가 되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즐거움으로 구제연보에 참여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헌금생활을 즐거움으로 하고 계십니까? 또, 여러분은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하고 계십니까? 또, 여러분은 교회에서 봉사의 일을 할 때 즐거움으로 하고 있습니까? 또, 여러분은 직분을 감당하는 일에도 즐거움으로 하고 계십니까? 네 저는 여러분 모두가 헌금생활로부터 신앙생활 전부가 억지가 아닌, 즐거움으로 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듯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즐거움으로 구제연보에 참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즐겨 내라는 말은 고린도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넉넉한 헌금을 유도하기 위한 말이 아닙니다. 이미 말씀 드린바와 같이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구제연보를 말하는 것은, 구제연보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제연보를 통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신앙의 교훈을 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즐겨 내는 자가 되라’ 는 말씀 속에 담겨있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계산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면 안된다’는 교훈입니다. 여러분에게 먼저 묻습니다. 왜 헌금할 때 인색하게 될까요? 또 왜 헌금이 억지 곧 마지못해 하게 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정해진 한달 수입에서 내가 써야 할 것들을 계산하기 때문에 헌금이 인색하게 되고, 억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계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인색하거나 억지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마치 헌금할 때 인간적으로 계산하지 말고, 많이 내라는 것처럼 들려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계산하지 말고 넉넉히 많이 하라는 의도는 아닙니다. 지금 바울은 구제연보라는 것을 통해서 신앙의 원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더 나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계산하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들이 더 나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계산하는 습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들이 신앙에 실패하는 이유는 계산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점은 성경 여러 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있다면, 12명의 정탐군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지파에서 1명씩 선출하여 가나안땅을 40일간 정탐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 얼마나 기름지고 복된 땅인가를 보게 함으로 기대와 소망을 갖고, 더욱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을 결단하게 하시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러나 40일 후 돌아온 10명의 점탐군들은 비록 땅은 좋지만 그 땅을 차지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악평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악평으로 인해서 온 이스라엘이 신앙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0명의 정탐군들이 인간적으로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0명의 정탐군의 이야기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산하지 않은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기대와 소망을 가질수 있었습니다. 또, 빌라도를 생각해보십시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한 총독입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무엇보다 예수님에게는 죄가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죄함을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풀어주지는 못했습니다. 과연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난 군중들이 예수를 못밖으라고 말했기 때문일까요? 네 맞습니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무죄하신 예수님을 풀어주는 것과 성난 군중들의 요구대로 사형을 선고하는 일을 놓고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즉, 어느쪽이 자신의 미래에 도움이 될지, 어떤 것이 로마황제에게 인정받는 일일지를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어느날 예수님께서 5000명의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하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5000명을 먹일 것을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께 제자로 부름을 받았고, 많은 가르침을 받았지만, 전혀 제자답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은30에 팔았고, 그로인해 예수님께서 붙잡히시자 모두들 다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제자로서 실패한 것입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늘 끊임없이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누가 더 높은지 계산했고, 어떤 것이 자신의 신변에 유익할지 계산했고, 자신의 미래를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실패자들은 모두가 계산한 사람들입니다. 이렇듯 계산은 우리의 신앙을 가로막고, 실패하게 만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 역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 역시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들도 생각보다 계산적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는 일이 많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십일조의 문제, 새벽예배의 문제, 전도의 문제, 주일을 지키는 문제, 내 생각을 포기하는 일, 내 주장을 내려 놓는 일,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일, 즉, 용서하는 일, 사랑하는 일, 양보하는 일, 분주한 일과 중 묵상하는 문제, 이웃을 돌아보며 돕고 섬기는 문제..., 등 결국에는 우리들이 인간적으로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들이 인간적인 계산을 안하게 되면,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신앙의 일들을 할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어떤 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며 죽어갈 때 뛰어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계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부모입니다. 왜냐하면, 부모는 자식의 죽음 앞에 계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신앙의 성공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10명의 정탐이 했던 계산, 빌라도가 했던 계산, 제자들이 했던 계산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신앙생활을 계산 적으로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혹시, 그래도 여러분의 마음에 ‘그래도 될까?’ 라는 생각이 드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말이 무엇입니까? ‘모든’‘넘치게’입니다. 하나님께서 채우실 것에 대한 약속입니다.

  2.의무가 아닌 특권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즐겨내는 자가 되라’ 는 말의 교훈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 첫째는, 계산하지 말하는 권면이었습니다. 둘째는, ‘의무로가 아닌 특권으로 하라’ 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예루살렘교회를 위해서 구제연보를 할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의무와 책임으로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의무와 책임으로 하게 된다면, 구제연보를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제연보를 하는 일을 의무와 책임으로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제연보 하는 일이 인색함, 억지 아니고 즐거움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로 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특권’ 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제연보하는 일을 특권으로 생각한다면, 인색하지도, 억지도 아닌 즐거움으로 할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구제연보를 하는 것은 대단한 특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얼마전에 살펴본 바와 같이 구제연보는 단지 헌금을 하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웃을 사랑하시고 이웃을 위해 일하심에 동참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누구입니까?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야 말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특권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참여한 자로서 칭찬과 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역시 대단한 특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구제연보는 대단히 영광스러운 특권입니다. 결국,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구제연보는 의무나 책임 이전에 영광스러운 특권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제연보는 의무나 책임 이전에 특권입니다. 물론, 구제연보만이 특권은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행하는 모든 일이 다 특권인 것입니다. 예를들면, 예배는 의무일까요 특권일까요? 의무가 맞습니다. 그러나 의무 이기 이전에 특권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나 하나님께 예배할수 없고,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할 만큼의 자격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 순종은 의무일까요? 특권일까요? 순종도 의무입니다. 그러나 의무이기 이전에 순종은 특권입니다. 그 밖에도 기도하는 것도 특권이고, 전도하는 것도 특권이고, 용서하는 것도 특권이고, 사랑하는 것도 특권이고, 봉사의 일을 하는 것도 특권이고, 고난을 견디는 것도 특권이고, 여러분이 교회안에서 직분자로 섬기는 것도 특권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의 부모로 사는 것도 특권이고, 믿는 남편 아내로 사는 것도 특권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면서 의무와 책임으로 여겨지던 모든 것이 의무와 책임 이전에 특권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의무와 책임으로 여기던 모든 것을 특권으로 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여러분은 오늘 바울의 권면처럼, 즐겨 내는 자, 즐거움으로 하는 자가 될수 있고, 더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살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신앙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않는 것을 의무와 책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특권이라고 여기지 못한 것입니다. 왜 특권입니까? 먹을수도 먹지 않을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얻었다는 점이 특권이고, 그리고 그 자유의지는 결국, 하나님께 칭찬과 상을 받을수 있는 근거이기 때문에 특권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그것을 특권으로 여기지 못하고 의무라고만 여긴 것입니다. 그 잘못된 생각속에 유혹이 스며든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가나안 땅에서 신앙이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제사장 나라됨과 십계명의 말씀을 의무와 책임으로만 여겼지, 특권이라는 사실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제사장 나라가 된 것은 특권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당시 가장 보잘 것 없는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나라를 제사장 나라로 삼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십계명을 주시며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 삼았다는 말입니다. 엄청난 특권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신이 선민이고, 하나님 백성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특권으로 여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신앙은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순종하는 일이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쉬운 일이라고 말을 합니다. 신30:11절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그러면서 신30:14절에서는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고 말을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은 대단히 쉬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이 된 것이 어마 어마한 특권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 에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용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7번이면 됩니까?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일흔번씩 일곱 번까지라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베드로는 7번의 용서를 말했을까요? 그것은 베드로가 용서를 의무로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흔번씩 일곱 번을 말하심으로 용서는 의무가 아닌 특권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내가 남편을 부르는 호칭이 있다면서요, 집에서 밥을 1번 먹으면 일식이, 2번 먹으면 이식놈, 3번 먹으면, 삼식이 새끼~  왜 이런 말도 안되는 말이 나왔습니까? 그것은 아내가 남편에게 밥을 해주는 것이 특권이 아니라 의무로만 여기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순종이 느껴진다면 여러분은 순종을 의무로 대하고 있는 것이고, 용서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용서를 의무로 여기고 있는 것이고, 사랑이 안된다면 여러분은 사랑을 의무로만 여기기 때문이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이 안된다면 그것은 성경을 읽는 것을 의무로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요구받는 모든 것은 의무이기 전에 거룩하고 영광스러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권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확신하고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신앙생활을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3.우리를 통해서 의를 전하기를 원하시기 때문
 우리는 지금까지 바울이 말한, ‘즐겨내는 자가 되라’ 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는, 계산하지 말라는 것이고, 둘째는, 의무와 책임이 아닌 특권으로 여기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구제연보를 할 때, 계산하지 말고, 특권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제 9절을 보면, 바울은 시112:9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말을 합니다. 즉,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가난한 자에게 구제하는 자가 의로운 사람이라는 말입니까?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2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구제하는 자가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계산하거나 의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두 번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세상에 의와 거룩과 복을 전하기를 원하시는 분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넘치도록 주시는 것이고, 복을 넉넉히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세상에, 그리고 여러분의 이웃에 사랑을 증거 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세상에 의와 거룩을 전파하기를 원하시고, 여러분을 통해서 세상에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은혜와 복을 넘치도록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산하지 마십시오! 의무라고 여기지 마십시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매일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속에 사는 자들입니다.
  본문과 삶
 1)계산하지 마십시오! 
 2)의무가 아닌 특권으로 모든 것을 받고 감당하십시오!
 3)즐거움으로 하십시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즐거움을 되어지는 신앙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와 거룩과 복이 전파되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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