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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많이 심는 자가 되라!(고린도후서강해48)
 본문말씀 : 고후9:1-6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7.7.19
조회 : 6,724   추천 : 0  
본문 : 고후9:1-6절  고린도후서강해48
제목 : 많이 심는 자가 되라!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여러분은 ‘해병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라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귀신까지도 잡는다는 강한 해병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강한 훈련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훈련을 통해서 무엇이든 더 잘 하고, 더 나은 실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강한 그리스도인 역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강한 훈련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앙의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더 나은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 모두가 더 나은 신앙을 위해 노력과 훈련에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신앙의 실력은 꾸준한 것.
 우리는 지난 시간 사도 바울이 디도와 2명의 형제들을 고린도교회에 보낸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2가지 원리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점을 조심해야 합니까? 유혹과 시험거리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잘하려고 하는 마음, 그리고 좋은 결과를 만들려는 마음을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이 잘하고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보다 은혜롭고 덕을 세우는 방식으로 일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일은 함께 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닌, 함께 일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일이 더디고 불편하고 어려워도 항상 함께 일하는 방법을 놓치면 안됩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디도와 2명의 형제들을 고린도교회에 ‘보낸 이유’, 또는 ‘그들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1절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즉,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무슨 말입니까?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구제연보를 하라는 권면이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1년전부터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마음에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계속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칭찬합니다. 2절을 보면, ‘너희의 열심히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으니라’ 무슨 말입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구제연보를 모금하기 시작한 일로 인해서 마게도냐 지역 교회의 성도들에게 큰 도전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되기 1년전에 누구도 구제연보를 시작하기 이전에 이미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연보를 결심했고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고린도교회 성도들로 인해서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이 도전을 받았고 동참했고, 구제연보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이 디도를 포함한 3명의 일군을 보낸 이유를 설명합니다. 3절에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가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3명의 일군을 보낸 이유를, 고린도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구제연보를 잘 준비하도록 돕기 위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4절을 보면, 이번에는 반대로 말을 합니다. 즉, 3명의 일군을 고린도교회에 보낸 이유는, 구제연보가 준비 되지 않는 일이 없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5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구제연보를 준비하는 일을 돕도록 보냈다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이 3명의 일군을 고린도교회로 보낸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구제연보를 준비하는 일을 돕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5절에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준비된 연보가 하나님이 받이 실만한 진정한 연보라는 말입니다. 물론, 이 말은 주일에 지갑에서 꺼내드리는 헌금은 참된 헌금이 아니고, 미리 봉투에 넣어둔 것이 참된 헌금이라 식의 말은 아닙니다. 다르게 그러나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헌금은 즉흥적이고, 감정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헌금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준비된 헌금은 무엇입니까?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리고 신앙의 판단에 근거하여 결심하고, 준비해서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준비’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연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만한 연보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보의 준비를 위해서 3명의 일군을 보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단순히 연보 곧 헌금에만 국한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실 것입니다. 구제연보라는 형식을 통해서 신앙의 교훈을 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 드린바와 같이 고린도전서에서는 은사가 대단히 강조가 됩니다. 그러나 은사 그 자체를 교훈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은사를 통해서 신앙의 중요한 것들을 교훈하고자 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교훈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신앙생활은 절대로 즉흥적이거나 감정적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듯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구제연보를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마게도냐 지역 교회와 성도들에게 도전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구제연보를 제대로 모으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구제연보를 즉흥적으로 감정적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작은 엄청난 일을 할 것처럼 보였지만 금방 식어버리고 중단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에도 이런 경험이 참 많습니다. 예를들면, 다이어트 한다고 헬스장을 등록을 했는데 몇 번 못가고, 공부 하겠다고 책상 정리 다해 놓고 피곤해서 자고, 성경 읽기 시작했는데 창세기를 넘어서지 못하고, 교회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뭔가 해보겠다고 시작했는데 금방 지쳐서 포기해버리고..., 등 이런 일은 우리의 일상에도, 신앙생활속에서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용두사미가 되어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즉흥적이고, 감정적으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꼭 기억할 것은, 즉흥적, 감정적으로 하는 것은 진짜 실력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순간의 감정으로 즉흥적으로 100만원 헌금한 사람과 10만원씩 10달을 헌금 사람 중에 누가 더 신앙의 실력이 좋은 사람일까요? 100만원한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금방 후회하고 돌려달라고 합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법정소송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당연히 10만원씩 10달을 하는 사람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10만원은 작은 돈이 아닙니다. 많은 생각과 고민과 갈등을 이겨내야 하는 금액입니다. 그렇다면, 10만원을 10달을 낸다는 것은 10번의 신앙의 싸움을 하고 이겼다는 말입니다. 결국, 신앙의 진정한 실력은 얼마나 쉽게 뜨거워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꾸준히 하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구제연보를 준비하라고 말하는 의도인 것입니다. 즉, 꾸준한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좋은 의미로 신앙생활이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 실력이 좋은 것입니다. 즉, 저절로 기도가 나오고, 저절로 회개가 나오고, 저절로 찬송이 나오고, 저절로 돈지갑이 열리고, 저절로 감사하고, 저절로 교회로 발걸음이 옮겨지고, 저절로 봉사의 일에 참여하게 되고, 저절로 말씀의 지배를 받고, 저절로 배려하게 되고, 저절로 인내하게 되고, 저절로 사랑하게 되고..., 여러분! 갈5장에 나오는 성령의 9가지 열매는 9가지 아니라는 점을 아십니까? 그리고 우리가 쥐어 짜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충만하게 된 신자에게 저절로 나오는 것임을 아십니까? 이것이 진짜 신앙의 실력입니다. 즉, 좋은 의미로 신앙이 습관되어지는 것, 저절로 되는 것, 꾸준한 것이 바로 진짜 신앙의 실력이고,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하고자 하는 말씀의 핵심인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준비된 신자가 되어 신앙생활이 꾸준히, 저절로 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2.신앙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준비된 신자, 그래서 꾸준히 하고, 저절로 하는 신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신앙의 훈련’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 6절을 보십시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 말을 합니다. 너무나 상식적인 말입니다. 당연히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 말을 하는 의도와 목적은 단순히 많이 심으라(곧 헌금을 많이 해라)는 것을 말하려는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려는 의도와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많이 거두기 위해서는 많이 심는 것만 필요한게 아니라,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씨를 많이 뿌리기 위해서는, 그리고 많이 거두기 위해서는 밭을 많이 갈아두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고랑도 파고, 그리고 씨를 뿌린 후에는 비오기를 기다려야 하고, 비가 오지 않으면 무슨 수를 쓰던 물을 충분히 주어야 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김도 매주어야 하고, 풀도 쏙아 주어야 하고, 거름도 주어야 하고, 넘어진 작물은 세워 묶어도 주어야 하고, 가지치기도 해주어야 하고..., 등 이렇듯 많이 거두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준비와 노력없이 많이 거둘 수 없는 것입니다.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회에서 좋은 성적, 좋은 실력을 갖기 위해서는 피나는 준비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대로, 김연아 선수가 빙판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더블악셀, 트리플악셀을 할수 있는 것은 피나는 노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즉,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결코, 훈련 없이는 좋은 성적, 더 나은 실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한번에 좋아지지 않습니다. 하루 아침에 저절로 되는 신앙을 갖을수 없습니다. 한번 감동해서 눈물을 쏙 뺐다고 신앙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한번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해서 신앙이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한번 크게 은혜를 받았다고 신앙이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의 연수가 많다고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결코, 신앙의 로또는 없습니다. 이 점은 성경의 인물을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숭배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하루 아침에 믿음의 조상의 수준을 갖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적어도 25년간의 신앙의 다양한 훈련을 통해서 그는 비로서 믿음의 조상에 걸맞는 신앙의 수준을 갖을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야곱을 보십시오! 그는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처럼(뺴앗고 경쟁하고) 욕심쟁이었고, 대단히 자기중심적이며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이스라엘 곧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될수 있었던 것은, 그가 20여년의 라반 삼촌집에서의 신앙의 훈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요셉은 원래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철부였습니다. 그런 철부지가 형들의 잘못을 덮어주고 용서해주는 믿음의 사람이 된 것 역시, 10여년의 신앙의 훈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신앙의 수준은 각기 다 다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러분이 신앙의 훈련을 감당한 것만큼 신앙이 자랐다는 점입니다. 즉, 신앙의 훈련을 많이 분은 더 많이 성숙했을 것이고, 신앙의 훈련을 적게 한 사람은 신앙이 적게 자랐을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연수와 신앙의 수준은 비례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할수도 있습니다. 다시말해, 신앙의 연수가 10년인 사람이 신앙의 연수가 5년인 사람보다 더 낫다는 공식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때로는 신앙의 연수가 30년인 사람보다 신앙의 연수가 5년인 사람이 더 나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책상에 3시간 앉아 있는 학생과 1시간만 앉아 있는 학생 중에 누가 공부를 잘할까요? 꼭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학생이 잘 할까요? 사실 몇시간 앉아 있는지가 중요 한게 아닙니다. 어떤 마음, 어떤 자세로 앉아 있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년을 했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신앙의 훈련에 얼마나 신실하게 임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신앙의 훈련을 기쁨과 감사로 받아 신앙이 더욱 성숙해 지기를 바랍니다.

  3.오늘 훈련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신앙의 훈련이란 과연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훈련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교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예배생활 열심히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성경 많이 읽고 기도 많이 하는 것입니까? 물론, 이러한 것들도 신앙의 훈련입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신앙의 훈련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훈련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먼저,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삶의 모든 자리 곧 가정, 일터, 사회, 교회..., 등이 신앙의 훈련을 위한 장소, 곧 신앙의 훈련소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속에서 격게 되는 다양한 순간들, 예를들면, 기쁨, 슬픔, 성공, 실패, 낙심, 죄절, 분노, 상처, 절망, 소망, 감사, 원망..., 등이 신앙을 위한 훈련프로그램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훈련이란 무엇일까요? 크게 2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갈망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다. 이 순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려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지금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신앙의 훈련에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원하심을 갈망하는 자세는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지난 한 주간을 살면서 그토록 갈망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지금 이시간 여러분이 갈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혹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원하심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신앙의 훈련을 잘 받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지금 이 순간이 여러분의 신앙과 인생에 큰 유익과 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신앙이 자라갈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원하심에 대해서 갈망이 없다면, 여러분의 신앙의 실력이 전혀 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 순간마다 하나님께 대한 갈망의 마음을 품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과 원하심에 대한 갈망을 품는것 만큼이나 중요한 자세가 있습니다. 그것은 둘째로, 순종의 자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 원하심을 아는 것으로 멈추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원하심에 순종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옛날에 말씀드린 예화입니다. 어느 할머니가 지팡이를 들고 산길을 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갈림길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지팡이를 가운데 두고 넘어지는 쪽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가겠노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지팡이에서 손을 떼었습니다. 왼편으로 넘어졌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다시한번 지팡이 갈림길 사이에 두었습니다. 내심 자신은 오른편으로 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지팡이에 손을 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왼편으로 넘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할머니는 받아 드릴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 번이고 계속해서 지팡이를 넘어뜨렸습니다. 그러다가 오른쪽으로 지팡이가 넘어졌습니다. 그러자 이 할머니는 ‘하나님도 나와 똑같은 생각이시군요’ 하고 오른쪽 길로 갔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고민하는 자세는 너무나 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한다면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훈련이며, 신앙의 싸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 지금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훈련이 맞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습니까? 그런 자세가 여러분으로 하여금 어느 때든 감당할 수 있는 준비된 성도가 되게 할 것이고, 저절로되어지는 신자가 되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매일 매일의 삶을 신앙의 훈련이 되게 하십시오! 무엇보다도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의 훈련을 외면하지 말고 잘 감당하도록 합시다. 이것이 ‘많이 심는자가 되라’는 바울의 가르침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본문과 삶
 1)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자라게까지 해주지는 않습니다. 
 2)신앙훈련을 통해서 신앙은 자라게 됩니다.
 3)하나님의 뜻을 갈망하며 살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십시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매일 주어지는 신앙의 훈련을 잘 감당함으로 신앙의 실력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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