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삼상15:1-16절 사무엘상 강해20
제목 : 순종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헨리 블렉커버의 “하나님 음성에 응답하는 삶”이라는 책에 자신이 첫번째 집례한 잊지못할 장례식에 대해 소개하는 글이 있습니다. 헨리 목사님이 처음으로 집례한 장례는 자신의 교회 성도의 아들인 아주 어린 꼬마아이였다고 합니다. 장례식이 있기 얼마전 목사님은 그 아이의 집에 심방을 갔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부모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청개구리 같은 아이었습니다. 부모가 앉아 있으라고 하면, 일어서 나가고, 이리 오라고 하면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그런 아이었습니다. 하루는 대문이 열린 것을 보고 이 아이가 나가는 것을 본 부모가 위험하니 나가지 말라고 말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따라나가보니 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오는 것입니다. 이 아이의 엄마는 돌아오라고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엄마의 소리를 듣고도 말을 듣지 않고 길가로 나가, 결국은 차에 치어 죽고 만것입니다. 그리고 헨리 목사님의 첫 장례식이 된 것입니다. 이 아이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목사님은 순종이, 그리고 순종을 위한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큰 교훈을 얻었고, 순종이 마치 생명과 같다는 확신을 갖았다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든 신자들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아이와 같은 불행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음으로 비참한 최후에 다가서는 사울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완전한 순종을 다짐하심으로 신자로서 풍성한 생명력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부족한 순종은 참 순종이 아닙니다.
먼저 사무엘은 1절에 사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당부합니다. 그러면서 3절에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왜냐하면, 아말렉은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을 공격했으며(출 17:8~16절) 3-400여년간의 회개 기간을 주셨음에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울을 통해서 심판하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명령을 들은 사울은 4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소집해 21만명의 군대를 소집하게 됩니다. 그리고 7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공격하고 큰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8-9절을 보면, 아각왕을 사로잡고, 좋은 가축들은 살려두었습니다. 아말렉에 속한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울을 보신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11절에 “사울을 세워 왕을 삼은 것을 후회한다” 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후회하다’ 라는 말은 주의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이 잘못임을 인정하셨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사울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속상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왕의 자리에서 폐위시킬것을 다시한번 재차 확인하게 됩니다. 한편, 11절을 보면, 사울에 대한 말씀을 듣고 사무엘이 근심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도 서로를 위해 이런 중보기도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12절을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울이 갈멜에 자신의 이름으로 비석을 세우고 돌아오던 길에 길갈에서 사무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사무엘은 사울의 잘못을 지적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들이 첫번째 생각해야 할것은, “100%가 아닌 순종은 진정한 순종이 아니다”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울이 불순종만 한 사람은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도리어 사울은 어느 정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을 했습니다. 먼저 4절을 보면, 사무엘이 전한 하나님의 명령을 들은 사울은 거절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조금의 망설임이나, 지체함도 없이 군대를 소집합니다. 쉽지 않은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블레셋과의 전투가 끝난지 얼마 안되었고, 뿐만 아니라, 아말렉은 에서의 후손으로서 당시 굉장히 잔인한 민족이었고, 민24:20절을 보면 ‘열국의 으뜸’으로 소개될 정도로 매우 강한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이번 전쟁에서 반드시 이기게 할것이라는 보장도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망설임 없이 즉각 전쟁이 준비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순종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이 정도만 봐도 사울을 불순종의 사람이라고 매도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들보다 더 많은 순종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조금 순종이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의 명령대로 거의 모든 사람을 죽이고 아각왕 한 사람만 살렸습니다. 그리고 매우 많은 가축을 죽이고 가장 좋은 가축의 일부만 살렸습니다. 사울의 순종을 수치로 말하면, 약 90% 이상은 순종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13절을 보면, 사울이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평가는 무엇입니까? 11절에 “내 명령을 이루지 않았다” 곧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꼭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그것은 참된 순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의 순종했다는 말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거의 순종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전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십니까? 아마 우리들 모두가 참으로 순종하는 사람이기 보다는 부족한 순종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을 합니다. 때로는 제한적인 순종, 선택적인 순종을 합니다. 예를들면, 손해적은 일에는 순종, 덜 피곤한 일을 골라서 순종, 칭찬과 이름이 날만한 일을 찾아 순종..., 등 이것은 부족한 순종, 아니 불순종과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부족한 순종일바에는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들에게 하려는 메시지는 부족한 순종에 만족하는 신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100% 순종하는 것을 목표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하나 알아야 할 것은, 우리들의 순종은 댓가를 바라는 순종이 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울이 아각을 잡아 왔고, 좋은 가축들을 가져왔습니다. 이 모습은 마치 자신의 순종에 대한 댓가를 챙기는 모습인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사울은 댓가를 생각하며 순종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무언가 댓가를 받기 위함이 되면 안됩니다. 우리들이 순종해야 할 이유는 이미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과 축복때문입니다. 이 말은 순종이 의무가 아닌, 특권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자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요? 말잘하는 것, 축복을 사모하는 것..., 등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 신자를 말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족함 없는 순종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러한 순종이 여러분을 축복의 사람으로 만들것입니다.
2.순종을 방해하는 요인
멕시코 어느 마을에 뜨거운 물과 차가운 말이 함께 나오는 아주 신기한 샘이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 선교차 방문한 어느 목사님께서 그 샘에서 빨래를 하는 동네 여자들에게 전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빨래 하기 참 좋게 만들어 주셨군요!’ 라고 말을 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동네 여자가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이왕이면 비누까지 나오게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라고 답을 했다고 합니다.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음을 나타내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사울왕이 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했을까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 죽여야 함에도 아각왕을 살려 포로로 잡아온 것과 좋은 가축을 전리품으로 가져온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사울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함이라고 말을 합니다. 물론, 거짓말입니다. 사울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입니다. 12절을 보면, 사울이 갈멜에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로 욕심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울이 아각왕을 살려 잡아온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돈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아각왕을 인질로 삼아 아각왕의 모든 재산을 받거나, 아니면 아각왕을 놓아주는 대신 도망간 그의 가족으로부터 엄청난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많은 가축들을 살려서 가지고 온 이유 역시 욕심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 역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욕심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만족이 아닌, 자신의 만족을 이루려는 강한 욕심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욕심을 가지고 그 욕심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기에 결코 순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새벽에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잠에 대한 욕심 때문입니다. 또, 여러분이 먼저 서로 섬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존심에 대한 욕심 때문입니다. 또, 성경을 묵상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TV 시청에 대한 욕심 때문, 회식자리에서 술을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에 대한 평가에 대한 욕심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우리들이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욕심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아담과 하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하는 실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심때문입니다.
항상 욕심이 문제입니다. 욕심은 순종만이 아니라, 신자의 삶을 치명적으로 방해합니다. 예를들면, 게하시, 가룟유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예수님 당대의 종교지도자들..., 등 모두가 욕심 때문에 신자의 삶이 무너진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욕심은 부부사이에 금이 가게 하고,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도 깨트리고,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무서운 악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는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순종할수 있고, 그래야 신자의 삶을 살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들이 욕심을 부리며 이 땅을 살까요? 더 많은것을 누리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에게는 맞는 말이지만 신자들이 할 소리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신자들이 이 땅을 살면서 지나칠 정도로 욕심을 부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결여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울 역시 아각왕과 좋은 가축을 잡아온 이유는 스스로가 미래를 위해서 비축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욕심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너희 쓸것을 하나님께서 아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과연 내 삶을 책임지고 필요를 공급하실까? 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에 욕심이 생겨나고, 그렇게 욕심을 부리는 것입니다. 결국, 내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불신앙이 욕심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믿음과 욕심은 항상 반비례합니다. 즉, 믿음이 적어지면 욕심이 많아지고, 믿음이 좋아지면 욕심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욕심의 정도로 자신의 믿음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을 책임지고, 최선으로 공급하시는 분이심을 믿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믿음을 출발로 여러분의 삶에 순종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3.순종의 훈련
김연아선수 때문에 온 국민이 피겨 스케이트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피겨를 배우는 아이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피겨 스케이트에 우리가 아는 몇가지 기술이 있습니다. 트리플 악셀, 더블 악셀입니다. 더블 악셀은 전진하면서 점프를 해 두바퀴 반을 도는 것이고, 트리플 악셀은 세 바퀴 반을 도는 것입니다. 어느 40대 후반의 목사님이 집에서 이불을 깔고 스케이트를 신고, 더블 악셀을 해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는 말이 ‘다리 부러지는 줄 알았다.’것입니다. 그러면서 느낀것이 김연아 선수는 트리플 악셀이라는 어려운 동작을 하면서도 멋진 미소와 눈빛 연기가 가능한 것이 바로 끊임없는 훈련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훈련은 멋진 결과를 만드는 것입니다.
순종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어려운 문제에서도 기쁨으로 순종하기 위해서는 순종의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왜 훈련이 필요합니까? 우리의 바램과 결심만으로 순종이 이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결심은 순종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순종의 훈련을 하지 않으면 결코 순종하는 삶을 살수 없는 것입니다. 우선 작은 것부터 순종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예를들면, 성경하루에 3장 읽기, 기도 10분하기, 미워하지 않기, 화내지 않기..., 등 이런 순종의 훈련을 해야, 좀더 어려운, 원수를 사랑하기, 용서하기, 헌신하기, 섬기기..., 등의 순종이 가능한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순종은 훈련을 통해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신앙생활도 훈련으로 더 나아질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훈련이 무엇입니까? 노력입니다. 말씀대로 노력하는 것이 훈련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우리들에게 훈련이 아닌, 가장 쉽고 편안길을 제시합니다. 예수님을 시험할 때 3번째가 ‘내게 절하면 천하만국의 모든 것을 주겠다’입니다. 즉, 절 한번으로 다 얻으라는 것입니다. 지금 사단은 우리에게 가장 편안 신자의 삶을 살것을 유혹합니다. 그러나 쉽게 삶속에는 순종이 이루어질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훈련하셔야 합니다. 그럴때 순종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순종은 여러분이 가장 행복하게 살아갈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본문과 삶
1)100%의 순종을 목표로 삼읍시다.
2)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욕심을 이겨야 합니다.
3)훈련으로 더욱 순종과 신자의 삶을 살수 있습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이 순종의 사람으로 인정받는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통해 일하시고, 순종하는 자가 받는 축복과 행복이 풍성히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