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8:13-15절 고린도후서강해46
제목 : 더 가지게 하신 이유!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여러분은 ‘해비타트 운동’에 대해서 들어 보신적이 있습니까? 이 운동은 전 세계 극빈자들 그래서 집을 갖지 못한 무주택자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기 위한 취지로 시작된 나눔 운동입니다. 그리고 이 해피타트 운동은, 밀러드 풀러(Millard Fuller)라는 백만장자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대단히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돈만 추구하다가 가정적인 위기, 영적인 위기를 맞게 되었고, 결국, 돈이 인생의 성공과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점을 깨달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약간을 제외한 모든 것을 나누자’ 라는 결심을 하게 되고, 여기서부터 해피타트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눔의 삶을 통해서 플러와 그의 가족은 제2의 인생을 산다고 합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더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위해 나누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이 가진 것을 서로에게 나눌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더 가졌다고 해서 잘하는게 아닙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헌금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시간에는, 헌금은 단순히 물질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삶,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서약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두번쨰 시간에는 헌금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이웃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마음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시간에는, 헌금의 원리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헌금은 자원하는 마음이라는 원리 가운데 해야 하며, 마음을 주시는 대로 해야 하며, 그리고 형편에 맞게 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더 가진 자의 헌금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14절을 보면,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해야 한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15절을 보면,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라는 출16:17-18절의 말씀을 근거로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구약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출16장입니다. 출16장은 만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보십시다. 먼저, 1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림과 시내산 사이에 있는 신광야에 도착을 합니다. 그때가 출애굽한지 약 1달 후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2절을 보면, 신광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원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3절을 보면, 배불리 마음껏 먹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때 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라 내가 너희를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에 나오는 말입니다. 즉,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 양식을 먹으며 너희들이 율법에 순종하는 유무를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 곧 만나를 주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율법에 대한 순종의 유무를 지켜보시겠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신앙의 실패가 배고픔 때문이라고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땅에서 나온 이후로 끊임없이 원망과 불평을 했습니다.(홍해바다, 마라의 쓴물) 즉, 신앙의 실패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신앙의 실패가 마음대로 양식을 먹지 못하고, 고기를 먹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침에는 만나로 그들을 배불리 먹게 해주고, 저녁에는 고기(메추라기)로 배불리 먹여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러면 과연 순종을 하는지 보시겠다고 말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아침에는 만나를 배불리 먹고, 저녁에는 메추라기 고기를 배불리 먹은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생각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했을까요?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고 배불리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그들의 의복과 신발이 낡지 않았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보호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지키셨지만, 그들은 조금도 순종하지 못했고, 조금도 하나님 백성답지 못했습니다. 조금도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당한 삶을 살아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의 핑계는 거짓말이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여호수아와 갈렙 2명을 제외한 20세 이상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약 40년이 지난 후 모세는 신8장에서 출애굽 2세대들 곧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할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입니다. 신8:3절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신앙의 성공과 실패는 배부름과 배고픔에 달려 있는게 아니라는 말이고, 마심과 주림에 근거한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배부르고 많이 마신다고 신앙의 성공을 하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주리고 목마르다고 신앙이 실패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점은 눅16:19-31절의 부자와 거지나사로의 비유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천국에 들어간 사람은 누구입니까? 거지 나사로입니다. 그는 최악의 환경과 현실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앙의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부자는 지옥에 갔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부자는 최고의 환경과 현실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실패자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은 환경이나 현실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종 종 신앙생활을 잘하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고, 예배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고, 주의 일에 힘쓰지 못하고..., 등 그런데 그러한 것을 환경이나 현실 탓으로 핑계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이 신자로 살아가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이미 충분히 공급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우리에게 천국의 소망을 주셨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와 약속을 주셨고,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고, 성령을 주셨고, 계속해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 외에도 우리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조금도 아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자신의 독생자까지 내어주셨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신앙의 실패를 늘 환경과 현실을 탓합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승패는 무엇에 의해 결정될까요? 신8:3절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무슨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이 신앙의 승패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을 붙잡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신앙의 승패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에서 넘어지고, 신앙의 실패를 하는 이유는, 환경, 현실때문이 아니라, 여러분이 하나님을 붙잡는 일에 실패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환경이 좋고, 현실이 좋아야 신앙생활을 잘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깨고, 더 많이 갖어야 신앙생활을 잘할 것이라는 무지한 생각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을 붙드는 일에 힘쓰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더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다시 출16장 만나 본문을 보도록 합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아침마다 만나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16절을 보면, 1인당 1오멜씩 거둘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1오멜이란? 약 2리터 정도의 양입니다. 그러니까 5식구이며, 5오멜(10리터), 7식구이면 7오멜(14리터)씩 거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나가서 거두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각 가정의 대표, 가장이 나가서 부양 가족들이 먹을 만나를 거두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건강하고 부양가족이 적은 가장은 어렵지 않게 충분한 양의 만나를 거두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건강하지 못하고 부양가족이 많은 가장은 충분히 거두지 못했을 것입니다. 참고로 출16:14절을 보면, 만나는 ‘온 지면에 내렸고,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 이라고 묘사합니다. 그리고 출16:21절을 보면, ‘햇볕이 쬐면 그것이 스러졌더라’ 고 말합니다. 즉, 만나는 거두는 것이 시간적인 제한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만나를 거두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사람은 많이 거두었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부족하게 거두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18절을 보면,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욕심을 내어 많이 거두었지만, 결국, 남지 않았고, 부족하게 거두었지만 결국 부족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어떤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거둔 바구니에서 줄이고, 눌리고..., 어떤 개입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개입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 결과 많이 거둔자도 남지 않았고, 적게 거둔자도 부족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개입으로 남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다시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은 이 부분을 조금 다르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고후8:13-14절을 보십시다.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무슨 말입니까? 넉넉한자, 더 가진 자가 부족한자에게 나누어주라는 말입니다. 참 뜻밖의 해석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구약시대 많이 거둔자로 남지 않았고, 적게 거둔자도 모자라지 않았던 것을 많이 가진 자들이 나누어 준 것으로 해석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한 것은 분명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더 가진 자가 나눈 사건으로 해석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틀린 해석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구약의 하나님 개입 사건을 가진자가 나누는 것을 해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더 가진 자에게 개입하셔서 그들이 가진 것을 나누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 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열심히 농사를 지었고 가을에 추수한 곡식이 창고를 채우고도 마당까지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매일 밤마다 마당에 쌓아 놓은 곡식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병충해로 농사를 망친 이웃 마을 사람들이 매일 밤마다 조금씩 훔쳐간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농부 부인이 ‘못 훔쳐가도록 지켜야 하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그들이 몰래 훔쳐가지 전에 우리가 그들이 필요한 만큼 나누어 줍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정확히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더 가진 자가 나누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더 많이 가진 자가 나누기를 바랄까요? 넉넉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넉넉하기 때문에 나누라는 말은 아닙니다. 더 가진 것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누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구약시대 건강한 사람, 또는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만나를 많이 거두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왜냐하면, 만나는 그들의 노력과 그들의 수고로 만들어 낸 결과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거둔 것은 단지 은혜를 거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고,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식한 말이고, 교만한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욕심을 가지고 더 많이 거두는 일을 막지 않으셨을까요? 그것은 부족하게 거둔자의 부족을 채워주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바울의 이해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물질을 여러분의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둔 만나가 은혜이듯,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물질도 은혜일뿐입니다. 결코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과 확신에서 드려지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헌금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헌금이란 넉넉한 것에서 일부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라는 확신에서 드리는 것, 원래의 주인에게 되돌려 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인은 첫째는 하나님이고, 둘째는 부족한 자들 모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헌금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앞으로 드려지는 모든 헌금이 내것이 아님을 고백으로 드려지는 헌금이 되기를 바랍니다.
3.더 가진 모든 것을 나누십시오!
우리는 지금까지 더 가진 자로서 내것이 아니라는 고백으로 드려지는 것이 참된 헌금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헌금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 반드시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더 많은 물질을 가진 것, 그것은 나누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나눔의 가장 핵심은 헌금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더 가진 것은 물질 만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남보다 더 가진 것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를들면, 지혜가 그렇습니다. 여러분 중에 남보다 더 지혜로운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 지혜를 나누어야 합니다. 또, 성실함입니다. 여러분 중에 누구보다 더 성실한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 성실함도 나누셔야 합니다. 또, 은사입니다. 즉, 뭔가를 잘하는 재능입니다. 여러분 중에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재능을 가진 분도 있습니다. 그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것 말고도 여러분은 남들보다 더 가진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하시고, 그것을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눅16:9절에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을 아실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무엇이 불의한 재물일까요? 잘못된 방법으로 번 재물을 말할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불의한 재물은 내 몫이 아닌 것, 내가 움켜 잡아서는 안될 것들을 말합니다. 예를들면, 내게 필요한 물질 이상의 것이 불의한 재물인 것입니다. 그것을 나누라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여러분이 꼭 나누기를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신앙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신앙의 내용, 신앙의 수준을 가진 분이 계십니다. 그것을 나누셔야 합니다. 즉, 다른 사람을 위해 쓰여져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신앙생활은 누구를 위해서 할까요? 하나님을 위해서이고, 더나가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게 올바른 신앙생활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우리 모두에게 한결같이 요구하시는 내용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진 믿음, 인내, 사랑, 자비, 거룩, 경건, 열심, 충성, 지식, 경험, 체험, 은혜..., 등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용하고 계십니까? 그래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우리가 가진 것 중 하나도 내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본문과 삶
1)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2)따라서 헌금이란 내 것이 아님에 대한 고백과 확신에서 드려져야 참 헌금입니다.
3)물질 말고도 내것이 아닌 것은 많습니다. 그것을 맡기신 주인님의 의도대로 나우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어떤 환경이나 현실에 좌우되지 않는 신앙, 그리고 무엇이든 내것이 아님을 알고 나누는 복되고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