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i TV > 설교말씀 > 신앙의 9단이 됩시다!(사무엘상강해19)
HOME 로그인회원가입
교회안내 설교말씀 목장 및 양육 선교사역 부서소개 사랑방

  사랑 i TV  
     설교말씀 
     찬양영상 
     행사영상 
     성가대찬양 
     찬양소개 
     QT영상 





설교말씀
    > 설교말씀 >>  금요설교
 
[금요설교] 신앙의 9단이 됩시다!(사무엘상강해19)
 본문말씀 : 삼상14:16-56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7.6.23
조회 : 10,127   추천 : 0  
본문 : 삼상14:16-56절  사무엘상 강해19
제목 : 신앙의 9단이 됩시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프로 기사들은 바둑을 둔 후에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바둑을 마친 후 그들은 復碁(복기)라고 해서 방금 둔 바둑을 다시 두면서 어느 수가 좋았고, 어느 수가 나빴는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의견을 교환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승부를 넘어서서 더 완벽한 바둑을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프로 기사라고 해서 다 같은 수준이 아닙니다. 등급이 있습니다. 즉, 1단부터 9단까지 등급이 있습니다. 9등급까지 있는 이유는 9라는 숫자가 동양에서는 가장 완전한 수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9단은 가장 높은 수준으로 신이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여 入神(입신)이라고 부릅니다. 1단은 겨우 졸렬함을 지키는 수준이라고 해 守卒(수졸)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몇 단일까요? 만일 여러분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상태에 그쳐있다면 여러분은 신앙은 1단입니다. 스스로의 신앙이 몇단인가를 점검해보십시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여러분 모두가 신앙의 9단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신앙의 9단이 되기 위해서 무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의 9단을 목표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투와 이스라엘의 뜻밖의 승리에 대해 소개하거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신앙의 9단이 되기 위해 알아야 할 3가지를 함께 묵상함으로 여러분 모두가 신앙의 9단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우선순위
 우리는 지난 시간에 신앙의 기초에 대해서 함께 묵상을 했습니다. 신앙의 기초는 첫째,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고, 둘째,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뜻을 확인해야 하는 것, 셋째, 성령의 감동하게 하심을 따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신앙의 기초에 근거해서 무엇을 해야 신앙의 9단이 될수 있는가? 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내용을 함께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드디어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예상 밖의 대승을 거두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요나단이 이끄는 소수의 특공대의 활약에 사울은 힘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22절을 보면 도망간 군사들도 요나단이 이끄는 특공대의 활약 소식을 듣고 돌아와 합세하고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공격을 합니다. 그리고 23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크게 이기게 되었습니다. 그때 24절을 보면, 사울이 백성과 군사들을 향해서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도움으로 대승을 거두겠다는 마음에서 일것입니다. 그런데 27절을 보면, 요나단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꿀(음식)을 먹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31절에 이스라엘은 생각지도 못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첫째, 32절에 배고픔에 지친 군인들이 율법을 어기고 탈취한 짐승을 피채 먹게되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44절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최대 공을 세운 요나단이 금식기간중에 음식을 먹은 일이 알려져 죽을 위기에 처합니다. 그러나 45절에 현명한 백성들이 요나단을 살려줄 것을 요청하고, 살아나게 됩니다. 그리고 52절을 보면, 이번 전쟁의 승리로 블레셋이 침공할 수 없을 정도로 이스라엘은 조금 더 강한 나라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첫째로, 여러분이 신앙의 9단이 되기 위해서 먼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바로 “우선순위”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울이 요나단의 기습공격에 블레셋의 패배함을 보고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18절에 제사장 아히야에게 법궤를 가지고 올 것을 명합니다. 아마도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면전을 앞두고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그런데 19절을 보면, 블레셋이 계속해서 패전하는 모습을 본 후 하나님의 뜻을 묻기를 그만두고 22절에 전투에 뛰어듭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하나 해야 합니다. 그것은 왜 사울이 돌연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을 중지했을까? 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을 하십니까? 그것은 아마 얼마 전 길갈에서 7일을 기다린 것처럼, 하나님의 응답이 더디 올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블레셋을 이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전쟁에서 블레셋을 무찌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보다 우선이고, 더 급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중 누구라도 사울의 입장에 있었다면 그리했을 확률이 많습니다. 생각을 해보십시오! 블레셋이 무너져가고 있는데 공격을 늦춘다면 블레셋이 전열을 재정비할 것이고, 그러면 전쟁이 힘들어 질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권투경기에서나, K-1 경기에서도 상대방이 주먹에 맞아 비틀거리때 온힘을 다해 공격하는 이유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경우에는 아닙니다. 결국, 사울은 신앙이 1단 밖에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신앙의 9단은 항상 우선순위를 바르게 압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의 9단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여러분은 우선순위를 바르게 정리할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삶에 사울의 경우처럼 하나님께서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시말해, 하나님이 돈되는 일에 밀리고, 취미에 밀리고, 피곤함에 밀리고, 자녀에 밀리고, 먹는 일에 밀리고, 성공과 명예..., 등에 밀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특별히 여러분에게 강조하고자 하는 2가지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첫째는 여러분이 교회에서 봉사와 수고하는 것보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받는 일이 더 우선입니다. 우리들이 교회에서 봉사와 수고의 일을 하다보면, 쉽게 지치고 신앙이 약해집니다. 그 이유는 봉사의 일이 하나님께 은혜를 공급받는 일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더 귀한 봉사의 일을 하기를 원하신다면 은혜를 공급받는 우선순위를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이 더 우선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바쁘다는 핑계로 말씀도, 기도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선순위를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여러분이 바쁘게 살아간다면, 여러분은 나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개인 경건의 시간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우선순위에서 밀릴까요?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급한 일은 급하게 일하시고, 그렇지 않으신 경우에는 서서히 일하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여러분의 문제 가운데 하나님이 서두르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아직 하나님 보시기에 전혀 급한 일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다른 일을 더 급하게 여기시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분이시고, 여러분을 돕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적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기에 하나님이 우선순위에서 다른 것들에 밀려나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말합니다. 여러분이 신앙의 9단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에 최우선순위에 있어야 합니다.

  2.공로주의
 이제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대대적인 전투를 치루기 직전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승기를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하고 집중해야 할 시점에서 사울은 백성들에게 뜻밖의 명령을 합니다. 그것은 24절에 ‘아무 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입니다. 즉, 지금 전쟁을 해야 할 군사들에게 금식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리고 금식 기간중에 음식을 먹는 사람을 죽일것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른 신앙의 행위가 아닙니다. 이것은 신앙의 상식 밖의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금식의 결과 군사들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34절을 보면, 피 있는채 고기를 먹게 됩니다. 이것은 율법이 엄격히 금하는 조항입니다. 뿐만 아니라, 44절을 보면, 자신의 아들인 요나단이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보아도 사울의 금식 선언은 상식밖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사울이 지금 전쟁을 앞두고 상식 밖의 명령을 내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다시말해, 평범하면 하나님이 돕지 않으실 것이라는 착각에 근거한 명령인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자신의 소원을 허락해주시를 위한 마음에 근거한 행위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지금 사울은 공을 들여야 신이 감동한다는 식의 공로주의를 가지고 있었던 신앙의 1단인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의 9단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 앞에 무엇인가를 함을 근거로 나가는 공로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아들, 딸)이라는 신분으로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공로주의 신앙은 바른 상식 밖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간의 싸움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들이 신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 한 일이 뭡니까? 쉼없이 소리지르며 춤을 추는 것, 자신의 몸을 칼로 베어 피를 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로주의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어떻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공로가 아닌, 존재와 신분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잘못은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쳐 주실때에도 언급이 됩니다. 즉, 기도할 때에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말을 합니다. 이 말은 했던 말을 반복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기도는 반복될수 있고, 사실 기도할때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중언부언 이라는 말의 핵심은 말을 많이 하고, 말로 신을 설득하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시작이 무엇입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하나님과 우리의 공로의 관계가 아닙니다. 마치 부모와 자식의 관계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임을, 그리고 우리는 자녀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사실을 분명히 해야 신앙의 9단이 될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공로주적인 모습이 참 많습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때 내가 부족했나보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닙니다. 기도의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는 헌금을 많이 해야 물질의 복을 받는다는 생각, 봉사를 많이 해야 건강하다는 생각..., 등 이렇듯 무엇인가를 기대하며 하는 것은 모두 공로주의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행하심에 감사함으로 땀을 흘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3.자신을 먼저 돌아봄
 마지막으로 37절을 보면, 사울이 마지막 최종 공격을 앞두고 하나님께 묻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사울의 첫 번째 반응은, 38절에 ‘이 죄가 뉘게 있나 알아보자’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금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은 책임이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요나단이 꿀을 찍어 먹은 일이 들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본문을 묵상해보면, 표면적으로는 요나단의 잘못인것 처럼 보이만, 결국, 사울의 잘못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울은 상식 밖의 명령을 내렸고, 백성은 요나단을 죽일 수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결국, 본문은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심의 책임이 바로 사울에게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그 일에 대해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신앙의 1단인 것입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슬로건 중에 ‘내 탓이오’ 라는 말이 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카톨릭에서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향해 자기 반성의 의미로 캠페인을 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래야 합니다. 즉, 지금 나라가 시끄러운 것에도 내 탓이오! 누군가가 절망속에 있는 것도 내 탓이오!, 여전히 질병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도 내 탓이오!  바로 이런 정신이 신자의 정신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들은 내 탓이오가 아닌, 네 탓이오를 외치는 일이 참 많습니다. 예를들면, 가정이 행복하지 않은 것을 못난 배우자 탓을 하고, 자식이 공부를 못하면 아내 탓을 하고, 자식들은 늘 부모탓을 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교회안에서도 무슨 일만 생기만 서로를 탓합니다. ‘내 탓이라’ 고 말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모두가 신앙의 1단 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9단이 되면 ‘모두가 내 탓이오’ 라고 말할 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신앙의 9단이 되기를 원한다면, 모든 일에 ‘내 탓이라’는 관점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고민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삶에 누군가를 향한 원망과 불평의 마음이 사라지고, 감사와 소망의 마음이 생겨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바둑에서 복기는 더 나은 수준을 위해 필수조건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삶을 점검할 때 더 나은 신앙, 그리고  신앙의 9단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과 삶
 1)하나님이 삶에 최우선임을 압시다.
 2)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3)모든 일에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내 탓이라고 말할수 있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이 신앙의 9단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자랑과 과시를 위함이 아닌, 서로를 더 잘 섬기기 위해서 신앙의 9단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신자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입니다.
Share

 
 

번호 말씀제목 보기 본문말씀 설교자 설교일자 조회 추천
2533 [주일설교] 다시 걷기-변화된 삶으로   롬12:1-2절 최용민목사 2026.4.5 61 0
2532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롬12:1-2절 최용민목사 2026.4.5 7 0
2531 [특별새벽기도] 소망하기!(고난주간5) 롬8:18-25절 최용민목사 2026.4.3 43 0
2530 [특별새벽기도] 사랑하기!(고난주간4) 롬5:6-11절 최용민목사 2026.4.2 609 0
2529 [특별새벽기도] 한 걸음 내 딛기!(고난주간3) 잠16:1-9절 최용민목사 2026.4.1 488 0
2528 [특별새벽기도] 방향 묻기!(고난주간2) 시119:57-64절) 최용민목사 2026.3.31 658 0
2527 [특별새벽기도] 기억하라!(고난주간1) 시77:1-12절 최용민목사 2026.3.30 350 0
2526 [주일설교] 거룩한 멈춤! 집중!(고난주간) 시46:1-11절 최용민목사 2026.3.29 3580 0
2525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시46:1-11절 최용민목사 2026.3.29 110 0
2524 [수요설교] 다시 세워진 신앙!(사사기강해15) 삿6:25-32절 임승철목사 2026.3.26 2142 0
2523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삿6:25-32절 임승철목사 2026.3.25 107 0
2522 [주일설교] 신앙 성장과 습관(習慣)!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2306 0
2521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116 0
2520 [주일설교] 주일2부실시간예배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160 0
2519 [수요설교] 원칙(原則)이 있는 신앙!(사도행전강해96) 행17:1-9절 최용민목사 2026.3.18 185 0
2518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행17:1-9절 최용민목사 2026.3.18 227 0
2517 [주일설교] 신앙 성장과 결단! 왕하5:15-19절 최용민목사 2026.3.15 365 0
2516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왕하5:15-19절 최용민목사 2026.3.15 176 0
2515 [수요설교] 위로받고 위로하고!(사도행전강해96) 행16:35-40절 최용민목사 2026.3.11 154 0
2514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행16:35-40절 최용민목사 2026.3.11 254 0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