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8:7-9절 고린도후서강해44
제목 : 헌금은 하나님의 사랑에 동참하는 것!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요즘 기상이변으로 우리나라는 가뭄이 큰 문제입니다. 그런데 또 지구 반대편에는 홍수로 인해서 많은 인명피해가 생겨나고 있답니다. 어떤 성도가 사는 지역에 갑자기 홍수가 났습니다. 그리고 미처 피하지 못하고 홍수에 떠내려 가다 구사일생 물에 잠긴 지붕위에 간신히 올라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를 구해주십시오!’ 기도 후 하나님께서 구해주실 것에 대한 확신이 들며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잠시 후 한 보트가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이 신자는 하나님이 날 구해주실 것이니 다른 사람이나 구해주라고 보트를 보냈습니다. 점점 불이 불어나며 위기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때 헬리콥터 나타나 밧줄을 내렸습니다. 순간 하나님이 구해줄실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밧줄을 잡고 올라 갈까 말까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단하고 밧줄을 잡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물이 불어나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 천국에 올라간 이 성도는 하나님께 원망하며 물었답니다. 제가 그렇게 기도했는데, 왜 구해주지 않으셨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구하기 위해 보트도 보냈고, 헬리콥터도 보내잖니?’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더나가서 하나님은 거의 대부분의 일을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박해와 기근으로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마게도냐 지역 교회들을 사용하셨고, 고린도교회를 사용하시기 원하신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확인함으로,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착하고 충성된 일군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분
우리들이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와 같이 당시 예루살렘교회는 박해와 기근으로 인해 극심한 어려움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자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이 예루살렘교회를 위해 구제 연보를 했고,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도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구제연보에 참여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무슨 말입니까? 예루살렘교회를 위해 구제 연보를 풍성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은 2가지를 알수 있습니다. 첫째는, 은혜란 우리들이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받는 것만 아니라, 우리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것도 은혜라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 처럼 가난한 사람을 위해 구제연보를 하는 것도 은혜이고,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은혜이고, 내가 누군가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도 은혜이고, 내가 누군가를 위해 손해와 희생을 감수하는 것도 은혜이고, 내가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고 섬기는 것도 은혜이고, 고난 시련을 참고 견디는 것도 은혜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받는 것만이 은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그리고 지금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받는 은혜보다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은혜가 풍성하기를 권면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받는 은혜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은혜가 풍성해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구제연보를 풍성히 하라는 말씀을 통해 알수 있는 두번째 말씀은,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바울은 왜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이 예루살렘교회를 위해 구제연보를 했다고 말합니까? 또,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왜 구제연보를 풍성히 하라고 말할까요? 또는, 바울이 직접 하나님께 기도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되기를 왜 간구하지 않았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원칙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원칙을 가지신 분, 더 강하게 말을 하면, 사람이 아니고는 일하지 않는 분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구제연보를 풍성히 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를 통해서 일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고전3:1절에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라고 말합니다. 즉, 자신을 하나님의 일군임을 잊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사람을 동역자 삼으시고)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혼자 일하신 경우는 천지창조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실 때에 반드시 사람들을 통해서 일을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관리는 하는 일을 아담과 하와를 일군으로 삼고 일하셨고, 홍수 심판 가운데 의로운 자들을 보존하는 일을 하실 때에도 노아와 그 가족들을 일군으로 삼아 일하셨고, 애굽나라에 종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는 일을 하실 때에도 모세와 아론을 일군으로 삼아 일하셨고,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위협하던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일을 하실 때에도 다윗을 일군으로 삼아 일하셨고, 아합왕 시절 이스라엘 땅을 더럽히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멸하시는 일을 하실 때에도 엘리야를 일군삼아 일하셨고, 이스라엘이 바사나라의 통치를 받던 시절 하만이라는 사람의 모략에 의해 말살 위기에 놓이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건지시는 일을 하실 때에,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일군삼아 일하셨고,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일을 하실 때에도 제자들을 일군삼아 일하셨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시는 일을 하시고자 할 때에도 바울과 사도들을 통해서 일을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을 일군 삼아서 일하시는 원칙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물론, 이런 하나님의 일하심의 원칙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우리들의 질병을 고치시는 일을 하실 때에도 하나님은 의사와 약사, 또는 기도하는 성도들을 일군삼아 그 일을 하시고, 하나님이 누군가를 위로하시는 일을 하시고자 할 때도 누군가를 통해서 그 일을 하시고,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시고자 하는 일을 하시고자 할 때도 누군가를 통해서 그 일을 하시고, 우리들의 기도를 응답하실 때에도 누군가를 통해서 그 일을 하십니다. 그 외에도 거의 대부분의 일을 하나님은 누군가를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원칙을 깨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뭡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지만, 그 사람이 바로 나라는 점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느덧 2017년도도 6개월이 지났습니다. 여러분이 지난 6개월간 하나님께 맡은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하신 일들은 무엇입니까? 더 중요한 것은, 지난 6개월간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어떤 일을 하시기를 원하실까? 라는 고민을 붙들고 사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정말 훌륭한 신자입니다. 하지만, 먹고 사는 일에 바뻐서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에 무관심했다면, 더 이상 그러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구원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자주 말하지만 구원은 단지 죄용서 받고, 천국 티켓받고..., 등 만이 아닙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이고, 달리 말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동역자로 초대입니다.(사역으로의 부름) 그러므로 여러분이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분명한 확신이 있다면, 날마다 ‘과연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어떤 일을 하시기를 원하실까?’ 라는 고민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매순간 교회를 보며, 서로를 보며, 나라를 보며 이 순간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은 무엇인가를 고민할수 있는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동역자 된 여러분이 해야 할 아주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 곧 일군을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먼저는, 여러분의 자녀를 신앙과 실력을 갖춘 사람으로 키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의 아이들이 훌륭한 인물들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관심을 갖고, 여러분이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2.헌금은 이웃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원칙을 가지신 분이시라는 점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매일을 살아야 한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하나님은 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일에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를 참여 시키시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참여시키고자 하는 것일까요? 혹시, 사람들에게 복을 너무 풍성히 주셔서 하나님의 창고가 비었기 때문일까요? 하나님이 가난하시기 때문일까요? 하나님의 손이 짧아져 더 이상 예루살렘교회를 도울 수 없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고는 항상 가득하며, 하나님은 항상 부요하시며, 하나님의 손을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지역 교회를 통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통해서 예루살렘교회를 돕도록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신 마음과 일에 동참시키시기 위함입니다. 더 간단히 말을 하면, 하나님의 사랑에 동참시키기 위함인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이웃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에 동참하는 것이 헌금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헌금은 단순이 우리의 물질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동참하는 가장 거룩하고 복되고 영광스러운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헌금을 할 때, 내가 받을 복을 목적하거나 생색을 내기 위함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입니까? 이미 여러분이 너무나도 잘 알 듯이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상대방이 잘된다면 나는 부족하고 손해 봐도 좋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부모가 자식을 향한 사랑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러한 사랑에 동참하는 것이 헌금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헌금을 드릴 때 아깝다는 생각을 해보신적이 있습니까? 물론, 신앙을 처음 갖었을 때에는 그런 마음이 얼마든지 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떻습니까? 헌금하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헌금이 아깝다면 왜 그런 생각이 들까요? 형편이 어렵기 때문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까? 그걸 어떻게 알수 있냐면, 우리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빚지는 것도 감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금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헌금을 하는 일을 아깝다고 생각할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자신의 독생자를 죽게 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죽음은 무엇입니까? 죽음이란 바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쳤다는 말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이 사랑을 안다면,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도리어 감사이며, 기쁨이 될 것입니다.
결국, 헌금이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이웃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마음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더나가서 내가 손해보다 내가 부족할 지라도, 이웃에게 유익을 줄수만 있다면 괜찮다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진정한 헌금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참다운 헌금을 드리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참다운 헌금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사랑이며, 이웃 사랑인 것입니다.
3.이웃 사랑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진정한 헌금은 이웃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러분은 이웃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헌금으로 동참하는 것을 가지고 여러분이 할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헌금을 말하는 목적이, 물질을 드리는 일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헌금을 말하는 진정한 목적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말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자로서 살라는 것이고, 그것을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나만을 생각하고, 나만의 유익을 구하는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이웃을 사랑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구제연보 곧 헌금을 말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웃 사랑을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대단히 분명합니다. 그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신앙의 실패를 하게된 가장 본질적인 이유가 이웃 사랑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토록 사랑을 외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이 마17장의 변화산 아래 9명의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3명의 제자들과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산 아래에는 9명의 제자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들은 늘 열외당하는 일에 대해 마음이 불편했을 것입니다. 그때, 귀신들려 병든 아들을 데리고 한 아버지가 찾아옵니다. 그래서 아마 예수님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안계시자, 9명의 제자들에게 부탁했을수 있고, 아니면, 9명의 제자들이 먼저 고쳐주겠다고 했을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못고쳤다는 것입니다. 병고치는 일에 실패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능력이 없어서? 아닙니다. 이미 제자들은 병을 고친 경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왜 실패했을까요? 그 귀신들려 병든 아이를 자신의 실력을 입증할 대상,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지, 그를 사랑으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이웃 사랑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에 실패하는 이유, 섬김이 실패하고, 겸손이 실패하고, 오래참음이 실패하고, 자비와 긍휼에 실패하고, 웃어주는 일에 실패하고..., 그 모든 실패가 이웃 사랑에서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웃 사랑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늘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그대로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이것이 헌금이 우리들에게 교훈하는 바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본문과 삶
1)그래서 우리를 동역자 삼으셨습니다.
2)특별히 하나님은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우리를 동참 시키시기를 원합니다.
3)그 출발점이 바로 (구제)헌금인 것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진정한 헌금의 의미를 알고, 기쁨으로 감사로 풍성히 드리시고 무엇보다, 여러분 곁에 살아가게 하신 여러분의 이웃들을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하는, 여러분의 삶이 진정한 헌금되어 기뻐받을만 하게 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