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삼상13:1-23절 사무엘상 강해17
제목 : 하나님이 찾는 사람!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은 백의의 천사로 불리우는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녀는 영국의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봉사와 희생을 삶을 산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녀가 30세 되던 날 이런 일기를 썼다고 합니다. ‘오늘 내 나이 서른이 되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한 날이다. 주님, 오늘부터 당신의 부르심을 따라 살겠습니다. 유치했던 생각은 이제 모두 버리고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주님의 목적에 순종하겠습니다.’ 이런 고백과 함께 나이팅게일은 간호원이 되어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돕는 희생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서도 나이팅게일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14절에서도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함으로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사람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순종하는 사람
오늘 말씀은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지도자의 자리에서 은퇴한 후 사울이 왕이 되고, 시간이 2년이 지난 무렵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 시기까지 아직 이스라엘 나라는 행정, 정치, 군사적으로 체계를 잡지 못한 시기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사울왕의 군대는 3000명 뿐이었습니다. 물론, 사울이 이렇게 군사적 체계를 세우지 않은 것은 아마도 블레셋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런데 3절을 보면, 이런 아버지의 생각과 달리 요나단이 자신과 함께한 1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블레셋을 선제공격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5절을 보면,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 선전포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6절을 보면, 매우 큰 두려움으로 숨었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 전쟁의 소식을 사무엘에게 전했고 사무엘은 7일을 기다리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8절을 보면, 약속한 7일이 다되어가는데 사무엘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블레셋으로 인한 두려움으로 인해 탈영하는 군인들이 많았습니다. 15절을 보면, 사울의 남은 군사가 약 600명 가량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자 사울은 두려워하는 군사와 백성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죄악입니다. 왜냐하면, 제사는 레위인 중 제사장만이 행할 수 있는 고유임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사가 마친 후 사무엘이 도착을 했고, 13절에 사울의 잘못을 책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왕위가 길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사울은 새로운 왕정시대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선택한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런 사울의 왕권이 영원하지 않고, 한계가 있을 것, 곧 폐위당할 것을 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사무엘을 길갈에서 7일을 기다릴것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7일을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입니다. 물론, 사울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 사울의 환경과 현실이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불레셋이라는 막강한 민족의 공격을 코 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블레셋의 선전포고만으로도 두려워하던 군사들이 이스라엘의 정신적인 지주인 사무엘이 오지 않자 탈영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러다가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복해야 할 상황이 생기게 될것을 사울이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왕으로 군사와 백성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상황과 현실은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한 것은 어떤 것으로도 핑계할수 없는 명백한 죄악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배울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함은 무엇으로도 핑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순종함은 어떤 상황과 현실 때문에 생기는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인류 최초의 죄인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은 환경과 현실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최고의 환경, 부족함이 없는 환경에서 그들이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경이나 현실로 죄를 핑계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십니까? 예를들면, 모든 사람을 제자삼으라, 서로 사랑하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 섬기는 자가 되라, 기도하라...., 등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시는 분이십니까? 순종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순종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드릴수 있는 최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삼상15장을 보면, 또 다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사울을 향해서 사무엘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꼭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명령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명령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람이고, 아무리 많이 배운 사람이고,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세상에서 대단한 힘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고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는 하나님이 찾는 사람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일하실 사람도 아님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능력, 지식, 돈, 힘..., 은 이미 하나님에게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여러분이 이런 그리스도인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2.죄를 인정하는 사람
두 번째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무엘은 사울의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사울에게 내려진 형벌이 무엇입니까? 14절에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을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사울에게 내려진 벌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단 한번 죄를 범했다고 폐위당한다는 것은 너무할 것입니다. 이 일을 더 불합리하게 여겨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윗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들이 도덕적인 관점(또는 세상의 형법을 기준)으로 다윗과 사울을 비교해 본다면, 다윗이 사울보다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 도덕적인 사울의 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음, 다윗을 미워함, 다윗을 죽이려고한 살인 미수..., 정도입니다. 그럼 다윗의 도덕적인 죄는 무엇입니까? 간음, 살인입니다. 세상 법정에서 재판을 해도 다윗이 더 무거운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폐위를 선고받고, 다윗은 영원히 왕위를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셨습니다.(삼하7:13절)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태도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죄에 대해서 처절한 회개를 했습니다. 예를들면, 시6편을(읽기) 보면, 그는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띄우며 냐 요를 적신다고 말을 합니다. 또한 시51편을 보면, 자신의 죄를 씻으시고 새롭게 해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의 자신의 죄에 대해 철절히 회개했으며,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친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어떻습니까? 사울은 내가 뭘 잘못했는가? 라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12절을 보면, 사울은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라고 핑계를 댑니다. 핑계한다는 것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왕위를 곧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과 사울의 차이점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죄의 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여전히 죄를 지을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 무엇입니까? 회개입니다. 즉,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면 용서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사1:1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요일1:9절을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그리고 히10:17절은,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고, 회개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용서하시고 기억도 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단지 우리만 기억할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죄를 짓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지 않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울이 이런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지금 혹시, 내가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고 있는 강퍅한 일들은 없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시, 회개하지 않고 지나친 죄는 없습니까?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미래는 사울의 미래와 같이 될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면 여러분의 미래는 다윗과 같은 미래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사람을 찾으시고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3.기다릴줄 아는 사람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기다릴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기다리는 일을 잘 못합니다. 예를들면,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닫힘 버튼을 누르고, 또, 커피 자판기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컵 나오는 곳으로 손이 들어가고, 인터넷 창이 빨리 열리지 않으면 새로고침 버튼 마구 클릭하고, 버스가 정차하기 전에 차도로 내려가고, 신호가 바뀌기 전에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신호가 바뀌었는데 곧장 출발하지 않으면 클락션을 울리고, 음식주문하자 언제 나오냐고 묻고, 설교가 시작되자 마자 시계를 보고..., 등 이처럼 이 시대 사람들은 기다릴 줄 모릅니다. 오늘 본문의 사울왕 역시 기다릴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8-9절을 보면, 하나님이 기다리라고 말한 7일을 사울이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6일 반 나절까지만 기다렸습니다. 왜 기다리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사울의 다급(조급)한 마음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블레셋은 당대 최고의 힘을 가진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5절을 보면, 3000년전에 전차 3만, 기마가 6천, 군인이 해변의 모래알 같이 많았다고 말을 합니다. 이에 반해 이스라엘은 어떻습니까? 농경민족입니다. 뿐만 아니라, 2절을 보면, 군사가 3000명 뿐이었고, 시간이 지나자 다 탈영하고 15절에 600명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22절을 보면, 충격적인 기록이 나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나라에 칼이나 창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레셋은 중동지역 최초의 철기문화를 가진 민족입니다. 아마 3000년전의 중동은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바뀌는 시점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사울의 마음이 다급해진 이유는 신무기와 구무기간의 싸움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인데 하나님께서 왜 7일을 기다리게 했을까요? 그리고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다양한 기다림을 갖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를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고,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고, 신앙성장을 기다리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고, 회복의 때를 기다리고..., 과연 기다리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우리들을 훈련시키시 위함입니다.(하나님은 우리를 훈련시키고, 만들어 가시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분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훈련을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광야 40년의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이 광야 40년의 기다림을 통해서 배운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의 자세입니다.(만나사건-하나님의 의도) 또한 아브라함도 아들을 얻기 위해 25년간의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배운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힘이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과 신앙의 자세를 배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가장 가르쳐주고 싶은 신앙의 자세는 바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의 자세야 말로, 우리 신자들을 가장 복되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 가장 많이 쓰시는 방법이 기다림의 방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다리라면 기다려야 합니다. 가슴이 타들어가도, 그리고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도 기다려야 합니다. 좀 이상한 예이지만, 여러분 정말 훌륭한 개는 주인이 기다리라고 말하면 그 앞에 고기덩이가 있어도 침을 흘린지언정 기다립니다. 훌륭한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지언정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을 찾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기다릴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여러분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의 시간
표를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다시말해, 때때로 여러분의 인생에 마음이 조여오고, 가슴이 타들어가는 순간이 찾아온다 할 지라도, 복되게 계획하신 인생의 시간표속에 있다는 믿음을 갖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알 때, 우리는 조급하지도, 서두르지도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시간표를 확신하며 잘 기다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우리들이 평생 잊으면 안될 진리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각 시대마다, 각 사건마다, 사람을 찾는 분이십니다.
본문과 삶
1)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2)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3)내 때가 아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신앙의 인물이 됨으로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이 크게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그런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