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7:13-16절 고린도후서강해42
제목 : 헛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여러분은 조지뮬러를 아실 것입니다. 그는 1만명이 넘는 고아들을 돌보았던 고아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살면서 5만번의 기도 응답을 받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히 조지 뮬러는 친구들을 전도하기 위해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대로 어떤 친구는 1년 6개월 만에 예수님을 믿었고, 또 한 친구는 5년 만에, 또 한 친구는 12년 6개월 만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친구는 63년 8개월을 기도했지만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조지 물러는 93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조지물러의 장례식에 참석한 그 친구가 장례식 예배를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무엇이든지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조지물러가 말한 기도 응답의 비결은 ‘포기하지 않음’ 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교훈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헛되게 하지 않는분’ 이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헛되게 하는 분이 아닙니다. 물론, 기도에만 국한되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생활 모든 것을 헛되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모든 것을 헛되게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진 바울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가 헛되게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됨으로 더욱 담대함과 소망을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바울의 기쁨
우리는 지난 시간, 우리 모두는 아직 완전하지 못하고 연약한 존재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정답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대로 살아 내지 못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연약한 자신을 보며,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죄에 넘어지는 자신, 말씀대로 살지 않는 자신을 보며, 끊임없이 가슴을 치며, 탄식하며, 울부짖고, 몸부림쳐야 합니다. 더 간단히 말하면, 성전에서 당당하게 기도하던 바리새인이 아닌, 성전에서 가슴을 치며 울었던 세리의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난 한주간 바리새인의 마음과 자세로 사셨습니까? 아니면, 세리와 같은 마음과 자세로 사셨습니까? 여러분의 남은 인생 전부가 자신의 못남과 부족함을 발견하며 가슴을 치며 울부짖었던 세리의 마음과 자세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인의 모습이며,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들이 첫 번째로 묵상할 것은, ‘바울의 기쁨’ 에 대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은 대단히 큰 기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먼저, 13절을 보면,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이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디도는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꾸중하기 위한 편지를 들고 간 사람입니다. 여러분 생각을 해보십시오! 디도는 바울의 연락병에 불과합니다. 아직 사회적 경력이나, 신앙의 연륜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권위가 있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바울과 같은 신령한 직분을 가진자도 아닙니다. 단지, 바울의 말과 뜻을 전하러 간 사람일뿐입니다. 그렇다면, 디도가 고린도교회를 방문하고자 할 때, 그의 마음은 얼마나 두렵고 불안했겠습니까? 그런데 뜻밖에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디도를 평안으로 받아 준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디도는 기뻤고, 그렇게 기뻐하는 디도를 보다 바울도 기뻤다는 것입니다. 또, 16절을 보면,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 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디도를 통해 전한 바울의 꾸중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해서 탄식하고 회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바울은 지금 대단히 기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바울은 대단히 큰 기쁨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기쁨이 있습니까? 만일 없다면 왜 없습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뭔가가 부족하고, 뜻대로 안되고, 원하지 않는 현실 때문입니까? 이러한 것들이 기뻐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면, 사실 바울도 기뻐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바울 역시 수없이 많은 부족함속에 있었고, 원하지 않는 현실속에 있었을 때가 훨씬 많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하고 있을 당시에도 그의 현실과 환경은 기쁨과 거리가 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가 보기에 기뻐할 수 없어 보이는 현실과 환경속에서도 기뻐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차이일까요? 그것은 기쁨 근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기쁨의 근거와 이유는 내안에서 찾습니다. 즉, 내가 잘되고, 내가 더 가지고, 내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고..., 등 그러나 바울의 기쁨은 다른 사람의 기쁨, 다른 사람의 잘됨으로 기쁨을 근거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십시오! 13절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무슨 말입니까? 디도가 기뻐하는 것으로 인해서 자신은 더 크게 기뻐했다는 말입니다. 또, 16절을 보면,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 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꾸중을 듣고 회개하고 그래서 신뢰받을 만한 신자들이 된 것으로 기뻐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기쁨의 근거와 바울의 기쁨의 근거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우리들이 성경을 읽으며 늘 부담스러운 명령들이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참 쉽지 않은 명령입니다. 그러나 이 명령보다 더 부담스러운 명령이 있습니다. 바로, ‘항상 기뻐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렇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은 어떻게든 노력을 해볼 수 있는데, 항상 기뻐하라는 명령은 노력하는 것조차 쉽지 않고, 노력한다고 기쁨이 생기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항상 기뻐 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항상 기뻐할 수 없는 현실을 살아간다는 것을 모르시기 때문에 이런 명령을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우리들이 항상 기뻐하는 삶의 방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나 하나에서 기쁨을 찾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우리의 이웃들안에서 기쁨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전5:16절 ‘항상 기뻐하라’ 의 앞을 보면,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그리고 항상 기뻐하라가 나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살라는 것이고, 그것으로 누군가가 유익을 얻고 기쁨을 얻는 것을 기쁨의 이유와 근거로 삼으라는 말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복음으로 묶여 있는자들이기 때문에 기쁨의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고, 그럴 때, 비로서 우리는 항상 기뻐하라는 명령에 더 가까워 질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인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성숙한 그리스도인일수록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인한 기쁨을 누립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다른 이로 인한 기쁨을 여러분의 기쁨으로 누리고 있습니까? 저는 여러분의 기쁨의 이유와 근거가 변하기를 바랍니다. 즉, 지금까지는 오직 내안에서 기쁨의 이유와 근거를 찾았다면, 이제는 바울처럼 다른 사람에게서 기쁨의 이유와 근거를 찾기를 바랍니다. 더 쉽게 말해봅시다. 예배에 안나오던 사람이 나옵니까? 그것을 기뻐하십시오! 기도 안하던 사람이 기도합니까? 그것을 기뻐하십니까? 죄 중에 있던 사람이 그 죄를 회개했습니까? 그것을 기뻐하십시오! 낙심한 사람이 힘을 얻게 되었습니까? 그것을 기뻐하십시오! 누군가 신앙이 자라가고 있습니까? 이렇듯 다른 사람으로 여러분의 기쁨을 삼으십시오! 이것이 바울이 기쁨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기쁨의 이유이어야 합니다.
2.헛되게 하지 않으실 하나님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바울이 기뻐하는 이유가, 디도 때문이고, 무엇보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때문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로 인해서 기뻐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미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꾸중을 받아 들이고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비록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꾸중을 받아들였지만, 그러나 아직, 고린도교회가 모든 문제를 다 극복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더욱이 회개는 했지만 바울이 제시하는 신앙의 목표의 자리로 나간 것도 아닙니다. 단지, 꾸중을 받아들인 것뿐입니다. 아직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불분명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마치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모든 문제를 극복한 것처럼,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신앙의 목표에 도착한 것처럼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몇가지 합니다. 먼저, 바울은 자신의 사도성을 의심하던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어떻게 담대하게 꾸중을 할 수 있었을까요? 아직 모든 문제를 극복하지도 않았고, 신앙의 목표에 도착하지도 않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보며 그렇게 기뻐할 수 있을까요? 또, 14절을 보면,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가는 바울이고, 그에게는 디도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이 디도를 고린도교회에 보낼 때, 틀림없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회개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는 말입니다. 도대체 바울은 무슨 베짱으로 디도에게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회개할 것을 자신 있게 말했을까요? 3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담대히 꾸중 할 수 있었는지? 어떻게 디도에게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회개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는지? 또, 겨우 꾸중을 받아드린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보며, 마치 그들이 모든 문제를 극복하고 신앙의 목표에 도달한 것처럼 기뻐할 수 있는지? 과연 여러분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성경이 말해주는 대답은 무엇일까요? 먼저,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담대히 꾸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울이 사도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 때문입니다. 즉, 결과와 상관없이 해야만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헛되게 하지 않으신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셨다면, 그 일을 위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꾸중하는 일을 헛되게 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고, 디도에게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꾸중을 받아 들일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고, 아직 모든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고 신앙의 목표에 도착하지 못했지만 마치 극복한 것처럼, 도착한 것처럼 기뻐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성경의 한구절을 소개한다면, 빌1:6절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입니다. 아시겠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착한 일 곧 거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 거룩한 일의 완성을 이루어 내실 것에 대한 확신을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담대히 꾸중한 것이고, 디도에게 회개할 것이라고 베짱 있게 말한 것이고, 아직 달라진 것이 없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보며 기쁨을 갖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것도 헛되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스데반입니다. 성경에 스데반은 두 번 등장합니다. 한번은 새롭게 세워진 7집사 명단이고, 또 한번은 행7장의 순교장면입니다. 행7장의 스데반의 설교는 그 누구의 설교보다 뛰어났습니다. 그의 모습은 천사와 같았습니다. 그는 거룩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돌아 맞아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도 그 자리에서 회개하지 않았고, 특별히 그 자리에 있던 바울도 회개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냥 설교하고 죽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의 설교, 그의 성령과 지혜의 충만함이 헛된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스데반의 눈에 보인 결과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스데반의 죽음이 우리가 아는 바울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스데반의 죽음으로 바울이 당장 변화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이 전 평생에서 수고와 핍박, 억울함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행한 스데반의 일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행22장을 보면, 바울이 자신의 회심을 이야기 할 때, 스데반의 일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바울의 수고와 열매는 스데반의 것이라고 말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누가 스데반의 죽음을 헛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스데반의 설교와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기도는 헛되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수고하고 땀흘리는 것도 헛되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교회를 위해 수고하고 울부짖는 것도 헛되지 않습니다. 또, 누군가를 향한 꾸중과 칭찬, 세워 주고자 한 모든 노력..., 지금 여러분의 사랑, 인내, 기다림, 고난 조차 헛되지 않습니다. 그 무엇도 헛되게 하지 않으십니다. 요셉의 인생을 보십시오! 야곱의 인생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인생을 보십시오! 그들이 전 인생에서 격은 일들 중에 헛된 것이 있었습니까? 다 ‘여호와이레’이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 일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무엇입니까? 시126:5절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입니다. 왜 이런 약속을 우리에게 주셔야만 하지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헛되게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알게 될 때, 돌을 들고 선 유대인들 앞의 스데반이 될 수 있고, 갈멜산의 엘리야가 될 수 있고, 다윗 앞에 나단이 될 수 있고, 바로왕 앞에선 모세가 될 수 있고... 절망이 없는 그리스도인, 그리고 무모해 보이는 일에도 열심을 낼 수 있는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이 확신을 가지고 하루 하루를 감사와 담대하게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고, 무엇보다도 이 사실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시기를 바랍니다.
3.헛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모든 것을 헛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한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열매의 내용과 열매 맺는 시간이 우리의 기대와 바람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처음에 말한, 조지 뮬러는 친구를 전도하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분명히 전도의 열매를 맛보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친구는 열매를 맛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 열매가 맺었습니다. 스데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아무런 열매를 맛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라는 열매, 더 나가서 바울이라는 열매를 통해서 맺어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열매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헛된 것 같다는 오해가 생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열매의 모양과 시간을 내 기준에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 간단히 말하면, 내가 필요로 할 때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럴 때 어김없이 우리의 신앙은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때와 기한은 하나님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원하는 열매와 때를 기대하는 교만한 자가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짧은 안목, 인생안에서 내 눈앞에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 그 자체가 교만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마치에 접시에 바닷물을 담아내려는 것과 다르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순간에도 낙심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못한다 하지 마시고, 포기하지 말고, 도망하지 마시고, 내려 놓지 마시고, 지금 여러분에게 주어진 책임을 묵묵히 감당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오직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그 자리를 감사함으로 지켜내는 충성뿐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내시는 분이십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그 무엇도 헛되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2)이 확신으로 여러분 스스로를 담대히 일으켜 세우시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십시오!
3)무엇보다 하나님의 때와 기한이 이르기 까지 감사로 그 자리를 지키는 충성된 자가 되십시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헛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모든 순간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여러분 서로를 바라보며 큰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