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7:10-12절 고린도후서강해41
제목 : 당신에게는 탄식이 있습니까?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1990년대초 미국은 이라크와의 1차 전쟁인 걸프전쟁에서 42일만에 승리를 했습니다. 승리한 후 ABC 방송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군의 H. 노만 스워츠코프 사령관을 초청해서 대담을 가졌습니다. 진행자가 사령관에게 ‘오늘날 미국의 가장 큰 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묻자 사령관은 뜻밖의 대답을 했습니다. ‘그것은 이라크와 같은 외부의 적이 아닙니다. 가장 무서운 적은, 미국 남자들에게 눈물이 사라졌다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사령관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가정의 가장인 남자들에게 눈물이 없어지면, 미국의 가정이 무너지게 되고, 그러면 머지 않아 미국 사회가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의 말대로 눈물을 잃어버린 미국의 가정이 무너져 가고, 눈물을 잃어버린 미국사회가 온갖 범죄로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에 가장 무서운 적이 있다면, 그것은 가난이나, 실패와 같은 외부적인 환경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안에 있는 죄, 그리고 못남이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탄식할줄 모르는 마음의 강팍함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신자로서 자신의 죄와 못남이나 부족함을 발견할 때마다 탄식하고 있습니까?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죄와 못남과 연약함, 부족함으로 인해서 끊임없이 탄식하고, 비통해 하며, 울어야 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 모두가 죄에 대한 탄식의 마음을 소원하고 회복하게 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우리는 완전하지 못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지난 몇 시간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묵상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가장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면, 어떤 충성과 헌신 보다 ‘거룩의 완성’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거룩의 완성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자기 자랑, 자기 과시, 자기만족을 위함이 아닌, 다른 사람의 거룩의 완성을 돕기 위함이며, 신앙을 돕는자가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서로를 좋게 봐주는 것, 즉, 99개를 못하고 1만 잘해도 그 잘한 것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히 좋게 봐주고 칭찬해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잠27:21절을 보면,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니라’ 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칭찬만 방법은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들이 꾸중도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꾸중의 목적도 자기 자랑, 자기과시, 자기만족이 되어서는 안되고, 더나가서 마음에 안들어서 하는 분풀이가 되어서는 더 더욱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누군가를 꾸중하기 위해서는 조마 조마한 마음, 상대에 대한 염려와 걱정의 마음이 먼저 필요합니다. 물론, 우리도 누군가의 꾸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더나가서 억욱하게 당하는 꾸중까지도 억울해 하지 않고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당하는 부정적인 억울함보다는 긍정적인 억울함이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모두는 결국 억울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들이 누군가에게 칭찬을 해주거나, 반대로 누군가를 꾸중하는 이유는 상대방의 신앙을 돕고, 거룩의 완성으로 이끌고, 회복하고 세워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제부터 오늘 본문을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그렇다면, 우리들이 서로의 거룩과 신앙을 돕는자가 되기 위해 서로에게 칭찬과 꾸중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대단히 분명합니다. 저와 여러분! 즉, 우리 모두가 결코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우리는 여전히 연약하고 부족하고 흠이 많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칭찬이든 꾸중이든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을 살아간 수없이 많은 그리스도인들 중에 단 한사람도 완전하고 흠없는 사람은 없었고, 앞으로 없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방주를 만든 은혜의 사람 노아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입고, 당대 의인이라고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아는 완전한 사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노아는 술을 마시고 자식들 앞에서 허물을 들어낸 사람입니다. 또, 아브라함을 생각해 봅시다. 아브라함은 누구입니까?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우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완전한 사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했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을 얻기 위해 대단히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한 사람입니다. 또,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는 이스라엘을 애굽땅에 해방시킨 민족의 영웅이며 하나님께 친구라는 칭호를 들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완전한 사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모세 역시 분노와 혈기를 참지 못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가나안 땅 입성을 거절 당했습니다. 또, 아론을 보십시오! 아론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대제사장으로 세움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아론은 완전한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있을 때, 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아론입니다. 또,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라고 칭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완전했을까요? 아닙니다. 다윗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대로, 간음과 살인죄를 저지른 사람입니다. 또, 솔로몬을 보십시오! 그는 지혜의 왕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릴 정도로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완전한 사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외교정책을 더 의지함으로 정약결혼을 통해서 이스라엘 온 땅에 우상을 들어오게 만든 사람입니다. 또, 베드로를 보십시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라는 말을 듣고, 특별히 최후의 만찬에서 주님을 위해 죽겠다고 서약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완전한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이 소개하는 그 누구도 완전하고 흠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예외일까요?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죄사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성령의 영원하신 내주하심 속에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완전하지 않고, 연약하고 부족하고, 흠이 많습니다. 이렇듯 누구도 완전하고 흠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마치 롬3:10절의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모든 사람은 부족하고 연약하고 흠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사랑이 제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칭찬과 꾸중이 필요한 것입니다.
2.그렇다면, 탄식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연약하고 부족하고, 흠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그렇다면,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끊임없는 탄식, 절규, 비통함, 율부짖음이 있습니까? 만일 있다면, 여러분은 스스로가 연약하고, 부족하고, 흠이 많은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맞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여러분의 삶에 끊임없는 탄식, 절규, 비통함, 울부짖음이 없다면 여러분의 연약하고, 부족하고, 흠이 많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하고,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지, 겸손한척 하는 것이고, 못남을 인정하는 것같지만 실상은 자신을 도리어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디도를 통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잘못을 꾸중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 10절을 보면, 바울의 꾸중을 들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꾸중을 받아 들여 ‘근심’ 하게 되었고, ‘회개’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1절을 보면, 꾸중을 통해서 ‘간절하게, 변증하게, 분하게, 두렵게, 사모하게, 열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꾸중을 통해서 자신의 죄, 연약함, 부족함, 흠을 발견하고 인정하고, 그 결과 그들은 탄식, 비통, 애통, 절규, 율부짖과 결심을 나타내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정말 형편없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을 보았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고리도교회 성도들 보다 우리들이 더 형편없는 사람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들에게도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같은 못남, 연약함, 흠, 죄악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으로 인한 탄식과 절규, 울부짖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다시한번 묻습니다. 여러분은 최근에 여러분의 범죄함에 대해서 침통해 보셨습니까?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가로 인해서 가슴을 쳐 보신적이 있습니까?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원수를 사랑하기는 켜녕 원수의 꼴도 보기 싫어하는 모습으로, 오리를 가자 할 때 십리는커녕 단 1리 조차도 가기 싫어하는 모습으로,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기는커녕 실오라기 하나도 손해보기 싫어하는 모습으로, 핍박자를 위해 기도하기는 커녕 망하기를 바라는 모습으로, 그 밖에도 내가 왜 그렇게 말했나? 내가 왜 용서하지 못하는 것으로, 참지 못하는 것으로, 겸손하지 못한 것으로 가슴을 펴 보신적이 있습니까? 정말 이상한 일 아닙니까?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몇 년을 하셨습니까? 10년, 20년, 30년, 40년, 50년..., 그럼 묻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자녀가 영어학원은 10년을 다녔는데도 영어를 하나도 못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애통, 비통, 탄식이 나오겠지요? 그러나 이 시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애통, 비통, 침통, 탄식이 없습니다. 마치 눅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의 모습과 같습니다. 눅18:9-14절을 보면, 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내용이 소개됩니다. 여러분이 먼저 기억할 것은, 이 기도시간은 아마도 아침이나 저녁 번제를 드리는 시간이라는 점입니다. 다시말해, 자신들의 죄를 위해 짐승이 죽어가는 소리를 듣고, 그 짐승의 피냄새가 나고, 그 짐승이 불태워지는 연기를 보는 자리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바리새인은 다음과 같이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잘났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흠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지금 울부짖으며 죽어가는 짐승의 번제와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이 바리새인은 무흠한 사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1절을 보면,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라고 말합니다. 결코 무흠하고, 완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고린도교회 성도들 처럼 자신의 죄인됨, 못남, 연약함, 부족함으로 인해서 탄식, 비통, 애통, 침통, 탄식, 가슴을 치는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또, 눅18장의 세리와 같이 되라는 것입니다. 즉, 그러나 세리는 다음과 같이 기도를 합니다.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즉, 세리는 자신의 죄인됨으로 인해서 애통, 비통, 침통, 탄식하며 가슴을 쳤습니다. 우리가 이런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위기는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일에는 앞 다투지만, 스스로의 잘못과 연약함에 대해서는 누구도 탄식하며 가슴을 치지 않는다는데 있는 것입니다. 물론, 말씀을 전하는 저도, 여러분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어떤 그리스도인이 훌륭한 그리스도인인지 아십니까? 다윗같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즉, 다윗은 시6:6절에서 자기의 지은 죄 때문에 이렇게 슬퍼합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며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자기의 지은 죄를 슬퍼하며 흘린 눈물이 얼마나 많았던지 요를 흥건히 적실 정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베드로 같은 그리스도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스승인 예수님을 3번이나 배신했습니다. 마26:75절을 보면, 3번 부인한 직후 예수님의 예언대로 닭이 울었고, 주님의 말씀이 생각이나 심히 통곡했다고 기록합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자신의 죄악을 놓고 통곡했다는 것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그 후에 베드로는 새벽에 닮이 울때마다 일어나 자신의 못남과 연약함으로 인해 눈물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자신의 죄로, 시험과 유혹에 흔들리고 갈등 가운데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애통, 비통, 침통, 탄식하며 가슴을 치는 그리스도인이야 말로 훌륭한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성도들 모두가 이런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훌륭한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사람이 많이 모이고, 재정이 넉넉하고, 시설이 좋고, 유명한 교회입니까? 아닙니다. 정말 좋은 교회는 죄를 알게 하고, 죄를 지적하고, 탄식하게 만들고, 울부짖게 만드는 교회가 훌륭한 교회입니다. 물론, 비난과 정죄가 아닌, 모범과 중보로 그리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사랑하는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3.탄식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왜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땅이 있어야 할 탄식이 생기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간단하게 3가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죄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죄가 무엇인지 모르니 죄에 대한 탄식도 안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할 것을 안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것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빨리 깨우쳐야 할 것은, 신앙의 용어들을 세상의 용어와 같은 수준에서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사랑을 감정으로 생각하는 것, 섬김을 어떤 일을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것, 정직을 거짓말 하지 않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것..., 등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신자들이 생각하는 죄는 ‘양심이나 도리에서 벗어난 행동’ 간단히 말하면, 도적적 윤리적이지 못한 행동만을 죄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하나님을 모르는 게 죄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살피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며 사는게 죄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자기가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이 죄입니다. 이런 죄의 정의를 모르기 때문에 탄식이 없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앙의 싸움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의 싸움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신앙의 싸움은 무엇입니까? 크게 2가지입니다. 죄와의 싸움이고, 주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싸움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이러한 신앙의 싸움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의 싸움에는 무관심하고, 도리어 자기 자랑, 자기 증명, 자기만족을 위한 싸움만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못남, 연약, 흠, 죄에 대한 패배로 인해 애통, 비통, 침통, 탄식, 가슴을 치는 일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신앙의 싸움을 시작하십시오! 그래야 탄식도 회복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세번째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 부족함, 죄악됨, 거룩하지 못함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밖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들이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연약함, 부족함, 흠, 거룩하지 못함에 대해 애통이 탄식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다시 눅18장을 예를 들면, 바리새인은 죽어가는 짐승, 불태워지는 짐승이 자신을 위한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임을 인식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세리는 죽어가는 짐승의 소리, 불태워지는 짐승이 자신의 죄때문이며, 자신 대신에 죽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기에 탄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을 위해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과 감격하게 될 때, 비로서 우리안에 탄식, 애통, 비통, 거룩한 분노, 가슴을침, 눈물이 흐르게 될 것입니다. 다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고 확신함으로, 탄식과 눈물을 회복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우리는 아직도 연약하고 부족하고, 흠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매일 매일 마다 그런 자신으로 인해서 탄식이 생겨야 마땅합니다.
2)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식하지 못하는 것은, 죄를 모르고, 신앙의 싸움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무엇보다도 나를 위해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고, 다시 신앙의 싸움터로 나가고, 승리를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패배를 통해서는 탄식과 애통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탄식과 애통 가운데 위로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서, 다시 신앙의 승리자로 일어서, 다른 사람들도 승리자로 세워주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