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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서로를 좋게 보십시오!(고린도후서강해40)
 본문말씀 : 고후7:1-4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7.5.17
조회 : 11,763   추천 : 0  
본문 : 고후7:1-4절  고린도후서강해40
제목 : 서로를 좋게 보십시오!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 컨설턴트이며 베스트셀러 작가인 켄 블랜차드의 책중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라는 책이 있습니다. 블랜차드가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동기는, 어느날 플로리다의 한 동물원에서 고래쇼를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즉, 3톤이나 나가는 육중한 몸무게, 그리고 결코 춤을 출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범고래가 관객들 앞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 너무나도 신기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공연이 끝나고 범고래 조련사에게 가서 물었답니다. 어떻게 범고래가 춤을 출수 있게 되었습니까? 그러자 조련사는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합니다. 즉, 내가 지시한 행동을 했을 때 충분한 칭찬과 고등어 한 마리를 주는 칭찬을 반복하면 고래는 춤추게 됩니다.’ 라고 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칭찬은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또, 세계 최고의 리더십 전문가이자 베스트셀러의 작가이며 목사인 존 맥스웰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칭찬과 격려를 통해 성장한다.’고 말했습니다. 역시 칭찬의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칭찬의 위대한 능력은 성경에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잠27:21절을 보면,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니라’ 그렇습니다. 칭찬을 통해 사람은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칭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서로를 좋게 봐줄 줄 알아야 합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좋게 봐주었던 바울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서로를 좋게 봐주고, 서로의 좋은 점을 봐주고 칭찬해 줄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왜 거룩해야 하는가?
 우리는 지난 시간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과연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이었습니까? 적어도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가 보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요? 감사와 보답이었습니다. 그리고 감사와 보답이 우리를 이끌고 가는 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거룩의 완성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대해 감사와 보답을 신앙의 목표로 품은 신자들은 자신을 더욱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일을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우리의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는 거룩의 완성인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면, 다른 무엇이 아닌, 자신을 거룩하게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룩이 무엇인가요? 보통신자들이 생각하는 거룩은 바리새인적인 거룩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즉, 종교적인 색이 강하고, 종교적인 열심을 가지는 것을 거룩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 한번도 바리새인을 거룩한 사람들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적인 거룩은 참 거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거룩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과 나(세상) 사이에 내편이 아닌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 거룩인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으로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눈, 코, 입, 귀, 마음,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샛째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야 말로, 하나님을 가장 대표하는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성경이 말하는 거룩은 바리새인의 모습이 아닌,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거룩과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거룩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랑이 있고, 사랑이 없는 곳에는 결코 거룩도 없습니다. 결국, 거룩의 핵심은 이웃사랑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난 한 주간 거룩하셨습니까?  선한 사마리아인의 삶을 사셨습니까?

 이제 우리들이 생각할 것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거룩할 것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거룩을 요구하실까요? 자기 자랑, 자기 과시, 자기 만족을 위함일까요? 아닙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그런데 의외로 신앙의 열심을 가진 많은 신자들 중에는 거룩을 또는 신앙의 열심을 자신의 자랑, 자기 과시, 그리고 자기 만족을 위함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 중에 가장 나쁜 것은 자기만족입니다. 저는 여러분 가운데 거룩이든, 신앙의 열심히든 자기만족이 목적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른 사람을 더 거룩하게 하는 일을 돕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거룩의 가장 중요한 정의를 내리려고 합니다. 거룩이란? 자신의 자랑거리를 만들고, 자신만을 흠없는 사람으로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고, 세우고, 거룩하게 만드는 일이 거룩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의 능력, 신앙의 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많이 아는 것, 뭔가를 잘하는 것, 뭐든 열심을 내는 것..., 아닙니다. 그것은 나로 인해 누군가가 선하고 거룩하게 변하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신앙의 능력이며 실력인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생각하는 신앙의 실력이 다른 사람을 변하게 하는데 쓰여지지 않는다면, 어쩌면 그것은 진정한 신앙의 실력이 아닌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아픈 성도를 위해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얼마 후 나았습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목사님과 성도들은 목사님에게 신유의 은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본교회 뿐만 아니라 타교회 신자들까지 많이 찾아왔답니다. 그리고 많은 불신자들까지도 돈을 들고 찾아오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자 목사님은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관심이 주님이 아니라, 단지 병낫는 것에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 목사님은 하나님께 신유은사를 거두어 가시기를 기도했고, 하나님은 거두어 가셨답니다. 정말 훌륭한 분입니다. 그 목사님은 아셨던 것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신유의 은사라도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신앙의 능력이 아니고, 고전13장의 표현대로 아무것도 아님을 아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신앙의 능력은 다른 사람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능력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의 능력이 있습니까? 스스로 깊이 고민해 보십시오! 이렇듯 우리 모두는 서로를 더욱 거룩한 자리로 이끌 책임 곧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들은 더 더욱 자신의 거룩을 완성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붙드십시오!

  2.서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신앙의 실력이란 다른 사람을 선하고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점과 그것을 위해 우리들은 스스로를 더욱 더 거룩하게 만들어 가야 한다는 점을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묵상할 것은, 그렇다면, 서로를 거룩하게 하는 일을 위해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과연 무엇이 필요할까요? 2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들의 마음에 자신을 받아들여달라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자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거룩의 자리로 이끌어가고, 그들의 거룩을 완성시켜주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자신의 사도성을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바울과 고린도교회 성도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 잘못된 관계를 회복하자고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누군가를 거룩의 자리로 이끌고, 거룩의 완성을 돕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은 올바른 관계가 필요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믿어주는 관계, 사랑하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올바른 관계가 형성되지 않고서는 어떤 열심히도, 어떤 올바른 말로도 거룩을 돕는 자가 결코 될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우리들에게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롬12:18절 ‘할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바른 관계가 먼저입니다. 그리고 서로 올바른 관계가 되기 위해서 2절을 다시보십시오! ‘불의를 행하지 않고, 해롭게 하지 않고,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정직하고, 선하고, 사랑으로 대하셔야 합니다.

 우리들이 서로를 거룩하게 하는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두 번째는, ‘서로를 좋게 봐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고 말을 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지금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로 인해서 위로와 기쁨이 넘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상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좋은 점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대단했던 사람들입니다. 예를들면, 성경을 알고자 하는 일에도 열심, 은사를 사모하는 마음에도 열심, 모이는 일에도 열심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쁜 점은 훨씬 더 많았습니다. 예를들면, 분쟁과 다툼이 많았고,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고, 음행의 문제도 심각했으며, 연약한 자들을 무시하는 교만이 있었고, 자기 자랑과 자기 과시에 빠져 있었고, 성도들 사이에 소송의 문제가 있었고, 왜곡된 신앙의 모습들이 너무나 많았고, 무엇보다도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하고 공격한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잘하는 것보다는 잘못하는 것들이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을 자랑거리라고 위로와 기쁨거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것입니까? 이유는 하나입니다. 좋은 점만 보았기 때문이고, 좋게 봐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잘못과 못남과 부족한 것 투성이인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바라볼 때, 좋은 점만 보았고, 좋게 봐주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끝까지 거룩의 자리, 신앙의 완성의 자리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서로를 거룩으로 이끌고, 신앙의 완성을 돕는 자가 되기 위해서 서로의 좋은 점만 보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서로를 좋게 봐줄 수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들이 서로를 거룩한 자리로 이끌어주지 못하고, 서로의 신앙의 완성을 돕지 못하는 이유, 도울 마음도 안생이기는 이유는 나쁜 점만 보고, 좋게 안보이고, 이래서 저래서 마음에 안들고, ‘늘 못마땅하게만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어떻게 그들을 거룩한 자리로 이끌고, 신앙의 완성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이 부분을 여러분에게 강조하기를 원합니다. 서로를 좋게 봐주십시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점수를 좋게 주려는 사람과 점수를 깍으려는 사람입니다. 제가 신학공부를 할 때, 조직신학의 어떤 교수님은 점수에 너무 인색한 분이 있었습니다. 조금만 다르게 쓰면 점수를 깍습니다. 그래서 그분 수업을 듣는 학생 대부분은 d학점이었습니다. 전 b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교수님은 점수를 대단히 후하게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시험을 보기 전에 답안지에 무조건 많이 쓰라고 말을 합니다. 이유는 어떻게든 점수를 많이 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이 점수가 좋습니다. 물론, 저는 a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서로에게 점수를 주고 싶어하는 쪽입니까? 점수를 깍아내리고 싶어하는 쪽입니까? 저는 우리 하음이가 태어난후 ‘검사’ 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나이 많이 지켜주지 못할 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검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하음이가 어떤 직업을 가지기를 바라냐고 물었을 때, 검사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하는 말이, 검사는 사람의 죄를 들추고, 죄인으로 만드는 사람이잖아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 마음이 동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검사 말고, 변호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훌륭한 의사가 되어 많은 사람을 돕고 선교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검사는 죄를 찾고, 죄를 만들어내고, 죄를 정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변호사는 죄를 감싸주는 사람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또 묻습니다. 여러분은 검사와 같은 사람입니까? 변호사와 같은 사람입니까? 저는 운전면허를 서부면허시험장에서 보았습니다. 주행시험중에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시험장에 나오자 마자 만나는 신호대기 언덕이었습니다. 신호가 잘 맞아 멈추지 않고, 올라가면 어렵지 않은데, 신호에 걸려 언덕에 멈추었다 다시 출발하려면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시험을 보는데 언덕에서 신호에 걸린겁니다. 그리고 신호가 바뀌고 출발해야 하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시동을 꺼 먹은 겁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감독관이 기록지에 감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실수 말고 나머지는 잘 해서 면허를 취득했습니다. 그 감독관은 점수를 깍는게 전문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부모를 다릅니다. 부모는 아기에게 점수를 잘 줍니다. 하품하는거, 젖을 빠는 거, 방귀를 뀌는 거, 뒤집는거, 앉는거, 웃는거, 기는거, 걷는거, 옹알이 하는거, 심지어 똥 싸는 것도 점수를 줍니다. 이건 당연한 것들 아닙니까? 그런데 부모는 100점을 줍니다. 점수를 후하게 줍니다. 천재를 낳은것이라고 까지 착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여러분은 감독관입니까? 부모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에게든 점수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변호사가 되어야 하고, 부모같은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여러분은 그들을 거룩한 자리로 인도하고, 신앙의 완성을 돕는자가 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는 0점짜리 인생이라는 점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늘 0점을 넘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전적타락과 부패입니다. 그러므로 99개 못해도 하나만 잘해도 훌륭한 사람으로 보는 안목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이라는 명분하에 누군가의 흠을 찾고, 들추기를 좋아합니다. 이미 말했듯이 이것은 거룩이 아닙니다. 거룩은 다른 사람을 좋게 봐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사람과 화목이라는 올바른 관계를 맺으십시오! 그리고 서로를 좋게 봐주십시오! 조금만 잘해도 칭찬을 아끼지 마십시오! 그것이 서로를 거룩으로 이끄는 방법이고, 그들의 신앙을 세워주고, 완성해주는 방법입니다. 물론, 꾸중도 필요합니다. 이 부분은 다음주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3.하나님도 우리를 좋게 봐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우리들이 서로를 좋게 봐주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입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든 신앙의 이유가 하나님에게 있듯이, 우리들이 서로를 좋게 봐주어야 할 이유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좋게 봐주시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아버지라 부를 것을 명하셨습니다. ‘의인’ 이라는 말도 마차낙지입니다. 사실 우리는 진정한 의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의인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좋게 봐주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습3:17절을 보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고, 즐겁고 기뻐하시는 분이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를 좋게 봐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서로를 좋게 봐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우리는 서로를 거룩의 자리로 이끌고 신앙의 완성을 도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본문과 삶
 1)그러기 위해 우리가 먼저 더 거룩해야 합니다.
 2)무엇보다 올바른 관계를 갖어야 합니다.
 3)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좋게 봐주고, 점수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서로를 좋게 봐주고, 칭찬을 아끼지 않음으로 더 거룩해지고, 거룩을 돕는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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