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6:14-18절 고린도후서강해38
제목 : 더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우리들이 살다보면, 인생에 많은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예를들면, 부부사이의 문제, 자녀의 문제, 물질의 문제, 건강상의 문제,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제, 감정의 문제, 다양한 현실의 문제..., 등 그리고 그런 문제들로 인해서 우리들은 힘들어 하고, 지치고, 괴로워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우리들이 다양한 문제로 힘들어 하는 이유가, 단지 지금 내가 만난 그 문제로 인한 것이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물론, 힘들지 않으니 엄살부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분명히 힘들고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만나는 문제보다 우리가 더 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우리들이 똑같은 문제를 만났지만, 어떨 때는 웃으면서 이겨내지만, 어떨 때는 웃음을 잃고 넘어져 버릴 때도 있습니다. 더 쉽게 말하면, 누군가에게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떨 때는 웃으면서 넘기지만, 어떨 때는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리들이 힘들고 지치는 이유가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에 있에만 있는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있다는 점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의 유혹을 받고, 시험을 당할 때 넘어지고 쓰러지는 이유가 죄와 시험 때문에만 이유가 있는게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그 죄의 유혹과 시험을 이길 만큼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신앙의 성숙을 위한 노력인 것입니다.
1) 연결 –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해 신앙의 성숙, 신앙의 완전한 자리에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고자 합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세상 안에 있어야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14-17절을 봅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사탄 또는 사탄의 하수인)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세상과 짝하지 말하는 말입니다. 맞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세상 사람과 짝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이 말을 세상의 불신자들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는 식으로 오해하면 안됩니다. 예전에 어떤 자매의 상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자매가 작지만 꽤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사장이 불교신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욱이 새해를 시작하면서 또는 큰 일을 앞두고는 고사를 지낸다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직원들에게 그런 행위에 동참하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실을 알게 된 날로부터 직장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즉, ‘내가 이 우상숭배하는 사장 밑에서 일하고, 이런 회사에서 주는 돈을 받고 다녀야 하나?’라는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 담임목사님을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고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담임목사라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다녀라, 떼려 쳐라..., 다니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첫 번째로 생각할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안에 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 이라는 점입니다. 쉽게 말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등지거나, 불신자와 격리된 삶을 사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종종 이런 자랑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예수를 안믿는 사람들과는 만나지도 않고, 믿는 사람들과만 만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은 한번도 직장동료들과 술자리 회식에는 한번도 동석하지도 않았음을 자랑삼아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세상과 담을 쌓고 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리스도인은 죄인들과 불신자들과 더 적극적으로 만나야 하고 사귀어야 하며,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인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마5:13-14절을 보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점을 잊으면 안됩니다. 뿐만 아니라, 마13장을 보면, 알곡과 가라지 비유가 나옵니다. 핵심은 무엇입니까? 알곡과 가라지는 한 밭에 있다는 것입니다. 격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세상에 존재해야 하며,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지만, 그 사람들의 삶의 원리와 방법, 인생의 목표, 삶의 내용과 가치에 물들지 말고,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바울의 가르침입니다. 예를들면, 세상사람들의 삶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자기중심적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인생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삶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잘 먹고 잘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는 이웃사랑이며, 목표는 주님을 닮는 것이며, 가치는 섬김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올바른 삶을 버리고 세상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를 들어 봅시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잠수함이 되어야 합니다. 잠수함은 반드시 물속에 있어야 하듯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세상 안에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나 잠수함에 물이 들어오면 침몰하듯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세상 안에서 있어야 하지만, 세속의 물결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 안으로 들어오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세상이 있어야 하지만, 세상을 따르거나, 세상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이런 잘못을 범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는 경계의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 보십시오! 여러분은 세상안에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수도원에 격리된 것 같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닙니까? 수도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불신자들에게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의 빛이 될 수 있고, 그래야 세상에서 소금이 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들이 이 세상안에서 불신자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 받은바 우리의 사명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물들지 마십시오! 세상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 모두가 거룩하고 견고한 잠수함이 되기를 바랍니다. 즉, 세상의 거센 물결에도 방향을 잃거나, 흔들리거나 침몰하지 않는 그리스도인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에게 필연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신앙의 성숙, 신앙의 성장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지난주에 살펴본대로, 목자는 양의 성장과 성숙에 대한 책임이 있고, 양은 목자의 성장과 성숙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2.두 마음을 품으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신앙이 더욱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두 마음을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고 말을 합니다. 바울은 왜 이런 말을 할까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메게 될 것까봐 걱정이 되어서 일까요? 아닙니다. 이미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메었기 때문입니다. 즉, 믿지 않는 자들의 삶을 따라가고, 믿지 않는 자들의 가치를 따르며, 믿지 않는 자들의 소원을 자신들의 소원으로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은 주님을 주로 고백한 자들이며, 십자가를 붙든 자들이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자들이라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신앙이 성숙,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 신앙이 실패한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야고보사도의 표현을 빌려 말한다면, 두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약4:8절) 오늘 본문을 이런 관점으로 보십시오! 의와 불법, 빛과 어둠, 그리스도와 벨리알,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 이 모든 표현들의 핵심은 ‘두 마음’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의 표현대로 바꾸어 말해 본다면, ‘마음이 청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청결이 무엇입니까? 무엇으로도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상태, 또는 여러 가지가 섞이거나 혼합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마음속에 이런 저런 것이 섞여 있지 않고, 혼합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즉, 두 마음을 품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오직 하나님께만 일편단심(一片丹心(single mind))인 마음, 곧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의 기쁨만을 위해 살겠다는 마음이 바로 마음이 청결하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고려말 정몽주의 시조 단심가를 아십니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이 시조는 정몽주가 망해가는 고려를 변함없이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기록한 시조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섬김의 일편단심의 마음이 바로 청결한 마음입니다.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마음이 청결한 삶, 일편단심의 마음으로 살았던 신앙의 인물들을 예로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에녹입니다. 창5장을 보면,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에녹이 살던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죄가 관영하고, 죄를 자랑거리 삼는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곧 그들과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에녹은 모든 유혹과 조롱을 이기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일편단심의 마음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청결한 사람인 것입니다. 또, 다니엘과 3친구들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에게는 더 나은 기회였습니다. 왜냐하면, 멸망해가는 유다 나라의 귀족으로 사는 것보다 바벨론이라는 대제국의 관료로 사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이 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합니다. 그것은 왕이 제공하는 음식을 거절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 행동 때문에 모든 기회가 물거품이 될 수도 최악의 경우에는 죽임을 당할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왕이 제공하는 음식을 거절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일편단심의 마음 때문입니다. 이렇듯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만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마음,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겠다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제 반대의 경우로 마음이 청결한자를 설명하겠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북이스라엘은 bc722년경 앗수르에 의해서, 남유다는 bc586년경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들을 멸망당하게 하셨을까요? 혹시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와 절기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그들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그들이 하나님께 절기를 지키지 않고, 번제를 드리지 않았던 적은 없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을 버린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그들이 예배, 절기를 드리며 하나님을 섬겼지만, 그들은 항상 두마음이었습니다. 즉, 하나님도 섬기면서 이방우상도 섬긴 것입니다. 다시말해, 그들은 하나님께도 재미를 보고, 이방우상에게도 재미를 보겠다는 두 마음을 품은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들은 마음이 청결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멸망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데마라는 사람을 아실 것입니다.(딤후4:11절) 데마는 한때,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신앙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즉, 두 마음 때문입니다. 또,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를 해봅시다. 마르다가 주님께 분노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말씀도 듣고 싶고, 대접도 하고 싶고..., 등 두 마음 때문입니다. 이렇듯 두 마음을 품으면 신앙이 성장, 성숙 할수 없고, 신앙의 실패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만 일편단심입니까? 하나님이 청결하십니까? 하나님만 섬기려는 마음, 하나님만 사랑하려는 마음,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으로 살아가십니까? 혹시 고린도교회 성도들처럼 영적인 바람둥이는 아닙니까? 즉, 하나님께도 재미를 보고, 세상에서도 재미를 보고 싶어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도 얻고, 세상이 주고자 하는 것도 얻고 싶어 하지 않습니까? 예배의 자리에서, 기도의 자리에서, 봉사의 자리에서, 혹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과 세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지는 않습니까? 명심하십시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마6:24절)’입니다. 결국, 모두 놓치고 잃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만 일편단심인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일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청결하게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그것은 욕심을 이겨내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두 마음을 품게 되는 이유가 바로 욕심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욕심 때문에 두마음을 품었고, 야곱도 욕심 때문에 두 마음을 품었고, 제자들 역시 욕심 때문에 두 마음을 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욕심 때문에 두마음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3.세상적인 보상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기 위해서는 두마음이 아닌, 일편단지,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조금 더 근본적인 바울의 메시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꼭 마음에 품어야 할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갈6:7절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입니다. 이 무슨 말입니까?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둔다는 말입니다. 만약 콩을 심었는데 팥을 거두려는 사람이 있다면, 무엇이라 말하시겠습니까? 바보, 맹꽁이...,
그러면 여러분이 혹시, 바보이거나 맹꽁이는 아닙니까? 이제 다시 묻습니다. 거룩한 것을 심으면 무엇을 거둘까요? 당연힌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신자들 중에는 바보 같고 맹꽁이 같은 신자가 많습니다. 즉, 거룩한 것을 심으며, 거룩과 상관없는 것을 거두려는 마음을 품고 기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예를들면, 신앙생활은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함으로 세상적인 열매와 보상 즉, 부자, 건강, 성공, 출세..., 등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좀 다르게 말하면, 신앙생활을 통해서 세상적인 것들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말하는 빛과 어둠이 사귀는 것이고,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착각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성숙과 성장을 가로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 성장하지 않는 이유, 신앙이 성숙하지 않는 이유는, 뿌린대로 거둔다는 너무나 상식적인 신앙의 기초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이제 점검해 보십시오! 혹시, 거룩한 것을 심으며, 세상적인 열매를 기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뿌린 대로 거둔다는 신앙의 원리를 다시한번 마음에 새기고,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그 원리에서 신앙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의 신앙은 더 거룩하게 성장하고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들의 신앙이 더욱더 성장하고 성숙하기를 바랍니다.
본문과 삶
1)먼저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이 우리의 신앙의 텃밭이라는 점입니다.
2)두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3)뿌린 대로 거둔다는 신앙의 원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이룸으로, 하나님께 칭찬과 삶의 능력을 갖게 도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