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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설교] 신앙의 승리자!(사무엘상 강해11)
 본문말씀 : 삼상8:1-22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7.4.28
조회 : 9,086   추천 : 0  
본문 : 삼상8:1-22절  사무엘상 강해11
제목 : 신앙의 승리자!    

  성도들의 삶속으로  
 ‘생각이 사람을 바꾼다’ 라는 책에 인생에는 3가지 타입(type)이 있다는 글을 소개합니다. 여러분도 확인해 보십시오! 첫번째 타입은, 방관자 타입니다. 이 타입의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인생을 만들기 위해서 아무런 노력이나 어떤 도전도 하지 않고 인생을 방관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마도 매우 많은 사람들이 이 타입에 속할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타입은, 패배자 타입니다. 이 타입의 사람들의 특징은 누구처럼 되싶다는 마음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나도 저런 집에 살고 싶다. 나도 저런 인생을 살고 싶다, 나도 저런 사람과 살고 싶다..., 등 다른 누구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나보다 잘 되고 성공했을 때에는 지나치게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셋번째 타입은, 승리자 타입니다. 이들은 항상 인생을 목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목표를 향해 가다 격게되는 실패를 실패가 아닌 성공을 위한 과정으로 볼줄 아는 시각을 가진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타입의 사람이십니까? 

1) 연결 -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과 장로들의 타입은 아마도 ‘패배자 타입’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 소개된 그들의 모습은 다른 나라처럼, 예를들면, 블레셋처럼, 애굽처럼, 가나안 사람들처럼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왕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가 신앙의 패바자 타입에서 승리자 타입으로 바뀌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핑계하지 맙시다!
 오늘 본문은 사무엘의 통치 말년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1절을 보면, 사무엘이 나이가 많아 더 이상 사사로서의 수임을 완수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무엘은 자신의 두 아들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웠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2절에 ‘요엘과 아비야’입니다. 그런데 3절을 보면, 그들은 아버지 사무엘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뇌물을 받고 부정 재판을 했습니다. 과연 어떻게 그 신실한 사무엘 선지자의 아들들에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몇가지 원인이 있었을 것입니다. 첫째로, 사무엘이 목회가 너무 바뻐서 아들들을 양육할 시간이 부족했을 것입니다. 이건 요즘 목회자 가정에서도 자주 있는 일입니다. 둘째로, 사무엘이 어린나이에 가정을 떠나 성전에서 생활했기에 가정안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배울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아버지 사무엘이 너무 위대하기에 아들들이 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것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어긋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간에 사무엘의 두 아들들은 백성들에게 인정받지 못해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의 장로들이 모여서 사무엘에 찾아옵니다. 그리고 5절에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때 사무엘은 왕을 세우게 되면 감수해야 할 의무조항을 소개합니다. 11-12절에 강제 징집을 당해야 하고, 13절에 노동력이 착취당해야 하며, 14-15절에 과도한 세금을 내야 하며, 16절에 하나님께서 조금 더 멀어지게 될 것을 경고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나라와 같이 왕이 있어야 한다고 요청을 합니다. 그리고 결국 2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청대로 왕을 세울 것을 허락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들이 먼저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구하는 것 그 자체가 어떤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으로부터 350년전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신17:14-15절을 통해서 가나안땅에 정착한 후 어느 시점이 되어 이스라엘나라에 왕이 필요하고 요청하면 왕을 세워 줄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왕을 구하는 것 그 자체가 죄는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왕을 세워달라는 그 요청에 굉장히 섭섭해 하셨습니다. 물론 사무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7절을 보면,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본심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계신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구하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지만, 왕을 구하는 그들이 본심이 잘못된 것을 우리들이 염두하고 오늘 본문을 묵상해야 합니다.

 첫째로 생각할 것은, 이스라엘백성의 ‘핑계’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로들을 통해서 왕을 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무엇이라고 설명합니까? 1절을 보면, 당시 이스라엘 나라의 지도자인 사무엘이 늙었기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3절에, 사무엘의 2아들이 정직하지 않고, 사사로서의 자격이 없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핑계일 뿐입니다. 사무엘이 왕을 구하게 되면 격게 될 어려움들을 말하자 그들은 본심을 들어냅니다. 19-20절을 보면,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그러면서 그들이 왕을 구하는 진짜 이유를 ‘열방과 같이 되어’ 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사무엘이 늙고, 사무엘이 2아들이 신실하지 못하다는 것은 자신의 요청을 정당화 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것은 알고 계신 하나님은 그래서 섭섭하신 것입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 밤에도 푹푹찌는 열대야 현상이 나타나던 어느 날. 4살 짜리 꼬마가 이불에 지도를 그렸습니다. 아침에 깨어나 한참을 고민하던 꼬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엄마에게 늘어놓는 변명....  "엄마, 방이 너무 더워서 땀이 다 고추로 나왔어요". 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힌두교나 불교에서는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늘 하는 말이 카르마 때문이라고 말을 하곤 합니다. 카르마란 전생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핑계대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기도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시간이 없어서, 환경이 안되서..., 등 핑계를 댑니다. 말씀을 읽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너무 어려워서, 눈이 잘 안보여서, 바뻐서..., 등의 핑계를 댑니다. 그 외에도 예배에 소홀 것, 순종하지 못하는 것, 감사하지 않는 것, 기뻐하지 못하는 것, 열심히 없는 것, 봉사의 일을 하지 않는 것, 인내하지 못함, 전도하지 않음..., 등에 대해서 핑계대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핑계로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특별히 더욱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지 못함에 대해서 이런 저런, 또는 누구때문이라는 핑계를 참 많이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핑계를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참 신앙은 현실을 이기는 것이지 핑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핑계하는 내용들은 무엇입니까? 핑계를 버려야 신앙의 승리자가 될수 있는 것입니다.

  2.하나님만으로 만족합시다.
 다시한번,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세워달라고 요청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그것은 5절, 20절에 말하는 대로 ‘열방과 같이’ 되기 위함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 열방이라는 말중에는 특별히 블레셋나라를 크게 염두해 두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블레셋같이 되고자 왕을 구했다고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왜 블레셋 처럼 되고자 했을까요? 그것은 지난주에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블레셋은 고대중동에서 가장 먼저 철기 문명을 발전시켰고, 따라서 전쟁에 능했으며, 많은 전리품으로 부를 누린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대표 우상인 아스다롯을 섬긴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미스바 회개운동으로 모든 우상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나 사무엘이 늙게 될 무렵에 또다시 블레셋에 대한 동경심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블레셋의 그 강성함의 원인이 왕정정치였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더욱 왕을 구하게 된 이유는, 이스라엘이 격는 어려움때문입니다. 무슨말이냐면, 이스라엘은 사사가 다스리는 신정국가입니다. 즉,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만 하면 형통하게 될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세우시기 위해서 어려움을 주셨습니다. 대표적인  어려움은 블레셋을 중심으로한 다른 민족의 침입니다. 그리고 이민족의 침입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세금을 내고 하는 등의 시련을 격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외세의 침입을 받고 또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격는 이유가 불순종에 있음을 모르고, 이스라엘 나라에 왕이 없기 때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을 구한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지금 그들은 하나님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섭섭하신 이유인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만으로는 부족하니 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잘못은 우리들에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책임져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으로 만족해하고, 기뻐해하고, 행복해해야 합니다. 아닌 충분히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할 때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만으로 만족이 안되서, 돈에 욕심도 갖습니다. 하나님만으로 만족이 안되서 더 넓은 평수의 집을 원합니다. 하나님만으로 만족이 안되서 명예와 권세를 원하고, 하나님만으로 만족이 안되서 자신의 만족거리를 찾고, 욕심을 부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늘 하나님께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만일 하나님으로 만족한다면, 하나님 제가 뭘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 나와 내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 뜻대로 써주소서! 라고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기도가 없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만으로 만족될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우리들이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만족으로 삼으려고 하지는 않는지?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가만보면, 우리들은 하나님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살아갈 때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예를들면, 돈, 건강, 취미, 사람으로 만족으로 삼으려 한다면 결코 여러분의 신앙은 전진할수 없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않는자는 아무것에도 만족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삶이 되는자는 모든것에 만족할수 있는 자이다

 여러분은 다윗의 가장 유명한 시를 아실 것입니다. 바로 시23:1절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입니다. 이 고백은 다윗이 인생의 노년기에 고백한 시입니다. 이 말은 다윗이 권력도 누려보고, 부귀영화도 누려보고, 장수와 건강도 누려본 후에 한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결론적인 고백은 무엇입니까? 하나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윗과 같은 고백을 할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은 하박국 선지자의 유명한 고백을 아실 것입니다. 바로 합3:17-18절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역시 하나님만으로 만족한다는 고백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만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신앙의 승리자가 될수 있는 것입니다.

  3.하나님을 왕으로 섬겨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우리들의 잘못된 모습을 한가지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다스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잘못된 태도입니다.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구합니다. 대의명분은 그럴사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다스림,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을 보면,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를 거부할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곧  성경대로 살아보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왕으로 삼으셨습니까? 여러분의 가정, 사업터는 하나님이 왕이십니까?

 그러면 신자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통치를 받으려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이 얼마나 축복된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강해 설교가 척 스미스 목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척 스미스가 신학교 다닐 때 그의 삼촌이 폐기종으로 매우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문병을 갔습니다. 그리고 그 삼촌을 보면서 기도해주고 싶은 마음이 아주 강하게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삼촌에게 성경에 삼촌보다 더 심한 병에 걸린 사람들도 고침받았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기도하기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삼촌은 매우 완강하게 거절을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만일 그렇게 해서 정말 병이라도 낫게 된다면, 그 후로는 평생 하나님이라는 분에게 남은 인생을 매어 살아야 하는 것이 싫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왕으로 삼고,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는 것이 재미없고,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는 것은 번거롭거나 재미없는 인생을 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을 때 우리는 기쁨고 자유롭고, 평안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신앙생활이 무엇일까요?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자신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아버지여,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 이것이 신앙입니다.
   본문과 삶
 1)무엇으로도 신앙을 핑계하면 안됩니다.
 2)하나님만으로 만족할수 있어야 합니다.
 3)하나님을 왕으로 삼고,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더 이상 신앙의 방관자, 패바자가 아닌, 신앙의 승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승리자만 누리는 기쁨과 영광을 매일의 삶에 누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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