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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설교] 다름을 요구하는 하나님!(사무엘상강해9)
 본문말씀 : 삼상6:1-21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6.4.7
조회 : 11,451   추천 : 0  
본문 : 삼상6:1-21절  사무엘상 강해9
제목 : 다름을 요구하십니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차별이라는 말은 좋지 않은 이미지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차별화는 오늘날 성공을 위한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차별화에 실패한 상품은 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차별화되지 않은 인재는 기업에서 외면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는 다름 곧 차별화가 경쟁력이라고 말을 합니다. 더 쉽게 말하면, 남들과 달라야 살아남을 수 있고, 남들과 달라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대기업으로부터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자신들만의 차별화를 상품화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름 곧 차별화가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 사람들과의 다름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다름이 신앙이고, 다름이 신앙의 실력인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다름을 요구하고 계심을 확인하고, 어떻게 하면 다름이 있는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될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다름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지난 시간, 법궤가 7개월간 블레셋 땅에 머물때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어떤 일들입니까? 먼저는, 다곤 신상이 엎드러지는 일, 그리고 법궤가 있던 아스돗, 가드에 독한 종기가 생겨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결국 블레셋 사람들은 법궤를 다시 이스라엘땅으로 돌려 보낼것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법궤를 어떻게 이스라엘 땅으로 돌려 보낼 것인가를 의논하는 장면과 결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3절을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법궤를 이스라엘 땅으로 돌려 보내기 위해서 “속건제”를 드릴 것을 생각합니다. 속건제라는 것은 성물에 대한 죄를 사함 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입니다. 지금 그들은 하나님의 법궤에 죄를 범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4절을 보면, 속건제를 드리기 위해서 블레셋의 도시 숫자대로 금독종 5개, 금쥐 5개를 드리기로 결정을 합니다. 이렇게 제물을 드리는 것은 독종이라는 전염병을 하나님께서 쥐라는 매개체로 옮겼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7절을 보면, 새 수레를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2마리로 수레를 끌어 이스라엘 땅으로 돌려 보내기로 결의하게 됩니다. 그리고 12절을 보면, 블레셋 땅에서 가장 가까운 이스라엘 땅인 벧세메스 땅으로 법궤가 도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이 이스라엘 땅인 벧세메스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즉, 19절을 보면, 법궤안을 들여다본 70명의 사람들이 죽은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려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름을 요구하고 계신다.”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며 좀 이상할 걸 발견하지 못했습니ᄁᆞ? 그것은 법궤를 취급하는 방법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첫째로, 블레셋 사람들이 법궤를 취급하는 방법을 보십시다. 7절을 보면, 그들은 법궤를 옮기기 위해서 새 수레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수레를 끌게 하기 위해서 젖소 2마리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그런 취급 방법 가운데 어떤 일도 일어나지를 앉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다릅니다. 19절을 보면, 벧세메스 사람들이 법궤를 들여다 봅니다. 그리고 그것을 들여다 본 칠십명의 사람이 죽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법궤안에 있었던 물건이 혹시 없어지지는 않았는가? 또는 파손되거나, 다른 부정한 것이 들어있지는 않았는가? 라는 생각으로 법궤안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나쁜 뜻이 아닙니다. 분명히 선한 의도이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입니다. 더욱이 13절을 보면, 법궤가 돌아오는 것을 보며 진심으로 기뻐한 사람들이고, 14절에 하나님께 감사의 번제를 드리기 까지 한 사람들 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 70명이 법궤를 만지고 들여다 본것으로 죽은 것입니다. 매우 충격적인 일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법궤를 들여다본, 또는 만진 70명은 왜 죽었을까요? 그것은 율법이 제시한 법궤 취급방법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법궤 취급 방법은 무엇인가요? 크게 2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오직 레위인만이 법궤 취급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법궤를 이동할 때 레위인들이 어깨에 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룩한 하나님의 궤를 만지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2가지 원칙을 어기게 됩니다. 즉, 레위인이 아닌 사람들이 법궤를 취급했으며, 만지지 말아야함에도 만지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70명이 죽은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은 '블레셋 사람들은요?’ 라고 물을 것입니다. 물론 그들 역시 법궤에 관한 2가지 원칙을 모두 어겼습니다. 그들 중에는 레위인이 없었을 것이고, 만졌을 것이고, 수레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말하려는 강조점입니다.

 여러분! 블레셋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방신을 섬기던 사람들이고 그러기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전리품 정도로 여긴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하신 은총으로 선택한 선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왕이신 백성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할지를 하나님이 알려주신 율법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식인 할례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아시겠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인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차이가 법궤를 취급하는 방법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다른 이유인 것입니다. 즉, 수준, 또는 신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출애굽기안에서도 확인될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애굽땅을 나온 이스라엘은 원망하고 불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십계명을 받기 이전까지는 하나님은 그들에게 벌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십계명의 돌판을 받은 이후로는 그들에게 벌을 주시고, 진노를 하셨습니다. 무슨 차이일까요? 수준의 차이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다름을 요구합니다.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신자로서 불신자와의 다름, 신앙의 성숙한자로서 신앙의 미숙한 사람과의 다름, 직분자로서 아직 직분을 받지 않은 사람과의 다름, 목자로서 목원과의 다름..., 등 그렇습니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백성, 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다름’입니다. 먼저 레11:45절을 보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거룩이라는 말은 다르다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과 우리가 다르듯, 우리와 세상 사람이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청하는 삶의 핵심인 것입니다. 또, 마5-7장을 보면, 산상수훈의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말씀들이 있습니까? 팔복이 있습니다. 사실 그 본문은 복많는 방법이 아니라, 복안에 들어온 사람들의 삶을 정의하는 것입니다. 뭡니까? ‘가난, 애통, 온유, 주리고 목마름, 긍휼, 마음이 청결, 화평, 박해’입니다. 이 말씀의 핵심이 뭡니까? 세상 사람과 다름입니다. 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니’입니다. 뭡니까? 이것 역시 다름입니다. 그 외에도 마음의 미움이 살인이다, 마음의 음욕이 간음이다. 오른빰을 치거든, 겉옷을 달라거든, 오리를 가자거든..., 또, 원수를 사랑하라! ..., 등의 모든 말씀의 핵심은 다름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세상사람과 다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는 다양한 거룩한 다름이 있습니까? 예를들면, 돈에 대한 생각도 달라야 하고, 직장을 다는 이유도 달라야 합니다. 자녀를 키우는 목표도 달라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가지려는 이유도 달라야 합니다. 절망스럽고 힘겨운 일들을 만났을 때도 대처하는 방법이 달라야 합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야 하고, 항상 정직해야 하고, 순결해야 하고, 따듯해야 하고, 섬기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이러한 거룩한 다름이 신앙의 실력이고, 신앙의 수준입니다. 

  2.시작은 회개이며, 순종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바 다름을 갖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은 다름의 시작을 ‘회개’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시면, 지금 블레셋 사람들이 ‘속건제’를 드려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 대한 잘못을 회개해야 함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회개할 때에 치료가 일어날 것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맞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한 다름을 갖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죄, 잘못을 깨달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자들 중에 회개와 관련해서 3부류의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첫째 부류는, 진정으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할줄 아는 사람, 둘째 부류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할것이 있음을 인정하는 정도의 사람, 그리고 셋째 부류는, 내가 뭘 회개해야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부류의 사람이십니까? 혹시, 내가 하나님앞에 회개할 것이 뭐가 있냐는 분은 않계십니까? 그건 죄가 뭔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죄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도적질을 하는 것, 사기치는 것, 남을 미워하는 것, 욕심을 내는 것...,등 물론 죄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죄는 단순히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인간의 도리를 못하는 정도로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자신이 피조물이면서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려는 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더 간단히 말하면, 죄라는 것은 교만입니다. 모든 죄들은 바로 이런 교만에서 파생한 부산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늘 회개해야 할 것은 어떤 잘못된 행동과 생각과 마음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음,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아가려는 자세, 그리고 교만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럴 때, 다름이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참 중요한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은 요즘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는 증명입니다. 혹시 회개할 일이 없다면 정말 회개할만한 삶이 없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심각할 정도로 완전히 마비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위대한 사도 바울을 아실 것입니다. 바울을 위대한 사도라고 말하는 것과 신약성경을 대표할만한 사람이라는 말에 대해서 반대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한결같은 고백은 무엇입니까? 죄인 중에 괴수라는 고백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 누가 이 죄와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는 고백입니다. 여러분이 이 고백이 바울이 그냥한번 해보는 그런 고백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 보다 더 나은 사람 아니겠습니까? 틀림없이 그럴것입니다. 우리 보다 기도도 많이 했고, 큐티도 많이 했고, 이웃사랑도 더 많이 했고, 전도도 더 많이 했고, 헌신도 더 많이 했고, 고생도 더 만이 한 사람입니다. 그가 그렇게 날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산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을 아시지요? 그는 구약을 대표할만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시편에 그의 많은 시들 가운데 참회시가 많다는 것을 아십니까? 특별히 시6:6절을 보면, ‘내가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를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처럼 바울과 다윗의 남 다름의 시작이 바로 회개하는 모습속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참회가 일어나기 이전에는 결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다름을 갖을 수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날마다 회개의 마음을 품을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시51편의 다윗의 기도처럼 “하나님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소서” 라고 기도합시다.

 다름을 갖기 위해 우리들에게 필요한 두 번째는, “순종하는  삶”입니다. 조금은 과한 해석일지 모르지만,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암소 2마리가 법궤가 실린 수레를 이끌고 벧세메스로 가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울고” 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지금 자신의 송아지가 생각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암소들이 벧세메스로 향한 것입니다. 이 안에는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다름이 있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순종입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하는 삶을 가질 때, 비로써 다름이 있는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지만, 많은 신앙의 행위들은 가지지만, 실상 삶에서 세상 사람들과의 다름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말씀대로만 산다면 우리는 다름이 있는 삶이 가능합니다. 예를들면, 원수를 사랑하라, 용서하라, 겸손하라, 감사하라, 기뻐하라, 섬기라..., 등 너무나 당연하게 다름이 증명되지 않겠습니까?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말고, 다름이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3.다름을 요구하시는 이유?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들에게 다름을 요구하실까요? 2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로,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신분이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에는 세상 사람들과 같은 죄와 사망의 종이라는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신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신분에 걸맞는 삶,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 것을 요구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맞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다름을 요구받고 있음을 알아야 하고, 세상 사람들과 다름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둘째는, 다름이 있어야 세상을 향한 우리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향한 우리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이 땅에 소망이 되는 것이고, 여러분이 이 땅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향기이고,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우리들이 다름이 없이는 할수 없는 일이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들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름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토록 다름을 요구하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을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삼아, 열방에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한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사람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그리고 이 땅의 교회를 향해서 다름을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욕하고, 교회를 욕합니다. 심지어 세상에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대단히 많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은 기독교가 말하는 유일신, 유일한 구원관이라는 교리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말 문제는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삶과 교회답지 못한 모습 때문입니다. 예전에 큰 이슈가 되었던 영화 ‘도가니’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영화에서 장애 아동들을 성폭행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교회 장로입니다. 그리고 그런 장로를 두둔한게 누구입니까? 교회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답지 못하고, 교회답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도리어 세상 사람보다도 더 악한 모습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이 말하는 유일신과 유일한 구원론 사상이 늘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 그리스도인과 교회에게 가장 시급히 요구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다름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다르지 않으면, 여러분의 남편을 주님께 인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다르지 않으면 여러분의 자녀는 우리가 기대하는 다음세대를 이끌어갈 믿음의 지도자로 세울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다르지 않으면, 여러분의 이웃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다르지 않으면, 우리 교회역시 교회로의 아름다움을 보일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사명자의 삶, 헌신의 시작이 다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즉, 하나님은 모든 면에서 다름이 있는 분이십니다. 
  본문과 삶
 1)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다름을 요구하십니다.
 2)다름의 방법은 끊임없는 회개와 순종의 삶입니다.
 3)다름이 있을 때,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요구대로 다름을 나타내는 복된 삶을 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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