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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방해받지 않는 신앙!(고린도후서강해35)
 본문말씀 : 고후6:3-10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7.4.5
조회 : 8,521   추천 : 0  
본문 : 고후6:3-10절  고린도후서강해35
제목 : 방해받지 않는 신앙!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어떤 학교에 늘 1-2분씩 지각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을 더 화나게 만든 것은, 1-2분만 일찍 나오거나, 아님 조금만 더 뛰면 지각하지 않을 텐데, 항상 천천히 걸어서 등교를 한 것입니다. 너무나 화가난 선생님이 그 학생에 물었습니다. 왜 지각인데도 뛰지 않니? 그러자 그 학생이 다음과 같이 핑계의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학교 앞 표지판에 ‘학교 앞 천천히’ 라는 표지판이 있어서 지각했노라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 또는,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 는 말이 있습니다. 이 속담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보다는 핑계하기를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신앙생활에서는 그 어떤 핑계도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핑계보다는 충성됨을 선택한 바울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핑계대는 신앙생활에서 벗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핑계 없는 바울!
 우리는 지난 시간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시며, 권세와 능력이 무한하신 분이기에 자신이 세우신 선하신 계획과 뜻을 이루는 일에, 어떤 현실, 어떤 환경, 누구에게도, 심지어 사탄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분이라는 점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이 하나님 절대 주권신앙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어떤 현실,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갖어야 할 신앙의 올바른 모습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도 8-10절을 중심으로 묵상을 하려고 합니다. 이미 지난주에 살펴본 바와 같이 8-10절은, 서로 상반되는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영광과 욕됨,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 무명과 유명, 죽은 자와 산 자, 근심하는 자 같으나 기뻐하는 자, 가난한 자 같으나 부요한 자,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것을 가진 자..., 그렇다면, 바울이 이렇게 상반된 표현들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떤 순간, 어떤 환경, 어떤 현실속에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예를들면, 영광을 얻는 순간에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했고, 욕됨을 당하는 순간에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또, 죽은 자처럼 되는 순간에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했고, 강건한 순간에서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만 더 말하면, 가난속에서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했고, 부요한 순간속에서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얼마든지 핑계를 댈수 있는 환경이고 현실이었습니다. 예를들면, 욕됨을 당하고, 죽은자 같이 되고, 징계 받는자 같이 되고, 근심스러운 현실에 놓이고, 가난하게 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은 순간을 격고..., 이 정도면 이러한 환경이나 현실 때문에 하나님께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할 수 없었노라 핑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환경, 자신이 처한 현실을 핑계거리로 삼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고 핑계거리를 찾았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아담과 하와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더불어 먹는 날에는 죽을 것이라고 경고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 둘은 하나님의 명령과 경고를 외면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의 잘못을 꾸중하자 한 말이 무엇입니까?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또, 하와는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라고 말을 합니다. 결국, 서로를 핑계거리 삼은 것이고, 결국에는 하나님까지 핑계거리로 삼아버린 것입니다. 또, 사울왕을 보십시오! 사울왕은 핑계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먼저, 삼상13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을 하게 되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그때 위기의식을 느낀 사울왕은 사무엘 선지자로 하여금 전쟁터인 길갈로 와주시기를 요청했고, 7일안에 오겠다는 답을 받습니다. 그러나 7일이 다되어 가고 사무엘선지자 오지 않자, 사울왕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도착한 사무엘이 꾸중하자 사울왕은 삼상13:11-12절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라고 핑계를 댑니다. 또, 삼상15장을 보면,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전쟁을 하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은 승리를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한가지 명령을 하십니다. 그것은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은 아말렉에게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아각왕과 사로잡았고, 기름진 양과 소를 진멸하지 않고, 가지고 오게 됩니다. 그때 또다시 사무엘 선지자가 꾸중을 합니다. 그러자 사울왕은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삼상15:15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또, 24절에서는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 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라고 핑계했습니다. 그 밖에도 하나님의 명령 앞에 핑계거리를 찾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로왕에게 찾아가 이스라엘을 해방할 것을 요구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자신은 말을 할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핑계했고, 하나님이 주실 땅을 탐지 하라는 명령에 10명의 정탐꾼은 우리는 약하고, 그들은 강하기에 못들어 간다고 핑계했고, 예수님은 유대광야에 모든 남자만 5000명을 제자들에게 먹이라고 명령하셨을 때, 제자들은 환경, 현실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핑계했습니다. 그 밖에도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명령 앞에 핑계거리를 찾았던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한가지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수준과 핑계는 무관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신앙의 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도록 핑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신앙의 수준이 낮은 사람일수록 핑계가 많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수준은 어떠합니까? 무엇을 보면 알수 있을까요? 바로 핑계거리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핑계거리를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일 앞에서도 핑계거리를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더나가서, 그리스도인 답게 답지 못하는 일에 핑계거리를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못남, 실수, 부족함을 여러분의 환경이나, 현실, 누군가로 핑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핑계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의 자세가 아닙니다. 

  2.핑계하면 안되는 이유?
 그렇다면, 우리들이 어떤 현실, 환경, 또는 누군가를 핑계거리 삼으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크게 2가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어떤 명령을 하시거나, 무엇인가를 원하실 때,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명령하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사울왕을 보십시오! 정말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을 명령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비록 유혹이 있을 수는 있지만,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명령하실 때, 설령 우리가 못할 일이라고 여기실 때에는 도움을 주어 감당할 수 있게 하실 것을 염두하고 명령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를들면, 정탐꾼들을 보십시오! 그들 힘으로는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을 보장하셔서 정탐할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어떤 명령을 할 때에도, 무엇인가를 요구하실 때에 우리는 핑계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는 신앙은 결코 무엇에도 방해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은 서로 상반된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러한 상반된 표현을 통해서 바울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무엇도 신앙에 도움이 되거나,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부자가 되었다고 신앙에 도움이 되는게 아니고, 가난하게 되었다고 신앙을 방해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아담과 하와는 이 땅을 살아간 그 누구보다도 최고의 환경, 최고의 현실에서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환경과 현실이 신앙에 도움이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반대로, 욥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어쩌면, 인류 역사상 최악의 환경과 현실속에 있었던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나쁜 환경과 현실이 욥의 신앙을 방해했습니까? 아닙니다. 도리어 그러한 환경과 현실이 욥을 더욱 성숙하게 했습니다. 다시말해, 신앙은 현실이나 환경에 따라 도움이나 방해 즉,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떤 현실, 어떤 환경, 또는 누군가를 근거로 신앙을 핑계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실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하지만 대단히 명확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신앙이 현실이나 환경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가진 신앙이나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지, 결코 세상의 환경이나 현실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원천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신앙이나 믿음은 현실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스스로 계신 분이시기에 그 무엇으로도 영향을 받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위대한 고백이 무엇입니까? 빌4: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이것은 기고만장한 선언이 아닙니다. 믿음만 가지만, 자신의 현실이나 환경을 바꿀 수 있다는 말도 아닙니다. 또는 나폴레옹 식으로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 는 신앙의 천하무적이 된다는 말도 아닙니다. 이 고백의 핵심은,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은 어떤 순간속에서도 자족할 수 있다는 말이며, 조금 더 넓게 말하면, 배고픔이나 배부름, 가난이나 부요함이 믿음과 신앙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바울은 이것을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말하는 것이고, 늘 현실과 환경에서 핑계거리를 찾는 우리들에게 말하려는 것입니다.

 꼭! 명심하십시오! 신앙은 환경이나 현실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이제는 이와 관련해서 조금 다른 측면을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세상에서의 성공의 신앙의 성공이 아니고, 세상에서의 실패가 신앙의 실패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흔들리는 때가 언제입니까? 현실과 환경이 기대와 다를 때입니다. 예를들면, 신앙생활을 열심히 잘했는데, 주어진 현실이나 환경이 안좋았을 때 우리의 신앙은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신자들이 신앙의 근거를 세상적인 현실이나 환경에 근거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환경이나 현실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잘된다고 해서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착각하지 마시고, 반대로, 여러분이 세상적으로 실패하고 안된다고 해서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다고 오해하지도 말기 마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성공하게 하고 잘되게 하셨다면, 감사하시고, 실패와 안되게 하셨다면 더욱 인내하시고 하나님께 더욱 맡기십시오! 즉, 환경과 현실이 어떠하든 신자에게 합당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신앙의 능력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즉, 현실과 상황이 어떠하든지 영향을 받지 않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지기를 소원합니다. 물론, 이런 능력이 원한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얻어지는 것도 타고나는 것도 아닙니다. 빌4:11,12절을 보면,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말합니다. 즉, 바울이 가진 신앙의 능력은 결코 천성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배운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배움으로 이러한 신앙의 능력을 얻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위해서 여러분이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과 기도입니다. 큐티를 통해서 주님을 알아가고, 친해지고, 배워야 합니다. 그럴 때 무엇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신앙의 능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럴 때, 비로서 여러분을 보는 사람들마다 하나님과의 화목을 소원하게 될 것입니다. 

  3.왜 방해를 느낄까?
 우리는 지금까지 신앙은 현실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는 신앙이 현실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처럼 보이고 느껴질 때가 많을 것입니다. 둘다 맞습니다. 원래는 신앙이 현실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는게 아닙니다. 그런데 받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이 현실과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처럼 보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욕심 때문입니다. 바울은 환경과 현실에 방해받지 않는 신앙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말하면서,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욕심의 문제를 이겨냈다는 것입니다. 또, 반대로 마19장을 보면, 부자청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상당히 신앙의 열심히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부자청년은 끝내 주님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 신앙이 방해를 받은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에든 방해받지 않듯, 하나님께로 나온 신앙도 환경이나 현실에 방해받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해받게 보이는 것은, 우리 안에 가진 욕심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반듯시 욕심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서 환경과 현실에 방해받지 않는 신앙의 능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을 합리화 하기 위해서 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신앙이 환경이나 현실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욕심을 이기지 못해 신앙을 타협하고, 신앙을 저버리게 됩니다. 그런 자신을 합리화 하기 위해서 우리는 환경과 현실을 동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저래서 어쩔수 없다는 식으로 자신을 합리화 합니다. 그래서 마치 신앙은 환경이나 현실에 영향을 받고, 방해는 받는 것으로, 어쩔수 없는 것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참 악한 일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욕심을 이기십시오! 자신을 합리화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럴 때, 더 이상 환경이나 현실에 영향도 방해도 받지 않는 신앙임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무엇에도 영향을 받거나 방해를 받는 분이 아닙니다.
  본문과 삶
 1)따라서 그분이 주신 신앙과 믿음도 현실이나 환경에 무엇에도 영향을 받거나 방해받지 않습니다.
 2)이것이 신앙의 능력이며, 믿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3)그럼에도 우리들이 이러한 신앙의 능력을 소유하지 못하는 것은, 욕심과 자기 합리화 때문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어떤 환경이나 현실에도 방해받지 않고 주님 명령에 순종하며 따라 살아가는 신앙의 능력자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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