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6:3-10절 고린도후서강해35
제목 : 방해받지 않는 하나님!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우리들이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누군가, 그 일을 간섭하거나, 가로막는 일을 할 때, 그것을 ‘방해’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할 때, 다양한 방해를 받기도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무엇인가 하고자 할 때, 다양한 방해를 받아 어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어떤 일로도 방해 받지 않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실 때, 누구에게도, 어떤 환경에도, 그 무엇에도 결코 방해받지 않는 분이십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은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분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하나님을 묵상함으로, 신앙의 지혜와 담력을 얻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방해받지 않으시는 하나님!
오늘은 8-10절을 중심으로 묵상을 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서로 상반되는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영광과 욕됨,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 무명과 유명, 죽은 자와 산 자, 근심하는 자 같으나 기뻐하는 자, 가난한 자 같으나 부요한 자,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것을 가진 자..., 바울은 지금 서로 상반되는 표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렇게 상반된 표현들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것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과연 무엇을 가르치고자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무엇으로도 방해 받지 않는 분이라는 점을 가르치고자 한 것입니다.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먼저, 3절을 보도록 합시다. 무슨 내용입니까? 바울이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 곧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6-7절을 보면, 바울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했던 노력들을 말합니다. 즉, 깨끗함을 시작으로, 지식, 오래참음, 자비, 성령의 감화, 거짓없는 사랑,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음..., 등 노력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이 묵상하는 8-10절의 상반된 표현들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요? 그것은 다양한 환경, 다양한 순간속에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영광을 얻는 순간에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했고, 욕됨을 당하는 순간에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또, 죽은 자처럼 되는 순간에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했고, 강건한 순간에서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만 더 말하면, 가난속에서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했고, 부요한 순간속에서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이 지금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바울은 하나님께서 바울 자신의 다양한 환경, 다양한 현실속에서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하도록 하셨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환경속에서도 자신의 계획하심과 뜻하심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사람(남녀노소,빈부자,권세유무자,유무명한자...,등)을 통해서도 자신의 계획과 뜻을 이루어내시는 분이십니다. 즉, 하나님은 무엇으로도 방해받는 분이 아니십니다. 지금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무엇으로도 방해받는 분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으로도 방해받지 않는 분이십니다. 더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하나님은 어떤 현실이나 환경에 방해받지 않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환경이나 현실 때문에 계획하시고 뜻하신 바를 이루지 못한 것을 보신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안될 것이라고 여겨지는 순간에서도 하나님의 계획하시고 뜻하신 바는 정확하게 이루어내셨습니다. 예를들어 봅시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생육적인 면에서 더 이상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아기를 낳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시고자 한 계획과 뜻이 실패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불가능한 현실에서도 자신의 선하신 계획과 뜻을 이루어 내셨습니다. 또, 애굽땅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곧 죽음의 사면초과에 놓이게 됩니다. 도무지 살아날 수 없는 소망이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온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과 탄식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선하신 계획과 뜻이 실패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뒤쫓아오던 애굽 군대를 수장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불가능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선하신 계획과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현실이나 환경에 방해받는 분이 아니십니다.
또, 하나님은 어떤 사람, 존재에도 방해받지 않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 때문에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를 이루지 못한 것을 보신적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땅에서 해방시키고자 하는 계획과 뜻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은 그리고 훌륭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로왕은 대단한 권세를 가지고, 완악하고 완고한 사람이었습니다. 계획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습니다. 그렇다면, 못난 사람, 완악한 사람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실패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못남, 인간의 완악함 때문에 자신의 계획과 뜻을 이루어가시는 일에 방해받는 분이 아닙니다. 또한, 사도행전을 보면, 당시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예루살렘교회를 무너트리기 위해서, 스데반을 죽이고, 사도요한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교회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에게 방해받는 분이 아닙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사탄의 방해에도 방해받지 않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공중권세 잡은 사탄에 의해서 하시고자 하는 계획과 뜻에 방해를 받아 실패하시는 것을 보신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미혹한 사탄에게 창3:15절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즉,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시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지요? 여자의 후손을 오는 메시야를 통해서 사탄을 찢 밟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사탄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아벨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아벨이 죽은 것은 단순히 가인의 시기심과 악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여자의 후손을 이어갈 씨를 말리겠다는 의도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바로 셋을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를 통해서 여자의 후손을 이러갈 사람들을 보전 한 것이고,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 일을 구체적으로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갈4:4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라고 여자의 후손 곧 메시야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사탄은 광야에서 굶주려 있던 메시야를 유혹했고, 그래도 안되자, 결국,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십자가에 죽게 했습니다. 사탄은 자신이 승리했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가로막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은 메시야를 3일만에 부활케 하셨습니다. 바로 이 사건이 사탄이 메시야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사건이고, 메시야가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사건인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공중권세를 잡은 사탄의 방해에도 자신의 계획과 뜻을 이루어가시는 일에 조금도 방해를 받는 분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현실이나 환경에도 방해받지 않고, 어떤 사람이나 사탄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가장 잘 정리한 구절이 바로 롬8:38-39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즉,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방해할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것은 사랑이라는 주제에만 국한된 말씀은 아닙니다. 그 어떤 것, 그 누구도 하나님의 계획하시고 뜻하신 일을 방해할 자가 없습니다. 그리고 롬11:36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고 말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십니까? 하나님 절대 주권신앙이란, 내가 가진 것, 누리는 것,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정도의 고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신앙이란,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에, 그 어느 것에도, 그 누구에도 방해받지 않는 분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다시말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뜻하시고, 그대로 행하시고 이루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은 그 어느것, 그 누구에도 방해받지 않는 분’ 이라는 하나님 절대주권 신앙을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2.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묻고 싶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 어떤 환경이나 현실, 그 어떤 사람이나 존재에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가? 반대로 묻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어떤 환경이나 사람이나 존재에 방해받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입장, 우리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때문은 아닙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은 ‘여호와’입니다. 참고로, 히브리인들은 제3계명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래서 자음을 표기만 한 채 발음하지 않음으로써 정확한 음가(音價)가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이 자음에 아도나이(주님)의 모임을 붙여서 여호와 또는 야훼라고 읽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입니까? 즉,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다르게 말하면, 누군가, 무엇엔가 의존하여 계시거나 의존하여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떤 것에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분인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엘로힘)’ 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 하실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 말은 반대로 말하면, 못하실 것이 없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권세와 능력이 무한대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무한대 X는 도움이 될까요? 또, 무한대 +는 도움이 될까요? 반대로, 무한대 ÷는 손해가 될까요? 또, 무한대에 –는 손해가 될까요? 아닙니다. x, +, ÷, - 그 무엇도 무한대에 도움이나 손해가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은 무한대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떤 현실과 환경, 사람이나 존재에 방해받지 않는 분이실수 있는 것입니다.
3.무엇에도 방해 받지 않는 하나님의 요구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삶은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무엇일까요? 첫째는, 원망과 낙심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살다보면, 종 종 원망하고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 본문대로 말한다면, 하나님이 뭔가에 방해받아 어려움을 격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들이 살펴본대로 하나님은 어느 환경에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분이십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선하신 계획과 뜻에 방해받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느 순간에라도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않아야 마땅합니다. 도리어 담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부름에 망설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기를 원칙으로 삼으시고,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일군으로 부르십니다. 그러나 종 종 나의 연약함, 나의 못남을 이유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망설이거나, 거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절대주권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쓰시고자 부르신다면, 아멘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어떠함에도 방해받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여러분도 어떤 환경이나 현실,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는 신앙을 갖어야 합니다. 이 부분 부터는 다음번 강해에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분이십니다.
본문과 삶
1)왜냐하면,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시며,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2)그리고 우리 모두는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3)그러므로 어떤 순간속에서도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담대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여러분이 믿는 분이 어떤 경우에도 방향받는 분이 아니라는 믿음을 가지고, 매일을 담대함과 순종으로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