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6:3-10절 고린도후서강해33
제목 : 서로에게 디딤돌이 됩시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여러분은 디딤돌과 걸림돌을 아실 것입니다. 똑같은 돌입니다. 그러나 디딤돌은 누군가에게 유익을 주는 돌이고, 걸림돌은 누군가에게 불편을 주거나 넘어지게 하는 돌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 중에도 디딤돌 같은 사람이 있고, 걸림돌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 중에도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디딤돌 같은 그리스도인이 있고, 반대로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고,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 같은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떤 그리스도인이십니까? 디딤돌과 같은 그리스도인이십니까? 아니면, 걸림돌 같은 그리스도인이십니까? 저는 여러분 모두가 디딤돌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디딤돌과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서로에게 디딤돌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실천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서로에게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됩시다!
3절 말씀을 보도록 합니다.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라고 말을 합니다. 먼저, ‘이 직분’ 이란 어떤 직분을 말할까요? 우리들이 고후5:18절에서 말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진 못한 사람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이미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사람에게는 더욱 그 화목의 완성을 돕는 직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사람을 하나님 앞에 세워주는 직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직분은 사도나, 목사와 같은 사역자에게 주어진 직분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그리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룬, 더나가서 은혜받은 자 모두에게 주어진 직분이라는 점입니다. 즉,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어진 직분이며, 사명이며,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화목하게 하는 직분, 사람을 세워주는 직분을 잘 감당하고 계십니까? 꼭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바울은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크게 2가지 의미입니다. 첫째는, 아무에게도 실족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족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쉽게 말하면,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 고민과 갈등을 주는 것, 시험을 주는 것, 그 결과 바른 신앙의 길에서 이탈하도록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누구에게도 신앙의 걸림돌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누군가에게 신앙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실족하게 됩니다. 성경에도 신앙의 걸림돌과 같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마23:13절을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라고 말을 합니다. 이들은 종교지도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에게 신앙의 걸림돌이었다고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악평한 10명도 신앙의 걸림돌과 같았던 사람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악평과 불신앙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말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올바른 신앙의 자리에서 이탈하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분명히 신앙의 걸림돌과 같았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 중에, 누군가를 상처를 주고 실족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는 분은 없습니까? 누군가에게 신앙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분은 없습니까? 그러면 안됩니다. 주님은 누군가에게 신앙의 걸림돌이 되는 일이 얼마나 큰 죄악인가를 마18:6절에서 ‘누군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짐승이 돌리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누군가의 영혼, 누군가의 신앙을 무너뜨리는 일이 사람을 죽이는 일보다 더 무서운 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18:7절에서는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군가를 실족하게 하는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누군가의 신앙에 걸림돌리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한다는 두 번째 의미는, ‘누군가에게 디딤돌이 되라’ 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디딤돌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개울 중간 중간 놓여진 돌로서 개울을 안전하게 건너도록 돕는 돌입니다. 또는, 마루 아래 놓여진 돌로서 마루를 올라가기 쉽도록 돕는 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사람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로의 디딤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도 디딤돌과 같았던 신앙의 인물들이 많았습니다. 예를들면, 사무엘입니다. 여러분 사무엘이 어떤 사람입니까? 당시 백성들에게 큰 신뢰와 존경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사무엘을 믿고 잘 따랐습니다. 얼마든지 왕이 될 마음만 있으면 충분히 왕이 될수도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왕이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사무엘은 사울과 다윗을 하나님 앞에 올바른 왕으로 세워주는 역할을 잘 감당했습니다. 사무엘은 디딤돌과 같은 사람인 것입니다. 또, 갈렙입니다. 갈렙은 12명의 정탐꾼 중에 한 사람으로서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여호수아보다도 먼저 주장한 사람입니다.(민13:30절 14:6-9절)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20세 이상된 이스라엘 백성 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를 말씀하실 때에도 갈렙을 먼저 언급하셨습니다.(민14:30절) 그런데 뜻밖에도 하나님은 더 어른인 갈렙을 리더로 세우지 아니하고, 여호수아를 리더로 세우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갈렙은 섭섭할 수도 있었고, 시기심이 들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조금도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한번도 여호수아의 리더십에 도전하지도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갈렙은 여호수아가 리더로서의 역할을 잘 할수 있도록 항상 앞장서서 도왔습니다. 즉, 디딤돌의 역할을 잘한 것입니다. 또,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예루살렘교회의 귀한 일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 바울이 주님을 만나고 믿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도 바울이 믿는자가 되었다는 것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때, 바울을 이끌어준 사람이 바로 바나바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나바는 바울을 안디옥교회의 리더로 세웠고, 바울의 선교사역을 크게 도왔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에게 디딤돌이 되어준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그 후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게 하는 디딤돌, 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게 하는 디딤돌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렇듯 사울과 다윗 뒤에는 사무엘이라는 디딤돌이 있었고, 여호수아 뒤에는 갈렙이라는 디딤돌이 있었고, 바울 뒤에는 바나바라는 디딤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있기까지 여러분에게도 많은 디딤돌 역할을 해준 신앙의 은인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모두도 서로에게 신앙의 디딤돌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섬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남들보다 일을 좀 더 하는 것, 남들이 안하는 것을 하는 것..., 맞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섬김이란 누군가에게 디딤돌이 되어주는 것이 주님이 말씀하신 섬김입니다. 다시 말해, 누군가에게 디딤돌이 되어주는 일이 아니라면, 또는 누군가에게 걸림돌이 되는 일이라면 그것은 참다운 섬김이 아닙니다. 이런 의미로 여러분은 스스로를 돌아보셔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는 일이 진정한 섬김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누군가를 위한 디딤돌이 되고 있습니까? 저는 여러분 모두가 더 이상 누군가를 실족하게 하는 걸림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더 세워줄 수 있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이 디딤돌이 됨으로,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더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가게 되고, 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세워지는 열매를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2.디딤돌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
그렇다면, 우리들이 서로의 디딤돌이 되어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희생과 손해를 선택하는 일’입니다. 이제 4-5절을 봅시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에서도’ 라고 말합니다. 무엇입니까? 이것들은 바울이 화목하게 하는 직분 곧 누군가에게 디딤돌이 되어주기 위해서 행했던 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희생을 선택하고, 손해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듬돌이 되기 위해서 항상 손해와 희생을 선택했던 사람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고전8장의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의 문제입니다. 당시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는 우상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거리낌 없이 먹는 믿음의 담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거리낌으로 인해서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상의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우상의 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믿음이 없다고 비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바울이 아주 유명한 선언을 하게 됩니다. 바로 고전8:13절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형제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고, 디딤돌이 되어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바울이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바울에게는 희생이고 손해가 되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살던 시대는 우리가 살던 시대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오늘날 우리는 다이어트가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살던 시대는 영양섭취가 부족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고기를 먹어야만 하는 시대였습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바울이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선언은 그의 영양상태, 그의 건강에 큰 손해이며 희생을 감수한 선언인 것입니다. 이러한 희생과 손해의 선택이 바울이 많은 사람들에게 디딤돌이 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항상 누군가의 디딤돌이 되기 위해서 손해를 선택하고 희생을 선택했습니다. 이 점은 예수님의 모습속에서도 더 명확히 확인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이 세상의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세우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을 어떻게 이루셨습니까? 바로 희생과 손해입니다. 예수님은 기꺼이 희생제물이 되셨고, 자신의 생명까지 손해를 보셨습니다. 이렇듯 희생과 손해라는 방법으로 우리의 디딤돌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복음성가 가사 중에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수 없을까?’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즉, 우리는 예수님의 삶, 그리고 사도 바울의 신앙과 삶을 보면서, 참 부러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살기를 소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손해와 희생을 선택하면 됩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신앙과 삶을 부러워 하면서도 손해와 희생은 선택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손해와 희생없이 예수님과 바울과 같은 삶, 그리고 그리스도인 다운 삶이 가능할까요? 결코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이 디딤돌이 되기 위해 손해보고 있는게 있습니까? 희생하는게 있습니까? 물론, 여러분이 희생과 손해를 선택하지 않아도 여러분의 구원은 취소되지 않을 것이고, 여러분은 결코 지옥에 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명심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무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희생과 손해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의 일에 동참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심겨지는 일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희생과 손해는 필수선택인 것입니다.
3.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물론, 우리가 누군가에게 디딤돌이 되어주는 일, 그러기 위해서 손해와 희생을 선택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서로에게 디딤돌이 되기 위해 손해와 희생을 선택할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혼의 가치를 알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딤돌이 되기 위해 손해와 희생을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영혼을 가치를 알고 있었고, 영혼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빌1:8절을 보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또, 고후11:29절에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바울의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또,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손해와 희생을 통해 우리의 디딤돌이 되어주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요3: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 롬5: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부모가 자식을 위해 얼마나 많은 손해와 희생을 감수하는지 아시지요? 그렇다면, 부모가 자식을 위해 손해와 희생을 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뭘 바라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오직 사랑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 영혼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 있을 때, 손해와 희생을 선택할 수 있고, 서로에게 디딤돌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서로를 향해 애타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품을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사랑하는 하는 마음, 애타는 마음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디딤돌을 놓아주셨습니다.
본문과 삶
1)그리고 우리 모두도 서로에게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2)그러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3)그리고 손해와 희생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서로를 위한 디딤돌로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일에 동참하는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