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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다시 넘어서야 할 한계!
 본문말씀 : 마23:1-12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7.2.15
조회 : 9,318   추천 : 0  
본문 : 마23:1-12절
제목 : 다시 넘어서야 할 한계!  

  성도들의 삶속으로 
 우리들이 살다보면, 누군가에 의해서 감동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게 언제일까요? 대부분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모습을 볼 때, 감동을 받게 됩니다. 예를들면, 헨렌켈러는 열병을 앓고 시각장애인이 되었지만, 설리번 선생님을 만난후 시각장애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사랑의 실천가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닉부이치치는 태어날 때부터 팔다리가 없이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장애와 절망을 딛고 일어나 지금 세계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면 희망을 주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6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 레나 마리아...등이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때,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도전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더욱 극복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신앙의 한계입니다. 
  
  1) 연결 -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들이 극복해야 할 신앙의 한계가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극복함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말을 넘어 실천으로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꾸중하는 내용들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3절에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5절에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6-7절에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라고 꾸중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꾸중을 1절을 보면,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고 말을 합니다. 이것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한 꾸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한 꾸중을 통해, 제자들과 무리들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게 하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꾸중하시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사랑하시는 자신의 백성들의 잘못을 ‘꾸중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예를들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을 때에도 그들을 꾸중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힘만 최선책으로 알고 살아간 야곱을 꾸중하셨으며, 하나님의 큰 은혜속에서도 원망과 불평을 일삼았던 광야의 이스라엘백성을 꾸중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간음하고 그의 남편인 우리야를 죽인 다윗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방 여인 1000명을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 전국을 우상천지로 만든 솔로몬을 꾸중하셨습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또한 제자이면서도 믿음이 적었고 기도의 가치를 몰랐던 제자들을 꾸중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꾸중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들을 향해서 끊임없이 꾸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지금 나의 모습과 마음을 보시면서 꾸중하실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어쩌면, 순종하지 않음, 기도하지 않음, 또는 사랑하지 않음이고, 큐티하지 않음 일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의 게으름이며, 교만함이며, 이기심이며, 지나친 욕망..., 등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꾸중을 무엇일까요? 가정 예배드리지 않음, 말씀이 기준과 원칙이 되지 않음, 믿음으로 자식을 키우지 않음,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이 없음...,등, 그러면 교우리 사랑하는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꾸중은 무엇일까요? 영혼을 불쌍히 여기지 않음, 전도하지 않음, 순종하지 않음, 서로 돌아보지 않음...,등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 가정, 교회를 향해 꾸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잘 점검하고 고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꾸중하시는 첫 번째, 내용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미 간단히 살펴본 대로, 그들의 말뿐인 신앙입니다. 그렇습니다. 2-4절을 보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을 합니다. 주님의 꾸중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바로 말만하고 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을 향한 꾸중은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나 잘 알고, 백성들에게 꽤 잘 가르치지만, 그것을 먼저 실천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백성들에게는 엄격한 율법에 대한 순종을 요구했고,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죄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형제끼리 싸우지 말라, 거짓말 하지 말라, 양보해라, 화내지 마라, 나쁜 말 하지 마라..., 등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야단을 치거나 매를 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가 늘 싸우고, 남을 험담하고, 신앙의 본을 보이지 못하는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이런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모습을 주님이 꾸중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들 역시 종 종 말로 신앙생활을 다하려고 하는 잘못을 너무 자주합니다. 사랑도, 용서도, 감사도, 섬김도.., 다 말뿐일 때가 참 많습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예배에 나가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보며 마음에 큰 감동을 받은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이 아버지가 도대체 새벽에 무슨 기도를 하는가 궁금해서 뒤를 따라 아버지 뒷자리에 앉아 아버지의 기도를 들었다고 합니다. ‘주여 가난한 성도들에게 쌀을 주시며, 병든 사람에게 고침을, 가난한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주옵소서.’  이 기도를 들은 아들이 감동을 받고 아버지를 도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집에 돌아와 아버지가 금고에 숨겨둔 돈을 목사님에게 가져다주며, 가난한 이웃들에게 쌀을 한 가마씩, 그리고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에게는 입원비를, 그리고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등록금을 주도록 드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돈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안 아비지가 깜짝 놀랐고, 그 모습을 본 아들이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기도를 내가 다 응답하여 드렸습니다.’과연 그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죽도록 맞았다고 합니다. 이 아버지는 말뿐인 신자의 모습이고,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도 말뿐일 때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신앙의 모습속에 말뿐인 모습은 없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말만하는 신앙의 한계를 넘어서 실천할 줄 아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뿐인 신앙은 우리에게도, 누군가에게도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약2:16절을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말뿐인 신앙은 자신에게도 유익을 주지 못하고, 누군가에도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말뿐인 신앙의 한계를 넘어 실천하는 신앙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2.사람을 넘어 하나님께
 계속해서 주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꾸중하십니다. 즉, 5절을 보면,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라고 말을 합니다. 두번째 꾸중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의 신앙의 이유가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함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식대로 말하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이유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고, 과시하고, 칭찬받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2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롬3:19-20절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말을 합니다. 즉, 율법을 주신 목적은 인간들이 자신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과 그러므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게 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가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구하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주신 목적을 알지 못하여, 도리어 사람들에게 보이고, 자랑하는 수단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5절을 보면, 그들의 자랑의 모습들이 좀 더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무엇입니까?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라고 말을 합니다. 먼저 경문이라는 것은 성경구절을(신6:4-9절) 적은 종이를 담아다니는 작은 상자를 말합니다. 또한 옷술이라는 것은 어떤 장신구로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입니다. 그런데 경문을 넓게하고, 옷술을 크게하는 만듦으로 그들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대단하다고 자랑한 것입니다. 둘째는, 그들은 하나님의 인정, 칭찬보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더 원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더 원했다면, 그들은 결코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는 신앙의 삶을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넘어서야 할 두 번째 신앙의 한계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하고,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과시하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목적으로 하는 신앙의 한계입니다. 그렇습니다. 더 이상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목적하는 신앙이 아닌,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목적하는 신앙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게 참 쉬운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칭찬보다 사람들의 칭찬이 더 가깝고 좋게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서기관과 바리새들과 같은 꾸중을 들을 만한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예를들면, 말씀을 전한 후에도, 기도할 때도, 뭔가를 할 때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칭찬보다 사람들의 칭찬을 더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더 의식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향한 꾸중이 우리를 향한 꾸중인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모습으로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늘 사단의 유혹과 시험의 대상이 되며, 쉽게 넘어지고 흔들리는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오직 하나님의 기쁨과 칭찬을 목적하는 신앙생활을 할 때, 비로서 능력있는 신자의 삶이 가능한 것입니다. 예를들면, 바울을 보십시오! 갈1:10절을 보면,‘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그런 평생의 고백이 바울로 하여금 위대한 신자와 사도의 삶을 살게 한 것입니다. 또, 요셉을 보십시오! 창39:9절을 보면,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말을 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칭찬과 기쁨을 목적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에서 예수님을 예표할만한 신앙의 삶을 산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도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는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에게 보이고, 하나님의 칭찬만을 목적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높아짐을 넘어 낮아짐으로
 이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한 세 번째 꾸중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오늘 본문 8-10절을 보면, 3가지 금지 사항을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둘째는, 땅에 있는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셋째는,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문자 그대로 선생, 아버지, 지도자가 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먼저 이 3부류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지금은 몰라도 2000년전에 랍비, 아버지, 지도자는 하나님의 권세를 부여받은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요점은 사람들 앞에 높아지고, 대접받으려 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11-12절을 보면, 이 사실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즉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더나가서 섬기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높아지기 위해 낮아지고, 큰자가 되기 위해 섬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13세기의 성자로 불리우고,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으로 유명한 토마스 아켐피스가 하루는 글을 쓰다가 아무리 구상을 해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자 고민하다가 잠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꿈속에서 천사의 인도로 천국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금, 보석, 돌로 된 기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기둥아래에는 각 각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도 자신의 이름이 어디에 있는가 하여 열심히 찾아보았더니, 금, 보석이 기둥이 아닌, 돌기둥에 새겨져 있었답니다. 이를 본 아캠피스는 몹시 불평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이를 본 천사가 '이 기둥은 천국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둥일쌔' 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게 우리의 마음입니다. 모두가 금기둥, 보석기둥이 되고 싶어하지, 무거운 집을 받치고, 폼나지 않는 돌기둥이 되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들이 화려함을 자랑하고 빛나는 금, 보석기둥이 아니라, 묵묵히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돌기둥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금, 보석, 돌기둥 중 어느 기둥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높아지기를 원하십니까? 낮아지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큰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작은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이것은 우리의 영원한 싸움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낮아지는 자, 작은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자신을 낮추셨고, 작은자가 되셨고, 섬기는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역시, 자신을 낮추고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높아지려는 한계를 넘어서 낮아지고 섬기는 자리로 나가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세상 사람들도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자들 역시 자신의 신앙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본문과 삶
 1)말만하는 한계를 넘어 실천의 자리로 나갑시다.
 2)사람에게 보이려는 신앙의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칭찬과 기쁨을 목표하는 자리로 나갑시다.
 3)높아짐의 자리를 넘어 낮아짐과 섬김의 자리로 나갑시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들이 늘 신앙의 한계를 넘어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노력을 통해 하나님과 가족, 성도와 이웃들에게 감동과 도전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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