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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설교] 다시 용서의 사람이 됩시다!
 본문말씀 : 막2:1-12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7.1.20
조회 : 6,988   추천 : 0  
본문 : 막2:1-12절
제목 : 다시 용서의 사람이 됩시다!   

 2008년 12월, 미국 샌디에이고의 한 주택에 미 공군기가 추락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어린 두 아이와 엄마, 딸의 집을 방문했던 어머니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우리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그 불의의 사고를 당한 가정이 바로 한국인 가정이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가장의 위대한 용서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두 아이들과 아내, 장모를 잃은 가장은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전투기 조종사는 사고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나는 그를 용서했고, 그가 이번 일로인해 고통당하지 않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정말 위대한 용서가 아닐 수 없습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우리 모두도 이와같이 용서하는 사람이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 모두도 다시 용서의 사람이 도리것을 다집하기 바랍니다.

  1.‘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의 가르침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신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예수님의 모습이 보여집니다. 그것은 5절입니다. 즉, 힘들게 지붕을 뚫고 내려진 중풍병자에게 에수님이 하신 말씀이 ‘네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 입니다. 여러분! 중풍병자와 주변 사람들이 기대한 것은 무엇일까요? ‘네 병이 나았다’또는 ‘곧 나을 것이다’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 사람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분명히 무엇인가를 가르치시기 위함일 것입니다. 즉, 인간이 불행한 이유가 무엇이며,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의 마땅한 삶이 무엇인가를 가르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받으라’ 는 말씀을 통해서 가리치시고자 한, 첫째는, “모든 인간의 불행의 원인이 죄 때문” 이라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을 기대했을까요? 병고침일 것입니다. 그는 중풍병으로 인해서 불행한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지금까지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여겨지는 중풍병의 고침을 바랬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중풍병자를 불행하게 만든 것은, 그 병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가진 죄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인간이 격는 불행의 원인은 죄 때문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죄가 없거나, 죄를 짓지 않았다면 인간은 결코 불행하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점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 이전에는 불행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면에서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죄를 짓고난 다음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든 것이 불행해졌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불행을 느꼈고, 부부사이에서도 불행이 느껴졌으며, 그의 가정도 불행해졌고, 영혼의 문제에 있어서도 불행해졌습니다. 또한 육체의 문제에 있어서도 불행해졌습니다. 그리고 아담 이후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이 다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불행은 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을 예수님은 가르치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어떤 불행이 느껴진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불행의 원인이 될만한 죄를 찾는 일입니다. 물론, 우리들이 느끼는 불행이나 모든 문제의 이유가 100% 죄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를 훈련하게 하시기 위해 불행과 문제라는 방법도 하나님이 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이런 불행, 문제를 격게 할만한 죄는 없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내안의 죄, 깨달지 못하는 죄, 알지 못하던 죄를 찾고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발견했다면,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죄된 것들을 정리해야 합니다.
 
 또,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라는 말씀을 통해서 주님이 가르치시려는 두 번째는, “예수님은 누구이신가?”에 대해서 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이 말하려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인기가 많으신 분, 말씀을 가르치시는 분, 중풍병도 고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 그러나 이것과 비교할 수 없이 더 중요한 소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분’ 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단지 병을 고치시기 위함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가지는 그러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고, 그래서 인간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믿는 자마다 죄의 용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으로 인해 죄사함을 받은 줄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언제든 우리들이 죄를 고백하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죄를 깨달을 때마다 주님 앞에 여러분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기를 바랍니다.
 
 또, ‘네 죄사함을 받았다’는 말씀을 통해서 주님이 가르치고자 한 세 번째는, “우리도 서로 용서를 말해주는 사람이 되라!” 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용서를 말씀해 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에게 용서를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용서를 잘 말해주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본문에 나오는 서기관처럼 용서에 인색한 사람은 아닙니까? 6-7절을 보면, 서기관들이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라고 생각하는 내용이 기록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없다는 그들의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입니다. 즉,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기대하며 서로 용서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이 점을 몰라고, 그래서 그들은 용서를 모르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도리어 죄를 지적하고 정죄하는 것을 더 좋아했던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정죄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 죄라는 것을 아는 것도 바라고, 그 죄의 문제를 주님이 해결하셨음을 아는 것도 바랍니다. 그러나 더 바라는 것은, 여러분 모두가 비난, 지적, 정죄의 사람이 아니라, 용서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용서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2.용서의 사람이 되려면
 그러나 용서는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많이 배웠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니고, 많이 가졌다고 할 수 있는것도 아니며, 나이가 많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신앙의 연수가 많다고 할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용서는 정말 위대한 신앙인들이 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순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신앙인들의 모습속에서는 어김없이 용서의 모습이 발견됩니다. 예를들면,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시기심에 이성을 잃은 사울왕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울왕에 의해서 여러 차례 죽음의 위협을 당했습니다. 그러던 중 다윗이 사울에게 복수할수 있는 기회가 2차례 있었습니다.(엔게디, 하길라)나 다윗은 사울왕에게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오 사울왕을 용서했고, 사울왕의 손주이며 유일한 혈육이며, 사고로 장애를 갖게된 므비보셋을 보살펴 주기까지 했습니다. 욥을 보십시오! 욥은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때 4명의 친구들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욥에게 지금 당하고 있는 모든 고난이 너의 죄 때문이니 회개하라고 정죄하게 됩니다. 얼마나 욥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까? 그런데 욥은 그런 친구들을 용서했고, 뿐만 아니라, 그런 친구들을 위해 복을 빌어주었습니다.(욥42:10절) 또,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는 하나님께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모세에게 반역을 일으킨 사람들이 종 종(약3번)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시기하여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미리암에게 나병에 걸리게 하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미리암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를 용서한 것입니다. 또, 스데반집사를 보십시오!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을 위해 ‘저들에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행7:60절)’ 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용서한 것입니다. 또한, 손양원목사님을 보십시오!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고 양아들을 삼았습니다. 이렇듯 신앙의 위인들은 모두 용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용서의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죄를 용서받은 자라는 사실은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이 죄이며, 자신의 죄를 대신해 주님께서 죽으셨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 용서받았음을 확신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 확신에서 용서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용서의 사람이십니까? 아니면 복수의 칼날을 갈며 사는 사람은 아닙니까? 여러분이 신자라면 결코 그래서는 안됩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용서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비록 여러분의 마음에 아픔과 상처를 준 사람이라도, 여러분을 수치스럽고 억울하게 만든 사람도, 여러분의 인생을 망쳐 놓은 사람이라도, 배우자, 부모, 형제, 친구, 이웃, 동료..., 등 그 누구라도 용서할 수 있는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용서하면 될까요? 몇 번이나 용서하면 될까요? 마18장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용서에 대해 질문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몇 번까지 용서하면 됩니까? 7번이면 되겠습니까? 아마도 베드로는 칭찬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지니라’입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용서의 횟수만을 말하는게 아니라, 모든 것을 모든 사람을 한없이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같이 끝없이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용서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3.왜 용서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용서의 사람이 되어야 할까?” 에 대해서입니다. 과연 우리들이 용서의 사람이 되어서,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가지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우리 모두가 용서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본문은 마18장의 일만달란트 비유입니다. 어떤 임금에게 일만달란트 빚진자가 있었습니다. 일만달란트는 당시 유대사회 최고의 화폐단위입니다. 참고로 당시 유대정부가 1년간 거두는 세금이 800달란트라고 합니다. 유대정부가 거두는 세금의 12.5배나 됩니다. 이것은 도무 갚을수 없는 빚입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임금이 빚진 신하를 불쌍히 여겨 빚 전부를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하에게 동료가 100데나리온(3개월 월급)을 빚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빚을 갚지 못하자 어떻게 합니까? 감옥에 가두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임금이 그 신하를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게 된다는 비유입니다. 여러분 이 비유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죄를 용서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원죄,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 모든 죄를 용서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과 누군가에게 용서받음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서로를 용서하는 것이 너무나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용서의 권세(사명)를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즉, 요20:23절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일흔번씩 일곱 번씩이라도 용서하라’고 제자에게 용서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엡4:32절에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말했으며, 또, 골3:13-14절에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말씀하셨고, 뿐만 아니라, 주기도문에서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용서는 대단히 중요한 삶인 것입니다. 좀 지나치게 말한다면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에게 용서를 말해줄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는,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용서해야 합니다. 잠19:1절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용서는 남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용서를 ‘가장 이기적인 사랑’ 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용서란 타인을 위해서 하는 것이기 이전에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는, 용서란 타인에게 주는 혜택이기 이전에 자신에게 주는 혜택이라는 말이며, 또는, 용서란 타인을 살리는 것이기 이전에, 자신을 살리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치가이며 소설가인 앨런 패턴(Alan Paton)은 용서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을 했습니다. ‘여기 불변의 법칙이 있다. 바로 우리가 입은 깊은 상처는 우리가 용서할 때까지는 결코 치유되지 않는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참 정확한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병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화병(hwa-byung)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화병이 있을까요?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용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고, 그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 이유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상처가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게 될 때, 마음의 상처를 치유될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은 사울에게 많은 그리고 깊은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삶이 지치고 병들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다윗이 사울왕을 용서했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화병을 가지고 계신분은 안계십니까? 또는 누구가로 인한 마음의 상처 때문에 숨막히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은 안계십니까? 그런 여러분에게 특효약을 소개합니다. 바로 ‘용서’입니다.  용서는 내 안의 수없이 많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최고의 특효약입니다. 용서란 마음의 분노와 상처를 치유하는 특효약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 마음에 용서가 안되는 분이 있습니까? 용서받은 자로서 용서가 당연한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무엇보다도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용서하십시오! 용서로 상처가 치유되고 마음에 평안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용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최고의 선물입니다.
  본문과 삶
 1)왜냐하면, 모든 인간의 죄로 인해 불행해졌기 때문입니다.
 2)또한 용서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며 책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하나님께 용서받고 용서의 사명을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3)그리고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도 용서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용서의 사람이 됨으로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고, 여러분의 마음의 상처에 치유를 받고 평안으로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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