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출15:22-27절
제목 :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명!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 중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실망과 섭섭함을 한번도 품어 보지 않은 분이 계십니까? 아무 없을 것입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을 향해 실망과 섭섭함을 품게 됩니다. 뛰어난 영성의 소유자인 필립 얀시는 하나님께 실망하지 않은 사람은 오직 불신자들뿐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하나님에게 실망과 섭섭함을 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분명한 것은 하나님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안목이 짧기 때문입니다. 2005년 4월 20일 서울 광진구에 있는 어린이대공원에서 코끼리 6마리가 탈출한 소동이 벌어진적이 있습니다. 3마리는 곧 잡혔고, 나머지 3마리는 도로변까지 나갔고 조련사들에 의해 우리로 돌아오는 도중에 무엇엔가 놀란 코끼리들이 도로변에 있는 한 음식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식당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이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합니다. 즉, 대공원측에서 받은 보상금으로 다시 시작해보겠다는 다짐으로 리모델링을 하고, 상호를 “코끼리 들어온 집”으로 바꾸고, 식당 메뉴도 “코끼리 정식”으로 바꾸었고, 식당안에는 당시 가게 안에 들어온 코끼리 사진을 걸어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코끼리 사건 덕에 유명해져 손님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시며,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단지 우리들의 안목이 짧아 지금만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조금만 멀리 내다볼수 있는 믿음의 안목이 있다면 하나님을 향한 실망과 섭섭함을 품지 않게 될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말씀 역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안목이 없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실망과 섭섭함을 들어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믿음의 안목이 생길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엘림보다 마라가 낫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의 400년간의 노예생활을 마치고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을 통해서 애굽땅에서 나오게 되고, 기적적으로 홍해바다를 건넌지 3일후에 있었던 일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앞부분은 홍해를 건넌후 모세를 중심으로 온 이스라엘백성의 대대적인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리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1-21절) 그리고 지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향해서 콧노래를 부르며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 모습이 상상이 되십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두려움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함은 조금도 없었을 것입니다. 도리어 기쁨과 기대로 마음이 설레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3일만에 그들에게 첫번째 위기가 찾아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술은 찬양에서 원망과 불평으로 바뀌게 됩니다. 22절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홍해를 건넌 후 수르광야에 들어온지 3일이 되었지만 물을 얻지 못했고, 23절에는 겨우 찾은 물이 써서(짠물) 마실 수 없는 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스라엘은 비록 노예생활이었지만 물이 풍부한 애굽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며, 뜨거운 사막에서 물없이 3일을 견디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원망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 섭섭함으로 원망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애굽에서, 홍해바다에서 이스라엘을 도우셨던 하나님께서 왜? 3일간 물을 주지 않으셨는가?에 대해서 입니다.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우리는 늘 성경을 읽으며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질문의 답을 찾으셔야 합니다. 바로 이런것이 하나님과의 좋은 교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제로 성경을, 하나님을 알아가게 됨으로 믿음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분명히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털까지 헤아리시는 분이시고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도우시겠다고 약속도 하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3일간 고통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을 주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혹시 하나님께서 1-2명은 몰라도 200만 이상의 사람에게 먹일만한 물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일까요? 하나님은 그렇게 무능한 분이 아니십니다. 홍해를 가른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40년간 만나를 먹이고, 30일간 메추라기를 먹이신 것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무능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무능한 분이 아니시라면 조금만 더 가면 엘림이 나올것이고 그곳에는 200만명과 가축들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풍부한 물이 있다고 말씀해주실 수도 있지 않은가요? 그럼에도 하나님은 3일간 침묵하고 계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그것을 오늘 본문 25절에서는 “시험하심”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언제 침묵하시던 하나님께서 말문을 여셨습니까? 그것은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도의 사용법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고통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을 주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지금 이스라엘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물이 아니라 “훈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훈련하기 위함일까요? 그것은 인생의 마라와 같은 시간을 만났을 때 원망과 불평이 아닌 도움의 기도를 할 수 있게 하는 훈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이런 훈련이 필요했을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향한 첫 걸음에 있고, 앞으로 그들이 나가야 하는 길에는 마라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이 많이 있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에 인생이 여러 가지 모양의 마라에 머물러 계십니까? 무엇인가에 의해서 힘들고 지쳐 주저앉아 계십니까? 그리고 그 힘든 여러분을 향해 침묵하고 계신 하나님께 실망하고 섭섭해 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러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여러분을 보시며 마음 편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여러분! 스데반집사님이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는 장면을 아실 것입니다. 그 장면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행7:56절에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것을 보노라”고 말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의 인생의 마라 가운데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고, 내버려두시는 것은, 여러분이 미워서가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그것보다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욥이 고통중에 배운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자신을 훈련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19c의 가장 위대한 설교가인 챨스 스펄전 목사님은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엘림보다 마라가 낫습니다. 그 이유는 “엘림은 그 순간만 누릴 수 있지만 마라의 훈련은 인생 전체에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인생의 마라에 머무는 순간에 마라의 귀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라의 훈련을 잘 받기 위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훈련을 피하면 안됩니다. 그 훈련을 마칠때까지 같은 훈련을 반복해서 주시기 때문입니다.
2.조금만 더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은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하자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25절과 같이 한 나뭇가지를 통한 신비한 방법으로 쓴 물을 단물로 고쳐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물을 마시도록 하심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만이 아니라 앞으로 나오는 본문에서도 계속됩니다. 예를들면, 먹을 것이 없다고 원망하면 만나를 주시고, 고기를 못먹어서 맥빠진다고 불평하면 메추라기를 주시고, 물이 없다고 원망하자 반석에서 물을 주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것은 원망과 불평하면 뭔가 얻을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힘들고 지칠때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감추지 말고 고백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럴수 있는 것이 우리들의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면서 후회라는 것을 자주하게 됩니다. 우리 아이들은 잘 모른 것일겁니다. 그것은 “조금만 더”입니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할 걸, 조금만 더 참을 걸, 조금만 더 공부, 사랑, 잘해줄 걸,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에 더 잘 섬길 걸, 아마 여러분이 천국에 가면 이 세상에서 더 믿음 생활을 잘 할 걸이라고 후회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무엇에든지 후회없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여러분이 3500년전 본문의 현장에 갈수 있다면 마라에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말해주시겠습니까? 분명히 웃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어리석게 원망하지 말라고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그리고 2시간만 더 참고 걸어가면 바로 앞에 엘림이라는 종려나무 70주의 그늘과 온 백성이 충분히 마시고 남을 오아시스12개나 있어, 후회하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려라고 말해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은 이미 이스라엘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분명히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의 이야기를 해봅시다. 지금 여러분이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있다면, 인생의 마라에 있다면 스스로에게 “조금만 더” “2시간만 더” 라고 말하는 분이십니까? 그러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은 우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것들은 우리들에게 향한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조금만 더 인내” “2시간만 더 가면”이라는 소망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말해 원망스러운 현실 앞에 기다리고 있는 축복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의 죽음을 보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생업으로 돌아간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죽음 넘어에 있는 부활의 소망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욥이 그 극심한 고통을 당할 때 죽기를 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고통 넘어의 축복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때 조급해지고, 발을 동동거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넘어에 있는 축복을 볼 수 있는 소망의 안목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노벨 평화상을 받은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을 아실 것입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이전 44세에 수감되어 72세까지 27년 동안 감옥에 있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만델라 대통령이 감옥에 있을 때에 자신의 딸이 아이를 낳아 아버지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때 만델라 대통령이 아이의 이름을 ‘Hope’ 곧, 희망, 소망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망을 한순간도 잃지 않은 그가 출소한 후 대통령이 되어 흑인인권운동에 큰 몫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만일 넬슨이 현실의 시련만 생각하고 포기했다면, 그는 대통령이 될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어떤 형편에 있다해도 소망을 갖을수 있기를 바랍니다. 현실넘어의 복됨을 바라보며 조금만 더 기다릴수 있기를 바랍니다.
3.하나님의 사명
우리는 지금까지 엘림보다 마라 낫다는 사실, 현실 넘어를 볼수 있는 소망의 안목을 갖아야 한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들이 이 가르침을 아멘으로 받을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은 마실 물이 없어서, 그리고 힘들게 찾은 물이 써서 마실수 없음으로 원망을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25절에 “한 나무를 지시하시고 물에 던지라고”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모세는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물이 달아졌고 백성들이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자신을 26절에서“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치료하신다는 것인가요? 지금 이스라엘은 병에 들어 있었나요? 아닙니다. 그러면 물을 치료하는 하나님이라고 가르치고 계신가요? 아닙니다. 혹시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지 못하는 신앙의 병을 말할까요? 얼마든지 가능한 해석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의 병든 몸과 영혼을 고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늘 육신만이 아닌, 신앙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렇게 국한적인 것을 말하려는것이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은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께 물을 고치는 분, 신앙의 병을 고치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강조점은 치료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을 향한 사명과 의무와 책임이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다시말해 이스라엘을 돌보시고, 보호하시고, 필요를 채우셔야 하며, 이스라엘이 구할 때 주셔야 할, 그리고 위로하셔야 할, 인도하셔야 할, 책임지셔야 할, 하나님으로서의 사명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말입니다.
여러분! 알고 계셨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 각 사람, 각 가정, 교회를 향한 사명을 갖고 계십니다. 다시말해, 지금 여러분의 아픔과 고통의 현실을 도우셔야 할 사명과 의무가 하나님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에게도 사명이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직 우리 편에서만의 사명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사명이 있음을 말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위대한 사명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명으로 여러분이 죄의 용서와 구원을 받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 이 땅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명이 있기에 마라가 가치있고, 소망을 품을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빌게이츠가 자신의 성공비결을 말할 때 사용하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change 와 chance입니다. 즉, 날마다의 변화속에 기회가 온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생각을 바꾸셔야 합니다.
본문과 삶
1)엘림보다 마라가 낫다는 점과 인생의 고통이 훈련의 시간임을 잊지 맙시다.
2)조금만 더라는 소망의 안목을 갖읍시다.
3)하나님에게도 우리를 향한 사명이 있습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이 인생의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을 배우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신앙의 성장을 일구어 낼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여러분에게 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