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5:15-19절 고린도후서강해28
제목 : 새로운 피조물이란?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예전에 방송에서 ‘렛미인’ 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외모 때문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는 여성들을 선별해서 성형수술을 시켜주고,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참여시키고, 또, 여러 가지 심리 상담을 통해서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정말 얼굴을 바꾸고, 몸매가 바뀌면 새로운 사람이 될까요?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남편도 몰라보고, 부모도 몰라보고, 아이들도 몰라 볼 정도로 새로운 모습을 갖습니다. 그러나 그 존재까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외모만 바뀌는 것 뿐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즉,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렛미인과 다른 점은 존재 자체가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우리 개인의 측면에서 살펴보고(다음주에는 다른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새로운 피조물된 우리들이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 신자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유명한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17절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고 말을 합니다. 과연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보통 신자들은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을 고작, 한해를 마무리 하고 새해를 출발할 때, 새로운 마음 가짐 정도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또는 어떤 어려운 일을 격은 후 다시 재기하기 위해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말은 단지, 새로운 마음, 새 출발 정도을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도리어 더 크고 깊은 가르침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여러가지로 묻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말은 우리가 새롭게 변화되었다는 말일까요? 아니면 다시 태어났다는 말일까요? 좀 더 쉬운 예로 말해봅시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말이 더러운 옷을 세탁해서 새것처럼 만들어 주었다는 말일까요? 새 옷으로 바꾸어 주었다는 말일까요? 또, 고장난 물건을 새것처럼 고쳐주었다는 말일까요? 새로운 물건으로 바꾸어 주었다는 말인가요? 성경의 대답은, 새 물건으로 바꾸어 주었다고 말하고, 새 옷으로 바꾸어 주었다는 말하고, 다시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예수 믿기 이전의 우리와 예수를 믿고 난 다음의 우리에는 전혀 연속성이 없다는 말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예수를 믿기 이전의 우리와 예수를 믿고난 다음의 우리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사도 바울이 사용한 단어들을 보십시오! 15절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다시 살아나신’ 이라고 말을 합니다. 누가 죽고 살아났다는 말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고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살아나신 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예수님 본인만의 죽음과 부활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시말해, 예수님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이고, 예수님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롬6:3절 이하를 보면,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갈2:20절에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말은 죽을 뻔했는데 안 죽고 산 자가 된것이 아니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다시말해, 죄인으로서 죄의 본성, 죄로 인한 부패한 모든 것이 죽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엡4:24절처럼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 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새로운 피조물의 의미이며 가치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수리되고, 고쳐진 것(리퍼 제품-초기불량으로 사용자가 반품한 물건을 고쳐 파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사람,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음받은 새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중생’또는 ‘거듭남’ 이라고 말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2.새로운 피조물로서 힘써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죄인으로서 죽고, 의와 거룩함으로 지음받은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이 쯤되면 여러분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싶을 것입니다. ‘목사님 죄인된 우리가 죽고,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새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왜 여전히 우리는 믿음이 없었던 때와 마찬가지의 모습으로 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이유는 새 사람으로서의 습관이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에게는 아직도 옛 사람으로서의 습관이나 경험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아주 독실한 불교 신자가 있었습니다. 인생 대부분을 절을 다니며 살았던 분입니다. 그러던 중, 전도를 받고, 은혜 가운데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앙의 열심히 생기고 궁금한 것도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월요일 너무 궁금한게 있어서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교회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계속 문을 두드리자 관리집사님 나왔습니다. ‘어쩐 일이십니까?’ 그러자 이 신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주지(住持) 목사님 좀 뵙고 싶어서요!’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담임목사님이라고 불러본 경험이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또, 어느 교회에 장례식만을 전담으로 사역하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어느날 제자로부터 결혼식 주례를 부탁받았습니다. 처음으로 하는 결혼주례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긴장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결혼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너무나 긴장한 목사님은 강단에 서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고000 군과 고000양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결혼주례를 해번 경험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태에서부터 죄인된 습관과 경험을 가지며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땅을 살면서 계속해서 죄인된 습관과 경험을 쌓아왔던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와 거룩함으로 지음받은 새사람의 삶보다는 아직도 죄인이었던 옛사람의 삶이 더 쉽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와 진리로 지음받은 새사람이지만 여전히 옛사람의 삶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과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에 대해서 더 중요한 교훈을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우리들은 의와 진리와 거룩함을 입은 새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장성한 어른으로 태어났을까요? 아니면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났을까요?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은 어린 아기의 모습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가장 바라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일을 많이 하는 것일까요? 자신을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어떤 일, 업적, 공을 많이 세우는 것보다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새사람을 입은 자신을 더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 가는 것을 가장 바라십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이제 이 점을 삼하7장의 말씀으로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삼하7장은 다윗이 하나님께서 자신이 성전을 짓고 싶다고 말을 합니다. 얼마나 귀한 마음입니까?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매일 넘쳐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너무나 기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아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더 해줄까?’ 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다윗의 제안에 너무나 기쁘셨던 하나님은 다윗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그 이유는 다윗이 너무나 많은 피를 흘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다윗에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삼하7:11-16절을 보면, 특별히 12절을 보면,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라고 말을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지어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을 더 귀하게 세우시고 다윗의 후손을 세워주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다윗 자신이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지는 것을 더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또, 사울왕을 보십시다. 하나님은 아멜렉과 싸우게될 사울왕에게 승리를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사람이든 짐승이든 불쌍히 여기지 말고, 다 진멸할 것을 명령합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살찌고 튼실한 짐승들을 죽이지 않고, 궁전으로 끌고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울왕은 그 짐승들은 하나님께 제사로 사용하기 위해 끌고왔다고 핑계합니다. 그러자 사무엘선지자는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살찌고 튼실한 번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또,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의 귀를 자른 베드로의 사건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말고의 귀를 잘라버렸습니다. 대단한 열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떨어진 귀를 집어 다시 붙여주셨습니다. 남의 귀를 자르는 열심있는 사람보다 원수의 귀를 붙여주는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만 더 확인해 봅시다. 마25장의 달란트 비유를 보십시오! 어떤 주인이 각 각 종에게 5, 2, 1달란트를 맡깁니다. 그리고 나중에 돌아와 결산을 했습니다. 그래서 5,2, 달란트 맡은 자들을 칭찬했습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윤 때문일까요 충성됨 때문일까요? 충성됨 때문입니다. 즉, 이윤은 남기는 자가 되어서 칭찬을 한 것이 아니라, 충성된 사람이 되어서 칭찬한 것입니다. 하나만 더 생각해보십시다. 고전13장은 사랑장입니다. 2절을 보면,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입니다. 여기서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라는 말은 영어로는 ‘I am nothing’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뜻도 되지만, ‘나는 없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들이 예언하는 사람이 되고, 비밀과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만한 능력을 가지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자신의 완성을 위해 힘쓰는 사람이 되는 것을 더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들이 어떤 일을 많이 하고, 잘하고, 대단한 업적을 가지고, 열심히 있는 사람보다 자기 자신의 신앙을 완성해 가는 일에 힘쓰는 신자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런 관점에서 신앙, 또는 신앙생활이란? 예배드리고, 성경을 배우고, 봉사하고, 응답받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음받은 새사람으로서 자신을 날마다 만들어 가고, 완성시켜 가는 싸움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매일을 이러한 싸움을 하고 계십니까? 스스로 점검하시고, 신자된 자신을 완성해가는 일에 열심을 내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3.그렇다면, 새로운 피조물로 나를 어떻게 완성해 갈것인가?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어떻게 하면 신앙을 완성해 갈수 있을까?’ 에 대해서입니다.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한번 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음받은 새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새 사람답게 살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것은 옛사람의 습관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습관이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피조물로서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는, 옛 사람의 습관을 버리는 일입니다. 새 사람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옛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엡4:22절 이하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또, 골3:8절 이하에 보면, ‘이제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고 말을 합니다. 결국, 옛사람의 습관을 버리는 일이 필요합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옛 사람의 습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버리셔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거룩한 습관을 만드는 일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이 거룩한 습관을 많이 만들수록 우리의 신앙은 더욱 완성되어 갑니다. 예를들면, 예배의 습관, 묵상의 습관, 기도의 습관, 감사의 습관, 용서의 습관, 찬양의 습관, 인내의 습관, 기다림의 습관, 겸손의 습관, 섬김의 습관..., 등 거룩한 습관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죽고 다시 태어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본문과 삶
1)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음받은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2)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한 신앙인으로 만들고 완성되어 가야 합니다.
3)그러기 위해 옛사람의 습관을 버리고, 거룩한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새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성되어 가는 기쁨과 칭찬이 있기를 바랍니다.